나와 생일이 같은 그녀를 안 건 고등학생 때였다. 같은 반 친구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쉽게 친해졌다. 정호승 시인을 좋아했던 그녀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시를 쓰고 싶어 했다. 왼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항상 해맑은 미소로 내 마음을 헤아려 주던 속 깊은 친구였다.
그녀와 편해질수록 때때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꼈지만 괜히 어색해질까봐 마음을 숨겼다. 주위 친구들은 몸이 불편한 그녀와의 교제를 걱정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작은 출판사에 취직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생계를 감당해야 했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것 역시 그녀 몫이었다. 간혹 힘겨울 때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도와줄 수 없어 답답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해 주었지만 내심 서운했다. 그 남자와의 일들을 얘기하며 즐거워할 때면 질투가 났다. 그러나 남자와 다투고 힘들어하면 위로하고 곁을 지켜 주었다. 차마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남자와 헤어져 내 앞에서 울던 날, 복잡한 심경을 애써 추스르며 그녀를 다독여야 했다. 한동안 고민하며 그녀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고백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잊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더욱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군 입대 전날, 용기를 내 그녀에게 전화했다. “청량리역 앞 시계탑에서 만나는 거 어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만남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내 감정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날, 나는 시계탑 아래서 그녀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흰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해 첫눈이었다.
그녀를 기다리며 느꼈던 두근거림은 점차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한 것이리라. 그녀를 원하면서도 원망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한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오래도록 맞고 서서 그녀에 대한 나의 기나긴 마음의 짐을 하얀 눈 위에 힘겹게 떨궈야 했다.
제대 후,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다시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담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 많이 실망했다고. 왜 그날 시계탑에 오지 않았는지. 자신은 오래도록 기다렸다고….
말인즉, 그녀는 ‘청량리역 앞 시게탑 다방’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나는 ‘청량리역 앞 광장 시계탑’에서 기다렸던 것인데…. 순간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서로 장소를 착각했고, 그날 이후 생긴 오해가 인연의 기회를 어긋나게 한 것이다.
매년 첫눈이 내릴 때면 그날을 떠올린다. 만약 그때 우리의 만남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연이 닿으면 세월이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한대.”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마주 보지 못할지라도 인연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그녀와 공유했던 많은 시간은 지금도 내 가슴에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날 시계탑 아래서 기나긴 마음의 짐을 떨구며 그녀에게 진심으로 바랐던 그 한마디. 늘 행복하라고….
* 청량리역 앞 시계탑 *
나와 생일이 같은 그녀를 안 건 고등학생 때였다. 같은 반 친구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쉽게 친해졌다. 정호승 시인을 좋아했던 그녀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시를 쓰고 싶어 했다. 왼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항상 해맑은 미소로 내 마음을 헤아려 주던 속 깊은 친구였다.
그녀와 편해질수록 때때로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꼈지만 괜히 어색해질까봐 마음을 숨겼다. 주위 친구들은 몸이 불편한 그녀와의 교제를 걱정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작은 출판사에 취직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생계를 감당해야 했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것 역시 그녀 몫이었다. 간혹 힘겨울 때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도와줄 수 없어 답답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해 주었지만 내심 서운했다. 그 남자와의 일들을 얘기하며 즐거워할 때면 질투가 났다. 그러나 남자와 다투고 힘들어하면 위로하고 곁을 지켜 주었다. 차마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남자와 헤어져 내 앞에서 울던 날, 복잡한 심경을 애써 추스르며 그녀를 다독여야 했다. 한동안 고민하며 그녀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고백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잊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더욱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군 입대 전날, 용기를 내 그녀에게 전화했다. “청량리역 앞 시계탑에서 만나는 거 어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만남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내 감정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날, 나는 시계탑 아래서 그녀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흰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해 첫눈이었다.
그녀를 기다리며 느꼈던 두근거림은 점차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한 것이리라. 그녀를 원하면서도 원망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한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오래도록 맞고 서서 그녀에 대한 나의 기나긴 마음의 짐을 하얀 눈 위에 힘겹게 떨궈야 했다.
제대 후,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다시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담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 많이 실망했다고. 왜 그날 시계탑에 오지 않았는지. 자신은 오래도록 기다렸다고….
말인즉, 그녀는 ‘청량리역 앞 시게탑 다방’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나는 ‘청량리역 앞 광장 시계탑’에서 기다렸던 것인데…. 순간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서로 장소를 착각했고, 그날 이후 생긴 오해가 인연의 기회를 어긋나게 한 것이다.
매년 첫눈이 내릴 때면 그날을 떠올린다. 만약 그때 우리의 만남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연이 닿으면 세월이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한대.”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마주 보지 못할지라도 인연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그녀와 공유했던 많은 시간은 지금도 내 가슴에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날 시계탑 아래서 기나긴 마음의 짐을 떨구며 그녀에게 진심으로 바랐던 그 한마디. 늘 행복하라고….
* 이미지 출처 / ksc12476567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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