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수험생 그 글 살짝 고쳐봤어요.만연체가 너무 많고, 한 주제 않에 너무 많은 것을 넣은 감은 있지만.....구조는 차치하더라도 읽으면서 너무 따뜻했는데...고치는 동안 아주 따스함이 묻어나더이다... 소주제 나누고 알아볼 수 있게까진 해봤어요.읽기 쉽게 문장 짧게 끊어서 나누고....애매한 표현은 의역한 것도 있고요, 뭐, 판단은 님들이 알아서 하시길.... 1. 따뜻했던 학창시절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재미있게 살았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부모님과 갈등도 적지 않았지만, 너무 따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는 순간순간 하고 싶은 대로 흘러 다니듯 지냈다. 교과서나 문제집과 거리가 먼 책들을 실컷 즐겨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학교도서 구입희망 목록에, A4 3장 분량의 희망리스트를 떡하니 걸어놓는 철면피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내희망도서를 거의 다 구비해주셨던 학교와 도서관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림도 마음껏 그렸다. 아마 수업시간에 더 민폐인 아이는, 자는 아이보다 그림 그리는 아이가 아닐까. 선생님 눈을 피해 교과서에 마음껏 낙서를 했고, 스케치북에는 쉬는 시간마다 현란한 낙서가 가득 찼다. 수채화도 짬짬이 그렸었다.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보리차 가득 따라 놓은 컵을 옆에 두고서 책을 읽다가, 끼적끼적 글도 쓰다가,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었다. 학교 명사 초청강의 등에는 전부 참석해서, 와 닿는 말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꼭 메모를 했다. 혼자 ‘재밌어. 역시 오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면서. 고3이 되자, 수업보다 자습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 등 모든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먼 채로 흘러가고 있는 고3이었다. 교실보다 정독실 복도 책상에서 치열하게 대입 공부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과 아주 가까이 있는 이방인이었다. 모두가 불안과 긴장과 열정을 뿜어내던 사이에서, 나는 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홀로 부유하고 있었다. 물론 공부는 하지 않지만, 그리 걱정 없이 태평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가 있을 것인가. 그래도 나의 주위에 있었지만 나와 공감 하지 못하고 지나친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 후회 없이 즐겁게 지냈다. 아마 사춘기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극에 달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신조는 ‘괜찮아 어떻게든 되니까’ 이지만, 성인이 되는 준비를 하던 시간에는 문득문득 극한 고민이 생겼다. 그것이 ‘어떻게든’과 부딪쳐서 말로 표현 못할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나의 앞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무지막지하게 현실성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사업을 해 볼까?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워보자. 돈이 문제라면 이렇게 돈을 모으고 저렇게도 돈을 모아보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내 지나간 추억속의 시절이다 보니, 미화가 되고 좋은 기억만이 덧붙여진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학창시절은 재미있고 후회 없이 흘러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시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셨던 분들은 선생님들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께 죄송하다. 나를 혼내시기보다 관심을 가져주셨던 선생님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온기가 계속 전해진다. 따뜻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2. 재수공부 대신 인생공부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수능 원서는 접수하기로 했다.언젠가 대입 준비할 때를 위해, 인생 경험 하나를 만들어보고 수험장에서의 느낌과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이 수시와 정시를 쓸 때도, 재수하고 다음 수능을 기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사 나의 태평한 행동들과는 반비례하게, 어느 누구하나 의지력과 계획성 행동력 등을 적절히 쓰지 않으면 계획은 종이 한 장 생각 한 구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또 별개라는 것도 느꼈다. 재수 공부는 하지도 않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대학의 입시요강 같은 것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대신 일을 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부모님 가게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렸다. 가구를 싣고 배달하고, 많은 손님들을 만나며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맛볼 수 있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재수 공부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진짜 ‘인생 공부’였다. 가구집 겸 꽃집이라, 덕분에 좋아하는 흙과 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가장 신났던 것은 물건 떼러 갈 때였다. 사실 일하기보다는, 거의 놀러가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꽃시장에 들어서면, 꽃과 나무 등의 식물들이 나를 반겼다. 꽃향기와 나무들이 뿜어내는 푸른 기운들은 내 맘을 울렁이게 했다. 후끈한 공기의 몇 백 평의 비닐 온실 속에서 자라나,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푸른 생명들. 식물들도 저마다의 생을 살면서 예쁘게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키우기 위해 노력했을 화원 주인들의땀방울이 담긴 식물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름끝자락쯤, 외가댁 농장에서 양파를 수확했다.매일 합천까지 양파를 트럭에 실어 나르며 우리 동네 단골들에게 배달했다. 중국집 등 거의 모든 동네 음식점, 동네 시장에 양파 상자를 실어 찾아갔고, 노인 분들께는 수레로도 전해드렸다. 남은 양은 시장에다 판매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동안 먹은 양파는, 거의 모두 외가댁의 양파가 아닐까. 새벽녘에 가게 일을 마치고, 합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무채색 야경을 보고 있으면, 트럭 창밖의 바람이 손에 느껴졌다. 새벽일터의 수많은 사람들과 차 안에서 울려 퍼지던 카오디오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둑어둑하지만 따뜻했던 그 길을 지나며 시골길의 씁쓰레한 흙냄새를 맡았다. 부모님과 수다도 많이 떨며 가까워졌던 행복한 기억들이다. 부모님 가게 앞에서 붕어빵을 굽기도 했다. 붕어빵 하나를 팔더라도, 사람 한명 한명과 인사하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은 춥네요.” “저기서부터 붕어빵 냄새가 엄청 좋아요.” “잘 먹겠습니다.”“감사합니다.” 그동안 한 동네 살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과도 참 많이 인사하며 지내는구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웠다. 순간순간의 땀방울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희한하게도 웃음이 난다. 그때 쌓았던 많고 소소한 경험들 모두가 다 일터의 땀방울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자체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성인이 된 몇 년 동안, 아무런 경력도 이렇다 할 소득도 학력도 없고 이루어낸 것이 없다. 이따금씩 반백수의 생활을 하던 불효녀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자기합리화라고 해도 진실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즐겁고 후회 없는 지난날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내 앞으로의 날들에 크고 엄청난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에게 정말 감사한다.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해 주시고, 많은 대화를 하며 그 속에서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비판은 하더라도 한 번도 혼은 내지 않은 우리 부모님. 이따금씩 자식에 대한 걱정과 푸념이 섞인 화는 냈지만 날 그저 기다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 고집만 세고 말대꾸할 정도로만 똑똑한척하는 딸내미 때문에 골치만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과 동생과 대화하고 부대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부모님께 그저 죄송하고 감사하고, 낳아주심에 키워 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나의 남동생도 나에게는 큰 힘이고 삶의 의미다. 고집 세고 우락하고 가끔 특이한 행동까지 서슴없이 하는 나를 중화시키기 위해, 동생이 태어난 것만 같다. 배려심이 아주 많고, 나와 다르게 부지런함이 몸에 밴 동생은 가끔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착한 동생이 없었다면 역시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감사가, 의미 없는 공수표 남발이 되지 않도록 더 잘해야겠다. 가족과 영원히, 후회 없이 행복하도록. 3. 23살 수험생이 된 지금 작년부터 올해까지 딱 1년 좀 넘게 붕어빵을 팔다가, 이제 대학도 가야 하니 수능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1년여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 뒤, 2016학년도 수능을 친 뒤에 대학 입학을 하고서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고 싶다. 특수교육학이나 사회복지학을 가장 배우고 싶다. 어느 과를 가든 간에, 대학에서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고, 열심히 공부해 지식을 넓히고 그 속에서 삶에 필요한 지혜를 찾고 싶다. 졸업 후 배운 것들을 맘껏 활용하며,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꽃집 일도 도와봤으니 원예사 자격증도 따서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고, 적은 돈으로 넓은 곳을 쉽게 다닐 수 있게 실용적인 외국어도 배워두고 싶다. 원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특히 수화를 배우고 싶다.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청각장애인이어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꼭 수화를 배워 누군가를 돕고싶다.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던 나와 닮은 우리 할아버지가 청각장애로 사회속의 벽을 못 넘어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가슴 아리기 때문이다. 후천적 청각장애로 수화도 미처 배우지 못하고, 그저 큰 소리로 소리치듯 대화하시거나 우리의 금붕어 입모양을 보고 대화하던 할아버지. 애주가에 애연가셨고, 신문과 뉴스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사춘기 시절 반항심 때문에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슬프다. 수화로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일상생활 가능한 수화 자격증을 따놓을 계획이다. 수화로 설명하며 외국어 공부와 이외의 공부 등을 도와주거나언젠가 봤던 병원 수화 도우미 분처럼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가려니 고민이 많지만또다시 멋진 경험을 기대하는 방랑벽과 역마살이 자꾸 발동한다. 친구들이 휴학으로 전환점을 찾듯 나는 입학으로 전환점을 찾으려 한다. 졸업하면 적어도 28살일 것이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뭔가 시작하기엔 그래도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가게를 차려 사업을 하던 공부를 더 하던 취직을 하던 나는 아마도 즐거울 것이다. 내가 수없이 끼적여 놓은 나의 목표들과 꿈들은 상상하던 그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도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게 앞으로도 힘내야겠다. 1
23살 수험생 글 살짝 고쳐봤어요
23살 수험생 그 글 살짝 고쳐봤어요.
만연체가 너무 많고, 한 주제 않에 너무 많은 것을 넣은 감은 있지만.....
구조는 차치하더라도 읽으면서 너무 따뜻했는데...
고치는 동안 아주 따스함이 묻어나더이다...
소주제 나누고 알아볼 수 있게까진 해봤어요.
읽기 쉽게 문장 짧게 끊어서 나누고....
애매한 표현은 의역한 것도 있고요,
뭐, 판단은 님들이 알아서 하시길....
1. 따뜻했던 학창시절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재미있게 살았다.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부모님과 갈등도 적지 않았지만,
너무 따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는 순간순간 하고 싶은 대로 흘러 다니듯 지냈다.
교과서나 문제집과 거리가 먼 책들을 실컷 즐겨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학교도서 구입희망 목록에,
A4 3장 분량의 희망리스트를 떡하니 걸어놓는 철면피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내희망도서를 거의 다 구비해주셨던 학교와 도서관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림도 마음껏 그렸다.
아마 수업시간에 더 민폐인 아이는,
자는 아이보다 그림 그리는 아이가 아닐까.
선생님 눈을 피해 교과서에 마음껏 낙서를 했고,
스케치북에는 쉬는 시간마다 현란한 낙서가 가득 찼다.
수채화도 짬짬이 그렸었다.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보리차 가득 따라 놓은 컵을 옆에 두고서
책을 읽다가, 끼적끼적 글도 쓰다가,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었었다.
학교 명사 초청강의 등에는 전부 참석해서,
와 닿는 말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꼭 메모를 했다.
혼자 ‘재밌어. 역시 오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면서.
고3이 되자, 수업보다 자습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 등
모든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먼 채로 흘러가고 있는 고3이었다.
교실보다 정독실 복도 책상에서
치열하게 대입 공부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과 아주 가까이 있는 이방인이었다.
모두가 불안과 긴장과 열정을 뿜어내던 사이에서,
나는 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홀로 부유하고 있었다.
물론 공부는 하지 않지만,
그리 걱정 없이 태평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가 있을 것인가.
그래도 나의 주위에 있었지만
나와 공감 하지 못하고 지나친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 후회 없이 즐겁게 지냈다.
아마 사춘기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극에 달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신조는 ‘괜찮아 어떻게든 되니까’ 이지만,
성인이 되는 준비를 하던 시간에는 문득문득 극한 고민이 생겼다.
그것이 ‘어떻게든’과 부딪쳐서 말로 표현 못할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나의 앞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무지막지하게 현실성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사업을 해 볼까?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워보자.
돈이 문제라면 이렇게 돈을 모으고 저렇게도 돈을 모아보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내 지나간 추억속의 시절이다 보니,
미화가 되고 좋은 기억만이 덧붙여진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학창시절은 재미있고 후회 없이 흘러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시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셨던 분들은 선생님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께 죄송하다.
나를 혼내시기보다 관심을 가져주셨던 선생님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온기가 계속 전해진다.
따뜻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2. 재수공부 대신 인생공부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수능 원서는 접수하기로 했다.
언젠가 대입 준비할 때를 위해, 인생 경험 하나를 만들어보고
수험장에서의 느낌과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이 수시와 정시를 쓸 때도, 재수하고 다음 수능을 기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사 나의 태평한 행동들과는 반비례하게,
어느 누구하나 의지력과 계획성 행동력 등을 적절히 쓰지 않으면
계획은 종이 한 장 생각 한 구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또 별개라는 것도 느꼈다.
재수 공부는 하지도 않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대학의 입시요강 같은 것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대신 일을 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부모님 가게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렸다.
가구를 싣고 배달하고, 많은 손님들을 만나며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맛볼 수 있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재수 공부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진짜 ‘인생 공부’였다.
가구집 겸 꽃집이라, 덕분에 좋아하는 흙과 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가장 신났던 것은 물건 떼러 갈 때였다.
사실 일하기보다는, 거의 놀러가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꽃시장에 들어서면, 꽃과 나무 등의 식물들이 나를 반겼다.
꽃향기와 나무들이 뿜어내는 푸른 기운들은 내 맘을 울렁이게 했다.
후끈한 공기의 몇 백 평의 비닐 온실 속에서 자라나,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푸른 생명들.
식물들도 저마다의 생을 살면서 예쁘게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키우기 위해 노력했을 화원 주인들의
땀방울이 담긴 식물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름끝자락쯤, 외가댁 농장에서 양파를 수확했다.
매일 합천까지 양파를 트럭에 실어 나르며 우리 동네 단골들에게 배달했다.
중국집 등 거의 모든 동네 음식점, 동네 시장에 양파 상자를 실어 찾아갔고,
노인 분들께는 수레로도 전해드렸다.
남은 양은 시장에다 판매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동안 먹은 양파는, 거의 모두 외가댁의 양파가 아닐까.
새벽녘에 가게 일을 마치고,
합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무채색 야경을 보고 있으면,
트럭 창밖의 바람이 손에 느껴졌다.
새벽일터의 수많은 사람들과 차 안에서 울려 퍼지던 카오디오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둑어둑하지만 따뜻했던 그 길을 지나며 시골길의 씁쓰레한 흙냄새를 맡았다.
부모님과 수다도 많이 떨며 가까워졌던 행복한 기억들이다.
부모님 가게 앞에서 붕어빵을 굽기도 했다.
붕어빵 하나를 팔더라도, 사람 한명 한명과 인사하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은 춥네요.”
“저기서부터 붕어빵 냄새가 엄청 좋아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한 동네 살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과도 참 많이 인사하며 지내는구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웠다.
순간순간의 땀방울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희한하게도 웃음이 난다.
그때 쌓았던 많고 소소한 경험들 모두가 다 일터의 땀방울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자체라는 것을 크게 느꼈다.
성인이 된 몇 년 동안,
아무런 경력도 이렇다 할 소득도 학력도 없고 이루어낸 것이 없다.
이따금씩 반백수의 생활을 하던 불효녀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자기합리화라고 해도 진실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즐겁고 후회 없는 지난날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내 앞으로의 날들에 크고 엄청난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에게 정말 감사한다.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해 주시고, 많은 대화를 하며
그 속에서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비판은 하더라도 한 번도 혼은 내지 않은 우리 부모님.
이따금씩 자식에 대한 걱정과 푸념이 섞인 화는 냈지만
날 그저 기다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 고집만 세고 말대꾸할 정도로만 똑똑한척하는
딸내미 때문에 골치만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과 동생과 대화하고 부대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부모님께 그저 죄송하고 감사하고, 낳아주심에 키워 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나의 남동생도 나에게는 큰 힘이고 삶의 의미다.
고집 세고 우락하고 가끔 특이한 행동까지 서슴없이 하는
나를 중화시키기 위해, 동생이 태어난 것만 같다.
배려심이 아주 많고,
나와 다르게 부지런함이 몸에 밴 동생은 가끔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착한 동생이 없었다면 역시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감사가, 의미 없는 공수표 남발이 되지 않도록 더 잘해야겠다.
가족과 영원히, 후회 없이 행복하도록.
3. 23살 수험생이 된 지금
작년부터 올해까지 딱 1년 좀 넘게 붕어빵을 팔다가,
이제 대학도 가야 하니 수능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1년여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 뒤,
2016학년도 수능을 친 뒤에 대학 입학을 하고서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고 싶다.
특수교육학이나 사회복지학을 가장 배우고 싶다.
어느 과를 가든 간에, 대학에서 다양한 강의를 들어보고,
열심히 공부해 지식을 넓히고 그 속에서 삶에 필요한 지혜를 찾고 싶다. 졸
업 후 배운 것들을 맘껏 활용하며,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
꽃집 일도 도와봤으니 원예사 자격증도 따서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고,
적은 돈으로 넓은 곳을 쉽게 다닐 수 있게 실용적인 외국어도 배워두고 싶다.
원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특히 수화를 배우고 싶다.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청각장애인이어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꼭 수화를 배워 누군가를 돕고싶다.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던 나와 닮은 우리 할아버지가
청각장애로 사회속의 벽을 못 넘어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가슴 아리기 때문이다.
후천적 청각장애로 수화도 미처 배우지 못하고,
그저 큰 소리로 소리치듯 대화하시거나
우리의 금붕어 입모양을 보고 대화하던 할아버지.
애주가에 애연가셨고,
신문과 뉴스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
사춘기 시절 반항심 때문에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슬프다.
수화로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일상생활 가능한 수화 자격증을 따놓을 계획이다.
수화로 설명하며 외국어 공부와 이외의 공부 등을 도와주거나
언젠가 봤던 병원 수화 도우미 분처럼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가려니 고민이 많지만
또다시 멋진 경험을 기대하는 방랑벽과 역마살이 자꾸 발동한다.
친구들이 휴학으로 전환점을 찾듯 나는 입학으로 전환점을 찾으려 한다.
졸업하면 적어도 28살일 것이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뭔가 시작하기엔 그래도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가게를 차려 사업을 하던 공부를 더 하던 취직을 하던
나는 아마도 즐거울 것이다.
내가 수없이 끼적여 놓은 나의 목표들과 꿈들은
상상하던 그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도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게 앞으로도 힘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