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를 사랑의 선물로

마파람2004.01.05
조회1,783

“만약 두 개의 빵을 가졌거든 하나는 수선화와 바꿔라.

         빵은 사람의 몸을 기를 뿐이나 꽃은 사람의 마음을 기른다.” 

   코란의 한 구절인데, 참으로 오아시스에 핀 수선화 같이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예부터 아랍인들은 사막과 초원에서 유목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영화를 통해 본 물결치는 사막과 푸른 초원으로 인해 유목민의 삶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목민의 삶은 도시인은 물론 농경민보다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그러기에 빵을 수선화와 바꾸라는 코란 말씀은 의외라고 할 만큼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신의 말씀으로 산다”

  농업반 목축반의 유대인들 역시 거친 자연적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가엾은 약자의 운명 속에서 그들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체험하고 일신교를 세웠습니다. 약자의 신은 강해야 했고 그 신이 자기들만을 보호한다고 확신하며 시련을 견뎠으며 그 신의 현실적 보호수단이 공동체적 삶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성서는 시련 속에서 강화되어간 그들의 공동체적 삶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지로 분산된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통해 정체성과 공동체적 삶을 지켜 나가며 우수한 민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슬람교도들 역시 크리스트교와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 문화의 범람 속에서도 꿋꿋이 정체성과 공동체적 삶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상 서구 문화에 ”접수“되어 거의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세종대왕 등 우리 조상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다면 세 번 놀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차림새는 물론 생각마저 서구인 같은 후손들에 놀라고, 두 번째는 상상 밖으로 높은 경제 발전에 놀라고, 세 번째는 그렇게 타인의 아픔에 나 몰라라 하는 후손들의 뻔뻔한 이기심에 놀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전래 설화에 의하면, 가난한 형제가 밤에 남몰래 볏단을 서로의 낟가리에 쌓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형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덩어리를 줍고 나니 이상하게도 서로를 미워하고 해치려는 생각마저 들게 되어 마침내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고 돕는 것, 다시 말하면 공동체적 삶이야말로 가난 아니 존재의 아픔을 이겨내는 핵심적 처방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형제가 된 오늘의 우리 사회는 금덩어리를 주은 후 겪는 형제의 갈등을 모조리 겪고 있습니다. 가족 간의 재산 싸움 및 이혼과 가출로 기초 공동체인 가족이 해체 위기에 처하고, 노사 및 지역 갈등 등 집단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여 각종 대소 공동체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살벌한 갈등의 사막에 고립된 개인이 시샘과 적의로 손톱을 세우며 서로를 노려 보고 있습니다. 이미 개인 및 집단의 의사표시가 도를 넘어 폭력과 무질서가 횡행하고 어느덧 우리 모두가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폭력과 무질서의 횡행은 이들을 제압할 거대 폭력체제 곧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게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독재 정권이 으례 폭력배 소탕을 정권 존립의 한 근거로 내세운 적도 있습니다. 1차대전 후 독일에서는 사회 혼란을 배경으로 공산당이라는 붉은 폭력이 등장하자 이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나치당이라는 검은 폭력이 등장하였습니다.  공포에 떤 독일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나치당이 저지른 잔학한 인권 범죄의 간접적 협력자라는 낙인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폭력과 무질서 대신 법과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살벌하고 외로운 이기주의적 삶에서 따뜻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남의 슬픔을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메마른 사막에서 수선화가 필 수는 없지만 오아시스에서 수선화는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오아시스에서는 더불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빵을 먹을 때 배고프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는지 한번쯤 살펴야 할 것입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말씀과 수선화가 필요합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할 때 진정 자신의 삶도 가치 있고 풍요롭고 또 안전하고 따뜻한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앞으로 누구엔가 꽃을 선물할 때 수선화를 선물하지 않으시렵니까?. 수선화에 배어 있는 아름다운 마음까지 함께…

수선화를 사랑의 선물로

수선화를 사랑의 선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