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그는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많은 데이트 비용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렇게 4년이상의 시간을 함께 하며 모은돈은 4천만원가량있였고
결혼식 준비하는 과정에 첫째 아이가 우리에게 왔고...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준비는 각자의 집에 단 100원도 받지않고.. 4천만원과 얼마간의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예물도 물론 없었다. 우린 사귀면서 맞춘 굵직한 커플링을 예물로 대신했다.
첫째아이의 임신으로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서 가정주부의 역활을 햇다.
어느날.... 회식을 하던 그사람에게 전화가왔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회사 여자 동생..... 물론 나도 알고 있는 동생이다. ...
우리가 사귀고 있을때 그친구가 참 그사람을 따라다닌다고 들었다... 그 여자 동생의 말에 의하면
00언니 남친만 아니면 내가 꼬셔버리고 싶다 했다고 한다.
그 여자동생의.. 수화기 넘어 애교넘치는 목소리로 나에게 " 언닌좋겠다~~ " 한다.
그 애교넘치는 목소리가 부럽고...지금의 D자 몸매의 내가 처량했다.
그렇게 외박을 했다.....
이유가 왜 였는지... 몇일 짜증부리고... 토라졌다... 다시 화해를 했다.
그이후로 는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번 외박을 한적은 있지만, 10년 넘게 살면서 몇번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일인거 같다 ... 돌아보니
다시 본론으로
적은 돈으로 아파트 전세를 들어가다보니 좀 외진곳에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트도 작은슈퍼 하나인 동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사람에게 현금인출및 장봐오는 일들을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경제권이 그에게 갔다.
우린 최소한의 경비로 결혼식을 올리다보니 ...침구를 따로 구입하지 않고 쓰던걸 그냥 가져와 썼는데...그때 임신을 해서인지 목이 많이 아파서 베게를 꼭 바꾸고 싶었나보다..... (시간이 지나니 남일처럼 느껴진다)
주말에 언니가 놀러를 왔다.. 함께 2마트 장을보러 갔는데 나는 오랜만에 온 언니에게 초보 주부이지만 날치알밥을 해주고 싶어서 날치알과 베게을 살 요량으로 마트를 갔다.
베게는 사는건 사치라고한다.--- 기존에 있으므로
날치알은 냉동으로 된것은 저렴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좀더 맛있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반찬코너에 양념된 날치알이 사고 싶었고, 그사람은 옆에 언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비싸다..비싸다 그말만했다. 둘이 먹는다면 내가 양보햇겠지만, 양보하고 싶지않아 못들은척 달라고했다.(비싸긴했다. 그러나 아깝지 않았다) 근데... 옆에서 그사람이 난 안먹을꺼니까 조금만 사라고 한다.
물끓이는 주전자가 없었다..=----- 남아도는 냄비로 대신하라고함.
그런 일들은 소소하게 기억나지 않을만큼 많다. 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언니가 가슴아파하던 것도 많았더라... .
그런데 그 사람의 아낌없는 절약정신이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임신한 몸으로 일할곳을 찾았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렵게 알아낸 초콜릿 포장 부업이였다.
그때 마침 크리스마스며, 화이트데이, 모든 이벤트날이 많은 시즌이라서 일감은 정말 많았다.
만삭의 몸이였지만, 출산 일주일전까지 나는 그 초콜릿 부업을 했고, 힘이 들었지만,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생활할수 있다는 행복도 있었다.
큰아이를 키우며 그사람이 이직을 하게되어 서울옆 큰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우리 아이는 돌을 앞두고 있었고 다들 그렇겠지만, 작게나마 잔치를 하고 싶은 내마음은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싸움을 반복하고... 결국 나는 그를 이기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부업을 찾았다.
게루마늄 팔지? 였던거 같다...당시 최고의 건강보조제품이여서 팔찌와 목걸이를 만다는 부업이였는데 꽤 쏠쏠하게 벌었다... 일주일에 15만원 가량 벌었던거 같다 (주급으로 주어서)
나의 수입을 안 그사람은 같이 하자며 그 부업에 관심을 보였고 그 다음주 부터는 거의 25만원 가량 했던거 같다. 그렇게 그는 정말 부업을 하게 되었고 부업비를 받으면 꼬박꼬박 자기몫을 챙겼다. 갑자기 메스컴에서 그 팔찌가 효과가 없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급작스럽게 사향길로 접어들어 더이상 할수없게 되었고.
그후로 나는 헤어핀에 큐빅 박는일, 휴대폰 짹 조립일, 자동차 배선, 스티커 제거작업, 홍초마개작업
왜 그렇게 부업을 하며 살았나 궁금할꺼다.
그사람이 벌이 가 적었나 ? 다른 여자가있나? 씀씀이가 헤펐나? 궁금증이 생길꺼다.
그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30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단 한번도 그의 월급 명세를 본적이 없다... 숨긴것이 아니고 봐야할필요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일주일 단위로 생활비를 줬다.
처음 시작할때는 10만원을 줬다. 적지 않은 돈이였다.. 조금 적게 쓰면 몇만원씩 남아서 그돈으로 머리도 하고 옷도 사고 아이와 외식도 할수 있었으므로...
근데 그사람눈에도 그게 보였나보다... 그렇게 사치하는것으로 판단... 2만원을 깍고... 그리고 또 허리띠를 졸라 얼마간을 융통해서 쓰는게 보이면 1만원 ..... 또 2만원....그렇게 결국은
5만원을 받았다. 그돈은 쫄라 맬래야 맬것이 없었다.
어느날은 이런일이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었으나... 돈이 여유가 없었고... 큰아이 학원비 계산하는 생활비 카드로 결제를 햇다... 뭐라고 하면 따져야지...싸워야지 다짐하고 쓴거였는데
저녁이 되도 별말이 없었다.
그런다 다음주 생활비가 4만원만 입금되었다.....
두아이의 간식도 사줘야했고. 점심 저녁의 장거리도 봐야했고, 몇천원이라도 아끼어 애들 책도 사주고 싶었고 머리도 하고 싶었고, 철마다 옷도 사 입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업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던것이다.
부업한 돈은 더이상 터치는 하지 않았다. 난 그돈으로 애들 책을 원없이 사줬다.
35평 거실을 서점으로 만들만큼. 덕분에 두아이 모두 책을 사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들로 잘 자라주고 있다.
한날 맥주를 둘이 마시며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사냐고, 좀 남들처럼 즐기고 살면 안되냐고....그랬더니 그사람이 그런다... 나와 나이들어 애들한테 손안벌리고, 폐지주으러 안다닐려고 그런다고.....
나는 그말을 정말.................... 철썩같이 믿었고.
다른 아줌마들은 명품가방이니... 코트니 철마다 파마를 하고 해도 나는 부럽지 않았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속 깊은 그사람이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데...늘 부업을 하던 내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디스크 증상과 비슷했고 병원비와 검사비가 겁이났다. MRI , X-RAY , CT 검사를 해야한다고햇다. 비용이 못해도 100만원은 들거 같았다.
그사람에게 말하니 ...아무말도 안한다... 디스크가 아닌것 같다고한다.
그렇게 몇일을 스트레칭도 해보고 별짓을 다해도 통증은 더해만 갔고,
밑에 속옷도 입지 못할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 병원을 갈수밖에 없었다. 모든 검사를 하니
병원에 가니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왔다고 햇다.
매일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서 일을 했던 자세때문이였을까.
검사비는 일단 생활비 카드로 햇다 70만원 가량 나왔던거 같다.
그사람은 퇴근하여 나에게 몸에 대해 묻기보단 카드에 대해 묻는다.. 카드값을 어찌할꺼냐고...
나 병신같이 내가 부업으로 모은 돈으로 낸다고 했다. 그사람은 알았다. 한다.
디스크 치료는 척추에 주사요법을 했고 총 4차례~ 5차례 정도 맞았던거 같다.
그것도 역시 내가 부업비로 충당을 했다.
나중에는 앉았다 일어나면 허리가 끈어지는것같아 부업도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햇다. 아이들이 어린집과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오전이나 그사람이 퇴근한 오후 주말을 이용... 단기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돈으로 어찌 어찌 치료를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한덕에 더이상 재발도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지내다 든 생각은 그사람은 분명 나의 노후를 위해 모든것을 아끼고 절약한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아프니..... 그돈이 아까워하는것이 보엿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배심감이였는지.... 내 자신의 불쌍함이였는지 모르지만, 매일을 울었던거 같다.
그렇게 또 몇년을 살았다... 알바도 할수있었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고 있고 ..........
그러는 동안 2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구입하였고 대출을 9천만원 가까이 받은 대출을 다갚는 영광스런운 날도 있엇다.. 그러나 그 영광은 나의 것이 아니였다.
이미 그는 나를 아이 엄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으므로...
그러던중 우리 엄마가 아팠다.... 평생을 남의집일을 하신 엄마는 무릎 연골이 닳아 더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햇다.
우리 4형제는 각출 20만원을 생활비로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 30만원 가량 알바비를 벌고있던 나는 무리가 되었고. 주변에서 그사람에게 말을해라
사위도 아들이다 ...그런말에 힘을얻어... 어렵게 얘기를 꺼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너의 엄마는 젊어서 돈벌어 뭐햇냐?
나는 돈 없다.
나는 먹고 죽을돈도 없다.
결국 그는 나는 그사람의 와이프가 아니였다.
아이들에겐 참 자상한 아빠다. 본인의 엄마에겐 듬직한 아들이였다.
난 지금 그와 헤어졌고... 위자로도 재산분활도 받지않고 혼자 살고있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고있다.
그와 살때는 늘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해.... 죽을까 생각할만큼 맘적 여유가 없던 시간이였지만,
10년 결혼생활...나는 남이였다
10여년의 시간을 풀다보니 완전 기네요
읽다가 졸수도 있어요..... 먹던 라면을 던질수도 있겠군효...
미안해요
20대 초반 같은 회사에서 제대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연예할때의 그사람의 배려는 늘 한결같았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나로써는 한없는 믿음과 신뢰를 느꼈다
연예를 4년반을 하며 우리는 함께 적금을 들었다.
부유하지 않은 양가 부모에게 손을 벌릴수 없기 때문이였다.
나는 다달이 엄마에게 보내던 적금을 더이상 보내지 않고 그와 함께 적금을 들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그는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많은 데이트 비용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렇게 4년이상의 시간을 함께 하며 모은돈은 4천만원가량있였고
결혼식 준비하는 과정에 첫째 아이가 우리에게 왔고...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준비는 각자의 집에 단 100원도 받지않고.. 4천만원과 얼마간의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예물도 물론 없었다. 우린 사귀면서 맞춘 굵직한 커플링을 예물로 대신했다.
첫째아이의 임신으로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서 가정주부의 역활을 햇다.
어느날.... 회식을 하던 그사람에게 전화가왔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회사 여자 동생..... 물론 나도 알고 있는 동생이다. ...
우리가 사귀고 있을때 그친구가 참 그사람을 따라다닌다고 들었다... 그 여자 동생의 말에 의하면
00언니 남친만 아니면 내가 꼬셔버리고 싶다 했다고 한다.
그 여자동생의.. 수화기 넘어 애교넘치는 목소리로 나에게 " 언닌좋겠다~~ " 한다.
그 애교넘치는 목소리가 부럽고...지금의 D자 몸매의 내가 처량했다.
그렇게 외박을 했다.....
이유가 왜 였는지... 몇일 짜증부리고... 토라졌다... 다시 화해를 했다.
그이후로 는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번 외박을 한적은 있지만, 10년 넘게 살면서 몇번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일인거 같다 ... 돌아보니
다시 본론으로
적은 돈으로 아파트 전세를 들어가다보니 좀 외진곳에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트도 작은슈퍼 하나인 동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사람에게 현금인출및 장봐오는 일들을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경제권이 그에게 갔다.
우린 최소한의 경비로 결혼식을 올리다보니 ...침구를 따로 구입하지 않고 쓰던걸 그냥 가져와 썼는데...그때 임신을 해서인지 목이 많이 아파서 베게를 꼭 바꾸고 싶었나보다..... (시간이 지나니 남일처럼 느껴진다)
주말에 언니가 놀러를 왔다.. 함께 2마트 장을보러 갔는데 나는 오랜만에 온 언니에게 초보 주부이지만 날치알밥을 해주고 싶어서 날치알과 베게을 살 요량으로 마트를 갔다.
베게는 사는건 사치라고한다.--- 기존에 있으므로
날치알은 냉동으로 된것은 저렴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좀더 맛있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반찬코너에 양념된 날치알이 사고 싶었고, 그사람은 옆에 언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비싸다..비싸다 그말만했다. 둘이 먹는다면 내가 양보햇겠지만, 양보하고 싶지않아 못들은척 달라고했다.(비싸긴했다. 그러나 아깝지 않았다) 근데... 옆에서 그사람이 난 안먹을꺼니까 조금만 사라고 한다.
물끓이는 주전자가 없었다..=----- 남아도는 냄비로 대신하라고함.
그런 일들은 소소하게 기억나지 않을만큼 많다. 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언니가 가슴아파하던 것도 많았더라... .
그런데 그 사람의 아낌없는 절약정신이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임신한 몸으로 일할곳을 찾았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렵게 알아낸 초콜릿 포장 부업이였다.
그때 마침 크리스마스며, 화이트데이, 모든 이벤트날이 많은 시즌이라서 일감은 정말 많았다.
만삭의 몸이였지만, 출산 일주일전까지 나는 그 초콜릿 부업을 했고, 힘이 들었지만, 그렇게 눈치 보지 않고 생활할수 있다는 행복도 있었다.
큰아이를 키우며 그사람이 이직을 하게되어 서울옆 큰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우리 아이는 돌을 앞두고 있었고 다들 그렇겠지만, 작게나마 잔치를 하고 싶은 내마음은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싸움을 반복하고... 결국 나는 그를 이기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부업을 찾았다.
게루마늄 팔지? 였던거 같다...당시 최고의 건강보조제품이여서 팔찌와 목걸이를 만다는 부업이였는데 꽤 쏠쏠하게 벌었다... 일주일에 15만원 가량 벌었던거 같다 (주급으로 주어서)
나의 수입을 안 그사람은 같이 하자며 그 부업에 관심을 보였고 그 다음주 부터는 거의 25만원 가량 했던거 같다. 그렇게 그는 정말 부업을 하게 되었고 부업비를 받으면 꼬박꼬박 자기몫을 챙겼다. 갑자기 메스컴에서 그 팔찌가 효과가 없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급작스럽게 사향길로 접어들어 더이상 할수없게 되었고.
그후로 나는 헤어핀에 큐빅 박는일, 휴대폰 짹 조립일, 자동차 배선, 스티커 제거작업, 홍초마개작업
왜 그렇게 부업을 하며 살았나 궁금할꺼다.
그사람이 벌이 가 적었나 ? 다른 여자가있나? 씀씀이가 헤펐나? 궁금증이 생길꺼다.
그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30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단 한번도 그의 월급 명세를 본적이 없다... 숨긴것이 아니고 봐야할필요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일주일 단위로 생활비를 줬다.
처음 시작할때는 10만원을 줬다. 적지 않은 돈이였다.. 조금 적게 쓰면 몇만원씩 남아서 그돈으로 머리도 하고 옷도 사고 아이와 외식도 할수 있었으므로...
근데 그사람눈에도 그게 보였나보다... 그렇게 사치하는것으로 판단... 2만원을 깍고... 그리고 또 허리띠를 졸라 얼마간을 융통해서 쓰는게 보이면 1만원 ..... 또 2만원....그렇게 결국은
5만원을 받았다. 그돈은 쫄라 맬래야 맬것이 없었다.
어느날은 이런일이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었으나... 돈이 여유가 없었고... 큰아이 학원비 계산하는 생활비 카드로 결제를 햇다... 뭐라고 하면 따져야지...싸워야지 다짐하고 쓴거였는데
저녁이 되도 별말이 없었다.
그런다 다음주 생활비가 4만원만 입금되었다.....
두아이의 간식도 사줘야했고. 점심 저녁의 장거리도 봐야했고, 몇천원이라도 아끼어 애들 책도 사주고 싶었고 머리도 하고 싶었고, 철마다 옷도 사 입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업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던것이다.
부업한 돈은 더이상 터치는 하지 않았다. 난 그돈으로 애들 책을 원없이 사줬다.
35평 거실을 서점으로 만들만큼. 덕분에 두아이 모두 책을 사랑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들로 잘 자라주고 있다.
한날 맥주를 둘이 마시며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사냐고, 좀 남들처럼 즐기고 살면 안되냐고....그랬더니 그사람이 그런다... 나와 나이들어 애들한테 손안벌리고, 폐지주으러 안다닐려고 그런다고.....
나는 그말을 정말.................... 철썩같이 믿었고.
다른 아줌마들은 명품가방이니... 코트니 철마다 파마를 하고 해도 나는 부럽지 않았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속 깊은 그사람이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데...늘 부업을 하던 내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디스크 증상과 비슷했고 병원비와 검사비가 겁이났다. MRI , X-RAY , CT 검사를 해야한다고햇다. 비용이 못해도 100만원은 들거 같았다.
그사람에게 말하니 ...아무말도 안한다... 디스크가 아닌것 같다고한다.
그렇게 몇일을 스트레칭도 해보고 별짓을 다해도 통증은 더해만 갔고,
밑에 속옷도 입지 못할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 병원을 갈수밖에 없었다. 모든 검사를 하니
병원에 가니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왔다고 햇다.
매일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서 일을 했던 자세때문이였을까.
검사비는 일단 생활비 카드로 햇다 70만원 가량 나왔던거 같다.
그사람은 퇴근하여 나에게 몸에 대해 묻기보단 카드에 대해 묻는다.. 카드값을 어찌할꺼냐고...
나 병신같이 내가 부업으로 모은 돈으로 낸다고 했다. 그사람은 알았다. 한다.
디스크 치료는 척추에 주사요법을 했고 총 4차례~ 5차례 정도 맞았던거 같다.
그것도 역시 내가 부업비로 충당을 했다.
나중에는 앉았다 일어나면 허리가 끈어지는것같아 부업도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햇다. 아이들이 어린집과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오전이나 그사람이 퇴근한 오후 주말을 이용... 단기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돈으로 어찌 어찌 치료를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한덕에 더이상 재발도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지내다 든 생각은 그사람은 분명 나의 노후를 위해 모든것을 아끼고 절약한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아프니..... 그돈이 아까워하는것이 보엿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배심감이였는지.... 내 자신의 불쌍함이였는지 모르지만, 매일을 울었던거 같다.
그렇게 또 몇년을 살았다... 알바도 할수있었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고 있고 ..........
그러는 동안 2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구입하였고 대출을 9천만원 가까이 받은 대출을 다갚는 영광스런운 날도 있엇다.. 그러나 그 영광은 나의 것이 아니였다.
이미 그는 나를 아이 엄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으므로...
그러던중 우리 엄마가 아팠다.... 평생을 남의집일을 하신 엄마는 무릎 연골이 닳아 더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햇다.
우리 4형제는 각출 20만원을 생활비로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 30만원 가량 알바비를 벌고있던 나는 무리가 되었고. 주변에서 그사람에게 말을해라
사위도 아들이다 ...그런말에 힘을얻어... 어렵게 얘기를 꺼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너의 엄마는 젊어서 돈벌어 뭐햇냐?
나는 돈 없다.
나는 먹고 죽을돈도 없다.
결국 그는 나는 그사람의 와이프가 아니였다.
아이들에겐 참 자상한 아빠다. 본인의 엄마에겐 듬직한 아들이였다.
난 지금 그와 헤어졌고... 위자로도 재산분활도 받지않고 혼자 살고있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고있다.
그와 살때는 늘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해.... 죽을까 생각할만큼 맘적 여유가 없던 시간이였지만,
지금은 그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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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읽어줘섭 고마워요~
오타도 많죠? 이건 뭐야? 싶은것도 있죠? 뭐래~~?? 생각되는 글도 있고...
길 시간을 기억으로 짜집기 하여 쓰다보니...어순도 맞지않고 오타도 많지만,........
읽어주어서 고마워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