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영주권자인 제가 군 입대 했던 이야기 (사진 有)

불꽃남자2008.09.17
조회28,583

칭찬 해 주시는 리플과 악플 모두 감사 드립니다.

 

"나 같으면 안 간다"라고 적어주신 분들의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에게는 2년의 시간이 참 소중했던 시간이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 같은 해외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

그리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도움이 되셨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할 따름입니다.

 

 

싸이 주소 공개 해 달라고 요청하신 리플을 보고

 

이렇게 싸이 주소 올립니다.

 

www.cyworld.com/endless_rush

 

 

다시 한번 제 글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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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역한지 3달이 다 되 가는 24살의 청년입니다.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문득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제가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던 생각이 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혹시나 저처럼 외국에서 살면서 군 입대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서

비교적 상세히 그러나 꼭 필요한 글만 적도록 노력할테니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2000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에 아버님께서 

저와 제 동생을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뉴질랜드로의 이민 얘기를 꺼내시면서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척들을 놔 두고 머나먼 뉴질랜드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깊은 고민 끝에 아버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가족은 2000년 9월 초에 한국을 떠나서

새로운 땅 뉴질랜드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던 뉴질랜드에서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도움 덕에 차차 적응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한 후

대학교를 다니던 도중

그러면 안 되는거지만 대학교 1학년때 솔직히 공부를 안 했습니다.

 

정신도 나날이 헤이해졌고 "이러면 안 된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실천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한테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뉴스에서 "해외 영주권자들의 군 입대"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

 

그들이 멋있어 보였고

저도 같은 해외 영주권자인지라.. 그 기사를 보고 자극을 받아서

"나라고 저들처럼 못 할 거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어느 날 저에게

"너의 헤이해진 정신을 바로 잡을 수 있고 

나중에 한국에서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군대를 가 보는게 어떻겠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군 입대에 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대학 졸업 후 취업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뉴질랜드는 큰 꿈을 가지고 큰 돈을 벌고 싶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가지고 생활을 하기에는 좁은 나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이 생각은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고

아니면 보편적인 생각일수도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뉴질랜드 땅 넓이는 우리나라보다 더 크지만 인구는 400여만명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세금부과가 많은 나라여서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들어오기를 좀 꺼려하고 

일자리도 그만큼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금부과가 많은만큼 사회복지는 아주 탄탄한 편입니다.)

 

그래서 뉴질랜드로 왔던 많은 나라의 유학생 및 이민자들과 

뉴질랜드 태생의 젊은이들까지 뉴질랜드 옆의 호주나 미국,싱가폴 등의 나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저도 역시나 그들처럼 젊었을때 뉴질랜드에서 일하는것보다는

호주나 한국 그리고 그 외의 나라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만약에 한국에서 직장을 들어갈려면 군 복무를 해야 되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뉴질랜드 시민권을 따서 뉴질랜드 사람으로 한국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생활할때 여러가지 행정상의 문제를 포함하여

직장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삼성 중공업에 계시는 외삼촌의 말씀을 빌리자면

외삼촌 부하 직원 중에 군대를 안 갔다 온 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

군대를 갔다 온 직원들에 비해서 한국 직장 내의 조직 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문제를 포함하여

만약에 한국에서 일을 안 하고

다른 제3국에서 일을 할지라도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든다.", "군 복무 하는 것이 시간 낭비일수도 있으나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라는 말씀을

아버님을 비롯한 많은 어른들이 하시는 것을 들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군 입대를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군 복무를 할까 고민하다가 아버님의 지인 그리고 제 친구들 중에

해병대 출신들이 "안 되면 될때까지"의 해병대 정신으로

평소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보고 들은 바가 있어서 해병대 입대를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군 입대 한다고 말을 하자

찬성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반대하는 친구 중에 전역한 해병대 선임인 친구가 

"너 같은 경우에는 안 그래도 외국 살다가 왔고 우리 또래 얘들은

거의 다 전역해서 지금 입대를 하면 너보다 나이 어린 얘들이 훨씬 많을거야.

거기다가 타군도 아니고 해병대 가서 너보다 나이 어린 선임들한테

욕 먹고 두들겨 맞을 거 뻔한데..그걸 견딜 자신 있으면 입대해라.

아니면 입대할 생각 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를 못 미더워 하는 친구의 말에 더욱 자극을 받아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걱정 말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입대 후 휴가 때 친구가 말해주기를 입대를 생각하는 저의 생각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저렇게 저를 자극했다고 합니다. 선임이자 친구로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해서 해병대 입대를 위한 면접 및 체력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2006년 7월 3일

포항의 해병대 교육훈련단으로 훈병의 신분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2006년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의 가입소 기간을 포함한 

7주 간의 신병 훈련은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동고동락 했던 그 순간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40도 가까이 됐던 여름 날씨에 완전 무장에 병기 들고 유격장까지 가는

새벽 그리고 대낮의 산악행군 도중에 갑자기 교관들이 행군을 멈추게 하고

급하게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탈수 증상으로 거의 죽음까지 갈 뻔했던 동기 2명을

응급처치로 살리고 그들의 짐을 기꺼이 다른 동기들이 나눠들어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행군을 마칠 수 있었던 기억...

 

300kg가 넘는 목봉(통나무) 하나당 10~12명의 동기들이 머리,가슴, 허리, 무릎으로

계속 들었다 내렸다 했던 목봉 체조, 6주 훈련 마지막에 교육 사열에 보여줄 총검술을

연마하기 위해 새벽 3~4시까지 연습했던 일을 포함한 

각종 강도 높은 훈련과 얼차려를 받으면서

"동기야 힘내자! 동기야 잘 하자!"라고 소리 치면서

서로를 위로해주다가 악마 같은 D.I(훈련교관)들이 가끔씩 부모님의 얘기를 꺼내면서

"어머니 은혜" 같은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동기들과 어깨동무 한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 불렀던 기억..

 

그리고 교육 사열을 제외한 거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나서 전투복 오른쪽 가슴에

빨간 명찰을 붙였을때..교육 사열까지 마치고 각각 실무배치 받은 부대로 떠나기 전에

동기들과 얼싸 안으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 등등..

 

 

그렇게 동기들과 헤어지고 실무배치 받은 부대가 있는

강화도의 해병대 제2사단 5연대로 가서 거기서 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있는

최전방 섬 중에 하나인 교동도에서 군 생활 대부분을 했습니다.

 

실무 생활 도중에도 해병대 선임이자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나보다 나이 어린 선임한테 끌려가서 욕 먹고 두들겨 맞을때도

이런 것도 못 참으면 내가 입대 전에 결심했던 목표를 이룰 수가 없을 뿐더러

 

나중에 사회 생활 할 때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가 나를 꾸짖을때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냐는생각으로 참고 또 참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선임들이 전역할때는 옛날에 저를 욕하고 때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오해도 다 풀고 지금도 연락하면서 가깝게 지냅니다.) 

 

시간이 흘러 계급이 올라가고 소위 말하는 "짬밥"이 차면서

선임과 후임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것인지, 실수는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군대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더 많이 먹고 싶고 더 편하고 싶은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보고 싶은 욕구도 참아내면서

군 입대 전에 잘 몰랐던 음식과 잠과 소중한 사람들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시간 날때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2008년 6월 23일 드디어 전역을 했습니다.

(원래 7월 2일이 전역인데 해병대를 포함한 육,해,공군에

2006년 1월 군 입대한 사람들부터 군 복무 기간이 줄었습니다.)

 

2년 가까이 각 부대로 떨어져 있던 동기들과 다시 만나서 전역증을 받아들고

서로 기뻐했던게 벌써 3달이 다 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올해 10월 초에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내년에 복학 하여

대학교를 졸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취업은 한국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뉴질랜드가 아닌

제3국에서 할 것인가의 여부는 아직 결정을 못 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한국 사람인만큼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일을 못 할 처지가 되더라도

어딜 가든 군 입대 전에 결심했던 초심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 중에는

 

1.허송세월을 보냈다라고 말하시는 분들

2.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시는 분들

 

이렇게 두 가지 분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 입대 전 군대 가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군 복무 도중에도 세월이 흘러가기만을 바랬던 사람들은

1번에 해당 될 것이고

 

군 입대 전 군대 가는 것이 시간낭비가 아닌 

사회인이 되기 전에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기회로 생각하고

군 복무 도중에도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생활 했던 사람들은

2번에 해당 될 것입니다.  

 

 

저는 2번에 속한 사람들 중에 1명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 

 

 

이 글 초반에 제가 언급 했던 것처럼

혹시나 저 같은 해외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중에

군 입대를 고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 글을 읽어 보시고 입대를 생각해도 좋다는겁니다.

 

 

요새 서울 강남에 사는 아이들을 포함한 일부 한국 남자들이

일찌감찌 해외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해서

군 복무를 회피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봤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틀리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군 복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2년의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나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학교 졸업 때문에 한국에는 1년이나 2년 후에 한번 오겠네요..

 

한국이 무척 그리울겁니다.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제가 군 입대 했던 이야기 (사진 有)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제가 군 입대 했던 이야기 (사진 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