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에 집착하시는 부모님.. 걱정됩니다.

어쩌라고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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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며칠 간 고민하며 눈팅하다가 용기내어 글을 올립니다.

회사에서 몰래 몰래 쓰는거라 두서 없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저는 서울에서 회사 다니고 있는 서른 살 처자입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전문직이기에

대우나 보수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아직 결혼할 사람을 만나지 못했네요.

집에서는 어서 남자 만나고 연애라도 하라고 성화인데 말이죠.

 

 

하지만 사실 제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부모님이 학력과 경제능력을 너무나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력… 제가 보기에

저희 부모님은 학력과 인성 및 능력이 모두 비례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공부, 성적에 많이 관심을 가지셨어요. 성적표 나오는 날이면

성적표 가져오라고 고함치시고 틀린 개수만큼 맞아본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인가 성적이 떨어져 혼나다가 악에 받쳐서 아빤 내가 몇 학년인줄은 아냐고

소리질러서 몇 대 더 맞은 기억이 있는데… 제가 몇 학년인지 모르시더군요..ㅋㅋㅋ

그렇다고 고액과외나 학원을 돌게 하면서 혹사시키진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럴 형편도 아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제가 자연스럽게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성적도 잘 나왔고, 원하는 대학 학과에도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렇게 된 뒤로는 공부하라는 압박도 거의 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드는 생각이지만, 부모님이 학력이 낮아 고생하신 기억 때문에 저를 더

몰아부치신게 아닌가 싶네요.

 

아무튼 저는 누구나 들으면 와~ 공부 잘 했나보다! 하는 대학 학과에 입학하였고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등록금 한 푼 내지 않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 뒤로도 공부에 뜻이 있어

석사까지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파트타임으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야근에 출장에 학교 수업까지 다니랴 바쁘게 살고 있지요.

 

문제는 제 학력이 높아지면서 부모님 눈도 높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부모님은 박사 딸내미 두신 걸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그 자체를 엄청난 스펙으로

생각하며 저를 당연히 변호사 의사랑 결혼시킬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오히려 남들보다 공부한답시고 취업도 늦고, 그래서 연봉도 적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석박사 한다고 학사졸업에 비해 엄청나게 더 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찍

취직해서 커리어 쌓은 친구들보다 더 적은 돈을 벌고 있죠..) 사회경험도 적은 것이

콤플렉스이기도 합니다. 난 왜 이런 길을 택해서 이렇게 공부만 하나 ~ 하는 농담 반 진담 반

푸념도 자주 하구요.

학위는 제가 선택한 길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따는 것 뿐이지 그 자체가

대단하고 멋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되려 더 찌질하고(?) 힘들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학벌 자체도 왜 그것이 인성과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건지..;;

확률적인 문제라면 공부 잘해서 전문직 자격증이나 면허 따고 그러면 취업도 연봉도 남들보다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겠죠. 하지만 최근 뉴스 중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졸업생들 반 이상이

계약직으로 취업했다는 사실도 있지 않았나요?

본인이 하고 싶은일, 잘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쯤인가 소개를 통해 남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타지 생활 하는 저를 위해 일단 만나보고 친구처럼 지내라고 소개를 받았었는데

저와는 달리 조용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모습에 반해서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었는데, 일찌감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정말 어렵다는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하고 대기업에서 인정받아 연봉도 저보다

잘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애 초반, 부모님께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를 했지요.

부모님께서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여쭤보시기에 대답했다가, 식당에서 정신나간 년 미친 년

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화목하고 조용하고 평화롭던 집안이 다 뒤집어졌죠. 저도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학벌에

집착하시는 분인줄은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전쟁같던 한 달 동안, 공부 잘하는 애들은

가정도 화목하고 부모님들 인품도 훌륭하시고 인성도 바르고 능력도 있다, 이런 골자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네요. 매일 매일 전화로 싸우고, 집에도 잘 안 가게 되고, 엄마 아빤

속물이라며 저도 상처 많이 드렸습니다.

그 전문대 분과는 그 뒤로도 몰래 일년 정도를 만났고, 둘 사이의 문제로 이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는 도저히 누굴 만날 엄두가 안 나네요.

 

 

저는 그 유명하고 잘난 저희 학과에서 정말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습니다.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뽑아놓은 곳에서도 별 쓰레기 싸이코 또라이는 다 있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시험 성적에만 집착하고 컨닝하고 속이고 이런 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과 생활 안하고 혼자 몰래 공부하고 손해 안보려고 숨기고 빠지고 속이고..

여자 더럽게 만나는 남자들도 엄청 많이 봤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공부 잘한다고 그게 다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솔직히 제가 취직하고 나서

느낀건데, 전 인간관계도 익숙지 않고 덜렁거리고 게으른 성격 때문에 실수도 많고 일도

미루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나는 공부밖에 할 줄 아는게 없는거 아닐까 .. 하는 생각에

회의감도 많이 들구요.

 

부모님 말씀처럼, 제가 어리고 철없어서 그 중요함을 모르는 걸까요? 나중에 능력 없는 놈 만나

후회하더라도, 부모님이 만나란 사람 만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데 그것도 제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런 걸까요.

오늘도 전화 왔네요, 변호사랑 선보라고. 저는 모은 돈 한 푼 없고 저희 집도 사짜 집안에

시집보낸다고 집한채 턱턱 사줄 그런 능력 있는 집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 학벌, 제 학위,

제 질질 끌리는 가방 끈만이 그렇게 자랑스러우신가 봐요. 이제는 남자를 만나려고 해도

부모님 눈에 차지 않을까 겁나고, 부모님 눈에 찰 만한 능력 있는 남자들은 오히려 반항심과

거부감이 들어요. 매일 매일 우울해하고 스트레스 받는 저에게 친구가 심리 상담이라고

받아보라고 권해서, 일단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도움 받기 위해 글 올려봅니다.

 

제 욕이든 부모님 욕이든 너무 심한 말씀은 삼가주시고..ㅠ 부디 현명한 조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