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에 우리 해군 UDT 가 해병대에서 탄생했다는 헛소리를 봤는데.. 설마 이게 와전된건 아닐까요?
미 해군 SEAL의 탄생사를 연구하다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SEAL의 원조는 바로 해병특수수색대(포스리컨)이라는 사실입니다. 61년 당시 제3세계에서 점증하는 공산혁명의 열기를 분쇄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케네디행정부는 반혁명전(Counterrevolutionary Warfare or Counterinsurgency Warfare)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의 창설을 지시했습니다. 그 지시에 가장 먼저 대응한 특수부대는 바로 육군의 특전단(그린베레)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린베레에 보인 특별한 관심은 앞서 칼럼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해군 수뇌부는 당초 해병대에 이 임무를 맡길 계획이었습니다. 해병대가 이미 금세기초에 니카라과 같은 中美에서 對게릴라전을 수행한 적이 있는 만큼 이 임무를 맡겨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해군 수뇌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측은 계획에 미온적인 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해병대로서는 육군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 분야에 주요자산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하는 수없이 해군은 기존의 수중폭파대(UDT)의 병력 가운데 일부를 차출해 새로운 형태의 특수부대를 창설키로 결정했습니다. 그 새로운 형태의 특수부대가 바로 SEAL이었죠. 그러나 상부의 명령에 따라 SEAL을 창설해놓고도 부대 지휘관들은 과연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될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훈련과정을 이수해야 될지, 어떤 장비를 확충해야 될지, 어떻게 실제 임무에 투입해야 될지 사실상 백지상태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이들은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해병특수수색대(포스리컨)의 문턱을 한동안 기웃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수수색대는 이미 57년도부터 육상,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노하우(knowhow)를 축적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던 특수수색대로서는 수중폭파가 주임무인 UDT가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의도에 내심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설마했습니다. 자기네 밥그릇을 빼앗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허왕된 판단 때문이었죠. 특수수색대는 지상수색.정찰, 정보수집, 요인납치.제거 같은 노하우를 전수해주었지요.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라는 가장 평범한 사실을 특수수색대원들은 간과했죠. 실전경험과 함께 고도의 훈련 거친 자신들도 6개월 이상의 '지옥'을 거쳐야만 정식대원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데 그저 배운 것이라고는 수중폭파밖에 없는 '수병'들이 자신들 수준만큼 따라오려면 최소한 1년6개월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만 된다는 그릇된 자만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발들을 찍은 셈이었죠. 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SEAL 1팀은 인근 캠프 팬들턴의 특수수색대(제1중대) 기지를 한동안 기웃거리면서 눈동냥, 귀동냥으로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대서양을 책임지는 SEAL 2팀 역시 노스캐롤라이나주 캠프 르쥰의 특수수색대(제2중대)에서 현장실습을 거쳤습니다. 어느 정도 특수수색대의 자산을 인수한 SEAL은 이번에는 보다 전문적인 교육과정 이수를 위해 특전단을 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對게릴라전술, 게릴라전술, 전문폭파술, 공수강하(고공강하) 등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였죠. 결국 이런 자기 노력은 불과 1년도 채 안돼 결실을 맺기 시작했죠. 특수수색대 지휘관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밥그릇을 SEAL에 빼앗긴 사실을 인식하고 상부에 이의 부당함을 고해보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나요. 그래도 오늘날까지 SEAL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부대는 바로 특수수색대죠. SEAL대원들은 특수수색대원들이 자신들과 달리 특수부대원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그들의 잠재성과 전문성을 가장 높히 사주는 편입니다. 필자가 지난 94년 9월 처음 코로나도의 해군특전사를 방문했을 때도 20명의 특수수색대원들이 SEAL 동료들과 함께 코로나도와 샌디에이고시를 연결하는 베이 브리지(Bay Bridge) 밑에서 드래거(폐쇄회로식 잠수기)훈련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에는 SEAL대원들이 특수수색대원들과 함께 캠프 팬들턴에서 고고도산개(High Altitude, High Opening: 저고도산개(HALO)와 달리 8천-1만미터 상공에서 강하를 하자마자 낙하산을 개방해 마치 글라이더처럼 목표지에 잠입하는 강하로 반드시 산소마스크가 필요함)을 함께 한다고 하더군요. 이 사실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SEAL의 원조와 대부격은 특수수색대가 아닐까 싶네요. 필자의 이런 주장은 David Bohrer의 'America's Sepcial Forces:Weapons, Missions, Traning'과 Michael L.Lanning & Ray W. Stubbe의 'Inside Force Recon: Recon Marines in Vietnam' 등의 책에 일부 수록돼 있습니다 - 김선한 (펌) -
세계 해병중 부동의 1위 미해병대 자랑 포스리컨
설마 이게 와전된건 아닐까요?
미 해군 SEAL의 탄생사를 연구하다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SEAL의 원조는 바로 해병특수수색대(포스리컨)이라는 사실입니다.
61년 당시 제3세계에서 점증하는 공산혁명의 열기를 분쇄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케네디행정부는 반혁명전(Counterrevolutionary Warfare or Counterinsurgency Warfare)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의 창설을 지시했습니다. 그 지시에 가장 먼저 대응한 특수부대는 바로 육군의 특전단(그린베레)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린베레에 보인 특별한 관심은 앞서 칼럼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해군 수뇌부는 당초 해병대에 이 임무를 맡길 계획이었습니다. 해병대가 이미 금세기초에 니카라과 같은 中美에서 對게릴라전을 수행한 적이 있는 만큼 이 임무를 맡겨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해군 수뇌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병대측은 계획에 미온적인 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해병대로서는 육군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 분야에 주요자산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하는 수없이 해군은 기존의 수중폭파대(UDT)의 병력 가운데 일부를 차출해 새로운 형태의 특수부대를 창설키로 결정했습니다. 그 새로운 형태의 특수부대가 바로 SEAL이었죠.
그러나 상부의 명령에 따라 SEAL을 창설해놓고도 부대 지휘관들은 과연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될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훈련과정을 이수해야 될지, 어떤 장비를 확충해야 될지, 어떻게 실제 임무에 투입해야 될지 사실상 백지상태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이들은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해병특수수색대(포스리컨)의 문턱을 한동안 기웃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수수색대는 이미 57년도부터 육상,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노하우(knowhow)를 축적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던 특수수색대로서는 수중폭파가 주임무인 UDT가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의도에 내심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설마했습니다. 자기네 밥그릇을 빼앗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허왕된 판단 때문이었죠.
특수수색대는 지상수색.정찰, 정보수집, 요인납치.제거 같은 노하우를 전수해주었지요.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라는 가장 평범한 사실을 특수수색대원들은 간과했죠. 실전경험과 함께 고도의 훈련 거친 자신들도 6개월 이상의 '지옥'을 거쳐야만 정식대원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데 그저 배운 것이라고는 수중폭파밖에 없는 '수병'들이 자신들 수준만큼 따라오려면 최소한 1년6개월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만 된다는 그릇된 자만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발들을 찍은 셈이었죠. 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SEAL 1팀은 인근 캠프 팬들턴의 특수수색대(제1중대) 기지를 한동안 기웃거리면서 눈동냥, 귀동냥으로 하나씩 배워갔습니다. 대서양을 책임지는 SEAL 2팀 역시 노스캐롤라이나주 캠프 르쥰의 특수수색대(제2중대)에서 현장실습을 거쳤습니다.
어느 정도 특수수색대의 자산을 인수한 SEAL은 이번에는 보다 전문적인 교육과정 이수를 위해 특전단을 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對게릴라전술, 게릴라전술, 전문폭파술, 공수강하(고공강하) 등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였죠. 결국 이런 자기 노력은 불과 1년도 채 안돼 결실을 맺기 시작했죠. 특수수색대 지휘관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밥그릇을 SEAL에 빼앗긴 사실을 인식하고 상부에 이의 부당함을 고해보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나요.
그래도 오늘날까지 SEAL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부대는 바로 특수수색대죠. SEAL대원들은 특수수색대원들이 자신들과 달리 특수부대원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그들의 잠재성과 전문성을 가장 높히 사주는 편입니다.
필자가 지난 94년 9월 처음 코로나도의 해군특전사를 방문했을 때도 20명의 특수수색대원들이 SEAL 동료들과 함께 코로나도와 샌디에이고시를 연결하는 베이 브리지(Bay Bridge) 밑에서 드래거(폐쇄회로식 잠수기)훈련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에는 SEAL대원들이 특수수색대원들과 함께 캠프 팬들턴에서 고고도산개(High Altitude, High Opening: 저고도산개(HALO)와 달리 8천-1만미터 상공에서 강하를 하자마자 낙하산을 개방해 마치 글라이더처럼 목표지에 잠입하는 강하로 반드시 산소마스크가 필요함)을 함께 한다고 하더군요.
이 사실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SEAL의 원조와 대부격은 특수수색대가 아닐까 싶네요.
필자의 이런 주장은 David Bohrer의 'America's Sepcial Forces:Weapons, Missions, Traning'과 Michael L.Lanning & Ray W. Stubbe의 'Inside Force Recon: Recon Marines in Vietnam' 등의 책에 일부 수록돼 있습니다 - 김선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