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 마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다운증후군에 걸렸습니다. 정신박약 증상과 함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성장발육이 더뎠습니다. 이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늘 무거웠지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마리아가 늘 눈에 밟혔고, 정상아들을 볼 때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리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분의 전도를 받고 2007년 9월 17일, 마리아가 6세 때 페루만민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마리아로 인해 심령이 가난해져 있던 저에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선포하시는 생명의 말씀은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치료의 하나님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모든 병을 치료해 주시고, 갖가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저는 마음 다해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재호, 장정연 목사님과 일꾼들의 도움도 아주 컸지요.
다운증후군을 앓던 마리아가 페루만민교회에 출석해 당회장 이재록 목사의 시공초월한 기도로 호전돼 9세가 된 지난 1월 17일 주일, 하나님께 특송으로 영광돌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운증후군 증세가 호전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서울에서 당회장님께서 해 주시는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를 받자 마리아는 점차 몸을 가누면서 걷고, 말도 또렷해져 갔습니다.
엉뚱한 행동도 하지 않고 집중력도 좋아졌지요. 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고, 신기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마리아는 교회 가는 날이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빠에게 손을 내밀며 교회에 가자고 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점점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남편도 함께 교회에 오곤 했지요. 결국 남편은 교회 출석도 잘하고 지금은 성도님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2009년 마리아가 8세 되던 해, 처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의 그 기쁨과 감사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뒤 더 이상 이상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다운증후군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일도 없답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제 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며 부러워합니다.
저는 권능을 체험했기에 구역장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5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지난 1월 17일에는 제 딸이 특송을 하고 싶다고 담임 이재호 목사님께 요청해 주일 예배 시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 이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할렐루야!
* 다운증후군[Down syndrome] 염색체의 이상으로 생기는 선천성 질환. 1866년 다운이 학계에 보고했다고 하여 이렇게 불린다.
머리·귀·손가락이 작고 얼굴이 편평하며 눈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대개 심장병이나 정신박약, 내장의 형태 이상을 수반한다.
시장에서 구걸하던 엘리자베스예요. 기도받고 눈을 떴습니다 - 엘리자베스 나쿠미카
케냐/ 엘리자베스 나쿠미카
11년 동안 맹인으로 힘겨운 삶을 살던 엘리자베스 나쿠미카가 권능의 손수건으로 정명호 목사가 기도해주자 보게 돼 간증하고 있다.
1984년, 저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300마일 정도 떨어진 카테일 타운 외곽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어릴 적 세상을 떠나 저와 오빠는 계모 슬하에서 성장했지요. 13세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고, 저의 유일한 혈육인 오빠는 취직하러 도시로 갔습니다. 혈혈단신 가정에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차별 대우와 핍박, 참으로 견디기 쉽지 않은 삶이었지요. 게다가 17세 때인 2000년에는 홍역을 앓다가 두 눈의 시력을 전부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실명된 상태라 집안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농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자 쫓겨나고 말았지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사는 오빠를 찾아갔지만 무책임한 술주정뱅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시장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다가 만난 목사님 두 분이 조금씩 도와주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010년 1월 11일, 나이로비만민성결교회 담임 정명호 목사님이 강사로 서신 끼딸레 손수건 집회(행 19:11~12) 둘째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제 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날이지요.
저는 친구 모니카 두디의 권유로 부축을 받아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전체를 위한 환자기도 시간이었지요. 정 목사님은 제 눈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이 딸에게 역사해 주옵소서!"
기도가 끝난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치유되는 기적의 현장을 목도하고 기쁨에 못 이겨 소리치는 사람들과, 저를 거지 소경 아가씨로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담대하게 간증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구걸하던 엘리자베스예요. 기도받고 눈을 떴습니다. 보입니다, 보여!"
어려운 날들을 견디는 동안 곁에서 저를 도왔던 오랜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사실임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다운증후군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운증후군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 페루/ 비센떼나 치리노스
제 딸 마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다운증후군에 걸렸습니다. 정신박약 증상과 함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성장발육이 더뎠습니다. 이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늘 무거웠지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마리아가 늘 눈에 밟혔고, 정상아들을 볼 때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리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분의 전도를 받고 2007년 9월 17일, 마리아가 6세 때 페루만민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마리아로 인해 심령이 가난해져 있던 저에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선포하시는 생명의 말씀은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치료의 하나님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모든 병을 치료해 주시고, 갖가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저는 마음 다해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재호, 장정연 목사님과 일꾼들의 도움도 아주 컸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다운증후군 증세가 호전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서울에서 당회장님께서 해 주시는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를 받자 마리아는 점차 몸을 가누면서 걷고, 말도 또렷해져 갔습니다.
엉뚱한 행동도 하지 않고 집중력도 좋아졌지요. 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고, 신기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마리아는 교회 가는 날이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빠에게 손을 내밀며 교회에 가자고 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점점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남편도 함께 교회에 오곤 했지요. 결국 남편은 교회 출석도 잘하고 지금은 성도님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2009년 마리아가 8세 되던 해, 처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의 그 기쁨과 감사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뒤 더 이상 이상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다운증후군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일도 없답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제 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며 부러워합니다.
저는 권능을 체험했기에 구역장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5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지난 1월 17일에는 제 딸이 특송을 하고 싶다고 담임 이재호 목사님께 요청해 주일 예배 시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 이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할렐루야!
* 다운증후군[Down syndrome] 염색체의 이상으로 생기는 선천성 질환. 1866년 다운이 학계에 보고했다고 하여 이렇게 불린다.
머리·귀·손가락이 작고 얼굴이 편평하며 눈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대개 심장병이나 정신박약, 내장의 형태 이상을 수반한다.
시장에서 구걸하던 엘리자베스예요. 기도받고 눈을 떴습니다
- 엘리자베스 나쿠미카
케냐/ 엘리자베스 나쿠미카
11년 동안 맹인으로 힘겨운 삶을 살던 엘리자베스 나쿠미카가 권능의 손수건으로 정명호 목사가 기도해주자 보게 돼 간증하고 있다.
1984년, 저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300마일 정도 떨어진 카테일 타운 외곽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어릴 적 세상을 떠나 저와 오빠는 계모 슬하에서 성장했지요. 13세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고, 저의 유일한 혈육인 오빠는 취직하러 도시로 갔습니다. 혈혈단신 가정에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차별 대우와 핍박, 참으로 견디기 쉽지 않은 삶이었지요. 게다가 17세 때인 2000년에는 홍역을 앓다가 두 눈의 시력을 전부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실명된 상태라 집안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농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자 쫓겨나고 말았지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사는 오빠를 찾아갔지만 무책임한 술주정뱅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시장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다가 만난 목사님 두 분이 조금씩 도와주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010년 1월 11일, 나이로비만민성결교회 담임 정명호 목사님이 강사로 서신 끼딸레 손수건 집회(행 19:11~12) 둘째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제 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날이지요.
저는 친구 모니카 두디의 권유로 부축을 받아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전체를 위한 환자기도 시간이었지요. 정 목사님은 제 눈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이 딸에게 역사해 주옵소서!"
기도가 끝난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치유되는 기적의 현장을 목도하고 기쁨에 못 이겨 소리치는 사람들과, 저를 거지 소경 아가씨로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담대하게 간증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구걸하던 엘리자베스예요. 기도받고 눈을 떴습니다. 보입니다, 보여!"
어려운 날들을 견디는 동안 곁에서 저를 도왔던 오랜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사실임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