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겐 누나 1명, 남동생 1명, 여동생 3명이 있습니다.
남동생은 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여자형제만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4~5살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1년이상을 저희집과 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까까머리에 분홍내복을 입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다예요.
유일하게 할머니께서 반응하시던 모습이 제가 할머니 팔을 베면 아프다고 찡그리는 모습이예요.
그때는 아파서 그러는 지 몰랐어요.
그저 할머니가 반응해주니깐 좋다고 또하고 또했네요....
그 후 할아버지는 저희집에서 함께 사셨어요.
19평 작은 아파트였는 데 어려서 그때는 좁은 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안방에는 부모님, 작은방은 할아버지, 거실에서 오빠와 같이 잤어요.
술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항상 경로당이며 가시면 술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밥상에 술 없으면 '술 사와라' 노래를 부르셨어요.
결국 할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 반복하시다 돌아가셨어요.
그 과정에서 수술도 많이하시고 치료도 계속 받아야하고 입원비도 나오니깐
돈이 어마하게 들었습니다.
몰랐는 데 빚도 졌었고, 외삼촌들께서 병원비도 대신 내주시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웃긴 건 핏줄인 고모들은 병원비 한번 대신 내준 적 없다고 합니다.
고모들이 너무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집에 계실 때도, 병원에 있을때도
저희 집이 바다가 가까운 지역이라
여름만 되면 고모네 식구들이 왔습니다.
저는 어리니깐 그저 친척들이 오는 게 좋기만 했습니다.
고모네 식구들과 몇 년동안 여름만 되면 바다 놀러가서 신나게 놀았던 추억이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부모님은 한번도 같이 가지 않고
오빠와 저만 고모네 식구들따라 바다갔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고모들은 잠시 병원에 가서 곁에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서 주무시지는 않았습니다.
확실히 기억나는 이야기가 고모들 식구랑 집 앞 식당에서 밥 먹는 데
막내고모가 다른 고모들한테 했던 이야기 입니다.
"어제 병원에서 아버지 손 쓸 방법 없다고 했나봐.
오빠가 의사한테 어떻게든 해달라고 울면서 소리치더라. 나 오빠 그러는 거 처음봤어."
어릴 때라 아무 생각없이 듣고 있었나 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간병인 한번 안 쓰시고 수발이라는 수발 다 드시면서
엄마 손으로 보내드렸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이거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논, 밭은 아빠가 맏이라고 아빠 명의로 주시고,
시골 집은 아빠 보고 니꺼 아니라고 이건 우리 장손 OO(오빠이름)꺼라고 니 이름으로 하지 말고 꼭 OO 주라고 했습니다.
논, 밭 안 많습니다. 크기 안 큽니다.
(밭은 모르지만 논은 다른 분이 농사 짓고, 저희는 1년에 쌀 얼만큼 가져다 먹습니다.
1년에 제사가 8번입니다.
그때마다 떡도 이 쌀로 해서 올리고, 밥도 이 쌀로 해서 올립니다.)
시골 집 안 큽니다. 팔면 2000~3000만원 나옵니다.
오빠 명의로 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이름이 잘못 기재되 있어
그거 바꾼다고 시간이며, 돈이며 들었다고 합니다.
설마 고모들이 달라할까 싶어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변경 안하고,
할아버지 명의로 뒀다고 합니다.
할머니에 할아버지 병원비로 진 빚때문에
엄마께서 그때부터 식당 일 다니셨습니다.
저 할머니 아플때는 몇 달씩 외할머니네 가서 살고,
큰외삼촌네 가서 사촌언니가 몇 달동안 저 먹이고 씻이고 다 했습니다.
밤마다 엄마보고 싶다고 울면 내일 온다고 달래줬어요.
그렇게 지내다 돌아오면 엄마 옆에서 꼭 엄마 가슴 만지면서 잤어요.
저 초등학교 입학식도 엄마 손 잡고 못갔어요.
엄마 일해야 해서 외숙모 손 잡고 갔습니다.
2학년 때까지 학교 마치면 엄마 식당가서 오빠(3살차이) 올 때까지 숙제하고 놀았습니다.
저 10살, 11살 때 엄마가 같이 일하시던 이모랑 분식집 시작하셨어요.
이때까지 고모네 식구들은 여름만 되면 저희집 놀러왔고,
바다도 가고 엄마 분식집에서 떡순튀 가져와서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고모네가 안 왔습니다.
왜 안오냐고 부모님께 물어도 그저 웃고 바쁜가봐 이런고 말았습니다.
아빠 바로 밑 여동생은 저희집이라 가까이 살아서 자주 와서 자고 갔는 데
그때마다 저는 고모랑 자면서 고모 가슴 만지면서 잤어요.
엄마만큼 고모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모도 어느순간부터 안 왔습니다.
고등학교 가서야 알았습니다.
고모들이 시골집 달라고 난리쳤다는 걸요....
아빠 엄마 따로 불러서 집 달라고 난리치고, 집에 와서 방바닥 치며 내놔라고 했답니다.
그저 소리치는 난리가 아니라 엄마 분식집 와서 수저통 다 던지고
의자 차고 식탁 차고 난리였답니다.(그 날 장사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중학생인 저희오빠 불러서 밥 먹이며 시골집 달라고 했답니다.
오빠가 할아버지가 나 준거라고 안된다고 했더니
그 식당에서 오빠한테 소리치면서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오빠 그날 집와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고모들이 너무 심하니깐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랑 시골집 집문서 고모들 주고 왔다고 합니다.
그럼 다시 우애 좋아질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지내러 올 줄 알았고, 안부 전화하고 그렇게 지낼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제사날도 몇 번 오다 뜸하고 안부전화는 오지도 않습니다.
제삿날 올거냐고 전화하면 멀어서라고 핑계, 바빠서 라고 핑계 입니다.
그 후로는 제삿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는 지 해외여행 가있기도 합니다.
저희집은 1년에 명절까지 제사가 8번입니다.
어디 놀러가도 싶어도 제사가 애매하게 있어 못갑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틀 전, 이틀 후 제사 2번 있습니다.
황금연휴라도 저희집은 제사 준비합니다.)
단 한번도 제사 잊어버려서 못 지낸 적 없습니다.
큰 고모가 엄마한테 그랬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일이년에 한번은 해외 놀러도 가고 한다고요.....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동생네도 그렇게 살라고 했답니다.
다른 한 고모는 집에 초대 좀 하랍니다.
고모네 늦둥이가 있는 데 왜 요즘은 외삼촌 집 안가냐고 그런답니다.
최근 결혼식장에서 만났는 데 아빠께 이 고모가 그랬답니다.
지난 일은 다 지난 거고, 안부도 묻고 서로 연락 좀 하고 지내자고요.
그렇게 난리 친 것에 대한 사과가 먼저 아닙니까?
웃긴 건 엄마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다는 겁니다.
가끔 전화도 아빠한테만 하고, 돈 빌려달라고도 아빠한테만 했답니다.
고모들이 할아버지 시골집은 철거해버렸습니다.
집 철거한 것도 아빠 동네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잠잠하길래 끝인 줄 알았는 데
최근에 그 집터를 살 사람 나타났다고 아빠한테 말하더랍니다.
큰고모부는 아빠한테 팔았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아빠가 내 인감하고 없으면 안될건데 했더니
다 방법이 있답니다.
포기각서만 써두면 된답니다.
아빠 포기각서 이 말에 정 떨어져서 뒤도 안보고 모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빠 없이 가능하다더니 아빠에게 서류 필요하다고 보내달라고
카톡 보내더니 직접 받는 것도 아닌 집 주소로 보내라고 했답니다.
엄마 그거 보시더니 절대 못 준다고 서류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알아보니 아빠 없이 집터 파는 건 불가능하고 만약 팔았다면 신고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른 고모들은 다 보내줬지만 아빠가 서류 계속 안 보내니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큰 고모가 책임지고 진행 중인가 봅니다.)
아빠는 계속 오는 전화 몇 번 무시하셨고,
참다 엄마가 전화받아서 못팔겠다고 OO(오빠) 줄렵니다.
했더니 노발대발하시며 그럼 집문서 왜줬냐고 난리칩니다.
집 팔아서 돈 고모들끼리 나누고,
아빠 몫 가지고 우리집 올려고 했답니다.
아니 팔아서 몇십억씩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많아야 200만원씩 돌아갑니다.
그 200만원에 저희 아빠는 동생이며 누나며 다 잃었습니다.
다시 보지 말자며, 연락하지 말라는 말까지 나오고 전화 끊으셨습니다.
이제 큰고모랑은 이렇게 끝났다 쳐도
동생들이 난리 칠 거 같습니다.
오빠에게도 예전처럼 전화하고 소리치고 하겠죠.
그렇지만 중학생이던 오빠는 20대 후반입니다.
오빠는 집 팔았다는 말부터 고모라고 생각 안 합니다.
아줌마들이 왜 전화오는 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내 거라고 절대 안 줄거라고 합니다.
저도 우리집 와서 아빠엄마한테 소리치면 고모들한테 똑같이 해줄겁니다.
큰고모가 우리는 돈 안주더라도 막내동생(막내고모)는 줘야한다고 했답니다.
결혼 하기 전에 일하면서 집에 생활비 보내줬다고요.
그 몫은 줘야 한다고 했답니다.
저는 병원비, 제사지내는 비용 다 똑같이 나누자고 할 겁니다.
지금까지 지낸 제사비며, 앞으로 지낼 제사비 똑같이 달라고 할 겁니다.
아빠랑 큰 고모 전화할 때 제가 옆에 있었는
엄마보고 논, 밭 다 가졌는 데 집터까지 가질려고 하냐고 지독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진짜 화났습니다.
제가 지독한 게 어떤건지 똑같이 보여줄겁니다.
엄마가 할아버지 시골집 탐나서 혼자 팔아서 혼자 가지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대가를 바라고 몇 년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병수발 한 거 아닙니다.
엄마는 오히려 막내고모 몫 줘야한다는 말에
그럼 집터 팔지말고 OO(오빠) 주고 막내고모한테 우리가 돈 주자 이러십니다.
논, 밭, 집터까지 다 가질려는 저희가 오히려 나쁜 가족입니까?
나쁜 가족이라고 해도 모르겠습니다.
고모들이 미워 절대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빠는 아주 오래전 하나뿐인 남동생을 잃었고,
오늘 누나 1명, 여동생 3명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시작일 지, 끝일 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가족끼리 뭉쳐서 꼭 잘 살겁니다.
진짜 긴 글, 너무 분해 한시간 동안 적습니다.
제가 나쁜 년일지라도 무조건 엄마편 들렵니다.
아빠는 모든 형제를 잃었습니다.(돈이 참 무섭습니다.)
양쪽 입장 다 들어봐야는 거 맞습니다.
고모들이 죽도록 가난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아빠가 고모들보다 더 배운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습니다.(논, 밭 받았네요.)
아버지 중졸이세요.
할아버지가 농사 도와야한다고 고등학교
안 보내셨고 집에서 계속 농사 도와드렸다고 합니다.
고모들도 중졸인 건 아마 같으실 거예요.
다른 고모들은 모르겠고,
막내고모는 직장 생활하며 야간대학 나오셨습니다.
막내고모는 생활비 꼬박꼬박 보냈다고
그래서 큰고모가 꼭 막내 몫은 줘야한다고 한겁니다.
고모들 노는 거 무지 좋아해서
집에서 집안일 돕다 시집 가신거 아닙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저 고딩때 고모가 동창회 때문에
저 사는 지역에 와있답니다.
그 날이 마침 제사라서
그럼 집에 오라고 했더디 못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만약 고모부 전화오면
고모 제사 때문에 고향온거라고 지금 바빠서 못 바꿔준다고 말 좀 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고모한테 절대 못 해드린다고
고모부 전화오면 다 이를거라고 화냈습니다.
고모 몇 명은 가난했던 거 맞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쌀도 갖다주고 학교
들어갈때마다 교복도 다 사주고 챙겼습니다.
그런데 난리친 후로 저희도 딱 끊었습니다.
시댁에서 눈치보고 살았는 지 모르지만
저희집도 할아버지 재산으로 잘 먹고 잘 산 거없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이나 후 지금까지
아빠 명의로 된 논, 밭 하나도 안 팔고 가지고있습니다.
할아버지 용돈 드리면 드렸지 뭐 사달라고 쪼른 적 없습니다.
아 과자먹고싶다고 사달라고 쪼른 적은 많네요...
집에 제사도 무지 많습니다.
미련하게 안 지내는 행동 못하는 거 맞습니다.
아빠가 절대 그럴수 없다고 화내실 정도로
옛날 분이세요.
요즘 다들 그런다고 해도 그게 잘못된거야
라고 하실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나중에 며느리 힘들다고
내가 제사상 차릴 수 있을 때까진 이렇게 지내더라다
나 죽기 전엔 꼭 제사 줄일 거라고 다짐다짐 하세요.
아무도 없으니 엄마 혼자 제사 준비 다 하시니깐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지 아무도 모를거라고 하십니다.
아빠도 화만 내시더니 최근에는
고객 끄덕끄덕 아무말 없으십니다.
저는 이미 고모들한테 미운 감정이 생겨
부정적인 모습만 여기다 쓴 거 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짓을 쓰거나 오버해서 쓴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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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막장드라마라고 욕하던 이야기가 이젠 현실이네요.
답답해서 하소연하고 싶어 이렇게 글 씁니다.
저는 20대 중반이고 아빠는 50대 후반입니다.
아빠는 종가집의 종손, 큰집의 맏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빠에겐 누나 1명, 남동생 1명, 여동생 3명이 있습니다.
남동생은 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여자형제만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4~5살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1년이상을 저희집과 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까까머리에 분홍내복을 입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다예요.
유일하게 할머니께서 반응하시던 모습이 제가 할머니 팔을 베면 아프다고 찡그리는 모습이예요.
그때는 아파서 그러는 지 몰랐어요.
그저 할머니가 반응해주니깐 좋다고 또하고 또했네요....
그 후 할아버지는 저희집에서 함께 사셨어요.
19평 작은 아파트였는 데 어려서 그때는 좁은 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안방에는 부모님, 작은방은 할아버지, 거실에서 오빠와 같이 잤어요.
술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항상 경로당이며 가시면 술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밥상에 술 없으면 '술 사와라' 노래를 부르셨어요.
결국 할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 반복하시다 돌아가셨어요.
그 과정에서 수술도 많이하시고 치료도 계속 받아야하고 입원비도 나오니깐
돈이 어마하게 들었습니다.
몰랐는 데 빚도 졌었고, 외삼촌들께서 병원비도 대신 내주시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웃긴 건 핏줄인 고모들은 병원비 한번 대신 내준 적 없다고 합니다.
고모들이 너무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집에 계실 때도, 병원에 있을때도
저희 집이 바다가 가까운 지역이라
여름만 되면 고모네 식구들이 왔습니다.
저는 어리니깐 그저 친척들이 오는 게 좋기만 했습니다.
고모네 식구들과 몇 년동안 여름만 되면 바다 놀러가서 신나게 놀았던 추억이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부모님은 한번도 같이 가지 않고
오빠와 저만 고모네 식구들따라 바다갔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고모들은 잠시 병원에 가서 곁에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서 주무시지는 않았습니다.
확실히 기억나는 이야기가 고모들 식구랑 집 앞 식당에서 밥 먹는 데
막내고모가 다른 고모들한테 했던 이야기 입니다.
"어제 병원에서 아버지 손 쓸 방법 없다고 했나봐.
오빠가 의사한테 어떻게든 해달라고 울면서 소리치더라. 나 오빠 그러는 거 처음봤어."
어릴 때라 아무 생각없이 듣고 있었나 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간병인 한번 안 쓰시고 수발이라는 수발 다 드시면서
엄마 손으로 보내드렸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이거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논, 밭은 아빠가 맏이라고 아빠 명의로 주시고,
시골 집은 아빠 보고 니꺼 아니라고 이건 우리 장손 OO(오빠이름)꺼라고 니 이름으로 하지 말고 꼭 OO 주라고 했습니다.
논, 밭 안 많습니다. 크기 안 큽니다.
(밭은 모르지만 논은 다른 분이 농사 짓고, 저희는 1년에 쌀 얼만큼 가져다 먹습니다.
1년에 제사가 8번입니다.
그때마다 떡도 이 쌀로 해서 올리고, 밥도 이 쌀로 해서 올립니다.)
시골 집 안 큽니다. 팔면 2000~3000만원 나옵니다.
오빠 명의로 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이름이 잘못 기재되 있어
그거 바꾼다고 시간이며, 돈이며 들었다고 합니다.
설마 고모들이 달라할까 싶어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변경 안하고,
할아버지 명의로 뒀다고 합니다.
할머니에 할아버지 병원비로 진 빚때문에
엄마께서 그때부터 식당 일 다니셨습니다.
저 할머니 아플때는 몇 달씩 외할머니네 가서 살고,
큰외삼촌네 가서 사촌언니가 몇 달동안 저 먹이고 씻이고 다 했습니다.
밤마다 엄마보고 싶다고 울면 내일 온다고 달래줬어요.
그렇게 지내다 돌아오면 엄마 옆에서 꼭 엄마 가슴 만지면서 잤어요.
저 초등학교 입학식도 엄마 손 잡고 못갔어요.
엄마 일해야 해서 외숙모 손 잡고 갔습니다.
2학년 때까지 학교 마치면 엄마 식당가서 오빠(3살차이) 올 때까지 숙제하고 놀았습니다.
저 10살, 11살 때 엄마가 같이 일하시던 이모랑 분식집 시작하셨어요.
이때까지 고모네 식구들은 여름만 되면 저희집 놀러왔고,
바다도 가고 엄마 분식집에서 떡순튀 가져와서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고모네가 안 왔습니다.
왜 안오냐고 부모님께 물어도 그저 웃고 바쁜가봐 이런고 말았습니다.
아빠 바로 밑 여동생은 저희집이라 가까이 살아서 자주 와서 자고 갔는 데
그때마다 저는 고모랑 자면서 고모 가슴 만지면서 잤어요.
엄마만큼 고모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모도 어느순간부터 안 왔습니다.
고등학교 가서야 알았습니다.
고모들이 시골집 달라고 난리쳤다는 걸요....
아빠 엄마 따로 불러서 집 달라고 난리치고, 집에 와서 방바닥 치며 내놔라고 했답니다.
그저 소리치는 난리가 아니라 엄마 분식집 와서 수저통 다 던지고
의자 차고 식탁 차고 난리였답니다.(그 날 장사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중학생인 저희오빠 불러서 밥 먹이며 시골집 달라고 했답니다.
오빠가 할아버지가 나 준거라고 안된다고 했더니
그 식당에서 오빠한테 소리치면서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오빠 그날 집와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고모들이 너무 심하니깐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랑 시골집 집문서 고모들 주고 왔다고 합니다.
그럼 다시 우애 좋아질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지내러 올 줄 알았고, 안부 전화하고 그렇게 지낼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제사날도 몇 번 오다 뜸하고 안부전화는 오지도 않습니다.
제삿날 올거냐고 전화하면 멀어서라고 핑계, 바빠서 라고 핑계 입니다.
그 후로는 제삿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는 지 해외여행 가있기도 합니다.
저희집은 1년에 명절까지 제사가 8번입니다.
어디 놀러가도 싶어도 제사가 애매하게 있어 못갑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틀 전, 이틀 후 제사 2번 있습니다.
황금연휴라도 저희집은 제사 준비합니다.)
단 한번도 제사 잊어버려서 못 지낸 적 없습니다.
큰 고모가 엄마한테 그랬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일이년에 한번은 해외 놀러도 가고 한다고요.....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동생네도 그렇게 살라고 했답니다.
다른 한 고모는 집에 초대 좀 하랍니다.
고모네 늦둥이가 있는 데 왜 요즘은 외삼촌 집 안가냐고 그런답니다.
최근 결혼식장에서 만났는 데 아빠께 이 고모가 그랬답니다.
지난 일은 다 지난 거고, 안부도 묻고 서로 연락 좀 하고 지내자고요.
그렇게 난리 친 것에 대한 사과가 먼저 아닙니까?
웃긴 건 엄마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다는 겁니다.
가끔 전화도 아빠한테만 하고, 돈 빌려달라고도 아빠한테만 했답니다.
고모들이 할아버지 시골집은 철거해버렸습니다.
집 철거한 것도 아빠 동네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잠잠하길래 끝인 줄 알았는 데
최근에 그 집터를 살 사람 나타났다고 아빠한테 말하더랍니다.
큰고모부는 아빠한테 팔았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아빠가 내 인감하고 없으면 안될건데 했더니
다 방법이 있답니다.
포기각서만 써두면 된답니다.
아빠 포기각서 이 말에 정 떨어져서 뒤도 안보고 모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빠 없이 가능하다더니 아빠에게 서류 필요하다고 보내달라고
카톡 보내더니 직접 받는 것도 아닌 집 주소로 보내라고 했답니다.
엄마 그거 보시더니 절대 못 준다고 서류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알아보니 아빠 없이 집터 파는 건 불가능하고 만약 팔았다면 신고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른 고모들은 다 보내줬지만 아빠가 서류 계속 안 보내니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큰 고모가 책임지고 진행 중인가 봅니다.)
아빠는 계속 오는 전화 몇 번 무시하셨고,
참다 엄마가 전화받아서 못팔겠다고 OO(오빠) 줄렵니다.
했더니 노발대발하시며 그럼 집문서 왜줬냐고 난리칩니다.
집 팔아서 돈 고모들끼리 나누고,
아빠 몫 가지고 우리집 올려고 했답니다.
아니 팔아서 몇십억씩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많아야 200만원씩 돌아갑니다.
그 200만원에 저희 아빠는 동생이며 누나며 다 잃었습니다.
다시 보지 말자며, 연락하지 말라는 말까지 나오고 전화 끊으셨습니다.
이제 큰고모랑은 이렇게 끝났다 쳐도
동생들이 난리 칠 거 같습니다.
오빠에게도 예전처럼 전화하고 소리치고 하겠죠.
그렇지만 중학생이던 오빠는 20대 후반입니다.
오빠는 집 팔았다는 말부터 고모라고 생각 안 합니다.
아줌마들이 왜 전화오는 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내 거라고 절대 안 줄거라고 합니다.
저도 우리집 와서 아빠엄마한테 소리치면 고모들한테 똑같이 해줄겁니다.
큰고모가 우리는 돈 안주더라도 막내동생(막내고모)는 줘야한다고 했답니다.
결혼 하기 전에 일하면서 집에 생활비 보내줬다고요.
그 몫은 줘야 한다고 했답니다.
저는 병원비, 제사지내는 비용 다 똑같이 나누자고 할 겁니다.
지금까지 지낸 제사비며, 앞으로 지낼 제사비 똑같이 달라고 할 겁니다.
아빠랑 큰 고모 전화할 때 제가 옆에 있었는
엄마보고 논, 밭 다 가졌는 데 집터까지 가질려고 하냐고 지독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진짜 화났습니다.
제가 지독한 게 어떤건지 똑같이 보여줄겁니다.
엄마가 할아버지 시골집 탐나서 혼자 팔아서 혼자 가지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대가를 바라고 몇 년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병수발 한 거 아닙니다.
엄마는 오히려 막내고모 몫 줘야한다는 말에
그럼 집터 팔지말고 OO(오빠) 주고 막내고모한테 우리가 돈 주자 이러십니다.
논, 밭, 집터까지 다 가질려는 저희가 오히려 나쁜 가족입니까?
나쁜 가족이라고 해도 모르겠습니다.
고모들이 미워 절대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빠는 아주 오래전 하나뿐인 남동생을 잃었고,
오늘 누나 1명, 여동생 3명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시작일 지, 끝일 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가족끼리 뭉쳐서 꼭 잘 살겁니다.
진짜 긴 글, 너무 분해 한시간 동안 적습니다.
제가 나쁜 년일지라도 무조건 엄마편 들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