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여대생.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김양2015.03.13
조회1,648
안녕하세요 저는 22살 여학생입니다.
길이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술먹으면 저를 패는 아빠와 살았습니다.
그리고 열다섯에 집을 뛰쳐나왔고
쉼터에서 2년을 보낸 후에 온전한 독립을 했습니다.
그런 자격지심때문에 더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발악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몇년, 제게 그 분이 나타났습니다.
아빠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제 상황도 그러니
당연히 연애는 고사하고 남자라면 치가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독기로 가득찼던 저에게 따뜻하게 대해줬고,
그게 너무 고마워서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남성상과는 많이 달라서,
우리 아빠도 그럴 수 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부정은 그리웠는지
섬세하고 살가운, 어른같은 그분께 의지가 많이 됐습니다.
-띠동갑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게 됐고,
아직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던 저따위를
여리고 소중한 것을 대하듯 보호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분 덕분에 독기도 많이 빠졌고,
부모님에 대한 증오도 완화가 되었습니다.
검정고시출신, 본대없이 자란 애라는 것이
더 이상 제 약점이지 않을 정도로
어느 새 평범한 여대생이 되어있었습니다.
-대학은 그분을 만난 후에 그 분의 도움으로
그분이 졸업한 학교와 같은 과에 진학했습니다.
제 꿈이랑도 맞았고,
등록금이 200 조금 넘고 국가장학금은 없지만
학교 장학금이 학생의 절반이 받는 곳입니다-

그렇게 1년 여가 지난 지난 크리스마스입니다.
그 분도 혼자 살고 계시는데 크리스마스라서
온 가족이 모인다고 같이 밥먹자며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뭣도 모르던 저는 나름 남자친구 집에 인사를 간다며
옷도 단정하게 입고 보름을 넘게 선물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준비한건 과일바구니와
크리스마스트리모양와인이었습니다.
그 분과 만남을 가지면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라 그런지 이미 집에는
제가 사간 것 보다 좋은 과일과 와인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분은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온 집안이 예술가입니다.
시인, 연극인, 미술인, 무용인, 음악인.
물론 그 분도 예술하는 사람이고 누님들과 그 분은
전공분야에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누님들과 어머님은 굉장히 친하시고
그 분은 아버님과 누님들과는 그나마 친하지만
어머님은 종교와 체면치레의 이유로 친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어머님께서는 뭘 이런걸 사오냐고 번거로워하셨고
둘째누님은 영국인인 남편에게 친절하게
통역까지 해주셔서 참 민망한 시간이었습니다.
괜히 손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자니
그 분이 크리스마스 기분나고 좋지 않느냐며
조카의 재롱으로 환기시켜주셨어요.

그리고 시작된 온갖 호구조사..
부모님은 뭐하시냐, 형제가 어떻게 되냐,
어느학교에서 뭘 전공하냐, 왜 혼자 사냐 등등
좀 예민한 질문이다 싶은 것은
그 분이 "엄마는 뭘 그런걸 물어봐, 넌 그걸 또 왜 대답하고 있어,
크리스마스라서 밥 한 끼 먹자는거 가지고 엄마 너무하네"
뭐 이런식으로 구렁이 담넘듯 넘어가주셨어요.
뭐 그날은 그런식이었습니다.
혼자 케잌을 먹으며 보내던 평소의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슬프고 비참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현실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집안차이도 그렇고, 저희 엄마와 한살차이나는 큰누님..
많이 지쳐서 힘든데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역시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도 그렇고, 여러가지 일이 겹쳐서
많이 방황하며 혼자 앓고 있는데
힘든 일이 생긴줄로만 알던 그 분께서
혼자 하려고 하지 말라며, 같이 하자며
결혼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셨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습니다.
제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집안과의 만남이 결혼이라는데
저는 감히 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연애도 결혼도 제게 과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분 나이를 생각해서,
결혼하실 여자분 만나기를 배려해서
헤어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은 결혼하고 싶어서 저를 만나는게 아니고
저랑 만나니까 결혼이 하고 싶은거라고
사랑이 아닌 이유로 헤어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며
결혼하라고 니가 헤어져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이야기 하셨고 결국 우린 계속 만났습니다.

그렇게 지내는데 제가 방학때 알바를 한다고
피곤에 절어 생리를 거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달엔 당연히 생리통에 지옥을 맛봤구요ㅋ
그렇게 여자의 몸과 생리, 출산에 대해 열심히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었고 평소엔 생리통도, 생리증후군도 없어서
제 생리를 전혀 들키지도, 눈치채지도 못하던 그 분은
단순히 아프다는 말만 듣고는 부리나케 달려와
163의 작은 체구로 저를 들어 엘리베이터없는 4층에서
업고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가줬습니다.
왜 아픈 것이 하필 생리통이었는지..
이렇게 아프게 생리를 하는데 아이 하나쯤은 낳아야
억울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ㅋㅋ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머리가 이마와 뒷목에 붙어버린
그분을 보고 저 사람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없는 여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청혼해버렸습니다.ㅋ

그리고 지난 달 입춘,
다시 그 분의 부모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결혼할거면 빨리 하라고 하시고
어머님께서는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며 펄쩍 뛰시면서
아직 어린 친구한테 무슨 결혼얘길 하냐며 웃었고
아버님께서는 농담으로(?) 사실상 상견례구만
하며 원래 결혼은 남자가 밀어붙이면 하게 되는거라고
털털하게 웃어주셨습니다.

아는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전시관이 딸린 소극장을 빌려
저희의 추억들을 전시하고
작은 토크콘서트형식의 조촐한 결혼식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 겨울이지만 제겐 완연한 봄같습니다.
잘라내버린 아픈 손가락대신에
제 손가락이 되어 줄 사람이 생겼습니다.
결혼식준비라고는 하지만 글쓰고, 그림그리고, 사진을 인화하고
기타와 노래연습...을 하다가 결국 축가는 아는 분께 부탁ㅋ
10분짜리 짧은 연극연습도 하고.. 작품전시와 공연준비같습니다.
저희가 만든 켈리그라피로 된 청첩장,
아는 플로리스트께 부탁한 부케와 의상,
아는 사진작가님이 찍어주신 웨딩사진 등등
저희 예산에 맞추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닌
저희에게 초점맞춰진 결혼식이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하고 몸도 즐겁습니다.
저희 결혼식이지만 모든 지인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된 결혼식이라 더 특별한 것 같습니다.
또 함께 살게 될 준비를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사는 곳을 정리하고 넓고 저희 학교에서도 가까운
그분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기로 했는데
제 방의 짐이 빠지고 그분 집에 제 공간과 물건들이 생기니
기분이 참 묘하고도 좋았습니다.
매 순간이 새롭고 공기가 달콤합니다.
말도 안되는 조건들과 상황속에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건
철이 없어서도, 죽을 만큼 사랑해서도 아닌
그런 현실이 안보일 만큼 사랑해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싸워야 할 것, 이겨내야 할 것들이 많음을 압니다.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더 행복하고 아껴주며,
함께 이겨내면서 즐겁게 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응원해주신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