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엇을 먹고 살까를 고민하는 20대는 달관세대라는 뉴스가 상위권에 랭크인 되었다.나도 20대 끝에 서서 20대 초중반 멋모르고 학교다니고 사회생활을 그저 나의 가진 꿈을 이루는 장으로 생각했던 때와는 많이 생각이 바뀌었다.간단하게 말하자면 꿈을 꾸던 20대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야하나를 걱정하는 20대로 불쌍하게 전락해버린 것이다.나는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그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유할 것인가를 생각한다.이 생각은 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계약직이아닌 정직원, 월세가 아닌 전세, 1년에 한번은 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 복지 등'꿈',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던 것을 이제는 그것들이 대체하여 버린 것이다.꿈을 꿀 때는 내가 계약직으로 살던, 월세로 살던 상관이 없었다.왜냐하면 내가 원하던 길이 있었고 그 길로만 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물론 내가 욕심이 생긴거겠지. 하지만 이런 생활을 전전하다보니 깨달은게 있다.계약직으로 산다는 것은 ... 최소 복지도 없는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그 길에서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나는 주어진 것에 대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 길이 원하는 Requirement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턴, 외국어, 자격증 등 내 이력서를 빼곡히 채워나가왔었다.이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그러나결과는 어떠한가."취업포기세대" "삼포세대" "달관세대"이런말이 왜 우리 시대에 적용되는 걸까.비록 많은 날들을 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들을 뉴스에서 많이 듣고 보게 된 것은 처음인것 같다.높은 부동산값, 끝없이 오르는 소비재 물가, 이미 많아져버린 계약직, 파견직 등분명 개인의 능력문제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그러나 불쌍하게도 우리는 그 철옹성같이 보이는 구조를 깨려고 시도하지 못하고 그냥 그것을 "포기"하고, "단념"하고, "달관"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뉴스에서 처럼 대학교에가면 부조리에 맞서 대항할 수 있는 그런 엘리트가 되는줄 알았다.하지만규탄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면 이 사회는 문제성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들을 문제아, 반항아, 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인물로 낙인시켜버렸다.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사회에 부적응하는 것이라고 이 사회는 묵인하고 있다.요즘 나는 어떠한 특정한 상황가운데 놓여있다.별 것이 아니고 그런가보다 순응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다.다른 것이 아니고 야근수당 문제이다.이 야근수당이란게 보통 나의 시급보다 많은게 이치에 맞다.하지만 나의 야근수당은 최소 시급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겨우 삼천원 가량이다.야근을 하지말라는 목적이라면 나도 안하고 싶다. 그런데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과 분위기가 반복되는 가운데에 일만 강조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은 나몰라라하는 태도는 부당하게 느껴진다.내가 알기론 본부는 1만원, 우리 브랜치도 1만원이 넘는다.그런데 3천원?그 차이가 3배가 넘으니 물론 많이 억울하다.하지만 사무실 사정이 안좋다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단지, 내가 속이 얹힌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물음을 던졌을 때 반응하는 상사들의 문제다.'그것도 안하면 짤려', 또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야, 어쩔 수 없어' 아니면 심지어 '요즘 애들은 그런 생각이 문제야'그들은 나와 동일한 수당을 받지 않는다. 나의 몇배에 달하는 수당과 월급을 받기 때문인지 그들의 문제로 직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해고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갑질' 그리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다.물론, 그들도 괜히 나서서 일을 만들어 기관에서 눈밖에 나는 일을 자초하고 싶어하지않는 다는 것은 안다.그러나 그것들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에게는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너는 무조건 이것을 따라야해"라는 포기를 유도하고 은연중 패배주의를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기성세대들은 내가 어렸을 때 가르쳤던 것들과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부조리에 대항하는 것은 더이상 모범적이고 올바른 사람이 아닌 그저 유하지 못하고 사회에 부적격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인식변화 없이 사회의 변화를 원하고 자기 자식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좀처럼 한국사회에서 오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내가 속한 집단은 아니 나의 상사들의 집단은 제도를 모니터링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이며 그 중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아랫물들이 위로 아무리 물결을 만들어 오르려 해도 위에서 댐을 만들어 놓는다면 불가능 할 것이다.기성세대들은 오늘날 "달관세대"를 만든 구조적인 문제와 그들 머릿속에 팽배히 심어져있는 패배주의를 양성하는 사고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1
오늘 20대는 달관세대라는 뉴스를 보고..
오늘 무엇을 먹고 살까를 고민하는 20대는 달관세대라는 뉴스가 상위권에 랭크인 되었다.
나도 20대 끝에 서서 20대 초중반 멋모르고 학교다니고 사회생활을 그저 나의 가진 꿈을 이루는 장으로 생각했던 때와는 많이 생각이 바뀌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꿈을 꾸던 20대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야하나를 걱정하는 20대로 불쌍하게 전락해버린 것이다.
나는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유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 생각은 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직이아닌 정직원, 월세가 아닌 전세, 1년에 한번은 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 복지 등
'꿈',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던 것을 이제는 그것들이 대체하여 버린 것이다.
꿈을 꿀 때는 내가 계약직으로 살던, 월세로 살던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던 길이 있었고 그 길로만 간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욕심이 생긴거겠지.
하지만 이런 생활을 전전하다보니 깨달은게 있다.
계약직으로 산다는 것은 ... 최소 복지도 없는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그 길에서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어진 것에 대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 길이 원하는 Requirement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턴, 외국어, 자격증 등 내 이력서를 빼곡히 채워나가왔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취업포기세대" "삼포세대" "달관세대"
이런말이 왜 우리 시대에 적용되는 걸까.
비록 많은 날들을 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들을 뉴스에서 많이 듣고 보게 된 것은 처음인것 같다.
높은 부동산값, 끝없이 오르는 소비재 물가, 이미 많아져버린 계약직, 파견직 등
분명 개인의 능력문제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우리는 그 철옹성같이 보이는 구조를 깨려고 시도하지 못하고 그냥 그것을 "포기"하고, "단념"하고, "달관"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보았던 뉴스에서 처럼 대학교에가면 부조리에 맞서 대항할 수 있는 그런 엘리트가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규탄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면 이 사회는 문제성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들을 문제아, 반항아, 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인물로 낙인시켜버렸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사회에 부적응하는 것이라고 이 사회는 묵인하고 있다.
요즘 나는 어떠한 특정한 상황가운데 놓여있다.
별 것이 아니고 그런가보다 순응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다른 것이 아니고 야근수당 문제이다.
이 야근수당이란게 보통 나의 시급보다 많은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나의 야근수당은 최소 시급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겨우 삼천원 가량이다.
야근을 하지말라는 목적이라면 나도 안하고 싶다. 그런데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과 분위기가 반복되는 가운데에 일만 강조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은 나몰라라하는 태도는 부당하게 느껴진다.
내가 알기론 본부는 1만원, 우리 브랜치도 1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3천원?
그 차이가 3배가 넘으니 물론 많이 억울하다.
하지만 사무실 사정이 안좋다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단지, 내가 속이 얹힌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물음을 던졌을 때 반응하는 상사들의 문제다.
'그것도 안하면 짤려', 또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야, 어쩔 수 없어' 아니면 심지어 '요즘 애들은 그런 생각이 문제야'
그들은 나와 동일한 수당을 받지 않는다. 나의 몇배에 달하는 수당과 월급을 받기 때문인지 그들의 문제로 직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해고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갑질' 그리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다.
물론, 그들도 괜히 나서서 일을 만들어 기관에서 눈밖에 나는 일을 자초하고 싶어하지않는 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에게는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너는 무조건 이것을 따라야해"라는 포기를 유도하고 은연중 패배주의를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들은 내가 어렸을 때 가르쳤던 것들과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부조리에 대항하는 것은 더이상 모범적이고 올바른 사람이 아닌 그저 유하지 못하고 사회에 부적격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변화 없이 사회의 변화를 원하고 자기 자식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좀처럼 한국사회에서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집단은 아니 나의 상사들의 집단은 제도를 모니터링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이며 그 중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랫물들이 위로 아무리 물결을 만들어 오르려 해도 위에서 댐을 만들어 놓는다면 불가능 할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오늘날 "달관세대"를 만든 구조적인 문제와 그들 머릿속에 팽배히 심어져있는 패배주의를 양성하는 사고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