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자유여행]다시 이스탄불 그리고 사프란 볼루

뱅알뱅알이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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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잎새의 터키 자유여행기 5

 

다시 이스탄불로!

에디르네에서 짧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길.

어제부터 시작된 비는 여전히 그칠줄 모른다. 아니 더 거세졌다.

​에디르네 오토가르로 가는 돌무쉬 안. 잎새 뭐하고 있니?

 

인사해. 친구야!!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우선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가서 잃어버린 여권을 찾고 나서 톱카프를 간다.

다음 날​ 돌마바흐체 궁전과 탁심광장을 간다. 이스탄불 여정, 이쯤이면 더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날씨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단순히 비가 많이 오는 수준이 아니었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태풍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날씨 운은 기막히게 좋은 편이었는데, 터키는.....

가뜩이나 작은 키를 더 작게 압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매고 아야 소피아로 간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아야 소피아를 보려는 인파가 가득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에 우산도 안 쓰고 오히려 여유를 보이는 여행객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을 지나 오디오 가이드에 가 사정을 말하려고 하는데 직원이 대뜸 여권을 내준다.

그렇다. 나만 바보처럼 여권을 두고 다니진 않는 것이었다. 흔한 일일 거다. 그러니 부끄러워 말자

​애써 자기위안하며 소중한 여권을 챙겨 나왔다.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났다.

시르케지 트램역 인근 숙소를 예약해 둬 체크인을 했는데 해도해도 너무했다.

터키에서 머무는 동안 1박당 요금이 가장 비싼 곳이었는데 방 크기, 시설, 환기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 없었다. 기가 찼지만, 연말 극성수기 방이 있음에 만족해야 했다.

넷째날 우리는 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다가 저녁 탈출을 감행했다.

첫날 와서 반했던 그맛, 갈라타 다리 밑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나왔는데, 아뿔싸, 숙소에서 나와 코너를 돌자말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시르케지 역에서 조금만 지나면 바로 바닷가인데 바람이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산을 부여잡고 서로를 웅켜잡아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정말 떠밀려 나갈 것만 같았다.

1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왕복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고 이내 그로기. 그렇게 넷째날 밤은 허무하게 끝.​

이스탄불, 우산들의 무덤

이스탄불에서 머물기로 한 마지막 날 아침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사흘 내내 비만 내렸다.

​어젯밤 고등어 케밥을 위해 벌인 사투의 여파로 뿌리와 잎새 모두 컨디션이 꽝이었다.

하지만 이날마저 이 좁은 숙소에서 허비할 수 없다는 마음에 ​실내를 둘러볼 수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그랜드 바자르를 가기로 결심했다.

특이하게도 여기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도 우산을 잘 쓰지 않았다. 의아했다.

이들은 이렇게 튼튼한 사람들인가? 부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개의 우산을 챙겨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왜 여기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지 실감했다.

 

 

돌마바흐체는 1843년 ​술탄 압뒬메시드의 명령으로 지어진 궁전으로 바르세유 궁전과 매우 흡사하다.

돌마는 채움, 바흐체는 정원이라는 뜻이로 원래 포구였던 곳을 매립해 정원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궁전이 들어서기 전에는 술탄 아흐메드1세의 개인 정자와 정원이 있던 곳이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게 있다. 이곳이 바로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당시 비잔티온 제국은 ​강력한 해군력과 견고한 성채로 오스만 제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냈다.

당시 비잔티온 제국은 황금뿔만 안에 쇠줄을 설치해 적군의 배가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는데

해군이 열세였던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드2세는 정상적인 방법으론 승산이 없다고 여겼다.

불리하면 판을 엎으라고 했던가? 메흐메드 2세는 상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바로 이곳에서 배를 육지로 이동시켜 황금뿔만 안으로 투입시켰다. 통나무에 기름을 발라 그 위로 배를 옮겼다고.

배가 꼭 물위에만 떠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던 것!!!

돌마바흐체는 서구 근대화 추종자였던 압뒬 메시드에 의해 세워졌는데 우리의 경복궁 중건과 흡사한 점이 있다.

쇠퇴기,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사업에 매달리며 결과적으로 국력을 소진시킨 것.

기울어가는 국가의 재건은 건축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조선과 오스만은 몰랐던 것일까?

돌마바흐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부 사진 촬영을 엄격히 막고 있다. ​

내부 시계는 모두 9시5분에 고정돼 있는데 이유가 있다.

오스만 제국을 뒤로 하고 들어선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다 사망한 시각이 오전 9시5분이었던 것(1938년)​.

터키에서 아타튀르크는 신 그 자체인 인물. 우리로서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다양한 궁전이나 날씨만은 돕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그 사이에 비에 흠뻑 젖고 말았다.

가져왔던 우산 두개도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조심히 쓰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러고보니 주변 쓰레기통마다 부러진 우산이 가득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터프한 게 아니라 우산 써봐야 다 부러지고 그러니 그냥 다니는 거라고...

 

​귈레 귈레 2014!! 메르하바 2015!!

이날은 2014년의 마지막날이었다. 우리처럼 요란스럽게 연말연시를 맞진 않았지만

터키도 나름 연말연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새해 맞이 행사를

보러 갔을 텐데, 날씨가 끝까지 돕지 않았다. 종일 비를 맞아 골골거리다가 잠에 든다.

초인적인 힘으로 자정 무렵 눈을 떠 미리 사둔 작은 케익으로 우리끼리 새해를 기념한다.

31살, 이제 곧 32살이 된다. 스무살일 땐 서른이 되면 어른이 돼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이만 같다. 새해는 좀더 듬직해질 수 있을까? 더 어른스러워질 수 있을까?

퇴사 후 맞는 새해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근심과 걱정, 기대와 설렘이 한데 뒤섞인 느낌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그렇게 저물고 미지의 2015년이 조금씩 다가왔다.

타지에서 맞는 첫 새해는 그렇게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사프란 볼루로

이스탄불에 머물렀던 나흘 중 사흘 동안 세찬 비가 내렸다.

겨울비는 지긋했​다. 이스탄불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떠나는 아침, 새해 첫날 이스탄불은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아침 일찍 짐을 꾸려 오토가르로 향했다. 한 번 와봤던까닭일까? 그 사이 많이 익숙해졌다.

이스탄불을 떠나 사프란볼루까지 6시간. 이 정도는 터키에선 장거리 축에도 못낀다.​(17시간짜리 노선도 있다)

 

터키 버스는 이렇게 가운데 출입문이 하나 더 있고 차고가 꽤 높은 편이다.

우리가 탔던 회사는 사프란. 꽤 많은 좌석의 안전벨트가 망가져 있었다.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 한참을 달리자 바깥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중충했던 이스탄불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겨울왕국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

6시간, 함께하고 싶은 일들을 곱씹으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토가르에 도착해 세르비스와 돌무쉬를 갈아타고 차르시 마을로 간다.

차르시 마을은 ​오스만 제국 때 지어진 집들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일정상 하루만 머물렀다 바로 앙카라로 가려 했으나 푸근한 시골 할머니 집 같은 느낌에 반해

하루 더 머물렀다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사프란볼루는 유난히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첫날 머물렀던 숙소(아리프베이) 카운터에서 본 우리나라 사람의 손글씨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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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시 마을은 오스만 전통 목조가옥들이 있는데 내부 모습이나 나무를 떼 난방하는 모습들이

예전 할머니가 살던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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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모습이나 방 안 이불장 모두 옛날 우리와 닮아 있다.

 

볼거리 가득하고 사람 가득한 이스탄불과 달리

오롯이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좋다.

일출과 마을 전망을 보기 좋은 흐를드륵 언덕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땐 흐려서 일출은 못보고 저녁 일몰만 실컷 보다가 돌아왔다.

이틀을 머물렀지만 2~3일 더 머물면서 느긋하게 여행을 즐겼어도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