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잎새의 터키 자유여행기6 이전 여행기 및 관련 여행기는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답니다. 블로그 주소http://blog.naver.com/bbury_lipsae 앙카라 볼 것 없어요. 그냥 패스하세요~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또 터키에 가서도 이런 말을 제법 들었다.명색이 터키 공화국의 수도인데 이런 대접을 받는 까닭은 뭘까?어쨌든 우리 역시 사프란볼루에서 앙카라를 경유해 괴레메로 가기로 했다.다만 원래 가고자 했던 하투샤 유적이나 콘야 등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패스한 관계로앙카라 아나돌루 박물관만큼은 꼭 방문하기로 결심했다.우리의 배낭. 오늘만큼은 니들이 벤치에 앉아 쉬렴. 고생이 많구나 아나톨리아 고원.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해가 뜨는 곳을 뜻한다.동양을 의미하는 오리엔트 역시 아나톨리아의 라틴어식 표현이다.앙카라는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수도로 삼은 곳으로그 역사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아타튀르크는 보수, 수구 세력의 본거지인 이스탄불에서 벗어나기 위해이곳을 수도로 삼았는데 대통령 재임 후 8년 넘게 이스탄불을 찾지 않았다고.앙카라는 역사적으로도 내륙 교통의 중심이었지만 수도라는 위상에 걸맞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아타튀르크는 앙카라에 아나돌루 박물관을 건설하고 히타이트 유적, 아나톨리아에서 출토된 유적을한데 모아들였다. 특히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차탈회윅 유적도 살펴볼 수 있다.하투샤나 콘야 등을 찾지 못한다면 꼭 들려봐야할 곳이다.앙카라 오토가르에 도착해 괴레메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표를 산 사무실에 배낭을 맡겼다.여기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이 의아하지만 유쾌하게 응했다. 혹시 이 모자 때문일까? 후배가 잘 다녀오라고 사준 이 털모자는 꽤 사람들의 관심을 샀엇다.에디르네에서도 두 팀이나 우리보고 같이 사진 찍자고 했었다. 한 팀은 무려 10명의 여고생 팀이었다 >0< 확실히 털모자의 영향이 컸다. 날씨가 따뜻했던 안탈리아에서부턴 쓰지 않았는데그후론 같이 사진 찍자는 얘기가 없엇던 걸 보니 -_-;;;박물관은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보여줄 수 없지만앙카라에 왔다면 반드시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아니 앙카라 올 일이 없더라도아나돌루 박물관 때문에라도 꼭 와볼 것을 추천한다.참고로 이 박물관은 1997년 유럽의 박물관에 뽑힌 곳이기도 하다.짧은 박물관 관람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괴레메로 발걸음을 옮긴다. 괴레메 입성하다 앙카라에서 다시 버스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네브쉐히르.네브쉐히르는 괴레메로 가기 위한 관문도시다.아나톨리아 고원 중심부에 위치한 네브쉐히르는 꽤 쌀쌀했다.세르비스로 다시 20분여를 더 달려 밤 10시 무렵 도착한 괴레메.빨리 날이 밝기를 간절히 원할만큼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밤 늦게 도착해 저녁 먹기가 애매했던 우리는 이렇게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오렌지는 사프란볼루에서 떠나기 전 1리라(우리돈 500원)에 1kg을 사왔다.터키의 과일값은 기특하고 착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한 달간 터키 여행을 하며 4개의 투어상품을 예약했는데 그 중 3개가 괴레메 관련 상품이었다.숙소 체크인을 하고 짐 풀고 하다보니 자정이 넘어 잠들었다.자는둥 마는둥 하다 깬 시간은 새벽 4시30분. 가까스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바로 괴레메가 자랑하는 벌룬투어를 타기 위해!!!일출에 맞춰 괴레메의 멋드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이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지!!이스탄불에서 미리 예약해둔 에어 카파도키아의 셔틀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했는데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잠이 덜 깬채로 기다리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해가 뜰 시간이 됐는데 바깥은 제법 흐렸다.그래도 터키 여행 내내 성가시게 내리던 비가 오지도 않았고 바람도 그리 불지 않으니탈 수 있겠지 마음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7시가 다 돼서야 업체 직원이 오늘 비행이 최종 취소됐다는 소식을 전한다..뭐라고? 잠도 못자고 왔는데.... 그럴리가.....새벽 찬바람 이겨내겠다고 그 새벽에 핫팩이며 내복이란 내복은 죄다 껴입고 왔는데.....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벌룬이 뜨고 내리는 통제부처가 있는데 바람이 불면승인허가가 잘 안 난다고..하기사 오늘 흐려서 일출도 못보고 하니 내일 다시 타러 오겠다고 예약을 미루고숙소로 돌아와 선잠에 들었다.1시간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우리는 그린투어를 위한 버스에 올랐다.괴레메를 중심으로 한 카파도키아 여행은 워낙 반경이 넓어서 도보로는 다닐 수 없다.그린, 레드 밸리 같은 경우는 투어 상품을 이용하거나 바이크, 차량을 렌트해 다녀야 했다.우리는 설명도 들을 겸 투어를 신청했는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한 무스타파가 우릴 안내했다.이 친구는 대단한 민족주의자로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옛 터키의 영광을 되찾는 게 꿈이라고 했다.분위기상 웃으며 넘겼지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괴레메 파노라마와 셀리메 수도원, 으흘라라 계곡,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인데 왕복거리가 200km가 훌쩍 넘는다. 괴레메는 과거 광활한 호수가 있던 곳이었다.900만~300만년 전 잇딴 화산 폭발로 이 곳에 화산재가 가득 쌓였고엄청난 두께의 화산재 위로 용암이 흘러 들어와 굳었는데 오랜 침식, 풍화작용을 거치며 현재의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졌다.괴레메에서 우치히사르 가는 방향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괴레메 지역을 한눈에조망할 수 있는 괴레메 파노라마가 나온다. 대부분 응회암 지대라인데 돌이 무른 편이라 큰 도구 없이도 굴을 파기 쉬웠다고 한다.때문에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대 때부터 굴을 파고 거주했다.화산지형이지만 땅이 비옥해 풍요로운 땅이었고 비잔티온 제국 당시에는 제국에서가장 강력한 전사를 배출한 지역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비잔티온 제국은 1071년 셀주크 터키에 참패하며 이곳을 내줬는데 치명적인 손실이었다.당시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과거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처럼 박해를 피해동굴로 숨어 들었다.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이 많았던 만큼, 비잔티온 제국 초기 기독교의 주요 인물을배출한 만큼 괴레메와 인근 곳곳에는 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셀리메 수도원이곳 역시 무른 돌의 내부를 파내 수도원으로 삼았던 곳이다.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오전까진 날이 제법 흐렸는데 그새 맑게 갰다. 여행 내내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도. 터키 여행을 하며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사진은 정말 잘 찍고 볼 일이다. 단체로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으흘라라 계곡이었다.이곳은 양 옆으로 절벽이 웅장하게 솟아있고 그 사이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어천연 요새 역할을 한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마다 이 계곡 깊숙히 들어와 숨어 살았다고 한다.예전엔 이 계곡을 따라 1박2일간 트레킹, 캠핑하는 투어 상품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km 계곡 트레킹만 감질맛 나게 맛볼 수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교회가 나오는데 성상파괴운동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성화가 파괴됐다.심지어 낙서를 해놓은 경우도 있다.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향한 곳은 지하도시 데린쿠유.역시 무른 응회암 덕분에 건설이 가능했다.7km 남짓 떨어진 곳에 카이막를르라는 또다른 지하도시가 있었는데 학자들은두 도시 사이의 비밀통로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데린쿠유는 기원전 7세기 무렵 프리기아 왕국 때 형성돼 5~10세기경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최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인데 지하 11층(깊이 85미터)까지 이어져 있다.전쟁이나 비상상황 때 2주 가량 임시로 머물 수 있었다고..다만 데린쿠유엔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 있어 장기 체류도 가능했다고 전해진다.아직 모든 층이 공개되진 않았는데 환기를 위한 수직갱도, 예배당, 주방, 와인 저장고, 침실 등볼거리는 충분하다. 외부의 침입 차단을 위해 이동 통로는 한곳에 불과하다.때문에 중간 층 부근엔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가려는 사람의혼잡을 막기 위한 일종의 대기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던 공간이다보니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게 하나 있었다.바로 처벌의 장소. 기둥에 쇠사슬을 걸어 죄를 지은 사람을 매달아 두었다고. 지하 8층에서 지상까지 이어진 수직갱도. 이곳을 통해 공기가 공급되었다. 통로 내부의 조명은 침침하다. 빛을 잘 활용하면 적은 빛으로도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겠구나 싶은데그러기엔 실력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아쉽다. 한시간 남짓 지하도시에 있으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생존을 위해 이곳에서 머물렀을 사람들은 이곳에서불안감과 답답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종교의 힘으로? 투어를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우리에겐 투어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쫓기듯 다니고 우르르 몰려가인증사진 한 장 딱 찍고 다시 이동. 또 이동... 하지만 괴레메에선 4일을 머무를 거니까 내일부턴 트레킹도 다니고우리만의 알찬 여행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165
[터키 자유여행기]앙카라~괴뢰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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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볼 것 없어요. 그냥 패스하세요~
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또 터키에 가서도 이런 말을 제법 들었다.
명색이 터키 공화국의 수도인데 이런 대접을 받는 까닭은 뭘까?
어쨌든 우리 역시 사프란볼루에서 앙카라를 경유해 괴레메로 가기로 했다.
다만 원래 가고자 했던 하투샤 유적이나 콘야 등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패스한 관계로
앙카라 아나돌루 박물관만큼은 꼭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배낭. 오늘만큼은 니들이 벤치에 앉아 쉬렴. 고생이 많구나
아나톨리아 고원.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해가 뜨는 곳을 뜻한다.
동양을 의미하는 오리엔트 역시 아나톨리아의 라틴어식 표현이다.
앙카라는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수도로 삼은 곳으로
그 역사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아타튀르크는 보수, 수구 세력의 본거지인 이스탄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을 수도로 삼았는데 대통령 재임 후 8년 넘게 이스탄불을 찾지 않았다고.
앙카라는 역사적으로도 내륙 교통의 중심이었지만 수도라는 위상에 걸맞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아타튀르크는 앙카라에 아나돌루 박물관을 건설하고 히타이트 유적, 아나톨리아에서 출토된 유적을
한데 모아들였다. 특히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차탈회윅 유적도 살펴볼 수 있다.
하투샤나 콘야 등을 찾지 못한다면 꼭 들려봐야할 곳이다.
앙카라 오토가르에 도착해 괴레메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표를 산 사무실에 배낭을 맡겼다.
여기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한다. 우리는 그런 모습이 의아하지만 유쾌하게 응했다.
혹시 이 모자 때문일까? 후배가 잘 다녀오라고 사준 이 털모자는 꽤 사람들의 관심을 샀엇다.
에디르네에서도 두 팀이나 우리보고 같이 사진 찍자고 했었다. 한 팀은 무려 10명의 여고생 팀이었다 >0<
확실히 털모자의 영향이 컸다. 날씨가 따뜻했던 안탈리아에서부턴 쓰지 않았는데
그후론 같이 사진 찍자는 얘기가 없엇던 걸 보니 -_-;;;
박물관은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보여줄 수 없지만
앙카라에 왔다면 반드시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아니 앙카라 올 일이 없더라도
아나돌루 박물관 때문에라도 꼭 와볼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이 박물관은 1997년 유럽의 박물관에 뽑힌 곳이기도 하다.
짧은 박물관 관람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괴레메로 발걸음을 옮긴다.
괴레메 입성하다
앙카라에서 다시 버스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네브쉐히르.
네브쉐히르는 괴레메로 가기 위한 관문도시다.
아나톨리아 고원 중심부에 위치한 네브쉐히르는 꽤 쌀쌀했다.
세르비스로 다시 20분여를 더 달려 밤 10시 무렵 도착한 괴레메.
빨리 날이 밝기를 간절히 원할만큼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밤 늦게 도착해 저녁 먹기가 애매했던 우리는 이렇게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오렌지는 사프란볼루에서 떠나기 전 1리라(우리돈 500원)에 1kg을 사왔다.
터키의 과일값은 기특하고 착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한 달간 터키 여행을 하며 4개의 투어상품을 예약했는데 그 중 3개가 괴레메 관련 상품이었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짐 풀고 하다보니 자정이 넘어 잠들었다.
자는둥 마는둥 하다 깬 시간은 새벽 4시30분. 가까스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바로 괴레메가 자랑하는 벌룬투어를 타기 위해!!!
일출에 맞춰 괴레메의 멋드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이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지!!
이스탄불에서 미리 예약해둔 에어 카파도키아의 셔틀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잠이 덜 깬채로 기다리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해가 뜰 시간이 됐는데 바깥은 제법 흐렸다.
그래도 터키 여행 내내 성가시게 내리던 비가 오지도 않았고 바람도 그리 불지 않으니
탈 수 있겠지 마음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7시가 다 돼서야 업체 직원이 오늘 비행이 최종 취소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뭐라고? 잠도 못자고 왔는데.... 그럴리가.....
새벽 찬바람 이겨내겠다고 그 새벽에 핫팩이며 내복이란 내복은 죄다 껴입고 왔는데.....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벌룬이 뜨고 내리는 통제부처가 있는데 바람이 불면
승인허가가 잘 안 난다고..
하기사 오늘 흐려서 일출도 못보고 하니 내일 다시 타러 오겠다고 예약을 미루고
숙소로 돌아와 선잠에 들었다.
1시간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우리는 그린투어를 위한 버스에 올랐다.
괴레메를 중심으로 한 카파도키아 여행은 워낙 반경이 넓어서 도보로는 다닐 수 없다.
그린, 레드 밸리 같은 경우는 투어 상품을 이용하거나 바이크, 차량을 렌트해 다녀야 했다.
우리는 설명도 들을 겸 투어를 신청했는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한 무스타파가 우릴 안내했다.
이 친구는 대단한 민족주의자로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옛 터키의 영광을 되찾는 게 꿈이라고 했다.
분위기상 웃으며 넘겼지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괴레메 파노라마와 셀리메 수도원, 으흘라라 계곡,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인데
왕복거리가 200km가 훌쩍 넘는다.
괴레메는 과거 광활한 호수가 있던 곳이었다.
900만~300만년 전 잇딴 화산 폭발로 이 곳에 화산재가 가득 쌓였고
엄청난 두께의 화산재 위로 용암이 흘러 들어와 굳었는데
오랜 침식, 풍화작용을 거치며 현재의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졌다.
괴레메에서 우치히사르 가는 방향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괴레메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괴레메 파노라마가 나온다.
대부분 응회암 지대라인데 돌이 무른 편이라 큰 도구 없이도 굴을 파기 쉬웠다고 한다.
때문에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대 때부터 굴을 파고 거주했다.
화산지형이지만 땅이 비옥해 풍요로운 땅이었고 비잔티온 제국 당시에는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를 배출한 지역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비잔티온 제국은 1071년 셀주크 터키에 참패하며 이곳을 내줬는데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당시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과거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처럼 박해를 피해
동굴로 숨어 들었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이 많았던 만큼, 비잔티온 제국 초기 기독교의 주요 인물을
배출한 만큼 괴레메와 인근 곳곳에는 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셀리메 수도원
이곳 역시 무른 돌의 내부를 파내 수도원으로 삼았던 곳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오전까진 날이 제법 흐렸는데 그새 맑게 갰다.
여행 내내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도.
터키 여행을 하며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
사진은 정말 잘 찍고 볼 일이다.
단체로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으흘라라 계곡이었다.
이곳은 양 옆으로 절벽이 웅장하게 솟아있고 그 사이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어
천연 요새 역할을 한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마다 이 계곡 깊숙히 들어와 숨어 살았다고 한다.
예전엔 이 계곡을 따라 1박2일간 트레킹, 캠핑하는 투어 상품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3km 계곡 트레킹만 감질맛 나게 맛볼 수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교회가 나오는데 성상파괴운동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성화가 파괴됐다.
심지어 낙서를 해놓은 경우도 있다.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향한 곳은 지하도시 데린쿠유.
역시 무른 응회암 덕분에 건설이 가능했다.
7km 남짓 떨어진 곳에 카이막를르라는 또다른 지하도시가 있었는데 학자들은
두 도시 사이의 비밀통로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데린쿠유는 기원전 7세기 무렵 프리기아 왕국 때 형성돼 5~10세기경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최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인데 지하 11층(깊이 85미터)까지 이어져 있다.
전쟁이나 비상상황 때 2주 가량 임시로 머물 수 있었다고..
다만 데린쿠유엔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 있어 장기 체류도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아직 모든 층이 공개되진 않았는데 환기를 위한 수직갱도, 예배당, 주방, 와인 저장고, 침실 등
볼거리는 충분하다.
외부의 침입 차단을 위해 이동 통로는 한곳에 불과하다.
때문에 중간 층 부근엔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가려는 사람의
혼잡을 막기 위한 일종의 대기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던 공간이다보니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처벌의 장소. 기둥에 쇠사슬을 걸어 죄를 지은 사람을 매달아 두었다고.
지하 8층에서 지상까지 이어진 수직갱도. 이곳을 통해 공기가 공급되었다.
통로 내부의 조명은 침침하다.
빛을 잘 활용하면 적은 빛으로도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겠구나 싶은데
그러기엔 실력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아쉽다.
한시간 남짓 지하도시에 있으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 이곳에서 머물렀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불안감과 답답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종교의 힘으로?
투어를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에겐 투어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쫓기듯 다니고 우르르 몰려가
인증사진 한 장 딱 찍고 다시 이동. 또 이동...
하지만 괴레메에선 4일을 머무를 거니까 내일부턴 트레킹도 다니고
우리만의 알찬 여행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