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

광신개독200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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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재 일 : 2001년 06월 16일 37面(10版)
▶ 글 쓴 이 : 조우석

신학서 `예수는 없다` 한국교회 비판 예수는 없다 『예수는 없다』는 최근 선보인 출판물 중 다분히 이례적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더할 수 없이 강력하고 통념을 뒤집기 때문에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지만, 논의의 진지함은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 오래 기다려온 것` 이다.

책의 외양도 괄목할 만하다. 해외거주 종교학자가 쓴 이 책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 인문적 신학서` 라서 흡인력이 클 수밖에 없다.

신간은 우려스러웠던 주류(主流)종교 기독교의 맹목적 신앙과 배타주의적 자세, 그리고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어왔던 교회에 대한 충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파천황(破天荒)의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던지지 말 일이다.

그 경우 당신은 `한국사회만 몰랐던` 지구촌 이웃들의 변화 소식에 귀닫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잘못된 신관(神觀)은 무신론만 못하다" "예수>는 성불(成佛)했다" "기독교인도 `단군이 세워주신 나라` 를 마음을 다해 노래할 수 있다" 는 식의 일부 도발적인 내용에 대한 과민반응도 현명한 일이 못된다.

▶ `영아기 수준 정신연령` 의 한국교회〓평균적 신자들이 들으면 이단을 넘어 `삼단` 이라 펄펄 뛸 이런 주장은 출판사의 상업주의적 장치가 아니다. `교회 공동화 현상` 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거의 유일하게 초강세 교세를 유지하면서도 오만과 편견을 키워왔던 한국교회에 대한 자성(自省)의 죽비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인 캐나다 리자이나대 오강남(60.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교수는 이런 오만과 무지함을 `영아기 수준의 정신연령` 이라고 여지없이 공박하고 있다.

예수는 없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적 교인들의 신앙은 `철지난 뉴스` 로 구성돼 있다. 우선 성경은 한 점 한 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고(성경 무오류설), 따라서 타종교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종교 다원주의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복음주의 혹은 근본주의)고 본다. 하지만 이런 신앙관을 가진 국가는 지구촌에 한국 밖에 없다. 서구 만 해도 옛시대의 독선적인 `종교적 제국주의` 를 내던진 지 오래다.

지금껏 가져온 부족적 신관(tribal god)을 버리고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新)종교개혁이라 불릴 만한 그런 탈(脫)근본주의 움직임의 구체적인 표현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 는 1961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혁명적 선언이다. 이런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이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권력지향의 것이라는 반성 아래 대대적으로 수정한 결과다.

▶서구교회는 변화하고 있다〓그것은 서구 종교학자들의 상식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가난한 남부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세-비율로 봐서 80% 내지 60%라고 한다-에 속한다. 문제는 한국만의 기현상이다. 95%내지 90%에 해당하는 국내 기독교 신자들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 배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 탓이다. 이들은 서구에서 들려오는 신(新)신학의 소식을 사탄의 음모라고 규정하는 `대단한 영적 오만과 신학적 무지` 에 사로잡혀 있다. 저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외눈박이 한국교회의 맹목성이 그대로 묘사돼 있다.

"그런 꼭 막힌 옹고집 때문에 정통파라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더 사분오열 찢겨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 그것이 진리를 옹호하는 길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19세기에 팽배하던 군국주의적 사고의 잔재에 발맞춰 `믿는 사람들아 군병(軍兵)같으니…` 등 전의를 불태우는 군가 같은 찬송을 부르기도 한다. 자기들의 믿음을 만방에 전하겠다는 공격적인 선교사업에 돌진한다. " (43쪽)

▶문제는 한국인 정체성이다=잘못된 신관보다 차라리 무신론이 나을 수도 있다는 폭탄선언은 그 즈음에서 터져 나온다. 물론 저자는 비교종교학자이자 신자.

따라서 그의 말은 기성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기 보다는 이 책에서 내내 강조되는 `신앙적 성숙` `신앙적 자라남` 을 위한 조언이다. 이 책을 꼼꼼히 읽는 그 누구라도 이런 측면에 공감을 하겠지만, 실은 이 책은 분명 대중적 신학서를 뛰어넘는 무게를 지닌다는 점에 충분한 눈길이 돌려져야 한다.

그것은 한국문화의 자기정체성과 관련한 강력한 암시의 측면이다. 특히 오강남의 체험 반경을 고백한 대목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초등학교 때 어머님의 손을 잡고 교회에 발을 내딛고, 종교학을 전공한 것은 기독교의 깊은 뜻을 제 개인의 실존적 관심에서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 같습니다만 한국에서는 희랍어 성서를 읽고, 틸리히 등 서양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사상에 전념했지만, 서양에서는 동양종교 사상에 몰두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한문을 다시 배우면서 바가바드기카, 화엄과 선사상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전에 공부한 기독교의 의미도 완전히 새롭게 부각돼옴을 발견했습니다" (책 서문)

우리 사회 모든 부문 중 가장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먼 것이 실은 기독교 교회로 지적된다. 『예수는 없다』는 이런 격차를 해소하는 권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