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까지 좋은 남자이고 싶다

B20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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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난 너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헤어질 때 이야기 했던 그 흔한 핑계는 너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 땐 몰랐다.

 

 

헤어지고 며칠 뒤.

나는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너가 왜 그리 도망치듯이 떠났는지.

모든 걸 다 알아버렸다. 너가 바람을 몰래 폈었다는 것 까지도.

 

 

모든 진상을 알고 버려졌다는 슬픔에, 지독해서 뼈저리게 느껴지던 배신감에,

다 놓고 싶었다. 한강다리에도 올라가 보았고, 먹어선 안 될 약에까지도 손 댔었다.

 

내가 사는 이곳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숨쉬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이였다.

 

 

차라리 지옥이 이곳보다 나으리라 생각했었다.

 

 

 

 

 

피해자인 나는 이런데, 죄를 지은 가해자는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주변의 친구들, 지인들, 가족들까지 모두 나를 걱정하고 안쓰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야위어 갔고 피폐해져 갔다.

친구들 만나서 술도 진탕 먹고, 신세한탄하고 그냥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징징거리고 그랬었다. 남자 주제에.

멘탈도 나가서 사고도 칠뻔 한적도 많았고, 혼자 있으면 극단적인 생각이 들정도로 그랬었다.

 

 

 

 

 

 

너랑 헤어지고 나서 한달.

한달은 그렇게 폐인처럼 지낸것 같다.

 

 

 

 

그래도 그 폐인같은 삶과 멘탈 속에서 내가 가장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건,

술먹고 연락하고, 다시 붙잡겠다고 매달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이 간사한지라, 나도 한달 후에는 내 외로움을 달래줄 다른 사람을 찾고 있더라.

 

그리고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 착하고 선하다. 너와는 달리 상냥하고 가녀리고 천상 여자 같은 성격이다.

내 힘든 얘기 다 들어주고, 다 챙겨주고 그런다.

심지어 데이트비도 거의 그 사람이 다 내주고 그랬다. 너를 만날 때는 내가 거의 다 냈던 돈들인데.

 

같이 카톡을 하고, 밥을 먹고, 데이트 아닌 데이트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더 웃긴 건,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고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내 스스로가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두가지.

첫째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둘째는 아직도 내 마음에 누군가 들어올 자리가 없더라.

 

 

 

 

그러다보니 오히려 형식적인 데이트, 형식적인 카톡, 형식적인 대화만 오고가게 되고,

오히려 내가 이 사람에게 스스로 해선 안될짓이다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 없는 사람이었더라.

 

 

 

 

 

 

무얼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고 만나던 너가 좋았다.

집앞에 그냥 늦은 시간에도 보고 싶으면 츄리닝 차림으로 화장기 없이 나오던 너가 좋았다.

너는 왜 화장을 안하냐는 핀잔에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대답하던 너가 좋았다.

그냥 동네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여름 저녁에 산책하고 그런 너가 좋았다.

 

 

 

우리가 걷던 그 길, 공원 어디든 간에 같이 있는 곳이 데이트 코스였고, 카페였고, 놀이공원 같았으니까.

 

 

모텔을 가서도 굳이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놓고 서로 커플피씨로 같이 게임을 하면서 치킨을 시켜먹던,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던 너가 좋았다.

 

 

돈 많이 쓴다고 맨날 구박해도, 내가 사주는 것들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받아주고, 같이 즐기던 너가 좋았다.

 

맨날 뾰루지 나면 너가 자기는 그런거 짜는거 좋아한다며 무릎 베개에 날 눕혀놓고, 손톱자국 날때까지 짜주던 너가 좋았다.

 

우리에게 데이트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서로에게 애교 부리고, 가끔 병신짓도 서로 하면서 그렇게 보낸 너와의 시간, 추억들.

 

그게 난 좋았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가족 같고, 때론 연인 같았던, 밀당 따윈 없던 그런 우리가 좋았다.

 

 

 

 

그리고는

다신 그런 사랑, 그런 만남 할 수 없을 것 같아 슬펐다.

 

 

 

 

이젠 누군가를 만나도, 이 사람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하고, 어떤 걸 좋아할까 어떻게 대해야할까,

혹은 실수하지 않을까. 밀당은 언제해야할까.

이런 수많은 고민들을 안고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살아가겠지.

 

 

 

 

 

오늘도 잊지 못해, 힘든 잠자리가 되고, 가끔 문득 지나치는 장소에서 너 생각이 나 잠시 감상에 빠지겠지만,

너에 대한 원망도 이젠 없다.

너가 나를 매몰차게 버렸지만,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너의 험담도.

 

 

 

이제 우린 서로 추억속의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 추억을 내스스로 더럽히고 싶지 않다.

 

 

 

그냥 넌 내 20대 중반에 내 옆에 있던 좋은 추억이었고,

내게 사랑이 뭔질 알려줬고, 연인 관계란 이런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시켜준 사람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이제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너에게 뒷모습마저 멋지고 좋은 사람이고 싶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지만,

잊혀지지는 않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이니까.

 

 

 

 

자연스레 시간이 지나가면, 감정의 날카로움이 서서히 무뎌질 때가 되면, 너 소식을 들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심쿵하지 않게 될 때가 되면, 그 땐 알아서 잘 만나게 되겠지.

 

 

 

잘 지내길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아.

날 더운데 유니폼 입고, 평소에 잘 신지도 않던 힐 신고 손님응대하느라 바쁘고 힘들테지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술 많이 먹지 말고, 담배 좀 줄이고. 술 많이 먹고 아무데서나 헤드뱅잉하지 말고. 맨날 코감기에 몸살을 달고 살던 너였는데. 아프지 말고.

 

 

 

Good Luck.

 

 

P.S. 새로 사귄 남자친구 괜찮은 사람 같더라. 잘 만나고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