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아침, 압수수색 영장을 가진 수사관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도, 그저… 뉴스나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 이라고만 여겼었지.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나는.
드라마보다는 정중하고 조용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말 우리도 상상하지 못한 구석구석을 뒤지는구나 싶어 멀찍이 그들을 구경했다.
냉동실이랑 김치냉장고까지 열어보고. 그 비닐봉지도 하나하나 열어보더라고.
그 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여겼고.
이렇게 심각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사안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일전 있었던 사고도 그렇고.
연이어 방산비리가 터지면서 군인. 방위사업 이 두 키워드는
거의 온 국민에게 욕을 들어먹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제법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목도하고 자란 것 같다.
연평해전은 내 친구의 아버지가 함장이셨고
천안함은 내 동생의 아버지가 함장이셨다.
지금 연일 터지는 방산비리 또한 내 친구언니동생의 아버지.
그리고 이젠. 우리아빠…
하루 종일 속이 돌로 누르는 것처럼 답답하다.
어디가서 자랑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말할 일도 아니기에, 익명의 힘을 빌어 적어본다.
아빠는 정말. 일을 맡고 나서부터… 조심하셨다.
사실 방사청으로 옮긴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군인으로써 한 부대를 통솔하는 위치에서 있는 것이 아닌. 어쩌면 군인과는 조금 다른 길.
중간중간 다시 진짜 군인의 길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많이 망설이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지금의 책상 앞 업무들보다 훨씬 더 멋져 보이는데 남자로써 욕심이 없으셨을까.
아마도 방사청에 계속 계셨던 이유 중 많은 지분은 나에게도 있을 것이다.
군인에게 2년마다 이동은 숙명.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는 아빠만 독신자숙소로 이사를 다니셨다.
기러기생활 10여년. 방사청에서는 사업을 장기적으로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서울에 2년보다는 더 길게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아빠는 평일에도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크게 치셨던 것 아닐지.
마음이 아프다. 그 때 그냥 그곳에서 나오라고 했으면 바뀌었을까?
사업관련 이야기는 기밀이라 집에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다.
관련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국방예산을 허투루 쓰면 안되니 정말 신중해서 골라야 한다는 말 정도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제대하고 나간 선배들의 부탁이 가장 애매하다며 쩔쩔매시던 아빠.
몇 번 만남을 거절하다가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한다면 국밥집에서. 계산도 아빠가 하셨다는 것.
김부터 시작해서 꿀, 술, 과일 등등 명절 등에 집으로 배달오는 모든 물건은 모조리 반송.
술자리는 애초에 간이 안 좋으시기에… 다 개우시니 잘 못하셨고.
최종 결정 때는 아직 최종결정을 안했는데, 기사가 오보로 먼저나가서 해명하느라 주말반납.
그러고 보면 항상 12시 넘어서 퇴근은 늘 기본이셨다.
제발~ 밑에 사람 힘들다고 워커홀릭 그만 하시라고해도 숙소로 퇴근했다가 다시 사무실…
깨끗하려고 정말정말 노력하고 조심했는데.
정말 힘들게 힘들게 스트레스 받으시면서 결정한거 였는데.
그때는 잘 했다고 기사나고 사진찍고 박수쳐주고 그랬으면서…
이제 와서 이렇게 모조리 백지화에 가깝게 엎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허망하고. 화가나고. 슬프다.
조금 있으면 아빠 근속 30주년이었다.
화려하게 축하 받으며 앞으로 남은 근속년수 동안 파이팅을 외쳐야 할 날에.
앞서서 옷을 벗고 나간 사람들처럼
불명예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가고
내가 쌓아온 30년이 무너지게 될 위기라니.
지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돈보다는 명예가 소중하다 가르쳐 주신 말과 함께
자꾸만.
조사 중 한강에서 뛰어내려 돌아가신 선배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오시며
그분이 이해가 갈 것 같다고.
혹시나 그 조사의 칼날이 나를 향할까 아무도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던 그 말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난다. 걱정이 된다.
48시간이 지나고 구속영장이 나오게 되면, 6개월 이상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변호사 선임비용 4000만원. 장기로 늘어날수록 금액은 늘어난단다.
우습게도. 영장이 거의 확실시되자
변호사자리를 탐내고 너도나도 위로를 빙자한 안부전화가 온다.
어쩌면.
합수부조사로 제일 어깨춤을 추고있는건 변호사집단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죄인 사람을 데려다 재판을 시키고 무죄를 증명받으라.
증명서 비용은 4000만원... ... ... 왠지 할 말을 잃엇다.
30년넘게 국가를 위한 댓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
이제. 어쩌지...?
아빠의 부재로, 당장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기도하고
그 와중에 선임비용을 꾸역꾸역 만들어야하는 사실도 당황스럽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 집안의 기둥이 되어버린 듯한 내 상황에 하루종일 머리가 무겁다.
당장. 아빠 건강이 안 좋으신게 있어서, 거기서 더 악화될까 그것도 겁이 난다.
[펀치]를 너무 열심히 본 탓인지.
위에서 큰 틀을 그려두고 짜맞추어 가는 것 같아서.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 씌우는 것도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솔직히 무섭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까지 갔을 때. 아빠의 명예가 되찾아지지 않을까 봐.
그것이 가장. 걱정이 된다.
돈은 잃어도 좋다. 앞으로 엄마 아빠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내가 어떻게든 벌면 되니까.
명예는 건들이지 않고 한 톨의 오차 없이 깨끗하게 혐의가 벗겨졌으면 좋겠다.
내가 한 걱정이 다 사서, 미리 걱정한 것 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다들 손가락질하는 걸 잘 알지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모든 방사청 근무군인들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오해하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말해도 ‘혐의가 있으니 구속이 되겠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라 생각하겠지만…
본래… 혐의가 확실할 때 , 증거훼손의 위험이 있을 때,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구속을…
이래적으로 강력하게 불구속 대신 구속으로 … 집행중이어서…
구속에서 풀려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건지…
구속시 어디서 묵으시는 건지… 만날수는 있는건지…
몇 일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머리가 너무 아파온다.
아빠가 구속되셨다.
몇 일전 아침, 압수수색 영장을 가진 수사관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도, 그저… 뉴스나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 이라고만 여겼었지.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나는.
드라마보다는 정중하고 조용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말 우리도 상상하지 못한 구석구석을 뒤지는구나 싶어 멀찍이 그들을 구경했다.
냉동실이랑 김치냉장고까지 열어보고. 그 비닐봉지도 하나하나 열어보더라고.
그 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여겼고.
이렇게 심각해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사안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일전 있었던 사고도 그렇고.
연이어 방산비리가 터지면서 군인. 방위사업 이 두 키워드는
거의 온 국민에게 욕을 들어먹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제법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목도하고 자란 것 같다.
연평해전은 내 친구의 아버지가 함장이셨고
천안함은 내 동생의 아버지가 함장이셨다.
지금 연일 터지는 방산비리 또한 내 친구언니동생의 아버지.
그리고 이젠. 우리아빠…
하루 종일 속이 돌로 누르는 것처럼 답답하다.
어디가서 자랑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말할 일도 아니기에, 익명의 힘을 빌어 적어본다.
아빠는 정말. 일을 맡고 나서부터… 조심하셨다.
사실 방사청으로 옮긴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군인으로써 한 부대를 통솔하는 위치에서 있는 것이 아닌. 어쩌면 군인과는 조금 다른 길.
중간중간 다시 진짜 군인의 길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많이 망설이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지금의 책상 앞 업무들보다 훨씬 더 멋져 보이는데 남자로써 욕심이 없으셨을까.
아마도 방사청에 계속 계셨던 이유 중 많은 지분은 나에게도 있을 것이다.
군인에게 2년마다 이동은 숙명.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는 아빠만 독신자숙소로 이사를 다니셨다.
기러기생활 10여년. 방사청에서는 사업을 장기적으로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서울에 2년보다는 더 길게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아빠는 평일에도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크게 치셨던 것 아닐지.
마음이 아프다. 그 때 그냥 그곳에서 나오라고 했으면 바뀌었을까?
사업관련 이야기는 기밀이라 집에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다.
관련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국방예산을 허투루 쓰면 안되니 정말 신중해서 골라야 한다는 말 정도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제대하고 나간 선배들의 부탁이 가장 애매하다며 쩔쩔매시던 아빠.
몇 번 만남을 거절하다가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한다면 국밥집에서. 계산도 아빠가 하셨다는 것.
김부터 시작해서 꿀, 술, 과일 등등 명절 등에 집으로 배달오는 모든 물건은 모조리 반송.
술자리는 애초에 간이 안 좋으시기에… 다 개우시니 잘 못하셨고.
최종 결정 때는 아직 최종결정을 안했는데, 기사가 오보로 먼저나가서 해명하느라 주말반납.
그러고 보면 항상 12시 넘어서 퇴근은 늘 기본이셨다.
제발~ 밑에 사람 힘들다고 워커홀릭 그만 하시라고해도 숙소로 퇴근했다가 다시 사무실…
깨끗하려고 정말정말 노력하고 조심했는데.
정말 힘들게 힘들게 스트레스 받으시면서 결정한거 였는데.
그때는 잘 했다고 기사나고 사진찍고 박수쳐주고 그랬으면서…
이제 와서 이렇게 모조리 백지화에 가깝게 엎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허망하고. 화가나고. 슬프다.
조금 있으면 아빠 근속 30주년이었다.
화려하게 축하 받으며 앞으로 남은 근속년수 동안 파이팅을 외쳐야 할 날에.
앞서서 옷을 벗고 나간 사람들처럼
불명예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가고
내가 쌓아온 30년이 무너지게 될 위기라니.
지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돈보다는 명예가 소중하다 가르쳐 주신 말과 함께
자꾸만.
조사 중 한강에서 뛰어내려 돌아가신 선배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오시며
그분이 이해가 갈 것 같다고.
혹시나 그 조사의 칼날이 나를 향할까 아무도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던 그 말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난다. 걱정이 된다.
48시간이 지나고 구속영장이 나오게 되면, 6개월 이상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변호사 선임비용 4000만원. 장기로 늘어날수록 금액은 늘어난단다.
우습게도. 영장이 거의 확실시되자
변호사자리를 탐내고 너도나도 위로를 빙자한 안부전화가 온다.
어쩌면.
합수부조사로 제일 어깨춤을 추고있는건 변호사집단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죄인 사람을 데려다 재판을 시키고 무죄를 증명받으라.
증명서 비용은 4000만원... ... ... 왠지 할 말을 잃엇다.
30년넘게 국가를 위한 댓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
이제. 어쩌지...?
아빠의 부재로, 당장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기도하고
그 와중에 선임비용을 꾸역꾸역 만들어야하는 사실도 당황스럽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 집안의 기둥이 되어버린 듯한 내 상황에 하루종일 머리가 무겁다.
당장. 아빠 건강이 안 좋으신게 있어서, 거기서 더 악화될까 그것도 겁이 난다.
[펀치]를 너무 열심히 본 탓인지.
위에서 큰 틀을 그려두고 짜맞추어 가는 것 같아서.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 씌우는 것도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솔직히 무섭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까지 갔을 때. 아빠의 명예가 되찾아지지 않을까 봐.
그것이 가장. 걱정이 된다.
돈은 잃어도 좋다. 앞으로 엄마 아빠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내가 어떻게든 벌면 되니까.
명예는 건들이지 않고 한 톨의 오차 없이 깨끗하게 혐의가 벗겨졌으면 좋겠다.
내가 한 걱정이 다 사서, 미리 걱정한 것 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다들 손가락질하는 걸 잘 알지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모든 방사청 근무군인들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오해하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말해도 ‘혐의가 있으니 구속이 되겠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라 생각하겠지만…
본래… 혐의가 확실할 때 , 증거훼손의 위험이 있을 때,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구속을…
이래적으로 강력하게 불구속 대신 구속으로 … 집행중이어서…
구속에서 풀려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건지…
구속시 어디서 묵으시는 건지… 만날수는 있는건지…
몇 일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머리가 너무 아파온다.
부디 훗날에 이 글을 보았을 때 별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