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집이 어려웠습니다. 자연스례 소위말하는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죠 당시엔 가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라고 생각을 했었지요. 사고도 많이 저지르고 소년원이란 곳도 가보게 되었습니다. 다녀오고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또다시 사고를 쳤죠 그렇게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어선 밤엔 유흥업소 웨이터를 하면서 일을했고 낮엔 학교를 다녔구요. 집에 돈을 보태주려는 마음보단 용돈이 없었기에 그렇게 했었습니다. 2학년때 갑자기 과거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시골땅이 개발한다고 아버지가 땅을 좋은 가격에 팔게되었지요 그렇게 한순간 큰돈을 가지게된 우리는 15평 남짓한 빌라에서(4인가족) 36평이라는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용돈도 두둑이 챙겨주시고 저도 일을 안하고 용돈만 받아 가도 될정도 였지요. 이후로 아버지 사업이 잘되셔서 승승장구 하고있었습니다. 고3때 면허증을 바로 취득하고 당시 bmw z4 라는 차량을 새차로 아버지가 선물도 해주셧구요. 그렇게 살고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지만 학교를 거의 안갔어요 1학기중 2일 학교를 갔지요.. 학교가 재미없었거든요 그렇게 1학기를 어영부영 보내고 군대를 갔습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수색대대 근무를 했습니다. 군 일병1호봉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안좋아지셧고 일말때 이혼을 하셧구요 당시 달에 한번씩 휴가를 나갔습니다. 이혼을 어떻게든 말려보려구요 군대에선 할수있는게 없었지요. 군대에서 포상휴가가 걸린게 있다면 죽어라 했지요. 태권도 2단 따면 포상 특급전사 포상 등 을 따고서 휴가때마다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상병때 이혼을 하셨고 힘드셧는지 전역 30일을 남겨두고 아버지가 자살로 돌아가시고 힘든 군생활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아들들이 아는 군대에서 만큼은 철든다 저도 그랬지요 나가면 꼭 어머니와 아버지대리고 여행도 다니고 좋은것도 사주고 효도하자 라는생각에 기대에 군생활을 했죠. 어릴때부터 고생만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 전역을 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생전 부채가 있으셔서 그것을 정리하는게 모두 제몫이 였지요 법적지식이 하나도없는 당시 22살의 저는 군생활간 모아두었던 120만원의 돈으로 법무사를 찾아가 일처리를 맡기고 모든게 잘처리 될줄로만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증건이 남아있어서 그것은 제가 상속을 받을수 바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군제대와 동시에 6천만원이라는 거금의 빛이 생겨버렸지요 집,차,재산 모두 아버지명의였고 모두 포기를 해버려서 남는건 빛이였습니다. 자궁절계수술로 몸이 아프신 어머님을 모시고 동생은 학업에 열중히 하라고하고 공장 야간을 다녔지요 하지만 최저임금의 월 급여로는 당시 상황을 타계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웨이터를 하게되었고 그또한 돈이 부족했고 빛독촉과 밀린 폰요금부터 월세 등등 정말 미칠지경 이였지요. 그래서 해선안될 도둑질을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나중엔 발각되어서 구속이 되었고 1심재판에서 2년을 선고받고 2심 재판에서 1년6월을 선고받아 징역살이를 하게되었습니다. 출소한지 어연 1년이 다되어갑니다. 지금은 뭘하고 있을까요? 교도소에서 배운 범죄지식들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까 생각도 했지만 신체건강한 몸으로 뭐든해보자해서 지금현재는 교도소에서 취득한 용기사 자격증으로 용접공으로 일합니다. 수입짭짭하고 빛도 이젠 3천이 남았구요 이것만 다갚으면 이제부터 정말 20대를 재밌게 보낼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매일매일 열심히 삽니다.
세상에 안힘든 사람 없습니다 본인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도 하지마시고 힘든거 압니다 이세상 살아가기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조금만 깊게 생각을 해보면 아주 근접한 답이 나옵니다. 힘내세요 여러분 이런 저도 이젠 잘살아 가고 있습니다. 굿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집이 어려웠습니다.
자연스례 소위말하는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죠 당시엔 가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라고
생각을 했었지요. 사고도 많이 저지르고 소년원이란 곳도 가보게 되었습니다.
다녀오고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또다시 사고를 쳤죠
그렇게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어선 밤엔 유흥업소 웨이터를 하면서
일을했고 낮엔 학교를 다녔구요. 집에 돈을 보태주려는 마음보단
용돈이 없었기에 그렇게 했었습니다.
2학년때 갑자기 과거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시골땅이 개발한다고
아버지가 땅을 좋은 가격에 팔게되었지요
그렇게 한순간 큰돈을 가지게된 우리는 15평 남짓한 빌라에서(4인가족)
36평이라는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용돈도 두둑이 챙겨주시고 저도 일을 안하고 용돈만 받아 가도 될정도 였지요.
이후로 아버지 사업이 잘되셔서 승승장구 하고있었습니다.
고3때 면허증을 바로 취득하고 당시 bmw z4 라는 차량을 새차로 아버지가
선물도 해주셧구요. 그렇게 살고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지만 학교를 거의 안갔어요
1학기중 2일 학교를 갔지요.. 학교가 재미없었거든요
그렇게 1학기를 어영부영 보내고 군대를 갔습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수색대대 근무를 했습니다.
군 일병1호봉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안좋아지셧고
일말때 이혼을 하셧구요 당시 달에 한번씩 휴가를 나갔습니다. 이혼을 어떻게든 말려보려구요
군대에선 할수있는게 없었지요. 군대에서 포상휴가가 걸린게 있다면 죽어라 했지요.
태권도 2단 따면 포상 특급전사 포상 등 을 따고서 휴가때마다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상병때 이혼을 하셨고 힘드셧는지 전역 30일을 남겨두고 아버지가 자살로 돌아가시고
힘든 군생활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아들들이 아는 군대에서 만큼은 철든다
저도 그랬지요 나가면 꼭 어머니와 아버지대리고 여행도 다니고 좋은것도 사주고
효도하자 라는생각에 기대에 군생활을 했죠.
어릴때부터 고생만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
전역을 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생전 부채가 있으셔서 그것을 정리하는게 모두
제몫이 였지요 법적지식이 하나도없는 당시 22살의 저는 군생활간 모아두었던
120만원의 돈으로 법무사를 찾아가 일처리를 맡기고 모든게 잘처리 될줄로만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증건이 남아있어서 그것은 제가 상속을 받을수 바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군제대와 동시에 6천만원이라는 거금의 빛이 생겨버렸지요
집,차,재산 모두 아버지명의였고 모두 포기를 해버려서 남는건 빛이였습니다.
자궁절계수술로 몸이 아프신 어머님을 모시고 동생은 학업에 열중히 하라고하고
공장 야간을 다녔지요 하지만 최저임금의 월 급여로는 당시 상황을 타계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웨이터를 하게되었고 그또한 돈이 부족했고 빛독촉과 밀린 폰요금부터
월세 등등 정말 미칠지경 이였지요. 그래서 해선안될 도둑질을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나중엔 발각되어서 구속이 되었고 1심재판에서 2년을 선고받고 2심 재판에서 1년6월을
선고받아 징역살이를 하게되었습니다.
출소한지 어연 1년이 다되어갑니다.
지금은 뭘하고 있을까요? 교도소에서 배운 범죄지식들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까
생각도 했지만 신체건강한 몸으로 뭐든해보자해서 지금현재는
교도소에서 취득한 용기사 자격증으로 용접공으로 일합니다.
수입짭짭하고 빛도 이젠 3천이 남았구요 이것만 다갚으면 이제부터 정말 20대를
재밌게 보낼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매일매일 열심히 삽니다.
세상에 안힘든 사람 없습니다 본인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도 하지마시고
힘든거 압니다 이세상 살아가기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조금만 깊게 생각을 해보면 아주 근접한 답이 나옵니다.
힘내세요 여러분 이런 저도 이젠 잘살아 가고 있습니다.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