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기에 한국 기독교는 성도의 숫자적 증가와 재정적 증가를 최우선에 두었다. 소위 성공(?)한 교회(또는 목회자)의 척도는 물질적인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 한국 교회는 거대한 건물을 건축하거나 사업구조적인 지교회를 늘리는 것에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의 대부분 교회는 “대형교회”이거나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작은 교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대해 기독교 내에서도 제법 오래전부터 비판적인 의식이 있었긴 했지만, 한국의 목회 현장에서 특별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교회에 변화를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는 화두는 대안이 되는 교회, 새로운 형태의 교회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모델이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만들어낸 특별한 이론이 아니라, 성서가 본래부터 제시하고 있던 공동체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성서적인 공동체라고 명칭을 붙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급격한 감소의 추세를 걷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이러한 화두는 매우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25일, 기자는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교회 중에 한 곳을 방문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동네작은교회’다. 기존의 교회들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동네작은교회는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교회와 목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신학생들이라면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교회 중에 하나였다.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20여 명이 되면 교회를 분할하고, 주일에만 병원이나 카페를 빌려 예배를 드림으로써 교회가 운영되기 위해 많은 자본이 소비되던 구조들을 개선하며, 목회자는 교회에 의존되고 성도는 목회자에 의존되는 모습을 넘어서기 위해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정체성을 실현하는 교회.
▲동네작은교회 중 남은이 공동체의 아지트
일각에선 염려나 의혹의 눈초리가 많았지만, 기자에게 이 교회는 성서를 통해 전달되는 예수 정신과 공동체성을 형식적인 구호나 선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현시키려고 애쓰는 교회라고 생각됐었다.
이미 기독교 방송과 기독교계 신문에 수차례 소개된바 있어, 뻔한(?) 소개는 거두절미하고, 김종일 목사를 만나 한국 교회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이미 언론에 수차례 나왔기에, 진부한 소개 질문은 생략 하겠습니다.
-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럼 인터뷰 하고 싶은 걸 편하게 질문하세요.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목회와 선교란 무엇인가요?
- 갑자기 선교가 물어보시니까 쫌 이상한데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웃음) [기자 대답 : 저희가 선교 단체이니까요(웃음)]. 우선 목회에 앞서 교회가 무엇인지 간략히 정의를 내려야 할 텐데요. 저는 교회를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훈련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것은 공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섬기기 위해선 우선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알아야 하죠. 이것을 위해 믿음의 교재가 이뤄지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순히 개별적이고 독자적으로 되지 않죠.
▲일부에선 동네작은교회를 “특수목회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기존 교회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와 저희 교회 성도들은 전혀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성서에 나타난 공동체, 예수님이 보여주신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죠. 저희를 보고 특수목회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현재의 교회들이 상당히 왜곡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돼온 기독교가 이제는 본래의 성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이후로 기독교가 지금까지 2000년을 흘러오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개혁이나 변화가 있으면서 점진적으로 달라진 것들이 분명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볼 때, 기독교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제국적인 개념의 왕국을 추구해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생각했던 공동체의 모습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제국적인 개념의 왕국은 A.D. 300년대에 기독교가 로마화 되면서 생긴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거대화, 기계적인 조직화, 관료화 등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긴 세월을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사실 이런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큰 교회가 큰 일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성도들이 많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물어봐야 합니다. 거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세상적으로는 분명 좋아 보이는 가치관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그런 기준을 어느 정도 갖추는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말 그 세상적인 기준을 갖춘다고 좋아질까요? 아닙니다. 그 결과 세상과 교회는 분리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있을 때와 세상에 있을 때에 온도와 열기가 다른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의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놓쳤기 때문이죠.
한국 교회는 외형상으로 굉장히 화려해졌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스펙도 장황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NICE한 교회를 만들려고 해왔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NICE해졌는데, 오히려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인간적인 NICE함을 갖춰놓고 보니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겐 맛이 없어진 것입니다.
(기자 주 : 김 목사가 사용하는 NICE는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교양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이해되거나 혹은 편안함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성공 매뉴얼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들을 망라하는 표현이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 저는 그것이 작은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인 왕국을 추구하는 기독교는 교회가 자꾸 힘을 갖추고, 강해지려는 사유 방식입니다. 하지만 성서의 메시지는 교회가 힘이 없어질 때, 그래서 그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할 때, 성령이 역사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교회가 연약해지고 힘이 없어질 때,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영향력이 됩니다. 반면 연약해지는 걸 두려워해서 힘을 키우려고 할수록 영향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한국 교회에 발생하는 상황들 또는 양태들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첫 번 째로 교회의 사유화 문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세습화”문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일단 교회 사유화와 세습화의 문제는 목회자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top-down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성도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성도들의 의식이 달라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대형화된 교회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 시스템 밖에 있는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이뤄져나가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공동체가 신앙으로 생존하며, 필요할 땐 연합하는 모습을 자꾸 확산시켜나가는 것이죠. 유럽이나 미국의 흐름과 연계해서 볼 때, 한국 교회도 결국은 아주 큰 교회와 아주 작은 교회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은 그 과도기라고 볼 수 있죠.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들이 확산되는 가운데서, 작지만 개성과 특색 있는 가게들이 살아남는 모습처럼, 교회도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작은 교회들은 단순히 큰 교회를 모방하거나, 큰 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작은 교회만의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요즘 많이 화두가 되고 있는 “목사의 이중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실 이중직이라는 표현 자체도 좀 의아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좀 살펴보면, 선지자나 사도는 순회 설교자였고 특정 교회를 담임하며 치리했던 것은 장로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교회에 장로님이라고 불리시는 분들도 전부 직업을 그만두셔야 합니다. 그러니 문자적인 의미로 이중직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겠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로마국교로 승인되면서부터 기독교의 사제는 전문직이 됐습니다. 즉 현재의 목사 제도는 본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자원봉사처럼 자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목사인 것이고, 설교를 하지 않을 때는 성도로 살아야 하는 것이죠.
물론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구조의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일 텐데요. 하지만 그러한 구조 때문에 문제가 야기됩니다. 목사는 자꾸 퍼포먼스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는 관객, 또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죠. 교회가 전문화, 기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를 통해 전해지는 교회의 구조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지 결코 서비스업 같은 기관을 구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세번째 질문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지적되는 문제 중에 하나가 성도 숫자는 감소했는데, 목회자 숫자는 증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그것을 파도에 비유해서 이해했습니다. 파도가 저 멀리서 오고 있고, 그것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 파도가 치는 걸 실감하는 것은 한참 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실 10년 전쯤부터 교회 현장은 배출되는 목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피해가 지금에서야 체감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학교들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밥그릇이 달려있는 문제이니, 쉽진 않겠지요. 하지만 분명 큰 수술이 필요하긴 할 겁니다. 아마 교수님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예전엔, 신학 교육이 수도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수도원의 사제들은 일을 했습니다. 일하면서 가르치고,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물론 사회 환경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어찌됐든 차별적인 전문화가 이뤄져서 가르치는 것만으로 생계가 보장되는 구조가 과연 예수의 정신인지는 진솔하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현재의 신학교육은 전문성은 갖췄지만, 공동체성을 많이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 긴 시간, 현재의 한국 교회에 던져진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목사님의 의견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공동체성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기독교 공동체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경험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공동체인 것이죠. 이런 점에서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고 끝나버리는 것으로는 공동체성이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주 중에도 각 지체들이 함께 모여서 그 지체에 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공동체가 적합한 것이지요.
“선교적 교회론”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시오 데이(Missio Dei)”와도 연결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선교적으론 이런 패러다임이 한국 교회에 요청된다고 생각됩니다.
동네작은교회, 김종일 목사를 만나다.
“한국 교회는 흐름 자체의 전환이 필요해”
김종일(동네작은교회) 목사를 통해 들어본 ‘교회’와 ‘목회’ 이야기.
경제 성장기에 한국 기독교는 성도의 숫자적 증가와 재정적 증가를 최우선에 두었다. 소위 성공(?)한 교회(또는 목회자)의 척도는 물질적인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 한국 교회는 거대한 건물을 건축하거나 사업구조적인 지교회를 늘리는 것에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의 대부분 교회는 “대형교회”이거나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작은 교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대해 기독교 내에서도 제법 오래전부터 비판적인 의식이 있었긴 했지만, 한국의 목회 현장에서 특별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교회에 변화를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는 화두는 대안이 되는 교회, 새로운 형태의 교회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모델이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만들어낸 특별한 이론이 아니라, 성서가 본래부터 제시하고 있던 공동체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성서적인 공동체라고 명칭을 붙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급격한 감소의 추세를 걷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이러한 화두는 매우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25일, 기자는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교회 중에 한 곳을 방문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동네작은교회’다. 기존의 교회들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동네작은교회는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교회와 목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신학생들이라면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교회 중에 하나였다.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20여 명이 되면 교회를 분할하고, 주일에만 병원이나 카페를 빌려 예배를 드림으로써 교회가 운영되기 위해 많은 자본이 소비되던 구조들을 개선하며, 목회자는 교회에 의존되고 성도는 목회자에 의존되는 모습을 넘어서기 위해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정체성을 실현하는 교회.
▲동네작은교회 중 남은이 공동체의 아지트
일각에선 염려나 의혹의 눈초리가 많았지만, 기자에게 이 교회는 성서를 통해 전달되는 예수 정신과 공동체성을 형식적인 구호나 선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현시키려고 애쓰는 교회라고 생각됐었다.
이미 기독교 방송과 기독교계 신문에 수차례 소개된바 있어, 뻔한(?) 소개는 거두절미하고, 김종일 목사를 만나 한국 교회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이미 언론에 수차례 나왔기에, 진부한 소개 질문은 생략 하겠습니다.
-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럼 인터뷰 하고 싶은 걸 편하게 질문하세요.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목회와 선교란 무엇인가요?
- 갑자기 선교가 물어보시니까 쫌 이상한데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웃음) [기자 대답 : 저희가 선교 단체이니까요(웃음)]. 우선 목회에 앞서 교회가 무엇인지 간략히 정의를 내려야 할 텐데요. 저는 교회를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훈련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것은 공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섬기기 위해선 우선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알아야 하죠. 이것을 위해 믿음의 교재가 이뤄지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순히 개별적이고 독자적으로 되지 않죠.
▲일부에선 동네작은교회를 “특수목회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기존 교회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와 저희 교회 성도들은 전혀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성서에 나타난 공동체, 예수님이 보여주신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죠. 저희를 보고 특수목회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현재의 교회들이 상당히 왜곡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돼온 기독교가 이제는 본래의 성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이후로 기독교가 지금까지 2000년을 흘러오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개혁이나 변화가 있으면서 점진적으로 달라진 것들이 분명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볼 때, 기독교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제국적인 개념의 왕국을 추구해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생각했던 공동체의 모습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제국적인 개념의 왕국은 A.D. 300년대에 기독교가 로마화 되면서 생긴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거대화, 기계적인 조직화, 관료화 등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긴 세월을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사실 이런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큰 교회가 큰 일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성도들이 많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물어봐야 합니다. 거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세상적으로는 분명 좋아 보이는 가치관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그런 기준을 어느 정도 갖추는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말 그 세상적인 기준을 갖춘다고 좋아질까요? 아닙니다. 그 결과 세상과 교회는 분리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있을 때와 세상에 있을 때에 온도와 열기가 다른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의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놓쳤기 때문이죠.
한국 교회는 외형상으로 굉장히 화려해졌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스펙도 장황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NICE한 교회를 만들려고 해왔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NICE해졌는데, 오히려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인간적인 NICE함을 갖춰놓고 보니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겐 맛이 없어진 것입니다.
(기자 주 : 김 목사가 사용하는 NICE는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교양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이해되거나 혹은 편안함과 성공을 보장해주는 성공 매뉴얼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들을 망라하는 표현이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 저는 그것이 작은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인 왕국을 추구하는 기독교는 교회가 자꾸 힘을 갖추고, 강해지려는 사유 방식입니다. 하지만 성서의 메시지는 교회가 힘이 없어질 때, 그래서 그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할 때, 성령이 역사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교회가 연약해지고 힘이 없어질 때,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영향력이 됩니다. 반면 연약해지는 걸 두려워해서 힘을 키우려고 할수록 영향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한국 교회에 발생하는 상황들 또는 양태들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첫 번 째로 교회의 사유화 문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세습화”문제입니다. 이것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일단 교회 사유화와 세습화의 문제는 목회자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top-down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성도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성도들의 의식이 달라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대형화된 교회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 시스템 밖에 있는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이뤄져나가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공동체가 신앙으로 생존하며, 필요할 땐 연합하는 모습을 자꾸 확산시켜나가는 것이죠. 유럽이나 미국의 흐름과 연계해서 볼 때, 한국 교회도 결국은 아주 큰 교회와 아주 작은 교회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은 그 과도기라고 볼 수 있죠.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들이 확산되는 가운데서, 작지만 개성과 특색 있는 가게들이 살아남는 모습처럼, 교회도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작은 교회들은 단순히 큰 교회를 모방하거나, 큰 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작은 교회만의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 두 번째 질문입니다. 요즘 많이 화두가 되고 있는 “목사의 이중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실 이중직이라는 표현 자체도 좀 의아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좀 살펴보면, 선지자나 사도는 순회 설교자였고 특정 교회를 담임하며 치리했던 것은 장로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교회에 장로님이라고 불리시는 분들도 전부 직업을 그만두셔야 합니다. 그러니 문자적인 의미로 이중직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겠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로마국교로 승인되면서부터 기독교의 사제는 전문직이 됐습니다. 즉 현재의 목사 제도는 본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자원봉사처럼 자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목사인 것이고, 설교를 하지 않을 때는 성도로 살아야 하는 것이죠.
물론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구조의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일 텐데요. 하지만 그러한 구조 때문에 문제가 야기됩니다. 목사는 자꾸 퍼포먼스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는 관객, 또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죠. 교회가 전문화, 기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를 통해 전해지는 교회의 구조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지 결코 서비스업 같은 기관을 구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 세번째 질문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지적되는 문제 중에 하나가 성도 숫자는 감소했는데, 목회자 숫자는 증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그것을 파도에 비유해서 이해했습니다. 파도가 저 멀리서 오고 있고, 그것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 파도가 치는 걸 실감하는 것은 한참 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실 10년 전쯤부터 교회 현장은 배출되는 목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피해가 지금에서야 체감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학교들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밥그릇이 달려있는 문제이니, 쉽진 않겠지요. 하지만 분명 큰 수술이 필요하긴 할 겁니다. 아마 교수님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예전엔, 신학 교육이 수도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수도원의 사제들은 일을 했습니다. 일하면서 가르치고,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물론 사회 환경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어찌됐든 차별적인 전문화가 이뤄져서 가르치는 것만으로 생계가 보장되는 구조가 과연 예수의 정신인지는 진솔하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현재의 신학교육은 전문성은 갖췄지만, 공동체성을 많이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 긴 시간, 현재의 한국 교회에 던져진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목사님의 의견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공동체성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기독교 공동체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경험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공동체인 것이죠. 이런 점에서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고 끝나버리는 것으로는 공동체성이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주 중에도 각 지체들이 함께 모여서 그 지체에 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공동체가 적합한 것이지요.
“선교적 교회론”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시오 데이(Missio Dei)”와도 연결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선교적으론 이런 패러다임이 한국 교회에 요청된다고 생각됩니다.
강민석 기자(kms64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