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칩이 666이라구요??

ㅇㅇ2015.05.26
조회254
 

베리칩이 육백육십육 이라고라?

 

제가 올린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라는 글을 통해서 세상의 일을 성경의 말씀과 혼동하는 순간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은 세상의 일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세상의 일과 비교를 해보고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그 말을 믿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베리칩 입니다.

 

여러분들 께서도 그 이마에나 오른손에 베리칩을 삽입하면 666이라는 짐승의 수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베리칩의 기능에 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위치추적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자결재의 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환자의 바이오체크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베리칩에 의해서 정신이 조종 당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등등

 

이러한 기능이 베리칩이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들은 이미 666이라는 짐승의 수를 받았습니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빼고 말이죠…

지금도 아주 열심히 사용하고 있어서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데 어쩔겁니까?

그것이 무엇인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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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사람들은 한 개씩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이라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 라고요?

 

스마트폰의 기능을 한번 볼까요?

 

위치추적이 됩니다.

결재수단이 됩니다.

바이오체크 기능이 됩니다.

스마트폰에 온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기능은 비슷한데 몸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666이 아니라고요?

들고 다니는 것은 되는데 몸속에는 안된다고요?

그것은 분명히 억지일 뿐입니다.

 

우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한 번 보겠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16 ~ 18)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손으로 행동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9:20 ~ 21)

 

사람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손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이름의 수라

 

열처녀의 비유에서는 기름이 부족한 처녀에게 기름을 사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제가 기름을 믿음이라고 설명드렸고 그 믿음을 사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돈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지금 그 믿음을 매매하는 자들의 숫자가 짐승의 수라고 하신 겁니다.

결국은 천국을 돈 주고 사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깨닫지 못해서 멸망하는 짐승에 비유하신 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12)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20)

 

겉모습은 사람인데 하는 짓거리는 짐승 같은 인간들에게 멸망하는 짐승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2,000이나 되는 귀신을 돼지의 몸속에 보내서 마지막 심판때에 깨닫지 못해서 멸망하는 짐승의 모습을 퍼포먼스 하셨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것을 정당화 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저 또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마찬가지의 사람입니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다른 관점으로 관전을 하기 때문에 정작 경기를 하는 선수가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의 눈에는 육적인 율법을 지킨다고 하루를 허비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기름이 부족해서 기름을 사러가는 처녀 처럼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 동안의 글을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드리는 육적인 율법과 영적인 율법에 대해서는 제 글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그 뜻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는 여러분의 생각이고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저는 알려주신 말씀에 대해서 알려드린 것이고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원망이나 불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제가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라는 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들과

깨닫지 못해 귀신들려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의 영적인 전쟁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세상의 것에서 성경의 말씀을 비교하고 그것을 설교하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돼지가 바다에 빠진날” 이라는 글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해 놓으신 프로그램은 정말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 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원하면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말씀이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니까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이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서 진리를 알게 되면 성경에 나온 말씀들이 환상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환상을 쫓고 이적을 쫓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쓰여 있는 환상에 대한 말씀도 결국은 환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눈에 환상이고 이적처럼 보일 뿐인 것입니다.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하나님의 말씀에 섞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 그 죄를 중히 물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믿다 보면 결국에는 진리가 전파 되더라도 진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일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배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성경안에 있는 것이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양의 숫자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루 빨리 진리안으로 들어가셔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http://cafe.daum.net/philipdea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