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은근 설렜던 순간들

짱짱어2015.06.08
조회681
솔로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급 외로워지기에 올려보는 내 인생 중 나름 설렜던 순간들 부끄슬픔

1)15살 때인가 처음 미국 기숙사학교로 유학갔을 때 태풍이 왔었음. 그 때 한국인들 다 모여서 노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빗물이 휘슝 들이닥치던 순간 내 방 창문도 설마 열려있나하는 생각이 듬. 그 상태로 멘붕 온 내가 막 헐헐 어쩌지ㅠㅠ 이러고 있는데 같이있던 오빠들 중 한 명이 뜬금없이 "00아 괜찮아! 오빠가 지켜줄게!"라면서 당당히 소리치는거임. ....뭐랄까 상당히 띨구같지만 괜히 좀 설렜던 멘트
2)위에 적어놓은 썰 연장선임. 그날로부터 좀 시간이 지나고 또 어쩌다 사람들 같이 모여서 웅성웅성 놀던 도중 태풍 온 날 얘기가 나옴. 마침 그 지켜줄게 드립이 생각난 내가 빵 터지면서 "오빠 그 때 막 저한테 지켜준다 그랬잖아욬ㅋㅋㅋㅋ" 하면서 놀리니까 본인도 생각 났는지 같이 웃다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듯 "근데 내가 진짜 너 하나쯤은 지켜줄 수 있어"하는 순간 또 정말 별거 아닌데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괜히 심쿵
3)이건 더 옛날임. 14살 때인가 태국에 있는 국제학교로 전학을 갔었음. 첫 주인지라 지리 수업 때 필요한 준비물을 전혀 못 가져간 상태에서 멍 때리는 중에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여자애가 날 부르더니 자기 자(준비물 중 하나)를 빌려주는거임. 그래서 고맙다 한 뒤 잘 쓰고 돌려준 다음 수업 듣는데 잠시 후 다시 자가 필요한 순간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애가 되게 조심스럽게 날 부르면서 "저기..자 좀..."이러는 거임=내가 준비물이 없는 걸 알고 옆에 앉아있던 여자애한테 나한테 자기 자 빌려주라 말한거.난 당연히 여자애꺼인 건 줄 알고 여자애한테 돌려줬었는데 걔가 까먹고 남자애한테 다시 안 전해준거지. 나중에 이 얘기 알고 감동먹음...착한 자식...
4)10학년 때 (한국으로 치면 고1) 썸타던 남자애가 있었음. 걔랑 페메를 하던 도중 걔가 자꾸 금요일 학교 끝나고 타운에 놀러가자는 거임. 그런데 내가 워낙에 심각한 귀차니즘 환자인데다가 이 동네에선 진짜 할 만한게 없어서 밍숭맹숭한 반응 보이다가 "타운 가서 뭐하게?"하고 물어봄 그랬더니 걔가 겁나 돌직구로 보낸  "그냥 너랑 타운이 가고 싶어" 답장에 당황 + 심쿵. 그래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내가 얼마 전 호박 깎기 대회에서 우승한 상품으로 받을 영화 티켓이 있으니 그거 받으면 가자라고 말함. 근데 걔가 중간에 내가 영화 티켓만 주고 난 안간다는 식으로 알아들었나봄 그렇게 또다시 온 돌직구 답장 "아니 내 말은 난 너랑 영화가 보고 싶다고" ...2차 심쿵. 이런 의외로 박력있는 놈
5)학교에 되게 잘생긴 브라질 애가 있었는데 워낙에 모든 사람들, 특히 여자한테 친절한 애라 걔가 뭔 행동을 해도 오해는 없었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완전 파김치가 된 상태로 비몽사몽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걔랑 딱 마주친거임. 대충 인사하고 나 들어가야되니까 비켜...이랬더니 갑자기 얘가 다짜고짜 두 손으로 내 두볼을 잡고는 빤히 아이컨택을 하는거임. 그때 내가 또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던 때라 시야 안에 딱 걔 얼굴 밖에 안 보였음. 암튼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그 상태로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피곤해? 너 되게 피곤해 보인다" 막 이러는데... 심장에 해로우니까 가까이 오지 좀 말아줄래
6)위애랑 같은 애 이야기임. 내가 점심시간에 퍼질러 자다가 수업에 늦음. 과학 수업이었는데 그 때가 5월인가?여서 햇살은 무지 따사로울 때고 우리 과학실 지붕이 유리로 되있는지라 유독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햇살을 직빵으로 맞아야하는 자리가 있음. 늦게 갔으니 당연히 그 자리는 나 당첨...그런데 가뜩이나 잠도 덜 깬 상태에서 계속 정수리가 타는 느낌이 드니까 더 이상은 못 참겠는거임.그렇다고 수업도 늦은 주제에 다른 교실에서 의자까지 가져오자니 쌤한테 너무 죄송해서 걍 교실 뒷쪽에 쭈그려 앉음. 마침 옆에 그 잘생긴 애가 앉아있었음. 걔가 날 보면서 뭐하는 거냐고 묻길래 대충 저 자리가 심각하게 더워서 피신왔다고하자 다짜고짜 자기 의자에 앉으라는거임. 당연히 난 됐다고 했음. 그런데 걔도 포기를 안하고 자꾸 옥신각신하다 급기야는 니가 안 앉으면 나도 안 앉는다며 바닥으로 내려와서 내 옆에 앉음. 결국 선생님한테 걸려서 걔가 다른 교실에서 의자 가져다줌. 이런 잘생긴 주제에 매너까지 좋은 놈같으니...
7)이것도 처음 유학왔을 때 얘기임. 혹시 아실 지 모르겠는데 2012년에 미국에 엄청 큰 허리케인이 왔었음 샌디라고. 그때 쯤 나는 다른 9학년들 몇명이랑 학교 소유의 집에서 와글바글 살고 있었는데 샌디 온 날 전기가 나감. 괜히 무서우니까 애들 다 모여있다가 슬슬 피곤해져서 2층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후레쉬라던지 아무것도 없는거임. 그래서 누구 아무나 후레쉬나 핸드폰 있냐하고 물은 다음 어떤 남자애꺼를 빌림. 근데 걔가 자기꺼 배터리가 거의 나갔다길래 내가 읭?그럼 이거 곧 꺼져? 하니까 "It's enough to take you up stairs (너 윗층 데려다주기까지는 충분해)"라고 말해주는데 아...어...음.....뭐랄까 이건 한국어로 해석했을 때 그 느낌이 안남. 그냥 영어로 들었을 때 저 문장 자체가 왠지 설렜음. 진짜 나라별로 해석 불가능한 설레는 말들이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