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그를 보지못했다. 그리고 그녀역시 보지 못했다. 내 자전거바퀴가 삼백서른세바퀴를 가는 곳엔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하이팩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친걸까 ? 힘든 삶에 그녀도 그도 어머니와 아들로서의 의미따윈 버려둔체 이제 체념속에 서로를 잊으려는 것일까?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후에야 난 그녀를 볼수 있었다. 며칠새 더욱더 야위고 늙어버린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가게앞에 나와 있었다. 다를바 없는 하루!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속에 예전의 그 화사함이 사라졌음을 ...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응" 아!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분신처럼 여겨지던 그 하이팩의자! 그 의자가 그녀곁에 없는것이 아닌가! 딱딱한 포장이 덜된 아스팔트위에 그녀는 마치 인도의 고승이 참선을 하듯 두 무릅을 땅에대고 그렇게 아픈 다리로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아니 고통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한번씩 에이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엄습할때 그녀는 마치 받아야할 벌을 받는 마냥 오히려 더 만족했고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받침대하나 없는 아스팔트와 더욱더 친해져갔다. "아주머니 다리도 안좋으시면서 이제그만 의자에 기대어서 편하게 일하세요?" "자식이... 내배에서 나온 내자식이 걸어다니지조차 못해 기어다니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편히 앉아서 일한다면 그건 말이 않되지, 이렇게 걸어다니는 게 오히려 더 부끄러워 내 다리라도 잘라 붙일수 없다면 차라리 나역시 앉은뱅이가 되는게 더 그애곁에 있을수 있는게 아닐까?" 그녀는 이미 결심을 굳힌듯했다. 그 누구도 그누구도 지금 그녀의 결심을 흔들지 못하리라. 아니 딱한사람 그녀의 아들을 제외하고
우린 그 이후 그녀의 그 특별한 커피를 마시지 못했고 결국 난 그 비린내나는 커피에 중독이 되었던지 다시 그녀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녀의 아들을 수소문했다. 남포동거리! 그로서는 가장 멀리 도망간것이리라.! 하지만 실상 시장으로부터 남포동까지의 거리는 불과 1km도 체 안되는 거리였고 그의 팔의 힘이 다할때까지 도망간 그거리는 어미로 부터 떨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에게 있어선 세상의 끝이였을 것이다. 그 세상의 끝에 내가 나타난것이다. 그는 못마땅한 척했지만 이거리에서 이 번화가에서 동전몇닢던져주고 좋은일 했다 자족해하는 사람들 틈에 치였었는지 말과는 달리 그의 눈은 따뜻함을 전하고 있었다. 이내 우리는 술잔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에게서 난 비로서 그의 과거를 들을수 있었다.
놀기 좋아하던 어린시절 그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어머니가 버거웠고 누군가 자유롭게 실컷 먹고 놀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말에 솔깃해 집을 나왔다 한다. 그러나 그가 간곳은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고 그는 거기서 껌팔이일을 강요당했다. 졸지에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 고엽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으며 자신의 늙은 할머니를 부양하는 소년가장이 되어야만했다. 첨에 누군가 한사람의 구속이 싫어 나왔던 소년이 이제는 한집단의 소유물이 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후회는 더해갔고 급기야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다한다. 그러나 한번 들어선 그 길을 쉽게 나갈수 없었다. 한번의 탈출시도로 그의 몸에 수많은 흠집이 생겨야했고 두번째 탈출땐 얼굴에 칼자욱을 새겨야했다. 그리고 세번째! 그는 다신 뛰지 못하도록 두다리가 잘려나가야만했다. 그렇게 그렇게 되고 나서야 그들은 그를 풀어줬다고 한다 칼자욱난 얼굴과 두다리가 없는 20대의 청년은 아무것도 벌어오지 못했음으로 그후 그는 구걸생활을 시작했고 이곳 이 바닥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어찌 어미를 만나고 싶지 않았겠냐만서도 그는 자신의 이런모습이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것이 싫었고 그리고 혹 그 집단이 어미에게 또 다른 해꼬지를 하지 않았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머니였던것처럼 그도 역시 아들이었다. 작금의 그녀가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아래 편안한 여생을 보내야할그녀가 아들과 같은 고통을 나누기위해 두무릅을 땅에 대고 생활한다는 소리, 그리고 그녀역시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있어 이러다간 정말 그녀역시 다리를 못쓸지도 못한다는 소리에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들과하는 고통은 차라리 행복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를 그녀에게로 돌려줄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재회! 두 모자의 눈물! 가득이나 염기가 충만한 바다에 뿌려졌다. 부산의 바다가 아직도 짜가운 것은 그때의 그 모자가 흘렸던 눈물 때문이 아닐까?.....
다음날 새벽 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꼬깃해진 만원짜리들과 교환한 중고휠체어한대와 하이팩 의자를 그 아주머니의 가게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인해 환해진 두모자의 얼굴을 기대하면서
그리고..다시 하루가 지난 날의 아침 난 꽤 정들은 회색삼천리 자전거대신 파란 기어가 여러개 달린 새로운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생각하며 그해의 그 짜가웠던 바다속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짧은소설] 내가 겪은 아름다운 이야기3
며칠동안 그를 보지못했다.
그리고 그녀역시 보지 못했다.
내 자전거바퀴가 삼백서른세바퀴를 가는 곳엔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하이팩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친걸까 ?
힘든 삶에 그녀도 그도 어머니와 아들로서의
의미따윈 버려둔체 이제 체념속에 서로를 잊으려는 것일까?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후에야
난 그녀를 볼수 있었다.
며칠새 더욱더 야위고 늙어버린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가게앞에 나와 있었다.
다를바 없는 하루!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속에 예전의 그 화사함이 사라졌음을 ...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응"
아!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분신처럼 여겨지던 그 하이팩의자!
그 의자가 그녀곁에 없는것이 아닌가!
딱딱한 포장이 덜된 아스팔트위에
그녀는 마치 인도의 고승이 참선을 하듯 두 무릅을 땅에대고
그렇게 아픈 다리로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다.
아니 고통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한번씩 에이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엄습할때
그녀는 마치 받아야할 벌을 받는 마냥
오히려 더 만족했고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받침대하나 없는 아스팔트와 더욱더 친해져갔다.
"아주머니 다리도 안좋으시면서 이제그만
의자에 기대어서 편하게 일하세요?"
"자식이... 내배에서 나온 내자식이 걸어다니지조차 못해
기어다니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편히 앉아서 일한다면
그건 말이 않되지, 이렇게 걸어다니는 게 오히려
더 부끄러워 내 다리라도 잘라 붙일수 없다면
차라리 나역시 앉은뱅이가 되는게 더 그애곁에
있을수 있는게 아닐까?"
그녀는 이미 결심을 굳힌듯했다.
그 누구도 그누구도 지금 그녀의 결심을 흔들지 못하리라.
아니 딱한사람 그녀의 아들을 제외하고
우린 그 이후 그녀의 그 특별한 커피를 마시지 못했고
결국 난 그 비린내나는 커피에 중독이 되었던지
다시 그녀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녀의 아들을 수소문했다.
남포동거리! 그로서는 가장 멀리 도망간것이리라.!
하지만 실상 시장으로부터 남포동까지의 거리는 불과
1km도 체 안되는 거리였고 그의 팔의 힘이 다할때까지 도망간
그거리는 어미로 부터 떨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에게 있어선 세상의 끝이였을 것이다.
그 세상의 끝에 내가 나타난것이다.
그는 못마땅한 척했지만 이거리에서
이 번화가에서 동전몇닢던져주고 좋은일 했다 자족해하는 사람들
틈에 치였었는지 말과는 달리 그의 눈은 따뜻함을 전하고 있었다.
이내 우리는 술잔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에게서
난 비로서 그의 과거를 들을수 있었다.
놀기 좋아하던 어린시절 그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어머니가 버거웠고 누군가 자유롭게 실컷 먹고 놀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말에 솔깃해 집을 나왔다 한다.
그러나 그가 간곳은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고
그는 거기서 껌팔이일을 강요당했다.
졸지에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 고엽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으며
자신의 늙은 할머니를 부양하는 소년가장이 되어야만했다.
첨에 누군가 한사람의 구속이 싫어 나왔던 소년이
이제는 한집단의 소유물이 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후회는 더해갔고
급기야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다한다.
그러나 한번 들어선 그 길을 쉽게 나갈수 없었다.
한번의 탈출시도로 그의 몸에 수많은 흠집이 생겨야했고
두번째 탈출땐 얼굴에 칼자욱을 새겨야했다.
그리고 세번째! 그는 다신 뛰지 못하도록 두다리가 잘려나가야만했다.
그렇게 그렇게 되고 나서야
그들은 그를 풀어줬다고 한다 칼자욱난 얼굴과 두다리가 없는
20대의 청년은 아무것도 벌어오지 못했음으로
그후 그는 구걸생활을 시작했고
이곳 이 바닥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어찌 어미를 만나고 싶지 않았겠냐만서도
그는 자신의 이런모습이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것이 싫었고
그리고 혹 그 집단이 어미에게 또 다른 해꼬지를 하지 않았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머니였던것처럼 그도 역시 아들이었다.
작금의 그녀가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아래 편안한 여생을 보내야할그녀가
아들과 같은 고통을 나누기위해 두무릅을 땅에 대고
생활한다는 소리, 그리고 그녀역시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있어
이러다간 정말 그녀역시 다리를 못쓸지도 못한다는 소리에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들과하는 고통은 차라리 행복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를 그녀에게로 돌려줄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재회!
두 모자의 눈물!
가득이나 염기가 충만한 바다에 뿌려졌다.
부산의 바다가 아직도 짜가운 것은 그때의 그 모자가 흘렸던 눈물
때문이 아닐까?.....
다음날 새벽 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꼬깃해진 만원짜리들과
교환한 중고휠체어한대와 하이팩 의자를 그 아주머니의 가게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인해 환해진 두모자의 얼굴을 기대하면서
그리고..다시 하루가 지난 날의 아침
난 꽤 정들은 회색삼천리 자전거대신
파란 기어가 여러개 달린 새로운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난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생각하며
그해의 그 짜가웠던 바다속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