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雪化) 담이가 밧줄을 끊는동안 비조는 흐릿한 눈으로 담이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눈빛이었다. 살기를 포기한 후 정신을 놓아 버린 듯 했다. “아란...” 비조의 입에 물려있는 재갈을 풀자 처음 새어나온 말이었다. “쉬잇...! 어서 여길 빠져나가도록 해요.” 하지만 비조는 이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서 일어나요! 빨리 나가지 않으면 둘 다 죽을거에요.” 비조를 부축하던 담이는 또 한번 경악하고 말았다. 비조의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꺽이는 것이었다. “다리가...! 다리가 왜 이래요?” 도망갈 것을 막기위해 다리를 부러뜨려놓은 것이었다. 이런 다리로 빠져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담이는 아연해졌다. 비조는 문득 정신이 든 듯 했다. “대체... 여기... 왜 온거요?” “지금 그런 소릴 할때가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가시오.” “시끄러워요. 정신은 든 모양이네요.” “결님이 당신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소. 내가... 이제 당신을 지킬 수 없으니 스스로 지킬 방법을 찾아요. 이런데서 나 때문에 죽는건 별로 고맙지 않소.” “시끄러워욧! 누가 죽는데요?” 담이는 곳간 밖으로 빠져나갔다. 비조는 담이가 나간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팔을 대자로 뻗으며 누웠다.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아란의 원수를 갚은 이상 이제 죽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헌데... 정신이 들고보니 담이가 있었다.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말이 믿겨지지는 않았지만, 깨닫고 만것이다. 사실은 죽고싶지 않았다는 것을... 살고 싶다... 모든 것을 잊고 평화롭게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비조는 담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여기까지 숨어 들어온것만 해도 대단한 기적이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나를 끌고 몰래 도망갈 수 있다는 건 죽은 아란이 살아 돌아오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누워서 죽을 수 있으니 그나마 행복한 일 아닌가... 매달린 채 죽어야 했다면 짐승과 다를것이 무언가... 그때, 문이 열리고 담이가 돌아왔다. 비조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담이를 올려다 보았다. 담이는 비조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자, 가요!” 비조는 저항하지 않았다. 담이의 목소리가 더없이 비장하고 힘찼기 때문일까. 곳간 앞에는 말 한필이 서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비조는 말 위로 올라탔다. 담이도 비조앞에 올라 고삐를 쥐었다. “약속해요.” “...?” “절대로 날 놓지 않겠다고.” 비조는 순간 가슴속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 소녀는... 한낱 어린 소녀가 아니라, 용맹하고 기개넘치는 무사이다...! “이럇!” 담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힘차게 말허리를 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죄인이 도망친다!” “어서 문을 막아랏!” 담이가 달려가고 있는 대문앞에는 수십의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담이를 기다리고 있다.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뒤로는 병사들이 담을 포위하며 달려오고있다. 하지만 담은 말 머리를 대문으로 향한채 맹렬히 질주해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당황했다. 더 이상 갈곳이 없는 막다른곳으로 말을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이가 대문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병사들은 담이가 고삐를 잡기는 것을 보고, 이제 말이 멈추고 침입자와 죄인이 잡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병사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놀라고 말았으니... 말은 마치 날개가 달린것처럼 날아 올랐던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앞두고 담이는 쌓아놓은 쌀가마를 도약대로 삼아 말과 함께 뛰어 올랐고, 그대로 대문을 뛰어 넘었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역시 당황했다. “무, 무엇들 하느냐! 어서 잡아라!” 병사들은 말에 올라 담이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사오십은 되어 보였다.
#29 설화(雪化)
설화(雪化)
담이가 밧줄을 끊는동안 비조는 흐릿한 눈으로 담이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는 눈빛이었다.
살기를 포기한 후 정신을 놓아 버린 듯 했다.
“아란...”
비조의 입에 물려있는 재갈을 풀자 처음 새어나온 말이었다.
“쉬잇...! 어서 여길 빠져나가도록 해요.”
하지만 비조는 이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서 일어나요! 빨리 나가지 않으면 둘 다 죽을거에요.”
비조를 부축하던 담이는 또 한번 경악하고 말았다.
비조의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꺽이는 것이었다.
“다리가...! 다리가 왜 이래요?”
도망갈 것을 막기위해 다리를 부러뜨려놓은 것이었다.
이런 다리로 빠져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담이는 아연해졌다.
비조는 문득 정신이 든 듯 했다.
“대체... 여기... 왜 온거요?”
“지금 그런 소릴 할때가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가시오.”
“시끄러워요. 정신은 든 모양이네요.”
“결님이 당신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소. 내가... 이제 당신을 지킬 수 없으니 스스로 지킬
방법을 찾아요. 이런데서 나 때문에 죽는건 별로 고맙지 않소.”
“시끄러워욧! 누가 죽는데요?”
담이는 곳간 밖으로 빠져나갔다.
비조는 담이가 나간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팔을 대자로 뻗으며 누웠다.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아란의 원수를 갚은 이상 이제 죽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헌데... 정신이 들고보니 담이가 있었다.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말이 믿겨지지는 않았지만, 깨닫고 만것이다.
사실은 죽고싶지 않았다는 것을...
살고 싶다...
모든 것을 잊고 평화롭게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비조는 담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여기까지 숨어 들어온것만 해도 대단한 기적이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나를 끌고 몰래 도망갈 수 있다는 건 죽은 아란이 살아 돌아오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누워서 죽을 수 있으니 그나마 행복한 일 아닌가...
매달린 채 죽어야 했다면 짐승과 다를것이 무언가...
그때, 문이 열리고 담이가 돌아왔다.
비조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담이를 올려다 보았다.
담이는 비조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자, 가요!”
비조는 저항하지 않았다.
담이의 목소리가 더없이 비장하고 힘찼기 때문일까.
곳간 앞에는 말 한필이 서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비조는 말 위로 올라탔다.
담이도 비조앞에 올라 고삐를 쥐었다.
“약속해요.”
“...?”
“절대로 날 놓지 않겠다고.”
비조는 순간 가슴속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 소녀는... 한낱 어린 소녀가 아니라, 용맹하고 기개넘치는 무사이다...!
“이럇!”
담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힘차게 말허리를 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죄인이 도망친다!”
“어서 문을 막아랏!”
담이가 달려가고 있는 대문앞에는 수십의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담이를 기다리고 있다.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뒤로는 병사들이 담을 포위하며 달려오고있다.
하지만 담은 말 머리를 대문으로 향한채 맹렬히 질주해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당황했다.
더 이상 갈곳이 없는 막다른곳으로 말을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담이가 대문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병사들은 담이가 고삐를 잡기는 것을 보고, 이제 말이 멈추고 침입자와 죄인이 잡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병사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놀라고 말았으니...
말은 마치 날개가 달린것처럼 날아 올랐던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앞두고 담이는 쌓아놓은 쌀가마를 도약대로 삼아 말과 함께 뛰어 올랐고,
그대로 대문을 뛰어 넘었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역시 당황했다.
“무, 무엇들 하느냐! 어서 잡아라!”
병사들은 말에 올라 담이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사오십은 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