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ㅇㅇ201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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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1 ~ 31)

 

우선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할때의 구로치 못한 자는

자식을 낳고 기르는 수고를 해보지 못한 자 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여자와 남자는 누구를 가르키는 말씀일까요?

우선 성별로 여자와 남자를 가르킵니다.

그 다음은 여자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들자면

기생, 창녀, 과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 등등

이런 여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한 여자들을 비유로 뜻하는 말씀인데요

 

기생라합, 유다의 며느리 이면서 창녀로 변장을 했던 다말, 엘리야와 과부 등등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면서 그 소원을 이룬 여자들을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두가지 부류의 여자가 나오는데요

첫번째 부류의 여자는 잉태치 못한 여자와 구로치 못한 여자이고요

두번째 부류의 여자는 남편 없이 홀로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입니다.

 

우선 두번째 부류의 여자인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를 가리켜서 미혼모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는 알려 드렸으니 여기서 얘기하는 미혼모라고 하면 그리스도의 신부도 아닌데 홀로 아이를 잉태하고 홀로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여자를 뜻하는 말씀인데 아무리 처녀가 아이를 임신해도 할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부도 아니면서 어떻게 아이를 잉태하고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 방법이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율법과 결혼하고 잉태해서 아이를 키우면 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서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율법의 행위들을 모두 버리는 것도 부족해서 그러한 행위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라디아서 1:13 ~ 14)

 

자신의 동족 보다 지나치게 유대교를 믿고 행동하던 사울에서 그러한 율법의 행위들을 모두 버리고 자신의 신랑인 그리스도 만을 믿는 믿음의 신부로 거듭납니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던 시절에 지키던 율법의 행위들을 버리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랑 없이 혼자서 애를 낳고 키우는 미혼모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잉태치 못하고 구로치 못한 여자들의 숫자보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크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 젖을 먹는 어린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잉태치 못한 여자한테 즐거워 하라고 하셨을까요?

 

사라가 나이 들고 경수가 끊어져서 이제는 잉태를 할 수 없는 몸이 됐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이 늙어서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부모라면 모두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던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식을 주신 다는데 웃을 수 밖에요…

하지만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주시고

결국 사라가 기쁨으로 웃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자유한 자가 되는 사람에게는 그 숫자가 적더라도 반드시 언약의 자식을 주십니다.

사라처럼 마음이 타 들어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그 약속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율법 아래 있고자 하면서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은 희안하게도 아이들을 잘 만들어 냅니다.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부네 부부처럼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매일 젖 달라고 울어 대는 아이에게 젖을 줍니다.

문제는 아이가 크면 젖을 떼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젖을 뗄 생각을 안 합니다.

그 미혼모가 주는 젖이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율법의 아래 있으면서 젖을 먹는 어린아이를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뭐 해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냐고요…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립니다.

예를 들어서

사업이 잘 된다든지 좋은 대학에 들어 갔다든지 좋은 베필을 만났다든지…..

이러한 일들은 본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가만히 기도만 했는데 사업이 잘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을 잘하고 합니까?

 

이러한 일들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광은 율법 아래 있으면서 하갈과 같이 종의 삶을 살면서 종의 자식을 낳다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와 같이 자유한 자가 되어서 언약의 자식을 낳았을 때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광입니다.

 

사도바울의 모든 서신은 자신이 율법 아래 있으면서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던 미혼모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동안 자신이 했던 종의 행동들을 왜 버려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종을 탈피해서 자유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하갈을 선택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낳은 사라를 선택 하시겠습니까?

 

출처: http://cafe.daum.net/philipdea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