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입니다 라는 글을 읽고.. 저는 친부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안괜찮은여자2015.07.08
조회68,779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참 많았구나 라는

 

생각에 또 눈물이 났어요. 그 때 그 기억들과 그 감정이 떠올라서. 외롭고, 배고프고,

 

사랑이 고팠던 그 시간들이.

 

우리 모두 같이 힘내요. 시간은 어찌됐든 흘러가고 아픈 상처들로 채워진 어린 시절 또한

 

무뎌지지만 삶을 이겨낼 힘을 만들어 내더라구요. 그것이 시간의 약인 듯 싶어요.

 

그 시절을 넘겼다고 해서 찬란하고 반짝이는 미래는 기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인생이지만

 

우리를 사랑해주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살아요.

 

보통의 사람들처럼, 보통의 날 처럼 투닥거리며 살기도 하고 돈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보통 사람의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요...

 

더 힘든 일은 없을 거에요. 모두들. 지나온 시간보다, 이겨낸 시간만큼 꼭 좋은 일이 있을거에요.

 

우리. 힘내요!!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따금 상처를 훑는 바람이 불어 가슴이 일렁일 때

 

댓글 보며 힘내고 또 힘내서 살아가겠습니다.

 

 

 

 

 

 

 

고모입니다 라는 글을 읽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핏줄이라고 조카를 데려오신 고모님도 참으로 대단하시고.. 그 조카의 모습이 어린시절 제 모습 같아

 

한참 눈물이 났습니다.

 

태어나 친엄마 얼굴 제대로 기억도 못하고 할머니 손에 맡겨져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연세도 많으셨고 정은 많으셨지만

 

제가 잘못하면 작은 거 하나에도 화를 내시고 욕하시고 때리셨었죠... 그런 할머니가 원망스럽진

 

않았어요.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사춘기가 시작될 때 쯤 현실이 원망스럽더라구요.

 

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해 학교에서 뻔히 다른 친구들 이름이 적힌 준비물을 훔쳐 손버릇

 

안좋은 애로 낙인이 찍혔었고 늘 더럽고 소심하고 누가 무슨 말만 하면 울었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그러다 힘이 부치셨는지 할머니께서 그 당시 원불교에 정녀님께

 

보내셨어요. 공부욕심은 많았터라 그래도 정녀 밑에 있으면 공부를 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할머니 생각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적응 못하고 거짓말에 자잘한 도둑질에...

 

정녀님도 포기하시고 저는 큰고모 댁으로 가게 됐죠... 사투리가 심했던 저는 학교에서

 

왕따에 구타에... 하지만 저에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었어요. 속옷마저 물려입으며

 

온갖 집안일을 했어요. 같은 나이의 사촌형제는 학원을 다녔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죠.

 

그 사촌이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화장실에서 양치도 못했어요. 밥맛 떨어진다고.

 

그 사촌보다 성적이 더 좋으면 어김없이 그 화살은 저에게 날라왔어요. 온갖 구박에 살림에...

 

거기에 고모부라는 사람은 가슴몽우리가 막 올라오는 제 가슴을 자는 사이에 만지더라구요...

 

둘이 있을 땐 본인 씻고 발가벗고 나오고... 가족끼리 뭐 어때 이러고... 근데 왜 저랑 둘이

 

있을 때만 그랬을까... 역겨워서 몇 번 집안일로 마주쳤을 때 아는 척도 안했어요...

 

이런 일을 당할 때 부모는 어디갔었냐구요..? 어머니라는 사람은 저 낳고 두살 터울인 동생 백일도

 

안되서 집 나가버렸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돈벌러 나간다고 서울가서는 가끔 연락해주고...

 

그 가끔 연락하고 저 있는데 내려오는 이유가 늘 새엄마 소개였어요. 제 생일마다 새엄마가 바뀌

 

더라구요. 생일선물이라며.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 때 또 새엄마가 바뀌고 2년 후 쯤 같이 살자고

 

하더라구요. 드디어 부모라는 울타리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는 구나 했어요. 서울 올라오기 전에

 

아버지가 삐삐를 주셨는데.. 정말 밤잠을 설칠 정도로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용돈이라고는 받아본적이 없는데... 제가 책을 좋아해서 아버지가 가끔 책을 보내주곤 했는데

 

그 사이에 만원짜리라도 하나 꽂아있을 때면 어찌 알고 고모가 쏙쏙 다 빼갔었거든요.

 

용돈이 없어 그 당시에는 회수권이 있었는데 그 회수권 친구들한테 싸게 팔아 과자 사먹고

 

한두시간씩 걸어다니고. 고모네서 있었던 3년은 정말 악몽이었어요. 할머니 밑에서 컸던

 

시간들이 행복했었구나 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학교에서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엄청 싫어하셨죠.

 

바늘가는데 실 안가냐고 쟤 소풍 가면 김밥 싸야하잖아. 라고. 하하하.

 

생리대 사야하는데 눈치보여 말도 못하고 휴지 돌돌돌 말아 쓰고. 다 헤진 고모 딸, 사촌언니

 

속옷까지 물려입었어요. 그 언니는 굉장히 뚱뚱했는데.. 저는 엄청 말랐고 영양실조까지 걸려

 

픽픽 쓰러졌었는데...

 

아무튼 서울 와서는 정말 행복하고 빛나는 미래가 기다릴 줄 알았어요.

 

계모라 해도 아버지와 같이 산다는 그 행복은 정말 이루 말 할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계모는 제가 조금이라도 늦거나, 잘못을 하면 직접 혼내지 않았어요. 아버지한테 말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저를 때렸죠. 집에서 온갖 매가 될만한 것으로 때렸어요. 얼굴이며, 등이며

 

겨드랑이며 성한 곳이 하나 없었어요. 아버지는 미안했는지 똑바로 누워 자지도 못하는 나에게

 

처음엔 잠든 머리맡에 용돈도 두고 가고 약도 발라줬었어요.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때렸지만.

 

2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고모와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그만큼 고모와 살았던 기억이

 

참담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때리진 않았거든요.  한달에, 두어달에 한두번정도. 그 정도가

 

심했을 뿐. 새엄마의 냉대는 참을 만했어요. 그저 냉대였어요. 철저히 무시.

 

 

 그 후로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결혼을 했고 세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키워주신 생각을 하면 눈물나요. 양육방식이 잘못된 거지,

 

저에게 악감정으로 그러진 않으셨을거에요. 항상 동생과 저를 안쓰러워 하셨어요. ) 고모는

 

서울 올라오고 연락을 끊어버렸고(20살때쯤 한번봤는데 또 바뀐 새엄마에게 잘하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라는 사람 역시 연락을 끊었습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락하며 손주들 보여주며 살았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돈 육백에 사람 뒤통수 치고 잠수를 타더군요. 그것도 사위돈을.

 

이사를 가야하는데 월세로 보증금 다 까먹고 보증금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사위 카드로

 

카드깡을 했더라구요. 저에게는 비밀로 하고. 우리 신랑은 장인어른이 그렇게 비밀로 해달라고

 

카드결재일에 필히 돈 넣겠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한 죄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명세서가 날라오고 제가 알게 되고. 손이 덜덜덜 떨리더라구요. 카드 이용한도가 그렇게

 

높은지 그제서야 알았고, 카드분실사고가 난 줄 알고. 카드결재일은 다가오고 그렇게

 

결재는 안된채 날짜는 지나가버렸고 그대로 잠수를 타더라구요.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봤지만

 

카드깡으로 마련한 보증금으로 이사간 집 또한 모를 뿐더러 연락을 안받으니 참 암담하더군요.

 

결혼할 때 바라지도 않았지만 냉장고는 하나 사준다고 하길래 기다렸더니 백만원 쥐어 줬어요.

 

작년에 셋째 낳고는 아들이라며 당신이 백만원 주겠다고 사람들에게 소문은 다 내놓고

 

저런 친정아부지가 어딨냐고 극찬을 받고 다니더니 정작 아들 낳고 나니 십원한장 없더라구요.

 

안줘도 상관없어요. 저는 정말 괜찮았어요.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니는지.

 

누가 들으면 제가 아버지께 엄청나게 돈을 많이 받고 사는 줄 알아요...

 

 

그저 신랑에게 미안할 뿐이요. 애초에 아버지를 잘못 둔 죄. 면목도 없고...

 

친정 어머니 대신해서 애들 봐주시고 때마다 반찬에 김치에 애들 옷에 장난감에...

 

김치 해다주시며 김치냉장고가 없다며 김치냉장고까지 사주신 시어머니가 세상에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구질구질하게 안살고 싶어 결혼하고 지금껏 공과금 한번 밀려본 적없고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안내주신 의료보험료까지 제가 분할납부해서 내고 있습니다.

 

우리집은 뭐 하나 밀려있거나 신용에 뭐 하나 걸려있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아요.

 

 

고등학교 이후로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현재로써 마지막 새엄마까지 집을 나가신 상태, 당뇨가 심한데 어찌 살려고 하는지.

 

이렇게 잠수타다가 돈없다고 아프다고 다시 연락오면 전 어떡해야 하는지.

 

왜 가족들과 어울려 살지는 못하는건지. 그렇게 뒤통수 치기 전에 상의를 했다면 돈 육백

 

대출받아서 빌려드릴 수도 있는건데. 많은 생각이 드네요...

 

 

고모입니다 라는 글을 읽고 써내려간 글인데 많이 길어졌네요.

 

아무리 핏줄이라 해도 남의 자식 데려다가 입히고 재우고 키우는 거 쉽지는 않겠죠.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큰 아이는 정서도 불안하지만 단점도 많을 거에요.

 

눈치를 많이 본다던지, 손버릇이 안좋다던지, 거짓말을 하던지....

 

부디 잘 타일러 주셨으면... 사랑이 고픈 아이라 사랑으로 감싸주세요...ㅠㅠ

 

그리고 참으로 고맙습니다....  고모라는 분..

 

댓글 37

사랑하는오래 전

Best저 서른둘..저랑 비슷하시네요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했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남에게 말하기가 꺼려지는 어렸을때의 기억과 부모님... 새엄마들도 지겨웠고 같이 살아본적도 없는 아빠가 뭐가 그리 좋았던지...할머니 때리는 할아버지가 매일 무서웠고 술만 드시면 상을 뒤엎는 할아버지가 너무 미웠어요 지금 제 큰 딸과 같은 나이었던 네살때 한살 터울 남동생과 농사지으러 가신 조부모님 대신에 놀아주다가 튜브에 들어있는 쥐약 나눠먹고 저는 문제없이 살았지만 동생은 세살 어린나이에 먼저 떠났고 그 일뒤에 가장 충격 받은건 저이지만 모든 어른들은 저에게 그 날일을 매일 매일 물어봤어요 나중에 기억이 안난다고했고 동생의 존재조차도 기억이 안난다고 했어요...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나의 흉이 될까 신랑조차도 자세히 모르는 제 슬픈 기억이네요 세번째 새엄마를 피해 중학교부터 혼자 살면서 생활비도 안줘서 한겨울에 LPG가스가 떨어져서 봄이불 한장뿐이라 그거 덮고 잤던 기억도 있고...잊고싶었는데 쓰다보니 하나씩 떠오르네요 우리 힘내요! 저는 생활이 넉넉치는 않지만 가족이 생겨서 좋아요 밥을 눈치보지않고 먹어서 좋고 늘 깨끗하게 씻을수있어서 좋고 귀여운 딸들이 있어서 좋아요 쓰다보니 두서가없네요 ㅎㅎ 내 어린날이 너무 슬프고 사는게 바빠서 누구 원망도 못했지만 아이들 키우면서 스스로 마음에 멍든곳에 약 발라주면서 혼자 치유중이예요.. 힘내세요

울보오래 전

Best기구한 사연이 가슴뭉클합니다.앞으로 계속해서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앞으론 가정만 생각하시고, 먹먹한마음으로 써놓은글 덕에 저를 돌아보게되어 감사드립니다

제발오래 전

Best글쓴님 꼭 행복해졌음 좋겠어요..

보노보리오래 전

자녀들한테는 든든한 부모가 되세요! 정말 수고많으셨네요..ㅠㅠ

ㅎㅎ오래 전

글 지난거 리뷰하다가 아~~ 뭐지? 글 남깁니다. 위안이 되실런지 모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인데 조물주가 님을 퍽이나 사랑하셨나보네요. 사람이 겪을 수있는 한계를 체험하고 지금의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껴보라고요. 저는 죽음과 직면한 적이 있고나서는 지금 누리는 모든게 그냥 감사 할 따름일 때가 많거든요. 내가 사는 이곳이 늘 천국이라고 느끼거든요. 행복하시라고 기 넣어 드릴께요. 꼭~~

힘내세요오래 전

여기 글쓰신 모든 분들 정말 행복하시길 바래요!!!!!

ㅏㅏ오래 전

저희 신랑이 그래요 .. 어린나이에 결혼하신 부모님밑에 언니하나 자기 하나였는데.. 신랑 유치원도 들어가기전에 이혼하셨다네요 버스비도 못받아서 유치원때부터 걸어서 유치원을 갔데요 그게 얼마나 서러웠음 아직도 기억을하네요. 그러다 아버님이 7살에 새엄마라고 데리온 여자분 그렇게 신랑을 때려가며 키웠다더라구요 아버님은 집에도 잘들어오시지않고 결국 신랑 중3떄 이혼하셨답니다 .... 그러고나서 또 새엄마라고 젊은 여자를 데리고왔데요 신랑도 지쳐서 중3때 가출하고 몇년을 연락없이 지내다가 저만나고 그래도 아버지니 어버이날인데 연락이라도 드려라.....그게 화근이였나봐요 부모님정이그리웠던 신랑은 아버님께 연락도 자주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그랬었는데. 잘해주지도 않으시면서 머하나 해주는것도 없으면서 용돈 바라시는거보면 ....참...세상에 시댁이라고 가보니 마지막 새엄마랑도 갈라서고 혼자 원룸에 살더라구요..... 그러면서 연락을 쪼금이라도 안하시면 바리바리 전화와서 어떻게 너네는연락한통없냐고 난리셔요... 이제는 삐치셔서 연락도 안하셔요 차라리 제가 이대로 연락 끈으라고했습니다... 세상에 부모라도 다 같은 부모도 아닌가봐요 ............ 글쓰니님도 그냥 연락 오고 찾아오면 모른척하세요 .... 저런부모때문에 힘들어하지마세요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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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녀오래 전

이런글보면서 우리아빠가 참 대단했다는걸 세삼느껴요 저희는 딸셋이였습니다 엄마는 어렸을때집나가서따로살았는데사고로 저초등학교3학년때돌아가셨습니다 아빠께서술을잘드시긴했지만돈벌면서일하고저희일일히학교준비물다챙겨주시고 아빠가몸이안좋아지셔서일그만두고 수급자로 되어서 나라에서지원받고 사랑의리퀘스트나가서 후원받고자랐습니다. 중간에막내동생은 지병이있어 중1때하늘나라갔구요 아빠와저랑동생셋이살다 저희다결혼하고 제동생 손주손녀다보시고 올해돌아가셨네요 세상에 나쁜사람도많지만 힘든상황속에서 어떻해해쳐나가는가가더중요하다생각해요 지난날있고좋은날행복하게보내세요 화이팅 마지막으로우리 아빠감사합니다

오래 전

저는 이제 스물후반이구요. 글쓴님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살았어요. 전 엄마 아빠가 어릴때 절 낳으셨어요. 그러곤 서로 집안 반대로 이혼하고 당시 6개월이었던 전 친가에서 할머니가 키워주셨고(할머니께서 옛날 분이시라 자식은 남자쪽에서 거두는거라고 데려오셨어요.) 아빠는 가출했다가 돈필요하면 들어왔다가 반복했어요.5년만에 본적도 있으니까요. 하도 금전사고를 많이 치고다니셔서 친척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집안도 많이 기울었죠. 그리고 몇년 후 할머니께서 치매가 오는 바람에 친척집을 이쪽 저쪽 전전하다 고2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그리고 아빠라는 분이 나이가 슬슬 드시니까 은근히 저한테 기대려 하시더라구요. 나몰라라 했으면서 그래도 핏줄이 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같이 살아보자고 하셔서 1년 반 살았는데 저도 마음 한켠에 아빠라는 자리가 나한테 어떤지 부성애를 느끼고 싶어서 다 잊고 처음시작처럼 아빠를 대했으나 결국은 글쓴님처럼 명의도용해서 사년 전에 1500만원 빚을 쥐어주시고 잠수타시더라구요. 뒷통수 맞은걸 알게됐을때 황당해하던 저한테 대출 좀 받아달라고 계속 찾아오더라구요. 또 알고 보니 고모나 삼촌 명의도용해서 핸드폰 미납도 하고 당뇨도 있으신데 몰래 의료보험 명의 도용해서 병원도 다니고. 에휴 그래서 그냥 없는 사람이다 치고 인생 제대로 배웠다 생각하고 연 끊고 지내고있어요. 아빠도 자기 행복을 위해 절 버렸듯이 저도 제 행복을 위해 제 앞만보고 훗 날에 아프다 제발 도와달라해도 무시할거에요. 꼭 과거를 잊고 행복한 지금을 사세요. 분명 나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들도 많을꺼다. 생각하면서 힘내세요.!!

포키오래 전

힘내세요~앞으로는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아버지란 사람도 혹시 고모라는 인간도 지네 아쉬울때 찾인오거든 냉정하게 끊어내세요 ..고모와 그 뚱뚱한 사촌언니에게 성추행사건 알려주는것은 괜찮겠네요ㅋ

ㅡㅡ오래 전

아 정말 눈물 나 혼났네요. 님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사시길. ㅠㅠ

힘내여오래 전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글읽으면서 많이 울었네요. ㅜㅜ 그 아픔을 다 알지못하지만... 저랑비슷한 연령대라 같이 공감되고 울었네요. 꼭 좋은 날이 있을꺼에요^^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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