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은 비빌언덕?

에휴2015.07.15
조회42,658
돌지난 첫째와 뱃속에 둘째 임신 중인 서른 중반의 주부입니다. 제목 그대로 다른 사람들은 정말 친정이 비빌 언덕이 되는지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엇그제 일이 계속 생각나서 속상한 마음에 몇 자 적어봐요.
앞서 말했듯 저는 둘째 임신 중입니다. 첫째 때 진통 열시간 넘게 했는데 상황이 안좋아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낳았어요. 제왕절개로 아가 낳으면 5일은 입원해야해요.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둘째도 제왕절개로 낳아야 하는 상황이예요. 둘째 생기기 전에 친정엄마가 나이도 있으니 낳을 때 낳아서 기르라고 해서 병원 입원해 있을 동안 첫째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못 갖겠다고 했어요. 신랑이 자영업해서 아침에 나갔다 밤에 일이 끝나요. 그리고 신랑 사무실에 아저씨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는데 다 흡연자들이예요. 그 열악한 환경에 첫째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부분을 걱정한거죠. 그랬더니 친정엄마가 본인이 둘째 낳고 조리원에 있을 2주 동안 봐주신다고 하셨어요. 현재 일하고 계시는데 그 때 휴가를 내든 방법은 있으니까 걱정말라구요. 그 말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첫째 때 저희집에 오셔서 미역국 두 번 끓여주고 얼른 가신 것 이외에 아가든 산모인 저든 그 어떤 돌봄을 받아보지 못해서 엄마의 말이 뜻밖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맘 놓고 둘째 가졌지요. 제가 자식 욕심이 좀 있어요. 신랑도 마찬가지구요.
엇그제 친정식구들 모임이 있었어요. 고기를 맛있게 먹다가 친정엄마가 2주 동안 우리 첫째 봐주시기로 했다고 말이 나왔어요.
그랬더니 친정아빠가 대뜸
"니기 엄마한테 해주라 해라. 니기엄마한테"
이러는 거예요. 저희 신랑보면서. 시엄마를 말하신거예요.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여기 있는데~"
웃으면서 말했어요. 근데 친정아빠가 바로
"출가외인이! 결혼했으면.."
이러는거 말 자르고 울면서 말했네요.(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저도 모르게 나더라구요.)
"첫째 때 수술해서 거동도 못해 어쩔 수 없이 ㅇㅇ(남동생)한테 잠깐 도와주라고 했을 때도 막 뭐라하더니 진짜 내가 딸이 맞긴 한거예요?"
이렇게요. 첫째 때 이틀은 친정엄마가 와계셔줬고 삼일 째 되는 날 두 분 부부동반으로 여행가셨어요. 그 때가 성수기라 신랑이 많이 바빠서 병실에 계속 있어줄 상황이 안되어서 어쩔 수 없이 남동생한테 부탁한거거든요. 마침 주말이고 동생도 솔로라 약속도 없고 한다고 흔쾌히 해주겠다 하더라구요. 근데 친정아빠랑 남동생이 통화하는데 왜 니가 거기에 가있냐는 식으로 막 뭐라하더래요. 그럴거면 집에나 오라고. 하아... 생살 찢어서 아기 낳아 앓아 누워있는 딸 걱정은 조금도 안된거죠.
그 때도 너무 서럽고... 오히려 시부모님이 전화도 더 자주해주셨어요. 걱정되셔서.
참, 출산 당일 병원에도 시부모님이 먼저 오셨네요. 오전에 울 아기 낳았는데 시부모님은 한시간 반 거리에서 바로 오셨구요. 친정 부모님은 삼십분도 안걸리는 거리에서 오후 늦게 오셨네요.
저희 형제지간은 언니, 저, 남동생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니랑 저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빈곤하게 살았는데 남동생은 참 여유있게 살았어요. 언니랑 저는 책이나 문제집 산다고 해도 돈 주기 너무 아까워하셨고 남동생은 오락실이나 노래방 간다고 돈 달래도 흔쾌히 주시곤 하셨어요. 거짓말 안하는거에 만족한다면서요.
성인이 되어서 대학을 갔는데 주말마다 집에 가면
"집에 오면서 먹을거 하나 안사오냐. 빈손으로 올거면 오지마라"
하셨어요. 그 때 당시 한달 용돈 3만원이었네요. 자취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죠. 정말 거지같이 살았어요. 1학년 초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제가 돈이 너무 없으니까 저한테서 멀어지더라구요. 학창시절에도 안 당하던 왕따 당했습니다. 돈 없다고. 근데 그 와중에 뭘 사오래요. 집에 가기 싫었죠. 근데 일손 도우라고 오래요. 가면 또 그 말.
사회생활 하면서 돈을 어느 정도 벌었어요. 나름 전문직으로 열심히 일했거든요. 제가 번 돈으로 꾸미고 여가도 즐기고 부모님께 선물도 나름 고가로 했어요. 그냥 그 때는 그래야할 것 같아서요. 옷을 선물해도 노스###에서 사드리고 지갑이나 장갑 등등 다 브랜드로 사드렸어요. 제가 조금 힘들어도 부모님이니까 좋은걸로 사드렸죠. 근데 선물을 하면 할수록 반응이 시큰둥하신거예요. 당연시 된거죠.
한창 홈쇼핑이 뜰 때 쯤엔 티비 보시고 엄마가 항상 저에게 전화하세요. 본인은 어떻게 주문하는지 모르니 니가 대신 주문해주면 나중에 돈 주겠다구요. 전 주문해드리고 돈 거의 안받았어요. 나중에는 제가 사정이 안좋아서 가장 최근에 주문해드린거 돈 주시라 했더니 변했대요. 이젠 돈받을라 한다고.
결혼할 때도 엄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남의 딸들은 다 엄마한테 얼마씩 주고 결혼하더라"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엔 그건 아니다 싶어서 그냥 200드리면서 옷 해입으시라고 했어요. 제 친구는 딸 돈 비상금으로 놔두라고 집에서 보태주시든데.. 그것까진 바라지 않아요. 저도. 근데 오히려 주라고 하시니... 할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결혼준비 기간에 엄마랑 사이가 별로 안좋았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저희 언니한테도 똑같이 엄마가 그랬더라구요. 그래서 언니는 좀 큰 돈 드리고 엄청 힘들게 준비했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아들한테는 결혼하면 집 땅 팔아서 지원해준대요. 더더군다나 아직 남동생이 스물 아홉인데 이렇다 할 자리를 못 잡아서 만약 당장이라도 결혼하면 생활비까지 지원해주신다고 하셨다네요. 그 말을 언니랑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네요. 그러면서 엄마는 본인들 부양해줄 자식이 없다시네요. 그리 애지중지하는 아들두고 제게 그 말을 하시네요.
저는 친정 부모님께 뭐 바라는거 없어요. 그냥 단지 살아계시는 것에 감사해요. 하지만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남도 도와줄 수 있는거잖아요. 꼭 사위 앞에서 딸을 귀하게 안키운 티를 내셔야만 하셨는지...
친정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명절은 언니네랑 저희가 챙겨요. 귀하신 아들은 아직까지 어버이날 제대로 된 선물하나 해본적도 없네요. 물론 생신 때도 언니랑 제가 뭐 하자고 하면 마지못해 하구요.
친정아빠 말대로 언니랑 나는 출가외인인데 왜 가족 행사 있을 때는 우리만 챙기는지.. 우리에게 챙김을 받으려고만 하시는지..
작년 제 생일날 친정엄마가 축하한다고 전화하셔서 농담으로 선물 없냐고 물었더니 정색하시면서
"너 낳아준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선물줘야하는거 아니냐. 니가 나한테 선물줘라."
고 하시길래.... 얼버무리고 전화 끊었네요. 예전에도 그러시더니 또.. 저 선물 바라지 않아요. 삼십년 넘게 받아보지도 않은 생일 선물을 갑자기 왜 받고 싶겠어요. 그 때가 임신 막달이라 예민해서 그런지 서럽고 황당하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래도 신랑이 미역국도 끓여주고 선물도 줘서 행복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휑한 기분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겉으로 보면 저희 친정 부모님 사람들 되게 좋아보이세요. 실제로도 좋구요. 근데 유독 딸들에게만 인색하시고 바라는건 많으시네요. 어렸을 때 친정아빠의 과음과 잦은 부부싸움 많이 봤구요. 꼭 싸우고 나면 엄마는 언니랑 제게 집안일 시키면서 화풀이 하셨죠. 언니랑 저는 총알받이 같은 존재였나 싶어요.
우리 신랑은 첫째 낳고 얼마 안되어서는 장모님 안오시냐, 아기 보러 안오시냐 물어봤는데 그것도 두어달 지나니 묻지도 않더라구요. 신랑도 안거죠. 마음이 없으시단걸. 둘째 산후 조리도 이미 산후도우미 쓰기로 서로 약속했어요. 친정엄마나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거란거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거든요. 첫째 때 겪어서.
원래 과거 일들은 그냥 잊고 있었는데 친정아빠의 그 말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없이 서운하고 기운빠지고 그러네요. 임산부라 예민한가봐요^^;;
답답한 마음에 주저리 주저리 적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