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수단의 수도 주바 지역 본부 군
경찰관입니다. 2010년 8월, 평소처럼 저녁 순찰하던 중 강도가 쏜 총알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주바 손수건
집회'소식을 들은 저는 치료받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2011년 10월, 강사 정명호 목사님(예수교아프리카연합성결회 총회장)의
설교를 들으며 치료의 확신을 갖게 됐고,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이어 손수건(행 19:11~12) 기도를 받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곧 다리에 감각이 오면서 움직일 수 있었지요. 놀랍게도 그날 휠체어를 버리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가 넘쳐요 - 조미형 권사 (1대대 4교구,
3-1여선교회)
남편이 아팠던 7년 동안 저는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병중에 있을 때 너의 모든 행함을 보고 있었노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한시도 저를 잊지 않으시고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 목자님의
사랑!
가족 모두가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행복이
정말 내 것인가?'
저는 종종 꿈같은 행복감에 살갗을 꼬집어보곤 합니다. 남편이 공해병(술, 담배, 유해환경 중의 공해성분이 사람의
뇌, 척추 신경으로 들어가 척추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신종질환으로 일명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도 한다)을 치료받은 후 가정에 행복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질병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1991년 7월 어느 날,
과천종합청사로 출근한 남편(박홍기 장로)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휴직해야
했습니다.
저는 남편 대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보험회사, 학습지 교사 등으로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면서도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지요. 하지만 여러 병원을 수십 차례 오고감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각종 민간요법도 써보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가는 질병 앞에 '조금 있으면 낫겠지' 하는 희망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건강했던 남편이 몸을 조여 오는 통증 속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누워 있으니 애처로웠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걱정스런 마음에 수시로 전화를 했고, 퇴근 후에는 남편을 업고 거실을 돌며 '꼭 낫게 해 드리겠다'고 위로했지만 남편은 치료의 희망을 잃고 차츰
삶을 정리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두고 갈 아내와 자식,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했지요.
새벽기도를 쌓으며
눈물로 기도하니 남편이 주님을 영접하고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싸움 한 번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으셨지요.
특히 아버지는 가족과 손잡고 식사 기도를 하실 정도로 다정다감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제게 아버지 하나님은 늘
다정한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교회를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결혼 승낙을 받을 때 시아버님께 '교회에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맏며느리로서 시댁식구와 함께 사는 것보다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주님을 떠난 삶이었습니다. 3년 후 저는
견디다 못해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병세가 깊어지자 시아버님께서도 교회 나가는 것을 허락하셨지요. 저는 이전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를 쌓으며 남편을 위해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자녀들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하나님, 우리 아빠 꼭 낫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곤 했지요.
어느 날, 저는 직장 동료를 통해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남편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때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미처 기억지도 못하는 죄까지 하나님께서는 스크린처럼 떠올려 주시며 통회자복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을 만난 후 남편이 치료받고 일가친척이
구원받아
어느날 집 앞에 놓인 '만민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 안에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가 소개돼 있었지요. 남편은 책을 구입해 단숨에 읽은 뒤 만민중앙교회를 찾아가 이재록 목사님의 '십자가의 도', '사랑장', '팔복'
등의 설교 테이프를 구입해 왔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은 저희는 마침내 1997년 5월, 제5회 '이재록 목사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했습니다. 성회에 참석한 남편은 매일 통회자복을 했고 성령의 불을 받은 후 치료를 확신했습니다. 과연 병원 정밀 진단
결과, 남편의 몸은 모두 정상으로 나왔지요. 할렐루야!
남편이 건강해지자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시아버님도 주님을 영접하셨고,
지금까지 80여 명의 일가친척, 이웃, 친구 등이 전도됐지요. 현재 남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로펌(법무법인)에서 일하며 많은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준 자녀들 역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요.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무안단물 침수 후 50kg 이상 체중이 감량되는 놀라운 일이! - Muan Sweet Water -
이스라엘의 올렉 하진 목사
이스라엘의 올렉 하진 목사는 무안단물터(이재록 목사의 기도로 바닷가의 짠물이 단물로 된 권능의
현장)를 방문해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근 후 문둥병이 치료된 것을 떠올리며 믿음으로 무안단물에 침수했다. 당시 체중
140kg에 고혈압과 허리통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침수 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절제력이 생겨 50kg 이상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니 가정에 늘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 씨티바브 성도 (인도 첸나이 만민교회 남선교회 회장)
온 가족이 두려움과 질병의 고통 중에 있었으나
저는 인도 첸나이에서 오토릭샤(소형
영업택시) 운전이 생업인 40대 가장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인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지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 떨림과 두통이 심해 견딜 수 없었고, 밤이면 아내와 아들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가정은 차츰 엉망이 되어갔지요.
아내는 갑상선 및 심장질환으로 호흡이 곤란했고, 오줌소태 등으로 힘들어했습니다. 큰 아들은 저를
피해 가출하기 일쑤였고, 브레인 피바(뇌에 영향을 주는 열병)로 인한 시력 약화와 두통 때문에 괴로워했지요. 작은 아들 또한 몽유병 증세로
밤마다 잠에서 깨어나 돌아다녔습니다. 온 가족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지요.
권능의 손수건 기도로 중독된 술과 마약을
끊고
2007년 11월, 평소 알고 지내던 라비 성도가 "2002년 마리나 해변에서 열린 인도 연합대성회를 인도한 강사님의 지교회가
있다"며 첸나이 만민교회(담임 한정희 목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힌두교도였지만 당시 성회에 참석해 이재록 목사님께서 폭우
속에서도 요동치 않고 복음을 전하시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혼 향한 하나님 사랑을 전하시는 이재록 목사님을 보며
인도 국민은 큰 감동을 받았지요.
성회 소문은 대단해 기독교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성회에 참석했고,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인상 깊었던 '이재록 목사님'인지라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첸나이 만민교회는 GCN 방송을
통해 서울 만민중앙교회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 후 한정희 목사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이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제 머리에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기도를 받은 저는 두 번이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몸도 마음도
평안했습니다. 두통도 사라지고 머리가 맑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20년간 중독된 술과 10년 이상 복용한 마약을 쉽게 끊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힌두교도 가정이 개종하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저는 교회에서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대표 저서 『십자가의 도』를 읽으며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십자가
섭리를 깨달으니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2주 후 또 한 번의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금요철야예배 은사집회 시 단에서 해 주시는 기도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줄 몰라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주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반복하며 울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하얀 별과 같은 빛이 제 이마로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강력하던지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2미터 정도 뒤로 밀려났지요. 이 일이 있은 후 알코올 중독 후유증으로 남아 있던 손 떨림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제 삶을 180도 바꿔놓았고, 변화된 저를 보며 가족은 매우 기뻐했지요. 하지만 온 가족이 교회에
곧바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달리 아내는 한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 살다 보니 힌두교 가정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한정희 목사님이 저의 가정을 심방해 주셨습니다. 이때 기도를 받은 아내는 성령의 불을 받아 주님을
영접했으며, 곧바로 집 안에 있는 많은 우상을 버리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할렐루야!
가족과 함께 첸나이 만민교회에
다니며 기도에 힘쓰니
주님을 영접한 후 가정은 평안했지만 매일 밤낮으로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날 술과 마약으로 인해
생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지요.
어느 날 저희 부부는 막막한 현실 앞에 죽고 싶은 심정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조엘
형제가 상심한 저희 부부에게 자신이 어려울 때 기도해 축복받은 간증을 하며 매일 다니엘철야 기도회가 있으니 함께 참석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했고, 가정이나 일터, 교회 등 모든 곳에서 성실히 행했습니다.
가족 모두 첸나이 만민교회에서 화상예배(GCN 방송)를 통해
설교를 듣고 기도받으며,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목도하고 체험하니 믿음이 성장했지요. 더불어 한정희 목사님이 해주시는 손수건 기도로 아내와
아들들의 질병이 깨끗이 치료됐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지난
5월, 저희 가족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 1만 루피(약 25만 원, 인도 평균 월급)를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영육
간에 축복해 주셨지요. 6월 특별 은사집회 시 장모님과 아내, 조카 둘이 시력이 회복돼 안경을 벗었고, 부업으로 시작한 부동산 중개업을 통해
하루에 4만 5천 루피(약 120만 원) 수입을 올리는 등 3개월 만에 1렉 5만 루피(약 400만 원) 이상의 축복을 받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 모두 교회 일꾼이 됐습니다. 저는 남선교회 회장으로, 아내는 여선교회 회장과 아동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큰 아들은 1청년부 기관장과 찬양팀으로, 작은 아들은 흰돌성가대 대원과 율동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들도 전도돼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지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가정을 회복시키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반신 마비를 치료받은 남수단공화국 경찰관
하반신 마비를 치료받은 남수단공화국 경찰관

- 켄이 마이클
"손수건 기도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었습니다"
저는 남수단의 수도 주바 지역 본부 군 경찰관입니다. 2010년 8월, 평소처럼 저녁 순찰하던 중 강도가 쏜 총알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주바 손수건 집회'소식을 들은 저는 치료받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2011년 10월, 강사 정명호 목사님(예수교아프리카연합성결회 총회장)의 설교를 들으며 치료의 확신을 갖게 됐고,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이어 손수건(행 19:11~12) 기도를 받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곧 다리에 감각이 오면서 움직일 수 있었지요. 놀랍게도 그날 휠체어를 버리고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가 넘쳐요
- 조미형 권사 (1대대 4교구, 3-1여선교회)
저는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병중에 있을 때
너의 모든 행함을 보고 있었노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한시도 저를 잊지 않으시고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
목자님의 사랑!
가족 모두가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행복이 정말 내 것인가?'
저는 종종 꿈같은 행복감에 살갗을 꼬집어보곤 합니다. 남편이 공해병(술, 담배, 유해환경 중의 공해성분이 사람의 뇌, 척추 신경으로 들어가 척추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신종질환으로 일명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도 한다)을 치료받은 후 가정에 행복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질병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1991년 7월 어느 날, 과천종합청사로 출근한 남편(박홍기 장로)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휴직해야 했습니다.
저는 남편 대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보험회사, 학습지 교사 등으로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면서도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지요. 하지만 여러 병원을 수십 차례 오고감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각종 민간요법도 써보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가는 질병 앞에 '조금 있으면 낫겠지' 하는 희망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건강했던 남편이 몸을 조여 오는 통증 속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누워 있으니 애처로웠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걱정스런 마음에 수시로 전화를 했고, 퇴근 후에는 남편을 업고 거실을 돌며 '꼭 낫게 해 드리겠다'고 위로했지만 남편은 치료의 희망을 잃고 차츰 삶을 정리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두고 갈 아내와 자식,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했지요.
새벽기도를 쌓으며 눈물로 기도하니 남편이 주님을 영접하고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싸움 한 번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으셨지요. 특히 아버지는 가족과 손잡고 식사 기도를 하실 정도로 다정다감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제게 아버지 하나님은 늘 다정한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교회를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결혼 승낙을 받을 때 시아버님께 '교회에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맏며느리로서 시댁식구와 함께 사는 것보다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주님을 떠난 삶이었습니다. 3년 후 저는 견디다 못해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병세가 깊어지자 시아버님께서도 교회 나가는 것을 허락하셨지요. 저는 이전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를 쌓으며 남편을 위해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자녀들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하나님, 우리 아빠 꼭 낫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곤 했지요.
어느 날, 저는 직장 동료를 통해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남편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때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미처 기억지도 못하는 죄까지 하나님께서는 스크린처럼 떠올려 주시며 통회자복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을 만난 후 남편이 치료받고 일가친척이 구원받아
어느날 집 앞에 놓인 '만민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 안에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가 소개돼 있었지요. 남편은 책을 구입해 단숨에 읽은 뒤 만민중앙교회를 찾아가 이재록 목사님의 '십자가의 도', '사랑장', '팔복' 등의 설교 테이프를 구입해 왔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은 저희는 마침내 1997년 5월, 제5회 '이재록 목사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했습니다. 성회에 참석한 남편은 매일 통회자복을 했고 성령의 불을 받은 후 치료를 확신했습니다. 과연 병원 정밀 진단 결과, 남편의 몸은 모두 정상으로 나왔지요. 할렐루야!
남편이 건강해지자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시아버님도 주님을 영접하셨고, 지금까지 80여 명의 일가친척, 이웃, 친구 등이 전도됐지요. 현재 남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로펌(법무법인)에서 일하며 많은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준 자녀들 역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요.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무안단물 침수 후 50kg 이상 체중이 감량되는 놀라운 일이! - Muan Sweet Water
- 이스라엘의 올렉 하진 목사
이스라엘의 올렉 하진 목사는 무안단물터(이재록 목사의 기도로 바닷가의 짠물이 단물로 된 권능의 현장)를 방문해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근 후 문둥병이 치료된 것을 떠올리며 믿음으로 무안단물에 침수했다. 당시 체중 140kg에 고혈압과 허리통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침수 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절제력이 생겨 50kg 이상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니 가정에 늘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 씨티바브 성도 (인도 첸나이 만민교회 남선교회 회장)
온 가족이 두려움과 질병의 고통 중에 있었으나
저는 인도 첸나이에서 오토릭샤(소형 영업택시) 운전이 생업인 40대 가장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인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지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 떨림과 두통이 심해 견딜 수 없었고, 밤이면 아내와 아들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가정은 차츰 엉망이 되어갔지요.
아내는 갑상선 및 심장질환으로 호흡이 곤란했고, 오줌소태 등으로 힘들어했습니다. 큰 아들은 저를 피해 가출하기 일쑤였고, 브레인 피바(뇌에 영향을 주는 열병)로 인한 시력 약화와 두통 때문에 괴로워했지요. 작은 아들 또한 몽유병 증세로 밤마다 잠에서 깨어나 돌아다녔습니다. 온 가족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지요.
권능의 손수건 기도로 중독된 술과 마약을 끊고
2007년 11월, 평소 알고 지내던 라비 성도가 "2002년 마리나 해변에서 열린 인도 연합대성회를 인도한 강사님의 지교회가 있다"며 첸나이 만민교회(담임 한정희 목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힌두교도였지만 당시 성회에 참석해 이재록 목사님께서 폭우 속에서도 요동치 않고 복음을 전하시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혼 향한 하나님 사랑을 전하시는 이재록 목사님을 보며 인도 국민은 큰 감동을 받았지요.
성회 소문은 대단해 기독교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성회에 참석했고,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인상 깊었던 '이재록 목사님'인지라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첸나이 만민교회는 GCN 방송을 통해 서울 만민중앙교회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 후 한정희 목사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이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제 머리에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기도를 받은 저는 두 번이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몸도 마음도 평안했습니다. 두통도 사라지고 머리가 맑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20년간 중독된 술과 10년 이상 복용한 마약을 쉽게 끊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힌두교도 가정이 개종하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저는 교회에서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대표 저서 『십자가의 도』를 읽으며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십자가 섭리를 깨달으니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2주 후 또 한 번의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금요철야예배 은사집회 시 단에서 해 주시는 기도를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줄 몰라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주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반복하며 울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하얀 별과 같은 빛이 제 이마로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강력하던지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2미터 정도 뒤로 밀려났지요. 이 일이 있은 후 알코올 중독 후유증으로 남아 있던 손 떨림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제 삶을 180도 바꿔놓았고, 변화된 저를 보며 가족은 매우 기뻐했지요. 하지만 온 가족이 교회에 곧바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달리 아내는 한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 살다 보니 힌두교 가정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한정희 목사님이 저의 가정을 심방해 주셨습니다. 이때 기도를 받은 아내는 성령의 불을 받아 주님을 영접했으며, 곧바로 집 안에 있는 많은 우상을 버리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할렐루야!
가족과 함께 첸나이 만민교회에 다니며 기도에 힘쓰니
주님을 영접한 후 가정은 평안했지만 매일 밤낮으로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날 술과 마약으로 인해 생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지요.
어느 날 저희 부부는 막막한 현실 앞에 죽고 싶은 심정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조엘 형제가 상심한 저희 부부에게 자신이 어려울 때 기도해 축복받은 간증을 하며 매일 다니엘철야 기도회가 있으니 함께 참석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했고, 가정이나 일터, 교회 등 모든 곳에서 성실히 행했습니다.
가족 모두 첸나이 만민교회에서 화상예배(GCN 방송)를 통해 설교를 듣고 기도받으며,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목도하고 체험하니 믿음이 성장했지요. 더불어 한정희 목사님이 해주시는 손수건 기도로 아내와 아들들의 질병이 깨끗이 치료됐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지난 5월, 저희 가족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 1만 루피(약 25만 원, 인도 평균 월급)를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영육 간에 축복해 주셨지요. 6월 특별 은사집회 시 장모님과 아내, 조카 둘이 시력이 회복돼 안경을 벗었고, 부업으로 시작한 부동산 중개업을 통해 하루에 4만 5천 루피(약 120만 원) 수입을 올리는 등 3개월 만에 1렉 5만 루피(약 400만 원) 이상의 축복을 받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 모두 교회 일꾼이 됐습니다. 저는 남선교회 회장으로, 아내는 여선교회 회장과 아동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큰 아들은 1청년부 기관장과 찬양팀으로, 작은 아들은 흰돌성가대 대원과 율동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들도 전도돼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지요.
알코올 중독과 마약 복용으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가정을 회복시키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