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옛날, 그리고 지금 얘기

대학생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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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따금 네이트판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입니다.

 

다른 사람들 글을 한참 읽다가, 우리 집 이야기도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글을 올리게 됩니다.

 

재미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넘기시면 돼요. 어차피 이건 조언을 부탁하는 글이 아니라, 그냥 옛날에 이랬고 지금 이렇다는 제 신변잡기니까요.

 

그냥,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판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요즘 분들은 또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요즘 20~30대 여성 분들은 그저 그렇게 당하고만 계시지는 않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실 네이트판 기준으로 본다면 저희 집은 참 문제 많은 집입니다.

 

제 아버지... 참 여러 모로 답이 없으신 분이라서. 딸자식으로써 이런 소리 하는 것 자체가 죄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커서 아들을 낳는다면 외할아버지는 닮지 않게 키워야지 이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보다 경제력이 없으신데 큰소리는 더 잘 치십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을 하시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저희 언니를 낳았고, 5년 후 제가 태어났습니다. 두 분 다 공부를 오래 하셨는데, 언니 낳고 어머니께서 학위를 먼저 마치시고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 학위 따는 데 외국에서 계속 시간을 소비했고, 아이 둘 기르면서 아버지 학비까지 보태려니 정말 죽을 것 같으셨다던 저희 어머니는 결국 올해 안으로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혼이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그 해에 학위를 따서 한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해가 거의 십 년 째라든가요?

 

아버지께서 학위 따는 데만 근 십 년 정도 소비하셨으니 저희 어머니와 연봉 차이가 나십니다. 어머니가 사실 아버지보다 두세 배 잘 버시고요. 사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어머니께서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희 아버지는 큰소리 하나는 일등으로 치십니다. 내가 육십이 되면 뭐든 해 놓은 게 있을 거다. 이게 육십 되기 전까지의 레퍼토리이셨고 이제는 현실 인정이 되시는지 좀 사그라드셨지만 자신이 정말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칭찬 들어 가면서 사셨지만 집안에서는 진상도 참 그런 진상이 없으셨지요. 어찌나 잘나셨는지 집안일은 무조건 당연히 어머니 몫, 심지어 전구 가는 것, 못 박는 것까지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맞벌이셨는데도 아버지는 집안일에는 손끝 하나 대기 싫어하셨습니다. 옛날 남자들 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자기보다 바깥일을 더 많이 해도 그러던가요? 그리고 보통 전구 가는 것은 남자들이 많이 해 주던데요.

 

당신께서 화가 나면 소리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머니께서 화가 나면 짜증부터 내시던 분을,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로써는 도저히 존경하지 못합니다. 사랑하긴 하지만요. 사랑과 존경은 진짜 엄연히 다른 겁니다.

 

사실 잘나신 부분이 '조금' 있으시긴 합니다. 머리가 정말 좋으시거든요(이건 저희 어머니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건,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으신 분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머리는 좋아서 저 앞을 바라보고 있긴 한데 앞으로 가는 데 필수적인 '제 발로 걷기'를 하지 않으니, 이건 뭐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좌절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이상에 파묻혀 꿈만 꾸고 사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당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이 버시는 어머니께 '멍청하다'라는 소리를 서슴없이 뱉으시고, 멀쩡한 언니에게까지 '머리가 나쁘다', '굼뜨다' 라는 소리를 성인이 될 때까지 내뱉으셨을까요. 어머니께, 언니에게 상처 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셨을까요.

 

적어도 저희 어머니가 그저 당하고 사시는 분은 아니셔서, 참고 사는 고전적 어머님들과는 다르게 정말 많이 싸우셨습니다. 싸워서 권리를 쟁취한다는 게 꼭 노사 간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자식 때문에 참고, 참고 하다가 집을 아예 나갈 뻔하셨던 순간도 있긴 했는데, 그 때 초등학생이던 제가 제발 어디 가지 말아달라고, 나한테는 엄마 아빠 둘 다 필요하다고 어머니께 매달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두 분 다 나이가 드셔서 싸우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치시고, 또 어머니께서도 그만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사셨으니 지금에 와서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좀 봐 주면서 사는 것 같은 국면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아버지께서도 예전만큼 뻔뻔스럽게-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적합한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납니다. 혹시 괜찮은 단어 생각이 나시면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집에서 소리지르시지는 못하시고요. 언니에게도 더 이상 그런 소리 못하고 요새는 설거지도 얼마나 잘 하시는지(가끔 저 분이 남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느냐고 하시던 분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도 이젠 좀 살 만하다고 하시고요.

 

저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으신 어머니의 공은 치하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성이라는 것이 숨겨지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원래 본능을 억눌러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사는 존재잖습니까? 아버지께서도 지금까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셨으니, 이제 가족을 위해 가면 하나 튼튼한 걸로 장만하실 때가 됐지요.

 

아버지가 이렇게 된 데는 사실 할머니께 문제도 좀 있었다고 보는데, 할머니는 자기 아들 최고인 줄 아는 분이셨거든요. 딱 고전적인 시어머니셨습니다. 며느리 고생하고 있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당신의 귀한 아들이 고생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시는 분 말이에요.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도 그 귀한 당신의 아들과 삼 년을 같이 살아보시더니(제 학교 문제 때문에 저와 어머니가 같이 살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하고 떨어져 사니까 정말 낫다고, 다시 합치지 말고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기어이 학을 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어머니더러 제발 네 남편 좀 데리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별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고 어머니의 남편이니 같이 살아야지요.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 언니(직장이 집 근처라서) 이렇게 셋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는, 어릴 적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주제에 아버지하고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부탁한 제가 밉고 어머니께 죄송했어요. 지금은 그저 제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 벌어 효도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아버지도요. 그래도 제 아버지니까, 저를 사랑하시니까, 그리고 저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짜니까요.

 

집이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누가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 싸우고 남들처럼 이혼 위기를 넘기고 남들처럼 참아 가며 산 집 이야기 여기까지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말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란 것 알고 있지만, 그래도 끝으로 간단한 소감과 당부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첫째, 남편이 자신을 고통받게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같이 살아 보게 하는 것.

 

물론 어떻게 모든 집안이 이런 방법을 쓸 수 있겠냐마는, 이건 정말 저희 집에 큰 전환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건 그냥 저희 집 기준이니 안 맞는다 싶으면 듣고 버리시면 돼요.

 

저희 할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다든지 그 정도까진 아니셨지만, 좌우간 두 분 다 깨닫고 배운 게 있으셨기 때문에 그 후의 태도에 변화가 있으셨던 것 아닐까요?

 

둘째, 아무리 짜증이 나도, 아무리 장난을 치고 싶어도 상대의 인간으로서의 자질에 관해 입을 놀리지는 말 것.

 

아무리 가벼운 말이라도 듣는 입장에서는 상처받아요. 특히 여자는. 어머니도, 언니도 아버지의 그런 말씀에 너무 오래 상처받고 살았어요.

 

셋째, 남편이 짜증을 유발하게 하는 인간성을 지녔다면, 참지 말고 맞설 것.

 

참았다가 병 나고 싸우면 결국 뭔가를 쟁취한다는 것을 옆에서 잘 지켜보았던 1인으로써 드리는 말씀이에요. 모든 일에 사사건건 트집 잡을 필요는 없지만, 개조가 필요하다면 강하게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넷째, 아무리 상황이 뭐 같더라도, 그래도 자식이 있다면 이혼은 딱 한 번만 더 생각해 볼 것.

 

이건... 요새 분들한테는 잘 안 맞는 말일 수도 있겠고요, 자식에게 아버지 어머니 만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 주느니 이혼하시겠다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요.

 

저는, 옛날엔 아버지 어머니 싸우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었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려 하실 때는 공포로 숨이 막혔던 한 사람의 자식이었으니까요.

 

제가 아직 한 사람의 아내나 며느리가 되어 보지 못한 관계로 뭐라 말하는 것이 오만이라는 것 알지만, 그래도 남편이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 모두를 사랑한다면 한 번 정도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 다섯째, 인생의 선택에서 남의 시선 따위가 아닌,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것.

 

저희 아버지, 밖에서 보여지는 자기 모습만 생각하시다가(멋진 가장. 성공한 남성 등) 안에서는 완전히 말아 드셨습니다. 가정의 행복? 뭐 하러 굳이 나서서 지킵니까. 밖에서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집에서는 내 멋대로 소리질러도 되는 거 아닙니까? 돈 힘들게 버는 것보다 남들한테 잘난 모습 보이는 게 중요하지요. 돈이야 아내가 어떻게든 벌어서 집안이 돌아가긴 하니까요. 집안일? 남자가 어떻게 모양 빠지게 그런 일을. 그건 당연히 아내가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사셨다가 지금에 와서야 태도가 좀 나아지셨지요.

 

그래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이런 식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흘린 가족의 눈물은 어쩝니까. 가족을 사랑한다면 그런 일은,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되었던 겁니다.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Birth와 Death 사이에는 Choice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선택의 순간들에서 남 시선이 아닌 자신과 주위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 것일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로서는 영원히 풀 수 없을 문제이겠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만이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확신을 가지고 헤쳐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반성할 줄 아는 건강한 인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부터가 그런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여기까지. 하고 싶던 이야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이렇게 죽 털어놓아 본 적이 제 절친 말고는 없는지라, 시원하기도 하고 괜한 말 지껄였나 싶기도 하네요.

 

글이 길어졌는데,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천사예요!

 

그럼 이만. 모두들 열심히 즐겁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