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없이 낙태수술 받은 여자

검객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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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나는 13살의 작은 소녀였다. 나는 세 자매 중 막내였고 부모님은 내가 10살 때 돌아가셨다. 

 

인도네시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소녀들을 소집한 것은 그 때였다. 병원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명목이었다. 나는 48명의 소녀들과 함께 고향인 요기야카르타를 등졌다. 
나는 기차로 동부 자바에 있는 한 항구로 옮겨졌다. 한달 반 가량 파넬레 호텔에 수용되었고, 그 후 배로 반자르마신까지 이동했다. 
반자르마신에 도착했을 때, 일본군은 나를 그 마을에서 가장 큰 텔라왕 호텔로 데려갔다. 거기는 반자르마신에서 가장 큰 사창가이자 클럽이었다. 그리고 11호에 가둬지고 이름 또한 모모예로 바뀌었다. 

 

호텔에서의 첫 날, 나는 일본 의사에게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 의사는 검사 후 나를 강간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으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일본군이 한 사람씩 방에 들어오더니 나를 또 강간해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일본군을 밤낮으로 상대해야 했다. 시간제로 팔렸는데, 군인들이 1시간 즐기려면개인당 표 한 장을 2.5엔 주고 사야 했다. 

 

밤에는 표가 시간당 5엔까지 올라갔다. 어떤 군인이 밤새도록 상대해주길 원한다면 12.5엔을 지불해야 했지만 나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사창가의 주인은 아주 단순한 실수에도 때리기 일쑤였다. 샤워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도 걷어차거나 때리곤 했다. 그 때문에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지금도 통증이 오면 정말 죽을 지경이다. 
이 사창가에서는 콘돔을 반드시 사용해야 했음에도 군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낙태를 하도록 강요당했다. 마취제도 없이 단순한 수술 도구를 이용해 어떤 독일 여의사가 낙태 수술을 해주었다. 너무 아팠다...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팠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인도네시아 사람과 결혼해 아이 하나를 낳았다. 남편은 몇 년 전 이 세상을 떴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정신적 고통은 계속 남아있다. 휴가차 보로부두르에 갔을 때 거기서 일본 사람 몇 명을 보았는데, 순간 치가 떨리면서 그들을 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생 남편과 즐거운 성생활을 하지 못했기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남편과 성관계를 할 때마다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웠다. 돈도 받지 못하고 2년간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기억 말이다.
일제 치하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사람들을 보상해준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딸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보를 모으는데 관심을 가졌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씻어줄 무언가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일본 정부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1) 일본 정부는 위안부 모두에게 사죄해야 한다; 
2) 일본 정부는 다음 세대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본 역사책에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기록해야 한다.
3) 일본 정부는 경제적 보상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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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위안부 피해자인 마르디엠(인도네시아)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이상과 같이 여러 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가 학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바로 조선 여성이었습니다. 


이런 데도 일본 정부는 이미 충분한 배상을 했다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고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경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이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에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니

전체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안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올해에만 벌써 7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남은 생존자는 48명입니다. 



*댓글에 글의 제목에 관한 논쟁이 자꾸 나오는군요. 

이 글의 제목이 잔인하게 생각됩니까? 

수치스럽게 느껴집니까? 

부끄럽게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부디 알아주세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실제로 일본에 당한 일은 

훨씬 더 잔인하고, 훨씬 더 수치스럽고,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실제 벌어진 역사적 아픔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수치스러움을 무릅 쓰고 저런 고백을 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세요? 

그것은 이 사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온 세상에 널리 알려서 일본이 했던 그 잔악한 행동에 사과를 받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런 할머니의 의도를 잘 알고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억하세요. 

할머니들을 진실로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고,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관심 가지지 않고, 마침내 잊어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