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인생입니다!

짱구2015.08.06
조회174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젊은 여자가 스물아홉 나이에 소아마비 불구인 딸과 아들 둘(당시 4살,1살)을

데리고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친정 언니가 찾아와 사업자금을 빌려주면

동생네의 생활비 일체를 대주고

추후 충분한 보상도 해주겠다 하니, 살던집(종로의 한옥)을 처분하여 언니의 요구에

따라주고 강원도 원주로 낙향하여 살았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동생네 시댁의 큰집도 두 남매가 부모를 여의고 돈암동의 큰 한옥에

살고 있었는데 큰집의 딸은 당시 미국유학을 가야 하고 큰집 아들은 결핵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었습니다. 큰집 두 남매는 홀로된 작은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언니의

말을 믿고, 모든 걸 작은 어머니께 위임하고 미국유학비, 병든 오빠의 치료비 등을 하여

준다는 믿음과 신뢰로 위임받은 작은 어머니가 그 큰 한옥을 처분하여 이 역시 친정 언니의

사업자금으로 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두 집의 재산을 사업자금으로 가져간 언니는 동생의 가족과 동생 시조카 남매에게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전 큰집 딸은 사업자금을 빌려간 작은 어머니 언니의 딸(당시 성인 이었음)을

만나, 유학비와 병든 오빠의 치료비를 꼭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꼭 지켜지리라

믿고 유학길에 올랐고, 병든 오빠는 요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딸도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큰집 딸은 힘든 유학 생활을 했고, 병든 오빠는 요양원에서 돈을 내지 못해 쫓겨나 있을 곳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돌다 약 한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 갔습니다.

그 와중에 언니의 딸들은 대학도 다니고 그 시절에 누리기 힘든 호사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청상과부된 동생 역시 큰아들이 병에 걸렸으나 돈이 없어 병원 한번을 가보지도 못하고

손한번 못쓰고 죽어 버렸습니다.

 

그후, 동생은 언니에게 돈을 받으러 가도 모진 소리 한번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매번 사업을

하는 언니네 일만 실컷 도와주고는 와서 몸과 마음의 병으로 밤새 가슴앓이 하기가 일쑤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죽은 후, 언니의 모든 것은 언니의 큰딸이 맡아서 처리 하였습니다.

(해서 언니의 큰딸은 당연히 이모에게 갚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언니의 큰딸은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며 여류 사업가로 성공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빚을 갚지는 않았습니다. 이모(청상과부된 동생)가 찾아가면 용돈이나 몇푼

쥐어주고 남편이 있으니 맘대로 하기 힘들다는 변명으로 돌려 보내고는 했습니다.

회사가 커진 뒤에는 법인 회사돈을 맘대로 할 수는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고는 그저 기다렸습니다.

이모의 남은 아들은 학창시절 월사금을 못내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화가 나고

울분이 쌓여 사촌 누나인 언니의 큰딸을 찾아가기도 했으나,다정히 달래주는 누이의 행동에

되돌아 오곤 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입학 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결국 중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과부가 되었던 동생은 결국 가난과 병마에 평생을 허덕이다 죽을 보금자리 하나 변변히

없이 변두리 단칸방에서 삶을 마감 했습니다. 남은 동생의 자식들 또한 가난이 대물림 되어

오랜 세월 질곡의 인생을 어지간히도 슬프게 살았습니다.

 

돌아가시기전 잊지 않고 반드시 네 사촌누이가 갚아줄 것이다라는 약속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전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사촌이지만 동생으로서 도리도 다하며 명절에도

빼먹는 일 없이 경조사에도 빠지는 일 없이......

 

사촌 누나(언니의 큰딸)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습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들으면 모두

알만한 여류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 장애인을 위한 사업, 또 장학사업을 하며

사회사업으로도 명성을 쌓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헌납도 하고 종교적으로도 많은 일을 하고

자서전도 발간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빚은 갚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바보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명성을 쌓은 누나의 체면이나 자존심에 흠집을 내지는 말고 기다려야 겠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촌 누나는 사업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백억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일부 분배해 주었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찾아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점잖게 누나의 자존심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갚아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해주세요라고, 사촌 누나는 자신의 둘째딸을 불러놓고

관리를 맡겼다며 딸의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조카인 사촌 누나의 둘째딸은 냉정한 얼굴로 해줄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매몰차게 거절 당하고 돌아온 사촌 동생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시름시름 하다가 결국 암까지

얻어 현재까지 암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유학을 간후 돌아올 곳 없어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여 살던 큰집 누나가 한국에

다니러와 오랜 세월만에 암투병중인 사촌 동생을 보고 그때까지도 아주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던 사촌 동생에게 이행되지 않았던 약속들이며 형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곡으로 알렸습니다.

 

이를 악물고 투병을 하며 그나마 많이 나아진 몸으로 일어났습니다.

그사이 최고급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촌 누나를 찾아갔습니다.

분통이 터졌으나 사촌이라는 핏줄때문에 과격한 행동이나 언사는 무척이나 억제하며

양심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습니다.

누나에게 몸에 좋고 입에 맞는 음식을 4개월간 꾸준히 해다 먹이며

양심에 호소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에의 회한이 남아있었던 사촌 누나는

같이 손을 마주 잡고 울며 흔쾌히 갚아주겠노라 기꺼이 해결해 주겠노라 하였습니다.

 

기뻤습니다. 이제 모든 원망과 비극과 비참함이 해결되는구나 했습니다.

사촌 누나에게 해결해 주기로 하여 고맙다 했습니다. 그리고, 고맙다 말한 삼일뒤 평소처럼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을 식지않게 싸가지고 여느때처럼 찾아갔습니다.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더니, 그 날 제 어머니를 찾아와 있던 둘째딸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경비를 불러올려 잡상인인양 문전박대하며 쫓아버렸습니다.

사촌 누나의 재산을 자신이 관리하고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갚겠다 하였는데

제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게 막아버리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것에는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의 비참함보다 지금이 더 비참하고 괴롭습니다.

어찌해야 이 답답함을 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을 막고 있는 이 둘째딸은

나름 전공 분야에 이름이 알려진 대학교수의 아내입니다. 제 어머니처럼 교회에 다니며

활발하게 종교활동도 하며 주변인들에게는 교양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으나 평생을 부를 누리고 살며 제 어머니의 유산이 한푼이라도 축날까봐 움켜쥐고

당연히 갚아야 할 것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물려받을 돈이 줄어들까봐 자신의

어머니의 양심까지 저버리게 하고 막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억울합니다! 장학사업, 재단을 만들어 장애인을 돕는 사업이나 기부하는 것은

본인들의 명성을 쌓는 일이니 아낌없이 쓰고 눈에 보이는 선행은 하면서 어째서 갚아야

할 것은 이렇게까지 모른척 하는지 이런 위선적인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고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사회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위선의 가면을 벗겨 버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법률적으로 조언을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더욱 더 감사하겠습니다.

 

-leena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