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ㄹㄷ20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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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김순임 집사  

헛배가 부르고 속이 거북하여 회충약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임신중이었습니다. 저는임신중에 약을 복용하여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남편과의 합의 하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수술을 받은 후로 저는 여덟 번이나 유산을 하게 되었는데, 임신할 때마다 매번 유산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홉 번째 임신으로 아들 영현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91년 초, 구로구 가리봉동으로 이사하여 슈퍼마켓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단골손님이었던 하태순 집사님의 전도를 받았습니다. 교회에 대해 소개를 받았을 때 부흥이 잘 되는 교회, 물건을 대량으로 사 가는 교회임을 알고 있었기에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설교 말씀이 어찌나 좋은지 바로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열 번째 임신이 되었을 때는 주일예배 때마다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믿음으로 받았더니 전과 같이 유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1.2kg의 미숙아, 살아난다 해도 100% 장애자로

그러다가 1994년 3월에 출산예정일보다 석 달이나 앞서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첫아이 출산 때 제왕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순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순산은 하였지만 태어난 아기의 체중이 1.2kg밖에 안 되어 인큐베이터에 넣어 키워야만 했습니다.
그 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저는 날이 갈수록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을 잃어 갔습니다. 아기의 건강상태가 하루하루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병원에서 아기의 건강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는 병원에서 연락왔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습니다.
아기는 심한 빈혈로 인해 계속 수혈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으며 혈액순환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심장 양 옆의 혈관이 터져서 피 제거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오라고 하길래 "아기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구나"라는 직감을 하며 무거운 마음을 안고 병원에 가 보았습니다.

 

뇌출혈과 시력장애까지 겹치고

의사 선생님은 아기에게 뇌출혈과 시력장애가 왔는데, 뇌출혈은 수술을 할 수가 없으므로 100% 신체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눈은 수술하지 않으면 장님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요, 설령 수술에 성공한다 해도 정상인의 1/3정도의 시력만 회복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아기가 너무나 애처로워 병원 측에 수술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차마 아기를 쳐다볼 수가 없어서 병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기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져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잠을 편하게 잘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기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던 중 지난날을 떠올리며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실수로 약을 복용하여 유산시킨 이후로 임신할 때마다 어린 생명이 뱃속에서 자라지 못하고 죽어 가는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악몽 같은 세월들,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했던 것과 기도를 쉬었던 것,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던 일, 혈기를 내었던 일 등이 연이어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5월에 열린 "제 2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통회자복 후 믿음대로 행하였더니

성회 기간중 매시간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니 회개할 것이 많이 떠올라 철저히 통회자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임하면서 '딸 아이를 퇴원시켜서 믿음으로 기도받으면 치료받을 수 있겠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왔습니다.
"더 이상 아기를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집에 데려가십시오."
1994년 5월 7일, 병원 측에서 더 이상 치료하기 어려우니 아기를 데려가라는 통보가 왔으나 그 말이 이제 저에게는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퇴원시킨 후에 아기를 안고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아기의 몸무게는 1kg도 채 안 되었으며 약물중독으로 온몸에서 냄새가 진동하였고, 작은 이마에는 2-3cm의 커다란 상처가 있었습니다. 혈관이 보이지 않아 이마를 찢어서 주사를 놓았던 자리였습니다. 저는 강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으려고 애썼지만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환자를 위한 특별 집회」가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마침 성전 입구에서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을 뵙게 되어 기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아기를 보는 순간 섬짓 놀라셨다가 이내 진정하시고 기도해 주시던 원장님의 표정을 지금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곁에 계셨다가 아기를 보신 이정선 전도사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이 마치 개구리 같았다'고 후에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쭈글거리는 이마, 살이 없어서 눈꺼풀만 툭 불거진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당신도 믿으세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는 아기의 젖병과 포대기를 샀습니다. 남편은 어차피 며칠 쓰고 버릴 포대기는 제일 싼 것으로 사고 젖병은 아예 사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기가 젖병을 빨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 장애자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실제로 남편은 아기가 살아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남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좋은 포대기와 젖병을 샀습니다.
제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제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아기는 건강하게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기를 교회에 데려가면 저런 아기도 데려왔다고 조롱거리만 되지 않겠소!"
교회에 데려가 기도받겠다는 저의 말에 남편은 역정을 내었지만, 저는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당신도 믿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를 꼭 살려 주십니다."
 
1994년 5월 8일, 주일날 저는 교회에 들어오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뵙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린 후 믿음으로 기도를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는데, 20분 정도 경과되면서 아기는 기저귀에 흠뻑 태변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을 수도 없을 만큼 지독하였던 약물 냄새도 3, 4일이 지나자 싹 빠져 나갔습니다.
부흥성회 기간중 환자를 위한 집회 시간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간시간 예물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내보였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딸 '한나'의 뿌옇게 흐물거리던 동공이 차츰 검은색을 찾아갔으며 시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젖병도 빨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부흥성회가 다 끝난 후 만민기도원 집회에 계속 참석하였는데 아기는 두어 시간 간격으로 먹는 양이 점점 늘어 가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자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병원에서 한나를 퇴원시킨 지 한 달쯤 지난 6월 초순에 한나를 돌보아 주던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 아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 병원이 생긴 이래 그렇게 작은 아기는 처음이에요."
"우리 한나요? 잘 커요. 요즘 하루 동안 먹는 분유량이 건강한 아기들처럼 많이 먹어요."
"그래요? 정말 기적이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요? 병원에 나와서 아기 좀 보여 주실래요? 의사 선생님들도 몹시 궁금해하시거든요."
간호사는 너무나 의외의 대답을 듣고 놀라워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매달렸더니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 이재록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를 받고 살아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지금도 저는 당시의 일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커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한나가 하나님의 은혜로 정상적으로 성장하니 저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여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남편 역시 한나가 재롱을 부리며 예쁘게 성장하자 열심히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응답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남편도 주일을 잘 지키면서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 1:6-8).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카랑카랑한 아들 영현이, 이제 정상아로 살게 된 딸 한나를 주 안에서 잘 양육하여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오른 쪽 눈이 실명된 채 태어난 우리 아들, 이제는 색깔도, 물체도 구별할 수 있어요!
- 황혜경 집사

"눈이 이상한 것 같아요!"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준이 엄마! 준이 눈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이웃 사람들은 네 살 난 준이의 눈동자가 허여멀건 것이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등 이런 저런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날 때부터 계속 보아왔기 때문인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내 아들이 뭐가 어떻다고 이상하다고 하는 거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지요.
그런데 준이는 네 살이 되었는데도 툭하면 벽에 부딪치거나 방바닥에 '쿵' 하고 넘어지는 일이 잦았고, 한 번은 현관에서 넘어져 전에 다친 턱을 또 다쳐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우리 준이가 성격이 급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눈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안과를 찾았는데 큰일나기 전에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진을 받았는데 뜻하지 않은 결과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준이의 오른쪽 눈이 날 때부터 망막이 손상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단지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내온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날 때부터 시력을 상실하였군요"

"그럴 리가요?"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제 귀를 의심하며 진단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어 남편과 함께 부산 동아대학병원, 성모안과병원, 삼성병원, 마산 평안안과 등을 찾아 다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한결같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선생님! 눈동자를 교체해서라도 안 될까요?"
"현대 의학으로선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필름 자체가 상했기 때문에 카메라를 바꿔도 소용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단정적인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 저는 남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1996년 9월, 서울대 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준이의 눈을 고쳐 달라는 저희 부부의 애원에 되돌아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차가운 얼음같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외국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말씀드리기가 마음아프지만 빨리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하실 겁니다."
참으로 소중한 아들이 외눈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실낱같은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깊은 절망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 후 준이의 눈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고 그 때마다 하나님께 고쳐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그러던 1997년 5월 5일,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 소문을 듣고 '이 성회에 참석하면 문제 해결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와 남편과 함께 울산만민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교회로 가는 도중에 전봇대에 부착된 부흥성회 포스터를 보는 순간 좋지 않았던 몸이 개운하면서 상쾌해졌습니다.
이러한 체험과 함께 설레이는 마음으로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화상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강사님을 직접 뵙고 싶은 마음이 불일듯 일어나고 기대감에 부풀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차를 타고 아들 준이와 함께 서울로 왔는데 만민중앙교회 본당에 들어서면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준이가 40도의 고열과 심한 복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는데 성전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이 내리고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부흥성회 기간 동안 저는 10일 금식기도를 하며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각종 예배와 환자 집회,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설교 말씀이 끝난 후 강사 이재록 목사님께서 전체를 위한 환자 기도를 해 주실 때마다 믿음으로 기도를 받으니 평소 아들 준이가 앓고 있던 중이염과 심한 비염, 기침 그리고 저의 어깨결림이 치료된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니 준이의 눈도 꼭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제 마음에 뜨겁게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축복은 제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하면서 천국의 소망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준이의 눈 치료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나머지 남편과 상의하여 그 동안 모아 두었던 천만 원을 하나님께 드렸고,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된 저희 가족은 울산만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하고 싶은지 아예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하여 늘 기도하고 예배하기를 힘쓰며 마음에 주관이 오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금식도 하였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교사인 저는 틈이 나는 대로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미화부장, 구역장 등 여러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등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코자 열심히 달려나갔습니다.

"엄마, 오른쪽 눈이 보여요!"

금년 2월, 백합 초등학교로 발령받은 날인데 준이와 함께 길을 건너다가 문득 아들 준이의 눈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준이의 왼쪽 눈을 가리고 보이는 것을 자유롭게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준이가 너무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보여요! 저기 노란 택시가 지나가죠?"
얼마나 또렷이 말하는지 일순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달리는 트럭을 가리키며 "준아! 저건 뭐야?" 하고 물어 보았더니 "파란색 트럭이에요!" 하고 정확히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연이어 가리키는 물체의 색깔과 이름을 다 알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이 치료받은 것을 확인한 저는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고, "오! 하나님"을 연발하며 능력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는 치료의 사실을 확인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지난 6월 26일에는 울산에 있는 안과 병원을, 지난 7월 1일에는 부산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셨고 간호사도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리며, 그 동안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고 진액을 다해 기도해 주신 이재록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불임의 고통에서 벗어나 6년 만에 건강한 아들을 낳았어요!
- 성 민 집사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성 민 집사 (12-2교구 조장, 1-3남선교회)

"두 분 모두 정상입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시도해도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불임과 유산으로 인해 고통 받던 중

저희 부부는 결혼한 후,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해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젊으니까 곧 생기겠지.' 했던 마음이었는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안하고 걱정만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99년 어느 날, 본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며 아내와 함께 같은 문제로 고민을 나누던 문형진 집사님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잉태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함께 기뻐하며 저희도 믿음을 가지고정성껏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여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임신 6주가 지나자 자연 유산이 되고 말았지요.

'무슨 이유일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저와 아내는 물론, 부모님께서도 매우 마음 아파하셨고, 누구보다도 당회장님께서 너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당회장님께서는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저의 모습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미지근했던 신앙생활을 철저히 회개하고

저는 아버지 성범모 장로님과 어머니 이순 권사님의 슬하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어떤 체험도 없이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업터를 운영하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한 달 수입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는데 운영비와 인건비 걱정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담배를 끊었으나 막상 잉태의 축복을 받으니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다시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요.

"아버지 하나님!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진정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데 저는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깨닫게 되고 본교회에 나타나는 무수한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단지 지식으로 믿었던 모든 것을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기도를 받고 6년 만에 잉태 축복을 받아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그 후, 제 생활은 180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의지하기 시작했고 온전한 주일성수는 물론이요 온전한 십일조 생활도 하였습니다.

2000년 어느 날, 당회장님의 꿈을 꾸었는데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져 주시면서 축복의 기도를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잉태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는 꿈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었고 아내도 '이제 아이가 생기겠구나' 하는 믿음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약 한 달이 지난 후, 저희는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았고 그 결과,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가 잉태된 것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하늘을 나는 듯한 행복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래도 한 번 유산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아내와 저는 항상 지켜달라고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어진 사명도 잘 감당하고자 힘썼습니다.

2001년 9월, 아내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할렐루야!

올해 7살이 된 아들 진이가 본교회 부설 만민 선교원에서 배운 율동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을 보면 우리 가정에 참된 행복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가정의 행복은 물론, 일터에도 축복이 넘쳐나요"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이뿐만이 아니며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분야분야에서 충성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누나 성숙 선교사님은 필리핀 선교사로, 여동생 성현 집사님은 여선교회 조장으로 사명 감당하고 있으며, 막내 매제 유송열 집사는 여동생 성희 집사와 결혼한 후 본교회에 등록하여 지금은 만민 TV에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구 조장, 아내는 구역장 연합회 임원, 진주중창단 단원, 샬롬성가대 대원으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하는 사업터에도 일거리가 넘쳐나 물질의 축복을 받고 있답니다.

지금 저의 삶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은 이 땅에서 함께하며 아버지 하나님을 섬겨 왔던 온 가족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항상 저희 가정을 마음에 품고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무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 약한 자를 고치시는 권능


"하나님이 한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시편 62:11)

2천여 년 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권능으로 수많은 질병과 연약함을 고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하게 기적을 베풀기 원하시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아 그를 통해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통해 선포된 성결의 복음은 전 세계 수많은 영혼들에게 참 믿음을 소유하게 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케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권능의 역사 가운데 큰 감동을 주었던 간증 일부를 발췌해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에이즈 치료 등 CNN에 보도된 폭발적인 권능이 전세계로......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에이즈(AIDS)를 치료받았습니다-시공 초월한 권능의 기도로 "

레오폴드 성도 (미국 뉴욕인터내셔널 만민교회)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2009년 6월부터 급격히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기침이 잦고 통증과 함께 온몸에 피부 종양이 생겼지요. 저는 치료받고자 저명한 목회자들을 찾아가 기도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 센트럴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폐렴과 에이즈'였습니다. 병원에서 강한 약물로 치료를 했지만 증상은 더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지요.

저는 '하나님이라면 치료해 주실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재록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2년 전, 친구의 어머니가 전해주신 페루와 뉴욕 연합대성회 DVD를 통해 이 목사님의 권능을 본 것이 떠오른 것입니다.

2009년 8월부터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만민 TV를 시청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마치 제게 하시는 듯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경청했습니다.

특히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시력과 청력이 회복되고 갖가지 질병이 치료되며, 휠체어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커졌습니다. 또한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기에(시 62:11) 분명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병원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이재록 목사님의 인터넷 설교를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았습니다. 점점 통증이 사라지며 몸이 호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고, 제 마음은 평안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2010년 10월 16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 그날도 목사님의 기도를 받는데 온 방 안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어 제 몸은 뜨거웠고 땀에 흠뻑 젖었지요.

다음 날, 저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모든 테스트 후 깜짝 놀랐습니다. 에이즈와 폐렴 증세가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믿을 수 없다며 저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 재검받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결과는 동일했지요. 할렐루야!

요즘 뉴욕인터내셔널 만민교회(담임 심제임스 목사)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로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확실한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