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때 같은반에 왕따 썰.ssul

aa1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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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ㅡ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본다고 해도 꽤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던 것에 틀림없었고 다른 이들에게 무척 특이한 인상을 남겼던 어떤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 친구는 내가 볼 때마다 머리가 언제나 짧은 삭발인 상태였고 일부러 교복을 몇 군데 뜯어서 누더기처럼 만들어 입고 다녔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그의 옆머리에 작게나마 미숙한 스크래치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업을 받을 때 그는 특유의 흥미를 잃은 듯한 무관심한 시선을 칠판의 그리 멀지 않게 떨어진 곳에 던지면서 턱을 괴고 반쯤 말아 쥔 손으로 귓볼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또한 여간해서는 그 쪽에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그는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통의 평범한 대화가 조금이라도 띠곤 하는 활기를 뺏어들이는 투명한 벽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 내에서 조금이라도 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ㅡ

그는 책에서 거의 손을 놓지 않았는데, 내 눈에 띄었을 때는 대부분 교과와 별다른 관련이 없는 두꺼운 양장본을 읽고 있었다. 희미하게 멀리서 보이는 띠지에 쓰여 있던 것들을 기억해 보면,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 있는 작은 서가에서 그가 읽고 있는 것과 똑같은 표제의 책을 찾아 내어 가끔씩 들추어 보곤 헀으나, 과거에 난 본디 그런 무겁고 딱딱한 책은 ㅡ 궁할 때 사뭇 요긴한 베개나 키높이 발 받침 ㅡ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급적 의심을 사지 않고 지니고 있고자 할 때나 소용이 있는 살상력이 미미한 무기로밖에는 쓰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인내심을 가지려고 해도 얼마 읽지 못하고 대부분은 그냥 덮곤 하였다.

그에게는 자주 오래된 문어체의 느낌이 나는 희곡과 닮은 말투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더러 그는 다른 아이들을 지칭해 '그대'라고 불렀고, 언젠가는 교사에게 대고 당신이라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하교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들어온 역사 과목 선생에게 전 학급생이 보는 앞에서 ㅡ [가운데가 반으로 꺾인] 대수건 자루로 ㅡ 곤죽에 가깝게 되도록 흠씬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시 주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 오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ㅡ 이라크로 파병된 자이툰 부대 철수를 주장하는 자필 전단을 교내에 뿌렸는데,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학교 측에서는 그가 잘하는 글쓰기로 백지 수 장을 양면 빼곡이 채워서 반성문을 써낼 때까지 집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학교를 중도에 파하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두발 규제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인 것으로 인해 인근 대학 학보에 그를 인터뷰 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가 성실히 수업에 참석하는 일은 실제로 무척 드물었다. 대개의 경우는 종이 울리기 직전 교문에 들어선 이후로 ㅡ 그는 걸상에 앉아 2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나서, 3교시부터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학교 안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ㅡ 점심 시간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밥을 먹은 뒤에 군데군데 해어져 나풀대는 가방을 걸머멘 채로 누구에게도 개의치 않고 가볍게 담을 넘었다. ㅡ 어느 날 나는 느긋이 점심을 먹고 나서 교정의 둘레에 나 있는 길을 걷던 중에 우연히 그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보통 그의 일과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ㅡ 달리 큰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일상은 늘 그런 식으로 되풀이되었다. 담임 선생을 포함한 대다수의 교사들은 교칙을 무시하는 그의 건방진 행동에 크게 분노했다. 그리 하여 처음에는 여러 번 혼을 내고 반성문을 쓰게 하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훈계가 이어져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던 데다가 ㅡ 최후의 방법으로 택한, 그것도 바빠서 연락이 잘 되지 않다가 겨우 만남을 성사시킨 부모님과의 면담조차도 "저희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니까 [그냥] 놓아두시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그대로 포기해 버리고 만 것처럼 보였다. ㅡ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그 친구가 대부분 학교에서 손에 꼽히는 성적을 내곤 했다는 사실이다. 어지간한 교사들도 그애의 분망함에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어찌 됐건 머리 하나만은 좋은 녀석"이라는 데만은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달짝지근한 풀 내음을 실은 바람이 가볍게 불어오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 봄꽃이 만개하던 졸업식 날이었다. 한 달이 더 지난 시점에서 나는 이미 지방의 교대로 진학이 결정된 상태였다. 세세한 정보에 밝은 친구로부터 그가 서울의 명문 사립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리운 교복을 마지막으로 차려 입은 졸업생들이 3년 동안의 추억이 담긴 널찍한 교정에 도열해 있었다. 교장 선생으로부터 예의 길고 지루했던 축사도 어느덧 끝이 나고, 그가 이야기의 말미에 앞으로 사회인이 되고 나서 주의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자못 진지한 어조로 덧붙이는 동안 나는 이 학교를 떠나는 데 대해서 후련하고도 조금은 안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그'에 대해서 이유 모를 정다운 그리움이 움튼 까닭에, 그만 무심코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그와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은 것은 수업을 툭하면 거르기 일쑤이던 그에게 일부 선생들의 전달 사항을 옮긴 것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 내내 우연의 조화에 의해 그와 같은 반에 배정됐기 때문에 그 아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웬만큼 얼굴을 익히고 있었을 거라고 믿었다.

망설임 때문에 약간 주저하는 듯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무턱대고 그를 붙잡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 그는 조금은 의아해 하는 눈치였지만 그다지 거리감을 드러내지는 않고, "가능하면 사회 운동가가 되려고"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틀림없이 그라면 아마 뜻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한 뒤에, 그에게 '친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뒷풀이를 하러 갈 건데 괜찮으면 참가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유감이나 이미 가족들과 약속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게 되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헤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있다가 부득이하게 휴대전화가 고장난 관계로 그의 연락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사라지게 됐다. 그 쪽도 역시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 또한 고교 시절의 협소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게 됐고, 다양한 성격의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면서 얼마 동안은 그런 친구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ㅡ 아마도 1년에 한 번 미만으로 ㅡ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졸업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 무렵 고등학생 시절의 학급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달리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지금도 동창회의 간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몇몇 이들과도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한 호재가 겹친 덕분에 고등학교 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과 비공식적인 작은 모임 같은 것을 가지게 됐다.

약속한 당일, 택시를 타고 한 시내의 고깃집 앞에서 내리자 반가운 얼굴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참석률은 예상보다 꽤 높았다. 그러나 ㅡ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자기가 소속된 학교에 대해서 특별한 애착을 보이지 않았던 그 친구의 모습은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흥에 익은 즐거운 분위기로 시작한 모임에서, 술잔을 기울여 가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끝에, 나에게 있어서 그리움의 대상인 예의 미스테리어스한 '스킨헤드'가 예상 외로 빈번하게 화제에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ㅡ 고등학교 시절 그를 조금이라도 알았던 사람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와 같은 반이던 친구들은 대체로 그를 '좀 이상하지만 아마도 머리는 좋은 것 같았고, 주변에서 사고 칠 거리를 찾아다니기 좋아하던 애'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ㅡ 그러는 동시에 학교 내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그에게 /알듯 말듯/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적지 않았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나중에 우연히 그가 한 중견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시사 주간지에 편집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론인이라, 어쩌면 그 친구와 잘 어울리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한편, 사회를 일신하려는 꿈을 품은 개혁가와 신문 편집자 사이에 가로놓인 간극을 헤아리게 되면서 일순간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과 쓸쓸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