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고백받은 건가요?? 상담좀 부탁드려요

ㄱ2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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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정리 =
1. 불량아?가 화분에 물 주는걸 본의 아니게 엿보게(??)됨
2. 지난 반년 사이 처음으로 얘기해 봄
3. 다음날 꽃을 선물로 받음(???)
이게 무슨 일인지...



저희 반에 맨 뒤쪽에는 화분에 담긴 몇 포기의 화초가 있어요. 아이들의 정서 교육을 위해 식물을 비치해 두고 모두 힘을 모아 가꿔 나가자는 취지로 선생님이 조성한 곳이지요. 그렇지만 화분을 관리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누구나 생각만 하고 있었지 실질적으로는 몇 달 이상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화초 관리 당번 같은 것도 존재했었던 느낌이 들지만 무관심 때문에 얼마 안 가서 흐지부지 해졌고, 선생님이 물 주는 것 잊지 말라고 드물게 잔소리를 할 때도 그때뿐. 사실상 큰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지가 오래인데, 묘하게도 용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확하게 개학을 한 다음 날 - 저한테 아침 일찍 학교에서 해야 될 숙제가 있어서, 교실 앞을 지나면서 - 이번에는 제가 (5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마도 첫 번째로 도착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딴 책상에 벌써 다른 누군가의 가방이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평소엔 이날처럼 일찍 등교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벌써부터 와 있는 걸까' 의문을 갖기는 했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대각선으로 세 칸쯤 앞에 있는 제 자리에 걸터앉아서 노트를 펼쳤지요.
그런데 돌연 "드르륵" 하고 앞문이 열리더니, 물뿌리개를 손에 들고 학교에서 불량하기로 유명한 남자애가 서있는 거예요.
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요!
저는 새 학년 들어서 전학을 왔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들리기로는 1학년 때부터 무단 지각, 조퇴를 밥먹듯이 하고 직접 본 적은 없어도 뒤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도 하던 아이인데, 말 그대로 정면에서 눈이 마주치니까 멈춰서 제 모습을 5초 정도 지긋이 쳐다 보다가, 놀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저한테 들릴 듯 말 듯이 작은 목소리로
"안녕" 하고 인사를 했어요.

그 아이랑은 그때까지 한 번도 인사해 본 적이 없는데! 정말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느낌상으로는 짧은 말이라도 한두 개 주고받은 것도 이번 일 포함해서 3, 4번째 되는 것 같아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안녕, 일찍 왔네." 간단한 인사로 제가 먼저 입을 떼었어요.
거기에 그 아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평소에도 이 시간에 자주 와?"
저는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게 부담스러워서 살짝 시선을 피했어요.
"가끔씩 오고 싶을 때만."
"그런데 그거..." 조심스럽게 저는 그 애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을 가리켰어요. 그랬더니 잠시 자기 손을 바라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저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별로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정도 말하고 나니 더 할 말이 없어져서, 자리에 앉은 채로 맞은 편에서 그 아이의 행동을 곁눈질로 좇았는데, 자주 해본 것 같은 익숙한 솜씨로 여러 개의 화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물을 주더니, 제 앞을 질러서 선생님 책상 앞으로 나가길래 순간적으로 뭔가 했어요.
잘 보니까 칠판 밑에 떨어진 분필 조각이랑 찌꺼기를 주워서 버리고 나서, 아까 들어왔던 것처럼 교실 문 밖으로 나간 뒤에 - 다른 애들이 적어도 대여섯 명 이상 들어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다가, - 느지막이 무슨 소설책 같은 걸 한 권 들고 조용하게 들어와서 그 애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줄곧 읽고 있었어요. 그제서야 일찍 다니기로 유명한 제 친구한테 "저 애가 전에도 저렇게 빨리 온 적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원래부터 가끔씩 저렇게 일찍 왔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러면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해요.
지금까지는 저희 담임 샘이 엔간히 덜렁거리는 남선생님이지만 그래도 반에서 한 명뿐인 어른으로서 책임 의식을 발휘해서 규칙적으로 꾸준히 물을 주고 있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 저는 그때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애가 이제까지 혼자서 전부 도맡아 물을 주고 있었다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저는 별 다른 일도 없었고 작은 인연은 어차피 그걸로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일찍 학교에 가니까 어제 있었던 가방은 아무 데도 없고, 그 대신일까요, 제 자리에는 조그마한 봉투에 담긴 꽃씨가 책상에 놓여져 있었어요.
지금껏 상상해 보지 못한 상황에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일까 싶었지만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그 봉투를 얼른 주머니에 넣었어요.
어제 걔와 잠시간 대화를 나눴던 것을 만약 누가 봤던 게 아니라면, 이런 걸 남길 사람은 '그 아이'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애의 자리로 가까이 가 보았는데, 걸상 구석에 매직으로 작은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발견했어요.

국화.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물은 하루 두 번
식물은 인간이 애정을 쏟는 만큼 돌려줘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이 문장을 보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혼란스러워요. 왜 저한테 이런 걸 준 건지 잘 이유를 모르겠어요.
내일부터 학교에서 이 아일 만나면 저는 어떤 식으로 말을 걸고 대해야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