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전 신촌의 4년제 대학을 나와서 광고 회사에 다니구요. 남친은 대학에서 미술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에세이 작가 겸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있습니다.
남친은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에 비록 활발하지는 않지만 대화 주제도 너무 상냥하고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응해 주고, 선하고 순수한 좋은 사람인데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은 심한 우울 상태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한번 스위치가 켜지면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말수도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주변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우울 상태일 때 자주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날 기억하는 사람 없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면 좋겠다' 같은 류의 자기 비하성 발언. 배려심도 많고 남한테 상처주는 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모든 스트레스를 혼자서 떠안고 사는 것 같아요. 어떻게 고칠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니 이런 성격이 집안 내력이라네요. 생각해 보니까 저랑 남친이 정식으로 사귀게 되기 전에는, 아마 서로를 생각해서 일부러 우울한 때를 피해서 만났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자기보다 더 뛰어난 형제들한테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20대 초중반에 박사 학위를 딴 첫째 누나부터 연수원에서 두 자리 이내의 성적을 받고 로펌에 간 작은 형 등등. 부모님이 꼭 엄하셨다기보다 주위로부터 비교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격인 것 같습니다.
2년 하고도 조금 더 전에, 남친이 학기중에 약 3일 정도 실종된 적이 있었는데, 학교에 출석도 안 하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안 돼서 놀란 마음에 그때부터 사방으로 다급히 수소문을 했는데, 며칠 뒤 지방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XX씨를 보호하고 있으니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알고 보니 평소에도 몸이 안 좋은데 당시 그리고 있던 작품에 진전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단신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며 방황하다가, 휴대전화도 잃어버리고, 12월 해변에 매선 거칠은 바람 때문에 외투 한 장에 의지해서 체력을 잃고 쓰러질 때는 마지막까지 수첩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그 외에도 자는 것도 잊고서 작업을 하다가 집에서 몇 번 쓰러진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나에게 가능하다면 끝까지 지켜봐 주고 싶은데, 주변에선 그런 사람은 나중에 너한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헤어지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자꾸 하구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요즘은 이 정도로 센티멘털한 사람에게 평소 무사태평하고 열에 8할은 낙천주의인 나 같은 걸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드네요.
지금은 일단 마음을 열어놓은 채 최악의, 또는 최선의 경우를 고려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데, 어쩌면 이런저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예 빨리 결혼을 하는 게 나은 방책이 될 수도 있겠는지요? 사귀고 있는 그이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손에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것도 사실이구요.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혼자 의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 많이 답답하네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의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까지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 처음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이 두렵습니다. 게다가 젊었을 적 6개월 남짓하게 동거까지 경험하셨을 정도로 예술계열의 남성과 깊은 관계를 가졌지만 끝내 파혼하셨던 엄마는 제가 사귀는 사람에 대해 내심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한층 더 불안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남친네 집에서 저를 어떻게 보시고 있을까 하는 것인데, 반년 정도 전에 한 번 그이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지만, ㅡ 세 살 위의 형님은 저에 대해서 그럭저럭 긍정적인 평가를 남기셨는데 ㅡ 남친으로부터는 당시 아버님께서 저에 대해 정확한 평가는 당분간 보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나쁜 가능성이지만, 그이에게 혹시 비밀스럽게 내정된 상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지금도 제 마음 속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저와 그 사이에 지금과 같은 관계가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작지는 않은 고민입니다. 저렇게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남친 옆에서 과연 제가 흔들림 없이 언제까지나 지탱해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언젠가 남친이 절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지만, 주위의 우려와 반대를 앞에 두고 제 마음이 동요하리라는 것 또한 실은 적잖게 염려스럽습니다.
가까이 있는 일찍 결혼한 아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로 행복한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지만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때 진실한 부부간의 신뢰가 동반된 관계에서 큰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ㅡ 순전히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그이의 정서적인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ㅡ 언젠가 할 일이라면, 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고 이러니저러니해서 한번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니 미래의 전망에 관해 조금은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게 되네요. ㅡ 그러나 일부분의 관점에 치우쳐 올바른 균형을 잃는 것은 항상 무엇보다 큰 두려움입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여러분의 지혜를 빌려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이 남자랑 결혼해도 될까요?
남친은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에 비록 활발하지는 않지만 대화 주제도 너무 상냥하고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응해 주고, 선하고 순수한 좋은 사람인데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은 심한 우울 상태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한번 스위치가 켜지면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말수도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주변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우울 상태일 때 자주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날 기억하는 사람 없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면 좋겠다' 같은 류의 자기 비하성 발언.
배려심도 많고 남한테 상처주는 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모든 스트레스를 혼자서 떠안고 사는 것 같아요. 어떻게 고칠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니 이런 성격이 집안 내력이라네요. 생각해 보니까 저랑 남친이 정식으로 사귀게 되기 전에는, 아마 서로를 생각해서 일부러 우울한 때를 피해서 만났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자기보다 더 뛰어난 형제들한테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20대 초중반에 박사 학위를 딴 첫째 누나부터 연수원에서 두 자리 이내의 성적을 받고 로펌에 간 작은 형 등등. 부모님이 꼭 엄하셨다기보다 주위로부터 비교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격인 것 같습니다.
2년 하고도 조금 더 전에, 남친이 학기중에 약 3일 정도 실종된 적이 있었는데, 학교에 출석도 안 하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안 돼서 놀란 마음에 그때부터 사방으로 다급히 수소문을 했는데, 며칠 뒤 지방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XX씨를 보호하고 있으니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알고 보니 평소에도 몸이 안 좋은데 당시 그리고 있던 작품에 진전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단신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며 방황하다가, 휴대전화도 잃어버리고, 12월 해변에 매선 거칠은 바람 때문에 외투 한 장에 의지해서 체력을 잃고 쓰러질 때는 마지막까지 수첩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그 외에도 자는 것도 잊고서 작업을 하다가 집에서 몇 번 쓰러진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나에게 가능하다면 끝까지 지켜봐 주고 싶은데, 주변에선 그런 사람은 나중에 너한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헤어지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자꾸 하구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요즘은 이 정도로 센티멘털한 사람에게 평소 무사태평하고 열에 8할은 낙천주의인 나 같은 걸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드네요.
지금은 일단 마음을 열어놓은 채 최악의, 또는 최선의 경우를 고려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데, 어쩌면 이런저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예 빨리 결혼을 하는 게 나은 방책이 될 수도 있겠는지요? 사귀고 있는 그이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손에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것도 사실이구요.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혼자 의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 많이 답답하네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의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까지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 처음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이 두렵습니다. 게다가 젊었을 적 6개월 남짓하게 동거까지 경험하셨을 정도로 예술계열의 남성과 깊은 관계를 가졌지만 끝내 파혼하셨던 엄마는 제가 사귀는 사람에 대해 내심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한층 더 불안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남친네 집에서 저를 어떻게 보시고 있을까 하는 것인데, 반년 정도 전에 한 번 그이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지만, ㅡ 세 살 위의 형님은 저에 대해서 그럭저럭 긍정적인 평가를 남기셨는데 ㅡ 남친으로부터는 당시 아버님께서 저에 대해 정확한 평가는 당분간 보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나쁜 가능성이지만, 그이에게 혹시 비밀스럽게 내정된 상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지금도 제 마음 속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저와 그 사이에 지금과 같은 관계가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작지는 않은 고민입니다. 저렇게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남친 옆에서 과연 제가 흔들림 없이 언제까지나 지탱해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언젠가 남친이 절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지만, 주위의 우려와 반대를 앞에 두고 제 마음이 동요하리라는 것 또한 실은 적잖게 염려스럽습니다.
가까이 있는 일찍 결혼한 아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가지로 행복한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지만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때 진실한 부부간의 신뢰가 동반된 관계에서 큰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ㅡ 순전히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그이의 정서적인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ㅡ 언젠가 할 일이라면, 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고 이러니저러니해서 한번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니 미래의 전망에 관해 조금은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게 되네요. ㅡ 그러나 일부분의 관점에 치우쳐 올바른 균형을 잃는 것은 항상 무엇보다 큰 두려움입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여러분의 지혜를 빌려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