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하고-천국 에서는
왈츠를.......
-우상숭배 영향으로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하고
아름다운 천국 가면 주님과 함께 왈츠를 출 거예요 - 박은옥 집사 (1-2교구,
3-2여선교회)
쿵짝짝' 리듬에 맞춰 사뿐사뿐 왈츠를 추고 있었습니다. 의족인 왼쪽
다리는 어느새 아름다운 다리로 변해 있었고, 저는 은반 위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춤추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황홀한 축제 장면이었지요. 아주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지난해 후반기에 열린 '2회 연속 특별 다니엘철야 기도회' 기간 중이었지요.
6주간의 기도회를 마치는 시상식 날, 당회장님께서 대상을 추첨하는
시간이었지요. "1대대 1-2교구 중3 유가영!" 바로 제 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영이는 단상을 향해 걸어 나갔고, 저도 기뻐서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상금과 더불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과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녀의 삶을 기억하시고 위로해 주신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상숭배 영향으로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하고
저희 집안은 대대로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셨고
어머니는 무속신앙을 잘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았지요. 어렸을 때 경기를 자주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우울증이 심해져 술을 의지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당의 권유로 신 내림 굿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굿을 하는
도중 갑자기 싫어져 중단한 일이 있었지요. 그 후 무당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1986년 어느 날, 왼쪽 다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거대 세포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요. 시간이 지나자 점점 왼쪽 무릎뼈가 자라나 엄청난 통증이 밀려 왔습니다. 결국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29세 꽃다운 나이에 의족을 해야 하는 불구의 몸이 된 것입니다.
2년쯤 지났을 때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와 사귀게 됐고, 그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5년 뒤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가영이가 태어난 뒤부터 술만 마시면 저를 힘들게 하곤 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삶의 행복을
찾았으나
1996년, 저는 견디다 못해 가영이를 안고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영이를 업고 집 앞에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제게 "만민중앙교회를 아세요?" 하고 말을 건넸지요.
그분은 당시 그 지역 교구장인 김명술 목사님이셨습니다.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오니 성도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특히,
같은 또래의 기관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주었지요. 집에 있을 때에는 우울증 증세로 무기력하고 늘 부정적인 마음이었지만 교회만 나가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교회 생활은 행복 자체였습니다.
더욱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천국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다니다보니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찾아가 전도했고 결국 1998년 2월,
우리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남편이 소천한 후 각색 질병이
발병해
그 후 가정의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남편은
2000년 간암을 진단받고 1년 후 소천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잠재해 있던 우울증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밤낮으로 공포감과 두려움이
밀려왔지요. "넌 죽어! 넌 죽을병에 걸렸어!"라는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병원 검진 결과 만성우울증으로 판명됐고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우울증 치료약을 달고 살았지요.
2004년 11월, 장애인복지회관 지원으로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활동성 결핵', '백혈구 수치 감소' 등 여러 질병이 발견됐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행한 육체의 일들 때문임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한 뒤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으며 믿음으로 당회장님과 악수를 해나갔습니다. 그러자 몸은 호전됐고, 2005년 재검
결과 모두 정상이었지요.
말씀과 기도로 만성우울증까지
치료받아
하지만 만성우울증만은 완전히 낫지를 않았습니다. 대대로 우상을 심히
섬긴 터라 웬만한 회개로는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두터운 담을 헐 수 없었지요. 저는 우상숭배한 것은 물론 주님을 믿은 후로도 우울증으로 인한
심한 짜증, 혈기, 서운함, 판단, 정죄한 일 등을 회개하며 진리대로 살고자 힘썼습니다. 무기력하고 눕고만 싶어도 하나님 일이나 모임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도 성전 청소, 성전 커튼 세탁 등으로 봉사하며 하나님 앞에 선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2010년, 당회장님께서 창세기 강해 중에 나오는 '생명의 씨'
설교를 10번 반복해 들으면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했고, 한 번 들은 후 곧바로 속이 시원해지고 소화가
잘되었으며, 향긋한 냄새를 맡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었지요. 심한 짜증, 무기력함, 부정적인 생각
등도 사라졌습니다. 평생 괴롭힌 만성우울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춘기의 딸이 목자 사랑으로 변화되니 더욱
행복해요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감사는 우리 가영이가 예쁘게 변화된 것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자주 짜증을 내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중3 때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시고 웃어주시는 꿈을 꾼
후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또한 매주 주일 저녁예배 후 당회장님께서 인도하시는 미니 은사집회를 통해 변화가 신속히 일어났습니다. 가영이는
"당회장님의 포근한 사랑으로 아빠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신다"며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지요.
이제는 서로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주님 사랑으로 저희들을 양육해 주신 당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화요지역기도회를 마치고 지역
식구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은 박은옥 집사에게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한국에서 한 기도로 살아난
파키스탄 소녀, 13년이 지난 지금은.. - 세리쉬 신시아 (파키스탄 라호르
만민교회)
요한복음 4장을 보면, 한 신하가 죽음 직전에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청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직접 그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말씀하심으로 살려내셨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의 역사를 변함없이 베풀고 계신다. 선교신문 만민뉴스 500호 발간을 기념하여 이재록 목사의 시공을 초월한
기도를 통해 파키스탄에서 죽어 가던 소녀가 살아나 변화된 삶을 소개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세리쉬 신시아 (파키스탄 라호르
만민교회) ①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까지 겹쳐 수술해도
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신시아. ② 당회장 이재록 목사가 신시아 사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③ 치료받은 후
가족과 함께한 신시아. ④ 건강하게 자란 신시아는 현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7살에 체중 11kg, 수술해도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1999년 6월 중순의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 밤, 7살 여자 아이(세리쉬 신시아)가 구토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 윌슨 존 길 목사(라호르 만민교회 담임)가 기도해 주자 나아지는가 싶더니 설사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면서 대변의 색깔이
초록색을 띠었고 혈변이 나왔다. 급기야는 대변을 볼 수 없었다. 복부는 부어올랐고 그녀는 큰 고통을 호소했다.
급히 라시드병원으로
옮겨졌다. 여러 검사 결과,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보리 등에 함유된 단백질인 글루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소장을 손상시키는 유전질환)까지
겹쳐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 또한 몸무게가 11kg밖에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니 수술해도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소망이 있었다. 윌슨 존 길 목사는 그 동안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아왔기에 '그분께 기도받으면 딸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왔다.
이재록 목사님께 사진 위에 기도를 받고
3일 만에 퇴원하여
이에 죽어 가는 딸 신시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큰 딸 마리아에게 주며 부탁했다. 때마침 마리아는 신앙을
키우고 한국어도 공부할 겸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마리아는 동생 신시아의 사진을 들고 이재록 목사에게
갔다.
1999년 7월 23일, 한국시간으로 밤 10시 50분경의 일이다. 금요철야예배 직전에 기도를 받았는데 동일한 시간(파키스탄
현지는 7시 50분경, 당시 서머타임 적용)에 신시아가 급속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놀라워했다.
급기야 한 달 넘도록 입원해
있으면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그녀가 기도받은 지 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9월 9일, 마침 파키스탄 선교를 위해 온 대전만민교회 담임 교역자인 길태식 목사가 이재록 목사에게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다시 한 번 기도해 주니 신사아는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됐다.
'기적의 소녀'라 불리는
신시아
그 후 그녀는 병원이나 약을 의존해 본 적 없이 건강하다. 신시아는 현지에서 '기적의 소녀'라 불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백한다.
"신시아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우리 교회는 급속하게 부흥했습니다. 우리 가족과 성도들은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를 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해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 당회장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신시아는
가족과 성도들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그 과정을 여러 번 들었다. 이것은 그녀의 신앙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릴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지낸다.
그녀는
GCN(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이 목사의 설교와 간증, 찬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믿음을 키우고 있다. 특히, '십자가의
도'(구원의 도가 자세히 담긴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한때는 매우 내성적이었지만 이제는 예배 및 교회 행사 시 특송과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또한 '만민뉴스'를 즐겨보며 매일 기도를 쉬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고자
신시아에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확실한 비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2005년도에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주최로 인도 첸나이에서 제2회 국제기독의학콘퍼런스가 열리기
전의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신시아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함께 이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무슬림이었던 담당 의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사실을 안 신시아는 '의사가 되어 WCDN 콘퍼런스에서 수많은 의사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리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국제 공통언어인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또한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엘리트 대학(Defence Degree College for Women)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예비
의과 2학년이다.
그녀는 고백한다. "제가 새 생명을 얻은 지 13년이 됐지만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제 믿음과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당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의사가 되어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산 증인이 되겠습니다."
신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소망하며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린다.
척추 측만증을 단기간에 치료받았어요 -
김마리아 자매 (3대학선교회)
저는
우리 교회 예능위원회 소속 무지개중창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저희 찬양팀은 매주 한 차례 레슨을 받았습니다. 먼저
기본 호흡훈련부터 받으며 폐활량을 높이는 여러 가지 운동이 병행됐지요.
지난 3월, 레슨을 받는데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어깨를
45도 정도 내리고 횡경막이 열릴 정도로 가슴을 펴는 동작을 할 때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척추가 휘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통증이 더
심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 자세를 바르게 하세요."
"네? 저 똑바로 선 건데요?"
레슨 선생님의 말을
듣고 거울 앞에서 살펴보니 양쪽 어깨 높이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평소 걷거나 무거운 짐을 들 때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있었는데,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척추측만증으로, 척추가 정상인보다 15도나 휘어 있다고 했습니다(정상 수치 4도
미만). 고심 끝에 병원 척추교정 프로그램을 받아보았지만 5월 31일 촬영 결과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6월에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요. 저는 아침 금식과 함께 다니엘철야 기도회, 별미 기도회에 동참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그동안 빠듯한 학교수업과 어린이 연구원 생활로 기도를 소홀히 한 일과 윗분들의 지적과 권면을 힘들어했던 모습 등을
회개했습니다.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 시 당회장님께서 환자들을 위해 전체 기도를 해 주실 때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어 환자기도 후 당회장님께서 '지저스(JESUS)' 찬양을 인도하실 때였습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뛰면서 찬양했는데 허리 통증이 전혀 없었습니다. "치료받았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지요.
며칠 후 엑스레이 촬영을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전후 자료를 비교 분석하면서 놀라워하셨습니다.
"15도 가량 휘었던 척추가 거의 정상이 됐네요."
치료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 치료받기 전 (2011. 5. 31.) ▲ 치료받은 후 (2011. 6.
24.)
TIP/ 척추측만증
특별한 이유 없이
척추가 측방으로 10도 이상 휘어진 상태를 말한다. 대개 여성이 남성에 비해 1.5배 정도 많이 발생하며 보통 10대에 발병률이
높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들이 하나님 권능으로
살아났습니다! - 여상훈 집사 (WCDN 총무, 통합의학)
*WCDN (World Christian
Doctors Network) 세계 기독의사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치유 사례를 의학 자료로 분석하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는 단체.
저는 WCDN 총무로서
2004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하나님의 치유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호주에서 열린 제8회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서는 아들 해동이의 치유 사례를 발표해 감회가 더욱 깊었지요.
2009년 10월 7일, 해동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에 치여 20여 미터 날아가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택시와 부딪혀 왼쪽 골반뼈를 심하게 다쳤고, 바닥에 떨어진 후엔 오른쪽
두개골 부위에 큰 충격을 받았지요.
해동이는 개방성 두개골 복합 골절과 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대량 수혈에도
불구하고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됐습니다.
응급수술 후 해동군(사진 1)은 대량 수혈에도 불구
하고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사망의 위기에 놓였다. 이에 여상훈 집사는 아들을 위해 당회장 이재록 목사에게 기도를 받았다(사진
2).
의사는 아이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들이 설령 죽을지라도 주님을 믿고 천국에 가니 감사했고, 아들이 '그처럼 사랑했던
소천하신 외할아버지를 뵙겠구나' 하는 마음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긴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온 대교구장 조혁희 목사님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해동이의 몸에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급격히 떨어진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해동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지요. 저희 가족은 그동안 불목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특히 저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한 것을 통회자복했지요. 매주 당회장님을 뵙고 해동이의 사진 위에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급격히 호전됐습니다.
아이는 1주일 후 의식이 돌아왔고, 2주일 후 일반실로 옮겨졌습니다. 회복 과정
중 안구마비, 뇌막염, 균형 장애, 악관절 장애 등이 있었으나 기도받는 즉시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입원한 지 2개월 만에 퇴원했지요. 혼미를
동반한 뇌 타박상의 경우 급성 상태가 평균 3개월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급성 상태가 2개월 만에 아무런 후유증 없이 마무리 된
것입니다.
2010년 2월 17일에는 두개골 성형 수술을 했습니다. 사고 당시 개방성 골절로 인해 두개골 조각이 많이 오염돼
있었습니다. 또한 뇌막염을 앓았던 적이 있어서 담당 의사는 염증으로 인해 수술이 실패될까봐 심히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은 저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염증 없이 깨끗하게 두개골이 아물게 하셨지요. 해동이는 지금까지 후유증 없이
건강하며, 사고를 계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로 바뀌었습니다.
제 아들의 경우는 권능의 기도로 영적인 빛이 들어가 하나님의 영의
공간이 형성됨으로 질병의 회복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WCDN 콘퍼런스에서 이를 발표할 때 참석한 의사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권능의 역사에 큰 감동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콘퍼런스에 동행한 해동이는 저의 발표 후 잠시 강단에 올라 영어로
짧은 간증과 더불어 인사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뜨거운 갈채를 보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라고 했지요. 기간 내내 해동이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치유 사례는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들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님을 전하는 증인이 됐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랑의 기도를 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저를 살려 주셨어요"
여해동 형제 (중1선교회)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많은 피를 흘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지요.
수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 저는 눈물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엄마 말씀을 잘 안 듣고, 학원에
결석하며, 저녁예배 시간에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잤던 일 등 잘못한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제 신앙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누나가 MP3에 우리 교회 예능팀들의 찬양과 당회장님 설교를 담아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그것을 즐겨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고, 신앙이 자라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대신해 당회장님께 기도를 몇 차례 받아주셨지요. 기도받을 때마다 몸이 좋아져 신속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해진 저는 최근에 의사인 아빠를 따라 호주에서 열린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아빠가 27개국에서
참가한 220여 명의 의사들에게 저를 소개하셨고, 저는 영어로 간증했습니다. 그분들은 힘찬 박수로 저를 격려해 주셨지요. 정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이처럼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더욱 주님을 닮아 가며 치료해 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당회장님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권능의 역사 -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 - 박건위형제(고3선교회), 유영미 집사(마산만민성결교회), 백현주
자매(대전만민교회)
만민뉴스 발간 24주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폭발적인 권능을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의 간증을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고 물체가 보이는가 하면,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믿음으로
기도받고 시력을 회복하는 등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을 소개한다.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건위 형제
(고3선교회)
박건위 형제(19)는 3살 때 왼쪽
눈의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심한 포도막염(안구 내부를 둘러싼 포도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과 망막 완전 박리현상(시신경층이 필름이 오그라들듯
떨어져 나와 시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생겼다. 이로 인해 안구가 쪼그라드는 안구 위축증까지 진행됐다. 급기야 2006년 왼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떨어져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2007년 7월,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는 순간 왼쪽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눈의 안압 수치도 4에서 18로 쪼그라든 안구가 정상 크기로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또한 0.1이었던 오른쪽 시력도 0.4로
좋아졌다.
*
의사가 본 박건위 형제 치료 소견
"박건위 형제의 치료받기 전 상태는 현대 의술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쪽 눈을 완전히 잃게 되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빛이 들어가니 죽어가던 세포 기관들이 힘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이
치료 사례는 2008년 5월, 세계 41개국 기독의사 220명이 참석한 제5회 노르웨이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서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때 참석한 안과 전문의는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총무
여상훈 집사 -
[좌안 초음파
검사]
기도받기 전 안구가 쪼그라든 소견 (2006. 7. 18.) ▶ 기도받은 후 안구가 커진 소견 (2007. 10.
23.)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있었지만 정상이 되었어요"
유영미 집사
(마산만민성결교회)
2005년 1월 중순 경, 유영미
집사(41)는 양안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였다. 더구나 물체가 노란색으로 보이고 구토와 어지러움 증세까지 나타나서 병원을
찾았다.
"하라다 병입니다. 눈 안에 물혹이 생겨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혹이 커지면 시신경을 덮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구나'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와 불화하고 판단 정죄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회개했다.
2월 4일, 그녀는 이재록
목사에게 직접 기도를 받았다. 몇 시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현상도 사라지고, 노란색으로만 보이던 사물이 제
색깔로 보이는 등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었다.
2월 14일, 병원을 찾아 재검한 결과는 정상이었고, 기도받기 전 0.8/0.25였던
시력은 기도받은 후 좌우 1.0으로 좋아졌다. 3월 5일, 시력 검사 결과에는 좌우 1.2로 더
좋아졌다.
● 기도받기
전(left) ● 기도받은 후(right)▲ 눈 안에 있던 물혹이 기도받은 후 깨끗이
사라졌다
.
"폐용성 약시를 치료받아 이제는 시력이 1.2(좌), 1.5(우)가
되었어요"
백현주 자매 (대전만민교회)
백현주 자매(18)는 초등학교 4학년 신체검사 때, 왼쪽 눈의 시력이 나오지 않았다. 깜짝 놀란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았더니 '폐용성 약시'라 했다. 수술해도 시력이 0.2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가족회의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특수 압축
안경을 착용했다. 그런데 그나마 좋던 오른쪽 눈마저 시력이 0.6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춘기 때에는 방황하며 TV 드라마 시청과 인터넷
쇼핑 등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는 어찌하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힘썼다. 점차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변화되기 시작했다.
2009년 10월 28일, 대전만민교회에서 '이희선 목사 초청 성령충만 은사집회'가 열렸다.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기도받을 때 눈물과 함께 그동안 받은 상처, 서운함 등 좋지 않은 마음들이 사라짐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플래카드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감격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11월 7일, 병원 검사 결과 양안
시력이 1.2였다. 의사는 말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13일, 상경하여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은 그녀는 극심한 난시와 이로 인한 두통까지 깨끗이 치료받았다. 2011년 4월 말, 시력 검사 결과는 왼쪽 1.2, 오른쪽
1.5였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 액션 배우 조 춘 장로 (1대대
6교구 / 땡칠이와 쌍 라이트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저는 꿈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을 전도해 크리스천
드라마 제작에 한 몫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또한 소외된 이웃, 재소자, 출소자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 이 노래는 제가 예전에 출연한
MBC TV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의 주제가입니다. 저는 누님들 덕분에 25세 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누님 5명 모두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여성국극단 출신이었지요. 그 중 넷째 누님(조금앵)은 현재도 생존한 남원 여성국극 최후의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당시 "내 손을 잡아라" 하는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
1973년, 영화 '홍의 장군'에서 삭발하고 나오면서부터 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엑스트라를 거쳐 조연 배우가 되었지요. 그 당시 저는 유도, 태권도, 합기도 유단자이며 미스터코리아 은메달 수상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에 무술지도나 액션 신을 도맡아 진행했습니다. '땡칠이와 쌍 라이트', '슈퍼 홍길동'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액션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MBC TV '뽀뽀뽀', '영구야 영구야' 등에 출연해 코믹 연기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지요. 제가
주님을 만난 것은 1987년 1월 폭설이 내린 날입니다. 딸을 차에 태워 대학입시 실기 시험장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경기도 지역에 진입해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려고 빙판 길에 커브를 도는 순간 뒤에서 오던 차가 세게 들이받았습니다. 제 차는 튕겨나가 안전철책을 넘어갔지요. 그때 "내
손을 잡아라"는 음성이 들리더니 눈앞에 하얀 손이 불쑥 나왔습니다. 깜짝 놀라 그 손을 잡는 순간 차가 멈췄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안전철책 아래는 5미터 정도의 낭떠러지가 있었지요. 저는 이 사고를 계기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예계에 몸담으며 세상 욕심에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니 보호받지 못하고 여러번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지요. 그 후 주일엔 최대한 예배드리기를 힘썼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지요.
영안이 열리고 성령의 불을 받는 체험을 하며
저는 장애인협회나 각종 봉사단체에서 봉사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 지인을 통해 만민중앙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지요. 저는 처음으로 예배드린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잠시
영안을 열어 주셔서 은혜로운 체험을 했지요. 바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 오르실 때 키가 1미터 90센티 정도로 보이고 후광이 강하게
비치는 것을 봤습니다. 게다가 단에서 저를 소개해 주실 때 깜짝 놀랐습니다. 성도님들을 향해 인사드리는데 갑자기 성도님들이 수만 명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린 후 당회장님을 가까이 뵐 때 또다시 놀랬습니다. 70세 가까운 연세인데도 훨씬 젊으셨고, 반듯하면서도 위엄있는 자태와
겸손하고 온유하신 모습은 감동스러웠습니다. 환담을 나눈 뒤 저는 당회장님 앞에 무릎 꿇고 안수기도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기도를 받는 순간
성령의 불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만민중앙교회에서 거듭난 신앙생활을 하니
그 다음 주일이 사모됐습니다. 드디어 주일예배 시간, 당회장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내용과 그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교하셨습니다(요 8장). 신앙생활 23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적인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저는 '이제 남은 인생은 이 만민중앙교회에서 뿌리를 내리자'라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어 작년 5월 23일, 만민중앙교회에 등록을 했지요.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일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기도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철야 기도회에도 참석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날을 돌아보며 기도할 때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후 저는 주님 사랑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계수련회 때에는 잠자리를 통해 영의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잠자리들이 성도님들에게는 물론 제 머리와 손에도 앉아 떠날 줄을 몰랐지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잠자리 떼로 인해 수련회 기간 동안 모기와 나방은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딸이 치유의 하나님을 만나
또 감사한 일은 수년 동안 신앙의 잠을 잔 아내가 지난해 10월
교회창립 28주년 기념 주일부터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딸(조현지)도 그 다음 주부터 출석했지요. 뿐만 아니라 메니에르병과 이석증으로
고생했는데 최근에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출석한 후로 더욱 건강해졌습니다. 제 말투나
행동도 바뀌고 있습니다. 항상 밝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성도님들,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선을 대할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며 담대하게
설교하시는 당회장님, 아름다운 천국을 연상케 하는 찬양 팀들, 모든 것이 주님 사랑을 느끼게 하니 늘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20부작,
50부작, 100부작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아 추진 중이며, CF촬영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4월 9일에는 경인방송 '세상사는 이야기'에
출연했습니다. 이렇게 영육간의 축복을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 탤런트 이덕화씨와 불우이웃돕기 행사장에서 ▲ 잠자리를 통해 영의
세계를 체험했던 2010 하계수련회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하고-천국 에서는 왈츠를.......
아름다운 천국 가면 주님과 함께 왈츠를 출 거예요- 박은옥 집사 (1-2교구, 3-2여선교회)
쿵짝짝' 리듬에 맞춰 사뿐사뿐 왈츠를 추고 있었습니다. 의족인 왼쪽 다리는 어느새 아름다운 다리로 변해 있었고, 저는 은반 위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춤추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황홀한 축제 장면이었지요. 아주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지난해 후반기에 열린 '2회 연속 특별 다니엘철야 기도회' 기간 중이었지요.
6주간의 기도회를 마치는 시상식 날, 당회장님께서 대상을 추첨하는 시간이었지요. "1대대 1-2교구 중3 유가영!" 바로 제 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영이는 단상을 향해 걸어 나갔고, 저도 기뻐서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상금과 더불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과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녀의 삶을 기억하시고 위로해 주신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상숭배 영향으로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하고
저희 집안은 대대로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셨고 어머니는 무속신앙을 잘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았지요. 어렸을 때 경기를 자주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우울증이 심해져 술을 의지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당의 권유로 신 내림 굿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굿을 하는 도중 갑자기 싫어져 중단한 일이 있었지요. 그 후 무당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1986년 어느 날, 왼쪽 다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거대 세포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요. 시간이 지나자 점점 왼쪽 무릎뼈가 자라나 엄청난 통증이 밀려 왔습니다. 결국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29세 꽃다운 나이에 의족을 해야 하는 불구의 몸이 된 것입니다.
2년쯤 지났을 때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와 사귀게 됐고, 그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5년 뒤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가영이가 태어난 뒤부터 술만 마시면 저를 힘들게 하곤 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삶의 행복을 찾았으나
1996년, 저는 견디다 못해 가영이를 안고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친정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영이를 업고 집 앞에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제게 "만민중앙교회를 아세요?" 하고 말을 건넸지요. 그분은 당시 그 지역 교구장인 김명술 목사님이셨습니다.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오니 성도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특히, 같은 또래의 기관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주었지요. 집에 있을 때에는 우울증 증세로 무기력하고 늘 부정적인 마음이었지만 교회만 나가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교회 생활은 행복 자체였습니다.
더욱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천국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다니다보니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찾아가 전도했고 결국 1998년 2월, 우리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남편이 소천한 후 각색 질병이 발병해
그 후 가정의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남편은 2000년 간암을 진단받고 1년 후 소천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잠재해 있던 우울증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밤낮으로 공포감과 두려움이 밀려왔지요. "넌 죽어! 넌 죽을병에 걸렸어!"라는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병원 검진 결과 만성우울증으로 판명됐고 스트레스가 아주 심하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우울증 치료약을 달고 살았지요.
2004년 11월, 장애인복지회관 지원으로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활동성 결핵', '백혈구 수치 감소' 등 여러 질병이 발견됐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행한 육체의 일들 때문임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한 뒤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으며 믿음으로 당회장님과 악수를 해나갔습니다. 그러자 몸은 호전됐고, 2005년 재검 결과 모두 정상이었지요.
말씀과 기도로 만성우울증까지 치료받아
하지만 만성우울증만은 완전히 낫지를 않았습니다. 대대로 우상을 심히 섬긴 터라 웬만한 회개로는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두터운 담을 헐 수 없었지요. 저는 우상숭배한 것은 물론 주님을 믿은 후로도 우울증으로 인한 심한 짜증, 혈기, 서운함, 판단, 정죄한 일 등을 회개하며 진리대로 살고자 힘썼습니다. 무기력하고 눕고만 싶어도 하나님 일이나 모임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도 성전 청소, 성전 커튼 세탁 등으로 봉사하며 하나님 앞에 선을 쌓고자 노력했지요.
2010년, 당회장님께서 창세기 강해 중에 나오는 '생명의 씨' 설교를 10번 반복해 들으면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했고, 한 번 들은 후 곧바로 속이 시원해지고 소화가 잘되었으며, 향긋한 냄새를 맡는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었지요. 심한 짜증, 무기력함, 부정적인 생각 등도 사라졌습니다. 평생 괴롭힌 만성우울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춘기의 딸이 목자 사랑으로 변화되니 더욱 행복해요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감사는 우리 가영이가 예쁘게 변화된 것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자주 짜증을 내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중3 때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시고 웃어주시는 꿈을 꾼 후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또한 매주 주일 저녁예배 후 당회장님께서 인도하시는 미니 은사집회를 통해 변화가 신속히 일어났습니다. 가영이는 "당회장님의 포근한 사랑으로 아빠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신다"며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지요.
이제는 서로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주님 사랑으로 저희들을 양육해 주신 당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화요지역기도회를 마치고 지역 식구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은 박은옥 집사에게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한국에서 한 기도로 살아난 파키스탄 소녀, 13년이 지난 지금은..- 세리쉬 신시아 (파키스탄 라호르 만민교회)
요한복음 4장을 보면, 한 신하가 죽음 직전에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청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직접 그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말씀하심으로 살려내셨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의 역사를 변함없이 베풀고 계신다. 선교신문 만민뉴스 500호 발간을 기념하여 이재록 목사의 시공을 초월한 기도를 통해 파키스탄에서 죽어 가던 소녀가 살아나 변화된 삶을 소개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세리쉬 신시아 (파키스탄 라호르 만민교회)
①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까지 겹쳐 수술해도 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신시아.
② 당회장 이재록 목사가 신시아 사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③ 치료받은 후 가족과 함께한 신시아.
④ 건강하게 자란 신시아는 현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7살에 체중 11kg, 수술해도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1999년 6월 중순의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 밤, 7살 여자 아이(세리쉬 신시아)가 구토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 윌슨 존 길 목사(라호르 만민교회 담임)가 기도해 주자 나아지는가 싶더니 설사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면서 대변의 색깔이 초록색을 띠었고 혈변이 나왔다. 급기야는 대변을 볼 수 없었다. 복부는 부어올랐고 그녀는 큰 고통을 호소했다.
급히 라시드병원으로 옮겨졌다. 여러 검사 결과,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보리 등에 함유된 단백질인 글루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소장을 손상시키는 유전질환)까지 겹쳐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 또한 몸무게가 11kg밖에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니 수술해도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소망이 있었다. 윌슨 존 길 목사는 그 동안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아왔기에 '그분께 기도받으면 딸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왔다.
이재록 목사님께 사진 위에 기도를 받고 3일 만에 퇴원하여
이에 죽어 가는 딸 신시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큰 딸 마리아에게 주며 부탁했다. 때마침 마리아는 신앙을 키우고 한국어도 공부할 겸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마리아는 동생 신시아의 사진을 들고 이재록 목사에게 갔다.
1999년 7월 23일, 한국시간으로 밤 10시 50분경의 일이다. 금요철야예배 직전에 기도를 받았는데 동일한 시간(파키스탄 현지는 7시 50분경, 당시 서머타임 적용)에 신시아가 급속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놀라워했다.
급기야 한 달 넘도록 입원해 있으면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그녀가 기도받은 지 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9월 9일, 마침 파키스탄 선교를 위해 온 대전만민교회 담임 교역자인 길태식 목사가 이재록 목사에게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다시 한 번 기도해 주니 신사아는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됐다.
'기적의 소녀'라 불리는 신시아
그 후 그녀는 병원이나 약을 의존해 본 적 없이 건강하다. 신시아는 현지에서 '기적의 소녀'라 불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백한다.
"신시아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우리 교회는 급속하게 부흥했습니다. 우리 가족과 성도들은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를 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해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 당회장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신시아는 가족과 성도들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그 과정을 여러 번 들었다. 이것은 그녀의 신앙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릴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지낸다.
그녀는 GCN(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이 목사의 설교와 간증, 찬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믿음을 키우고 있다. 특히, '십자가의 도'(구원의 도가 자세히 담긴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한때는 매우 내성적이었지만 이제는 예배 및 교회 행사 시 특송과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또한 '만민뉴스'를 즐겨보며 매일 기도를 쉬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고자
신시아에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확실한 비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2005년도에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주최로 인도 첸나이에서 제2회 국제기독의학콘퍼런스가 열리기 전의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신시아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함께 이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무슬림이었던 담당 의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사실을 안 신시아는 '의사가 되어 WCDN 콘퍼런스에서 수많은 의사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리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국제 공통언어인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또한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엘리트 대학(Defence Degree College for Women)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예비 의과 2학년이다.
그녀는 고백한다. "제가 새 생명을 얻은 지 13년이 됐지만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제 믿음과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당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의사가 되어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산 증인이 되겠습니다."
신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소망하며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린다.
척추 측만증을 단기간에 치료받았어요
- 김마리아 자매 (3대학선교회)
올해 1월부터 저희 찬양팀은 매주 한 차례 레슨을 받았습니다. 먼저 기본 호흡훈련부터 받으며 폐활량을 높이는 여러 가지 운동이 병행됐지요.
지난 3월, 레슨을 받는데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어깨를 45도 정도 내리고 횡경막이 열릴 정도로 가슴을 펴는 동작을 할 때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척추가 휘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통증이 더 심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 자세를 바르게 하세요."
"네? 저 똑바로 선 건데요?"
레슨 선생님의 말을 듣고 거울 앞에서 살펴보니 양쪽 어깨 높이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평소 걷거나 무거운 짐을 들 때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있었는데,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척추측만증으로, 척추가 정상인보다 15도나 휘어 있다고 했습니다(정상 수치 4도 미만). 고심 끝에 병원 척추교정 프로그램을 받아보았지만 5월 31일 촬영 결과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6월에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요. 저는 아침 금식과 함께 다니엘철야 기도회, 별미 기도회에 동참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그동안 빠듯한 학교수업과 어린이 연구원 생활로 기도를 소홀히 한 일과 윗분들의 지적과 권면을 힘들어했던 모습 등을 회개했습니다.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 시 당회장님께서 환자들을 위해 전체 기도를 해 주실 때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어 환자기도 후 당회장님께서 '지저스(JESUS)' 찬양을 인도하실 때였습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뛰면서 찬양했는데 허리 통증이 전혀 없었습니다. "치료받았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지요.
며칠 후 엑스레이 촬영을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전후 자료를 비교 분석하면서 놀라워하셨습니다.
"15도 가량 휘었던 척추가 거의 정상이 됐네요."
치료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 치료받기 전 (2011. 5. 31.) ▲ 치료받은 후 (2011. 6. 24.)
TIP/ 척추측만증
특별한 이유 없이 척추가 측방으로 10도 이상 휘어진 상태를 말한다. 대개 여성이 남성에 비해 1.5배 정도 많이 발생하며 보통 10대에 발병률이 높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들이 하나님 권능으로 살아났습니다!
- 여상훈 집사 (WCDN 총무, 통합의학)
세계 기독의사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치유 사례를 의학 자료로 분석하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는 단체.
저는 WCDN 총무로서 2004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하나님의 치유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호주에서 열린 제8회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서는 아들 해동이의 치유 사례를 발표해 감회가 더욱 깊었지요.
2009년 10월 7일, 해동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에 치여 20여 미터 날아가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택시와 부딪혀 왼쪽 골반뼈를 심하게 다쳤고, 바닥에 떨어진 후엔 오른쪽 두개골 부위에 큰 충격을 받았지요.
해동이는 개방성 두개골 복합 골절과 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대량 수혈에도 불구하고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됐습니다.
응급수술 후 해동군(사진 1)은 대량 수혈에도 불구 하고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사망의 위기에 놓였다. 이에 여상훈 집사는 아들을 위해 당회장 이재록 목사에게 기도를 받았다(사진 2).
의사는 아이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들이 설령 죽을지라도 주님을 믿고 천국에 가니 감사했고, 아들이 '그처럼 사랑했던 소천하신 외할아버지를 뵙겠구나' 하는 마음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긴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온 대교구장 조혁희 목사님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해동이의 몸에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급격히 떨어진 혈색소와 혈소판 수치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해동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지요. 저희 가족은 그동안 불목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특히 저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한 것을 통회자복했지요. 매주 당회장님을 뵙고 해동이의 사진 위에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급격히 호전됐습니다.
아이는 1주일 후 의식이 돌아왔고, 2주일 후 일반실로 옮겨졌습니다. 회복 과정 중 안구마비, 뇌막염, 균형 장애, 악관절 장애 등이 있었으나 기도받는 즉시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입원한 지 2개월 만에 퇴원했지요. 혼미를 동반한 뇌 타박상의 경우 급성 상태가 평균 3개월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급성 상태가 2개월 만에 아무런 후유증 없이 마무리 된 것입니다.
2010년 2월 17일에는 두개골 성형 수술을 했습니다. 사고 당시 개방성 골절로 인해 두개골 조각이 많이 오염돼 있었습니다. 또한 뇌막염을 앓았던 적이 있어서 담당 의사는 염증으로 인해 수술이 실패될까봐 심히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은 저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염증 없이 깨끗하게 두개골이 아물게 하셨지요. 해동이는 지금까지 후유증 없이 건강하며, 사고를 계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로 바뀌었습니다.
제 아들의 경우는 권능의 기도로 영적인 빛이 들어가 하나님의 영의 공간이 형성됨으로 질병의 회복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WCDN 콘퍼런스에서 이를 발표할 때 참석한 의사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권능의 역사에 큰 감동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콘퍼런스에 동행한 해동이는 저의 발표 후 잠시 강단에 올라 영어로 짧은 간증과 더불어 인사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뜨거운 갈채를 보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라고 했지요. 기간 내내 해동이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치유 사례는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들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님을 전하는 증인이 됐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랑의 기도를 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저를 살려 주셨어요"
여해동 형제 (중1선교회)
수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 저는 눈물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엄마 말씀을 잘 안 듣고, 학원에 결석하며, 저녁예배 시간에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잤던 일 등 잘못한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제 신앙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누나가 MP3에 우리 교회 예능팀들의 찬양과 당회장님 설교를 담아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그것을 즐겨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고, 신앙이 자라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대신해 당회장님께 기도를 몇 차례 받아주셨지요. 기도받을 때마다 몸이 좋아져 신속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해진 저는 최근에 의사인 아빠를 따라 호주에서 열린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아빠가 27개국에서 참가한 220여 명의 의사들에게 저를 소개하셨고, 저는 영어로 간증했습니다. 그분들은 힘찬 박수로 저를 격려해 주셨지요. 정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이처럼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더욱 주님을 닮아 가며 치료해 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당회장님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권능의 역사 -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
- 박건위형제(고3선교회), 유영미 집사(마산만민성결교회), 백현주 자매(대전만민교회)
만민뉴스 발간 24주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폭발적인 권능을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의 간증을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고 물체가 보이는가 하면,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믿음으로 기도받고 시력을 회복하는 등 심각한 눈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한 성도들을 소개한다.
"실명된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건위 형제(19)는 3살 때 왼쪽 눈의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심한 포도막염(안구 내부를 둘러싼 포도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과 망막 완전 박리현상(시신경층이 필름이 오그라들듯 떨어져 나와 시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 생겼다. 이로 인해 안구가 쪼그라드는 안구 위축증까지 진행됐다. 급기야 2006년 왼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떨어져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2007년 7월,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는 순간 왼쪽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눈의 안압 수치도 4에서 18로 쪼그라든 안구가 정상 크기로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또한 0.1이었던 오른쪽 시력도 0.4로 좋아졌다.
"박건위 형제의 치료받기 전 상태는 현대 의술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쪽 눈을 완전히 잃게 되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빛이 들어가니 죽어가던 세포 기관들이 힘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이 치료 사례는 2008년 5월, 세계 41개국 기독의사 220명이 참석한 제5회 노르웨이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서 발표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때 참석한 안과 전문의는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총무 여상훈 집사 -
[좌안 초음파 검사]
기도받기 전 안구가 쪼그라든 소견 (2006. 7. 18.) ▶ 기도받은 후 안구가 커진 소견 (2007. 10. 23.)
"희귀병으로 실명의 위기에 있었지만 정상이 되었어요"
2005년 1월 중순 경, 유영미 집사(41)는 양안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였다. 더구나 물체가 노란색으로 보이고 구토와 어지러움 증세까지 나타나서 병원을 찾았다.
"하라다 병입니다. 눈 안에 물혹이 생겨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혹이 커지면 시신경을 덮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구나'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와 불화하고 판단 정죄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회개했다.
2월 4일, 그녀는 이재록 목사에게 직접 기도를 받았다. 몇 시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물이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현상도 사라지고, 노란색으로만 보이던 사물이 제 색깔로 보이는 등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었다.
2월 14일, 병원을 찾아 재검한 결과는 정상이었고, 기도받기 전 0.8/0.25였던 시력은 기도받은 후 좌우 1.0으로 좋아졌다. 3월 5일, 시력 검사 결과에는 좌우 1.2로 더 좋아졌다.
● 기도받기 전(left) ● 기도받은 후(right)▲ 눈 안에 있던 물혹이 기도받은 후 깨끗이 사라졌다 .
"폐용성 약시를 치료받아 이제는 시력이 1.2(좌), 1.5(우)가 되었어요"
백현주 자매(18)는 초등학교 4학년 신체검사 때, 왼쪽 눈의 시력이 나오지 않았다. 깜짝 놀란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았더니 '폐용성 약시'라 했다. 수술해도 시력이 0.2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가족회의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특수 압축 안경을 착용했다. 그런데 그나마 좋던 오른쪽 눈마저 시력이 0.6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춘기 때에는 방황하며 TV 드라마 시청과 인터넷 쇼핑 등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는 어찌하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힘썼다. 점차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변화되기 시작했다.
2009년 10월 28일, 대전만민교회에서 '이희선 목사 초청 성령충만 은사집회'가 열렸다.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기도받을 때 눈물과 함께 그동안 받은 상처, 서운함 등 좋지 않은 마음들이 사라짐을 느꼈다. 눈을 떠 보니 플래카드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감격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11월 7일, 병원 검사 결과 양안 시력이 1.2였다. 의사는 말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13일, 상경하여 이재록 목사의 기도를 받은 그녀는 극심한 난시와 이로 인한 두통까지 깨끗이 치료받았다. 2011년 4월 말, 시력 검사 결과는 왼쪽 1.2, 오른쪽 1.5였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 액션 배우 조 춘 장로 (1대대 6교구 / 땡칠이와 쌍 라이트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저는 꿈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을 전도해 크리스천 드라마 제작에 한 몫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또한 소외된 이웃, 재소자, 출소자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 이 노래는 제가 예전에 출연한 MBC TV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의 주제가입니다. 저는 누님들 덕분에 25세 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누님 5명 모두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여성국극단 출신이었지요. 그 중 넷째 누님(조금앵)은 현재도 생존한 남원 여성국극 최후의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당시 "내 손을 잡아라" 하는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
1973년, 영화 '홍의 장군'에서 삭발하고 나오면서부터 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엑스트라를 거쳐 조연 배우가 되었지요. 그 당시 저는 유도, 태권도, 합기도 유단자이며 미스터코리아 은메달 수상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에 무술지도나 액션 신을 도맡아 진행했습니다. '땡칠이와 쌍 라이트', '슈퍼 홍길동' 등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액션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MBC TV '뽀뽀뽀', '영구야 영구야' 등에 출연해 코믹 연기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지요. 제가 주님을 만난 것은 1987년 1월 폭설이 내린 날입니다. 딸을 차에 태워 대학입시 실기 시험장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경기도 지역에 진입해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려고 빙판 길에 커브를 도는 순간 뒤에서 오던 차가 세게 들이받았습니다. 제 차는 튕겨나가 안전철책을 넘어갔지요. 그때 "내 손을 잡아라"는 음성이 들리더니 눈앞에 하얀 손이 불쑥 나왔습니다. 깜짝 놀라 그 손을 잡는 순간 차가 멈췄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안전철책 아래는 5미터 정도의 낭떠러지가 있었지요. 저는 이 사고를 계기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연예계에 몸담으며 세상 욕심에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니 보호받지 못하고 여러번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지요. 그 후 주일엔 최대한 예배드리기를 힘썼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지요.
영안이 열리고 성령의 불을 받는 체험을 하며
저는 장애인협회나 각종 봉사단체에서 봉사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 지인을 통해 만민중앙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지요. 저는 처음으로 예배드린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잠시 영안을 열어 주셔서 은혜로운 체험을 했지요. 바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단에 오르실 때 키가 1미터 90센티 정도로 보이고 후광이 강하게 비치는 것을 봤습니다. 게다가 단에서 저를 소개해 주실 때 깜짝 놀랐습니다. 성도님들을 향해 인사드리는데 갑자기 성도님들이 수만 명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린 후 당회장님을 가까이 뵐 때 또다시 놀랬습니다. 70세 가까운 연세인데도 훨씬 젊으셨고, 반듯하면서도 위엄있는 자태와 겸손하고 온유하신 모습은 감동스러웠습니다. 환담을 나눈 뒤 저는 당회장님 앞에 무릎 꿇고 안수기도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기도를 받는 순간 성령의 불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만민중앙교회에서 거듭난 신앙생활을 하니
그 다음 주일이 사모됐습니다. 드디어 주일예배 시간, 당회장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내용과 그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교하셨습니다(요 8장). 신앙생활 23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적인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저는 '이제 남은 인생은 이 만민중앙교회에서 뿌리를 내리자'라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어 작년 5월 23일, 만민중앙교회에 등록을 했지요.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일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기도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철야 기도회에도 참석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날을 돌아보며 기도할 때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후 저는 주님 사랑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계수련회 때에는 잠자리를 통해 영의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잠자리들이 성도님들에게는 물론 제 머리와 손에도 앉아 떠날 줄을 몰랐지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잠자리 떼로 인해 수련회 기간 동안 모기와 나방은 한 마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딸이 치유의 하나님을 만나
또 감사한 일은 수년 동안 신앙의 잠을 잔 아내가 지난해 10월 교회창립 28주년 기념 주일부터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딸(조현지)도 그 다음 주부터 출석했지요. 뿐만 아니라 메니에르병과 이석증으로 고생했는데 최근에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출석한 후로 더욱 건강해졌습니다. 제 말투나 행동도 바뀌고 있습니다. 항상 밝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성도님들,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선을 대할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며 담대하게 설교하시는 당회장님, 아름다운 천국을 연상케 하는 찬양 팀들, 모든 것이 주님 사랑을 느끼게 하니 늘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20부작, 50부작, 100부작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아 추진 중이며, CF촬영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4월 9일에는 경인방송 '세상사는 이야기'에 출연했습니다. 이렇게 영육간의 축복을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 탤런트 이덕화씨와 불우이웃돕기 행사장에서 ▲ 잠자리를 통해 영의 세계를 체험했던 2010 하계수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