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여 매번 눈도장만 찍고 하다가 글 좀 남겨보러하네요 글이 두서가 없고 읽기 힘드셔도이해부탁 드릴께요 여러분이라면 어떠실지 . 여기저기알려 진다면 정말 이미지 세탁 하는
그분들 망신좀 당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조카딸 본인들 말 따라 잘도 키워서 떳떳하신다니까요
저는 32살 백일 갓지난 아기엄마구요
직장 다니다가 지금은 쉬고있구요
제가 이렇게 한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저의 지난
힘든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면 그렇고 눈물나고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라도 적어볼께요 그들 욕심들을 배불려주며 힘들게 커온 제 지난일들이 분하디 분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유치원을 다니다가 부모님의
별거로 엄마에게 있었고6살무렵 아빠에게 가게되었어요 학교문제로요 그러다가 새엄마와 이복동생이 생긴걸 알고선
엄마가 충격을 먹고 저를 이빠께 주고 가셨다합니다
그즈음 아빠는 술먹고 오토바이를 몰다 뇌손상으로
중환자가 되셨다 돌아가셨구요 전 친할머니 손에 이끌
려 쩌~~~~~기 목포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자은도
라는 섬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말하자면
시내축에 끼는 구영리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죠
그때부떠 저의 서럽고 힘든 ..
인생이 시작됬죠 그시골엔 큰아빠라는(지금은 그사람이라고 하고싶지만 참네요) 분의 가족이 또 계셨구요 딸과 아들이 있었구요
할머니와 아들 집이 이백미터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첨에 내려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던듯 싶어요
내려가서는 큰아빠집에 잠시 같이 지내며 살았던거같아요 아주잠깐..
근데 밤마다 다투고 다투면 자식들이며 너땜에 싸운다며 눈치를 주었고 사투리를 몰라 이것저것 시키면
엉뚱한걸 가져다 줄때에 바보라는둥 상처되는 말도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할머니집으로 가게되었고 할머니가 서울
다른 자식집 일보러 가시면 또다시 그집에..
가서 잘때면 똥냄새가 난다는둥 할매냄새가 난다는둥
어린저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어요
할머니는 2년전에 돌아가셨지만 괴롭히고 때려서 데려
왔다고 자주 말씀 하셨고요
제가 그로부터 소녀가장이 되어서 나라에서 지원금과
후원도 많이 받았어요
그땐 너무 칭피하고 어디불려가고 자주해서 너무 싫었구요 가끔 소년소녀가장 들끼리 모이는 수련관도
가기도 했던걸로 기억나요
고등학교땐 정보화 시대 이러면서 컴퓨터도나왔었어요
그것도 그시골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구요
말하고자 하는것은 그런수급비를 저는 구경해본적도 없고 존재자체도 모르다가 커서야 알게되었고
그돈들을 야금야금 갖다 쓴사람들이 그큰아버지
쪽이라는것도 알게되었고요
그러면서 이제와서 자기네들이 키웠다고 해댑니다
그사람들은 상처를 더주면 줬지 그런말할 자격이
못되우요 당연히..
그리고 더웃긴건 저의 아빠 사망 합의금에 일부인
천만원도 가져다가 썼구요 그돈은 할머니께
맡겨지고 커서 지앞가림에 보탬이되게 했던것을
본인 자식들 서울에 벙얻을 돈이없어 그돈을
가져다 썼구요
이런 얘기도 아빠 형제들이 말해주어 알게 된거예요
그러면서 옷한벌 사주지 않은 사람들이 .
어떻게 날 키웠다고 하는건지
... 시골 사람들 다 아실꺼예요
할머니한테 큰걸..할머니가 생선장사 하시고 다니셔서
다 아시거든요.
그당시 제가 중3인지 고1인지 그쯤이고
가져갈때 이자를 불려준다며 가져갔고요
그때 저돈개념 없고 아무것도 모를 때예요
다행히 그순진한 그때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그때 통장개설일과 만기일을 써준 통장을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네요 어른이라는 걸로 그어린저에게 큰거짓말을하고
이용을 했으니까요 시골에 살면서 그부인이라는여자가
저에게 윽박지르고 막말을 얼마나 많이했었는지 ..
공부 못한다고 니큰아빠 얼굴에 똥칠하지말어 라며
내뱉던 말들..
시골 친구들은 알아요어릴적에 제가 무서워하고
소극적이며 말도 제대로못하고 한 그런 상황들을.
무섭기도하고 제상황이 불안정했어요 제편도 없는것
같아 무조건 그사람 말이면 들어야하는줄 알았고요
할머니도 옛날 분이시고 맨날 일만 하러나가시니
잘 모르시구요 할머니도 욕많이 히고 좀 억센 할머니시라 잘따르지 못했어요 조카 옆에 있어도할머니한테 대놓고 어서죽어버리라고 한여자를 큰엄마라고 그러고 지냈으니 지금생각하니 너무 어린애한테 못하는말이없고
자기멋대로 살았더라고ㅡ요
본인 자식들에겐 항상 최고최고..
데려다 농사일도 시키고 ..
항상 너이리 와봐 가 이거해 저거해
명령조의 말투..너무 위축되며 지냈었습니다
사춘기땐 누구 좋아하면 그것도 큰잘못처럼
몰던..
말하자면 더한것도많은데 다시 생각하자니 너무 싫네요 그래놓고 저랑 같이 가족사진을 찍어놓고
잘 키웠다고 ..시킨데로 찍고보니 가족사진이더라고요
할머니도 없이 찍었었어요
장남집 사진에 할머니 없는게 당연 한건가요!
너무나 지능적인 여자... .....
고등학교 수능을 (공부에소질이 없었죠 관심이없었어요) 의미없이 치르고 서울 본인딸집에 데려가서 알바를 시키고 생활비에 보태라고 하고
그집에서 컴퓨터 잠깐 써도 머라고 했던여자..
그집에 본인 아들 딸 침대에서 잘때 전 항상
바닥에서 이불 깔고잤어요 당연한듯이
부모없는 설움이 그런거였겠죠
어릴때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잘때도 울고 혼자 집에 있을때도 울고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적이 너무 많았어요
나는 왜 이러고 지내야하는지 너무 슬펐어요..
어릴때에는
명절때 큰아빠들 자식들이랑 와서 각자 잘때
도 슬펐었고..사촌들도 부러웠었고요
.
서울에 올라와 알바를 하러 다닌다는걸.
다행히 다른 친척분이 그사실을 알고
데려와서 그 철창없는 감옥생활을 면했는데..
너무 힘든나날들이라 20대 중반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도 못믿고 좋은분들 많이 만났었는데
차단해버리고
.. 불안장애도 있었어요 공황장애.
일다니면서 쓰러질 뻔한적이 몇번있었어요
그 비슷한 억양이나말투 들으면 날카로워지고
별말아니여도 화내게 되고
귀에서 조잘대는 환청도 들린적있고
...지금은 들리진 않아요 다행인지
...
..그즈음 다른친척집에
도움을 받고 지내다 혼자나와 살려고 시골에
전화해 어릴때 가져간돈달라고 하니 큰아빠라는사람은 대뜸 큰엄마 바꿔준다고 하며 회피하고
그큰엄마라는 여자 욕하고 끊어버렸어요
그러고 다른친척집에서 돈을 좀보태
월세로 살았고여
결혼전 3년반을 살다 보증금 일부 다시 돌
려드렸구요. 휴,
혼자사니 편하고 좋았지만 건강은 좀 안조아
지더라구요 못챙겨 먹으니..
친척집 살때도 머그다지 잘 먹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 에 맞춰 지내며
지난번
그랬던 사람들 돈이 뭐나 싶어 포기하고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또 볼일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결혼을 급작스레 하게 되었고
기대는 안했지만 집안의 제일 큰 어른들이라고
전화를 드렸죠
당연히 온다더군요
결혼식에 할머니대신 앉혀드린 것도 있고요
할머니는 돌아가셨기 때문에요
근데! !!
사위랑 아들 딸 다데려오고
부페도 앉아 먹고 히던 사람들 축의금 십원 한장 안내고
갔답니다
그다음날 전화로 몸이 아파서 왔다네요
그러고 자기 딸 만나서 밥한끼 사달라하랩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그래도
부지런하고 정직하신 좋은 시부모님들을
만나서 이해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저의사정 다 말했구요
그큰엄마라는 여자는 말이 굉장히많고
상대방이 말할 틈을 안줘요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가면 안좋은것도 좋게 둘러대나
그게 아니거나 불리할땐 막말을하며 공격을 하죠
그어릴적부터 동서들 한테도 이년저년 욕을 하고
지금도 그러고 한 세월이있어 다들 연 끊고 산답니다
소녀가장이었던 저의 막장드라마
그분들 망신좀 당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조카딸 본인들 말 따라 잘도 키워서 떳떳하신다니까요
저는 32살 백일 갓지난 아기엄마구요
직장 다니다가 지금은 쉬고있구요
제가 이렇게 한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저의 지난
힘든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면 그렇고 눈물나고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라도 적어볼께요 그들 욕심들을 배불려주며 힘들게 커온 제 지난일들이 분하디 분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유치원을 다니다가 부모님의
별거로 엄마에게 있었고6살무렵 아빠에게 가게되었어요 학교문제로요 그러다가 새엄마와 이복동생이 생긴걸 알고선
엄마가 충격을 먹고 저를 이빠께 주고 가셨다합니다
그즈음 아빠는 술먹고 오토바이를 몰다 뇌손상으로
중환자가 되셨다 돌아가셨구요 전 친할머니 손에 이끌
려 쩌~~~~~기 목포에서 배타고 들어가는 자은도
라는 섬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말하자면
시내축에 끼는 구영리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죠
그때부떠 저의 서럽고 힘든 ..
인생이 시작됬죠 그시골엔 큰아빠라는(지금은 그사람이라고 하고싶지만 참네요) 분의 가족이 또 계셨구요 딸과 아들이 있었구요
할머니와 아들 집이 이백미터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첨에 내려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던듯 싶어요
내려가서는 큰아빠집에 잠시 같이 지내며 살았던거같아요 아주잠깐..
근데 밤마다 다투고 다투면 자식들이며 너땜에 싸운다며 눈치를 주었고 사투리를 몰라 이것저것 시키면
엉뚱한걸 가져다 줄때에 바보라는둥 상처되는 말도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할머니집으로 가게되었고 할머니가 서울
다른 자식집 일보러 가시면 또다시 그집에..
가서 잘때면 똥냄새가 난다는둥 할매냄새가 난다는둥
어린저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어요
할머니는 2년전에 돌아가셨지만 괴롭히고 때려서 데려
왔다고 자주 말씀 하셨고요
제가 그로부터 소녀가장이 되어서 나라에서 지원금과
후원도 많이 받았어요
그땐 너무 칭피하고 어디불려가고 자주해서 너무 싫었구요 가끔 소년소녀가장 들끼리 모이는 수련관도
가기도 했던걸로 기억나요
고등학교땐 정보화 시대 이러면서 컴퓨터도나왔었어요
그것도 그시골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구요
말하고자 하는것은 그런수급비를 저는 구경해본적도 없고 존재자체도 모르다가 커서야 알게되었고
그돈들을 야금야금 갖다 쓴사람들이 그큰아버지
쪽이라는것도 알게되었고요
그러면서 이제와서 자기네들이 키웠다고 해댑니다
그사람들은 상처를 더주면 줬지 그런말할 자격이
못되우요 당연히..
그리고 더웃긴건 저의 아빠 사망 합의금에 일부인
천만원도 가져다가 썼구요 그돈은 할머니께
맡겨지고 커서 지앞가림에 보탬이되게 했던것을
본인 자식들 서울에 벙얻을 돈이없어 그돈을
가져다 썼구요
이런 얘기도 아빠 형제들이 말해주어 알게 된거예요
그러면서 옷한벌 사주지 않은 사람들이 .
어떻게 날 키웠다고 하는건지
... 시골 사람들 다 아실꺼예요
할머니한테 큰걸..할머니가 생선장사 하시고 다니셔서
다 아시거든요.
그당시 제가 중3인지 고1인지 그쯤이고
가져갈때 이자를 불려준다며 가져갔고요
그때 저돈개념 없고 아무것도 모를 때예요
다행히 그순진한 그때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그때 통장개설일과 만기일을 써준 통장을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네요 어른이라는 걸로 그어린저에게 큰거짓말을하고
이용을 했으니까요 시골에 살면서 그부인이라는여자가
저에게 윽박지르고 막말을 얼마나 많이했었는지 ..
공부 못한다고 니큰아빠 얼굴에 똥칠하지말어 라며
내뱉던 말들..
시골 친구들은 알아요어릴적에 제가 무서워하고
소극적이며 말도 제대로못하고 한 그런 상황들을.
무섭기도하고 제상황이 불안정했어요 제편도 없는것
같아 무조건 그사람 말이면 들어야하는줄 알았고요
할머니도 옛날 분이시고 맨날 일만 하러나가시니
잘 모르시구요 할머니도 욕많이 히고 좀 억센 할머니시라 잘따르지 못했어요 조카 옆에 있어도할머니한테 대놓고 어서죽어버리라고 한여자를 큰엄마라고 그러고 지냈으니 지금생각하니 너무 어린애한테 못하는말이없고
자기멋대로 살았더라고ㅡ요
본인 자식들에겐 항상 최고최고..
데려다 농사일도 시키고 ..
항상 너이리 와봐 가 이거해 저거해
명령조의 말투..너무 위축되며 지냈었습니다
사춘기땐 누구 좋아하면 그것도 큰잘못처럼
몰던..
말하자면 더한것도많은데 다시 생각하자니 너무 싫네요 그래놓고 저랑 같이 가족사진을 찍어놓고
잘 키웠다고 ..시킨데로 찍고보니 가족사진이더라고요
할머니도 없이 찍었었어요
장남집 사진에 할머니 없는게 당연 한건가요!
너무나 지능적인 여자... .....
고등학교 수능을 (공부에소질이 없었죠 관심이없었어요) 의미없이 치르고 서울 본인딸집에 데려가서 알바를 시키고 생활비에 보태라고 하고
그집에서 컴퓨터 잠깐 써도 머라고 했던여자..
그집에 본인 아들 딸 침대에서 잘때 전 항상
바닥에서 이불 깔고잤어요 당연한듯이
부모없는 설움이 그런거였겠죠
어릴때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잘때도 울고 혼자 집에 있을때도 울고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적이 너무 많았어요
나는 왜 이러고 지내야하는지 너무 슬펐어요..
어릴때에는
명절때 큰아빠들 자식들이랑 와서 각자 잘때
도 슬펐었고..사촌들도 부러웠었고요
.
서울에 올라와 알바를 하러 다닌다는걸.
다행히 다른 친척분이 그사실을 알고
데려와서 그 철창없는 감옥생활을 면했는데..
너무 힘든나날들이라 20대 중반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도 못믿고 좋은분들 많이 만났었는데
차단해버리고
.. 불안장애도 있었어요 공황장애.
일다니면서 쓰러질 뻔한적이 몇번있었어요
그 비슷한 억양이나말투 들으면 날카로워지고
별말아니여도 화내게 되고
귀에서 조잘대는 환청도 들린적있고
...지금은 들리진 않아요 다행인지
...
..그즈음 다른친척집에
도움을 받고 지내다 혼자나와 살려고 시골에
전화해 어릴때 가져간돈달라고 하니 큰아빠라는사람은 대뜸 큰엄마 바꿔준다고 하며 회피하고
그큰엄마라는 여자 욕하고 끊어버렸어요
그러고 다른친척집에서 돈을 좀보태
월세로 살았고여
결혼전 3년반을 살다 보증금 일부 다시 돌
려드렸구요. 휴,
혼자사니 편하고 좋았지만 건강은 좀 안조아
지더라구요 못챙겨 먹으니..
친척집 살때도 머그다지 잘 먹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 에 맞춰 지내며
지난번
그랬던 사람들 돈이 뭐나 싶어 포기하고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또 볼일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결혼을 급작스레 하게 되었고
기대는 안했지만 집안의 제일 큰 어른들이라고
전화를 드렸죠
당연히 온다더군요
결혼식에 할머니대신 앉혀드린 것도 있고요
할머니는 돌아가셨기 때문에요
근데! !!
사위랑 아들 딸 다데려오고
부페도 앉아 먹고 히던 사람들 축의금 십원 한장 안내고
갔답니다
그다음날 전화로 몸이 아파서 왔다네요
그러고 자기 딸 만나서 밥한끼 사달라하랩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그래도
부지런하고 정직하신 좋은 시부모님들을
만나서 이해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저의사정 다 말했구요
그큰엄마라는 여자는 말이 굉장히많고
상대방이 말할 틈을 안줘요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가면 안좋은것도 좋게 둘러대나
그게 아니거나 불리할땐 막말을하며 공격을 하죠
그어릴적부터 동서들 한테도 이년저년 욕을 하고
지금도 그러고 한 세월이있어 다들 연 끊고 산답니다
엊그제 오빠가 전화해서 저아버지 돈얘기하니 강아지랍니다 그큰엄마라는 ..
막장도 막장이 아니예요
지금 더많은 일들이 많으나 내용상 줄이는겁니다
어차피 돈은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줄사람들이면 이미 주고도 남았을꺼니까요
단지 우리 아빠의 목숨을 팔아먹은 잘못.
또 나에게 수많은 폭언과 눈물을 흘리게 했던
지난 날들 . 많이 밝아지며 극복을 했다지만
정신적 상처로 아직도 힘든 저.
이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은건가요?....
ㅜ ㅜ,....
조금은 후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