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글을 다시 찾을 분은 없겠지만.. 네이트 아이디 찾기로 몇년만에 로그인하여 제가 쓴 이 글이 생각이 나 다시 와봤습니다. 7년만에 읽으니까 아 맞아~ 진짜 내가 이랬었지...싶으면서 감회가 새롭네요.
저는 여전히 여변으로 살고 있습니다. 학부는 비법학 출신이라서 학부 여자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저는 자격증 하나 따놓은 걸로 평생 울궈먹네요~ㅋㅋㅋ 저 글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 가을에 저도 엄마가 되었습니다! 사실 은근히 딸이었으면..하는 생각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역시 인생은 묘하게 흘러가 지금은 미운 7살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지요 ^^ 저 애 절대 못 키울거라고 생각했다는 걸 이 글을 보고야 비로소 떠올립니다. 지금은 그냥 '나는 태어날 때부터 워킹맘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워킹맘 역할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정서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랑 덜닮은 자식, 제 남동생과 닮은 자식인 '아들' 엄마가 되어서 그런 것도 같아요. 제가 딸을 낳았으면 딸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제 상처가 떠올라 영영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싶기도 해요. 일때문인지 남편때문인지 아들때문인지 모르지만 저는 이제 제법 온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괴로웠던 과거는 대과거가 되었고, 그 뒤로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넣었기 때문인거 같아요. 아이 가지면서 기빨려서 공공기관으로 이직했다가 지금은.. 신상 노출 때문에 노코멘트 하겠는데 하여간 워라벨도 나름 괜찮아졌습니다. 자해.. 정도가 약해졌는데 아직 조금 있습니다. 발모벽이나 피부 벗기기?정도로 좀 순화는 되었네요^^ 불안하고 일에 집중할때만 주로 발현하구요, 우울증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 때부터 심리상담도 짧게 몇달씩 2~3번 받았는데 너무 많이 울기만 해서 ㅠㅠㅠ 어릴때 얘기만 나오면 제대로 털어놓기도 전에 완전 수도꼭지 돼서 엉엉 울기만 하다가 기진맥진하고 끝났네요… 에고 상담때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납니다 ㅠㅠ
제 인생이 30 전후로 180도 바뀌었다고 할 만큼 저는 이후에 별다른 일이 없었네요! 통쾌한 복수극을 이어서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그 점은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그일 뒤로 바로 연락처 다 차단해버려서 제 인생에서 완전 없는 사람 됐고, 2017년도인가 2018년도인가 한번 엄마한테 다시 연락이 왔던 적은 있습니다. 의외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안부 인사였고요. 제가 그 무렵 카톡 프사를 아들 사진으로 해놨더니 그거 보고 궁금해하다가 연락했다고 했었습니다. 애기 언제 낳았다고 얘기하고, 잘 큰다고 얘기했고, 엄마는 담에 한번 보여달라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그냥 흐지부지 상황종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최후였네요. 남동생은 꽤 빨리 결혼했다고 하는데 대학원은 어찌된건지… 예나 지금이나 너무 관심이 안가서 이제 길에서 우연히 봐도 진짜 모르고 지나칠 것 같습니다(걔에게 무관심해졌던건 제 방어기제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걜 미워하지 않아요. 걔도 그냥 무식한 가족의 피해자였던 것 같아서 그냥 제 앞가림 하고 제 가족 잘챙기고 살았음 좋겠습니다.
예전 글 보니 남편이랑 시댁을 엄청 찬양찬양 해놨는데... ^^ 제가 아직 출산육아 전이어서 그렇게 썼었나봐요~ ㅋㅋㅋㅋㅋ 지금은 그냥 평범한 웬수덩어리 남편이니 뭐 대단한 복은 아니라고만 쓰겠습니다(그러나 이혼한건 아닙니다).
음.. 제가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그런가, 요즘은 어떻게 더 도우며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자들을 위해서요. 이 일을 하면 할 수록 그 마음이 강해지고 언젠가는 벌만큼 벌면 그렇게 살아야겠다 싶습니다. 과거 저처럼 차별받으면서 '독한년'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여자아이들, 알바와 이성 문제(라고 쓰고 성폭력이라고 읽는다)에 치이면서 비좁은 현실의 틈을 뚫으려 하는 여대생들, 저와 비슷하게 반짝이는 꿈을 품고 명문교에 다녔지만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단녀가 되어버린 친구들, 이름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위해서요. 제가 변호사가 되었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사실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은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나가는 여학생들 보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너무 사랑스럽구요, 뭐라도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고 웃게 하고 싶고 그 애들이 정말 행복하고 당당한 여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원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제가 제 태어나지 못한 여동생들과 느꼈던 자매애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제가 32살때 첫 글을 쓸때만 해도 아직 패기넘치는 초짜 여변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저는 그냥 흔하디 흔한 발에 채이는 '여변1'이 되었고 더이상 커리어에 대단한 열정은 없습니다. 좀 김빠지죠? 혹시나 해서 쓰지만 변호사라고 별거 없고 스스로 ‘나 좀 간지난다’고 느낀지 오래입니다. 남들보다 잘날 것도 없는 그냥 애엄마1 그 자체입니다. 제가 뭐 대단한 성공신화를 이룬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냥 어릴때 학대 당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인으로 컸다는 부분 정도가 고무적이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50까지만 아들 키우면서 딱 벌고, 그 다음에는 강연이든 연구든 봉사든 뭐든 하면서 여학생들을 멘토링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게 현재 저의 막연한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커리어와 육아, 자기관리를 한번에 다 해낸 슈퍼우먼이 되는게 모양새가 나올 것 같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를 악물고 죽자사자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세월이 흘러가는대로 시간에 몸을 맡기며 가능한 선에서 열심히 살고있어요...ㅎㅎ 저 많이 물러졌네요. 제가 예전엔 너무 처절하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지 자의식이 좀 강한 편이었는데, 이제 눈에 안띄고 존재감 없이 사는게 편하고 좋습니다^^
그 뒤로 인생이 너무 순탄해져서 뭘 쓸라해도 딱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어요. 여성들 화이팅이라는 말밖에는요. 우리 서로 도와서 우리의 자매들, 딸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봐요. 그리고 여성이고 남성이고간에 배움이 힘입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자격증 공부하세요. 뭐든 좋습니다. 박사, 노무사, 공인중개사, 요양보호사… ‘사’짜로 끝나기만 하면 됩니다. 진부한 소리지만 여자들에게는 그 ‘사’짜가 너무너무 큰 힘이고 마지막 기댈 곳이라는 것을 강조드리고 싶어요. 제가 살면서 너무너무 뼈져리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나는 공부머리가 없다? 육아때문에 못한다? 힘드신거 이해 합니다. 하지만 날 위한 일이니까 포기하고 타협하면 결국 내 가능성을 내가 닫는 거잖아요. 상황을 타개하고 싶으면 괴로워도 싫어도 어쩔수 없이 독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누군가 2022년에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과거는 다 지나가고 극복할 수 있어요.
추가))ㅡㅡㅡ
퇴근하고 댓글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너무나 칭찬해주셔서 얼떨떨하네요.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욕하실 줄 알았어요..ㅎㅎ
제가 멘탈이 강하다고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사실 멘탈이 강하다기 보다는 지고 못 사는 성격입니다. 어릴 때부터 샘이 많아서 부모님이 더 고깝게 본게 아닐까 생각도 해요. 그런데 저런 취급을 당하다보니 스스로 엄청 화가 나고 억울해서.. 공부는 원래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근데 뭐 엄청 잘한 건 또 아니구요. 학교는 내신 따기가 힘든 학교는 아니었고, 수능도 그냥 그럭 저럭 봤어요. 고시는 엉덩이로 공부하는 거라고, 제가 엉덩이가 무거워서 어떻게 붙었네요. 사실 모든 과정에서 운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건 주변에서도 인정 하는 거구요. 일단 멀쩡한 남편 만나 나름 행복하게 살게 된게 엄청난 행운이죠.
그러면서 많이 무너지기도 했고, 많이 울었어요. 거의 아침마다 눈이 부은 채로 학교에 갔어요. 밤마다 우니까. 습관처럼 자해도 했고요(문제는 아직도 함 흑흑).
마음이 너무 힘들고. 낙이라곤 오직 급식시간뿐... 그맘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에요. 돈 없어서 군것질도 못 하니까. 멘탈 강하다는 칭찬 들을 정도로 잘 버틴 건 아니에요. 결과가 괜찮게 나온 거지 그 과정은..정말 휘청휘청 말이 아니었죠.
저에게 자매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집에서 괴로울 때 늘 그 아이들을 생각했어요. 만약 여동생들이 있다면 훨씬 덜 힘들텐데. 걔들이랑 나랑 닮았을까. 혼자 밥먹을 때도 마치 걔들과 함께 먹는 것처럼, 혼자 티비를 봐도 걔들과 함께 보는 것처럼. 그럼 덜 외롭고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지금도 그 애들을 생각해요. 거의 항상 생각해요. 어떤 시험을 보든 그 애들이 저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간다고 믿었어요. 좀 제정신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제가 사랑한 애들이었어요. 태어나지도 않은 여동생들이.
맞춤법 지적하시는 분들 있는데 제가 봐도 심각하긴 하네요. 주술 호응도 안 맞고. ㅎㅎ 폰으로 쓰다보니 실수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저 원래 맞춤법 잘 못써요 ㅋㅋ 고시에 맞춤법 테스트는 없고요. 영어도 대졸신입사원 평균보다도 못할거에요. 원래 법률문서에 나오는 말은 다 거기서 거기에요. 한자어만 줄줄 나열하는 수준이라 오히려 순 한글인 조사 등의 맞춤법이 헷갈릴 때가 있어요. 신입 때 '~한바'라는 띄어쓰기를 모조리 반대로 해서 엄청 혼난 적도 있고요. 아버지뻘 선배님들 중에서는 어떻게 저런걸 틀리나 싶은걸 틀리는 분들도 계세요 ㅋㅋㅋ근데 제 남편은 저보다 더 틀려요.ㅋㅋㅋㅋㅋㅋㅋ이번에 민법 한글로 개정된다는데 둘이 한글공부 좀 해야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모르시는 사실이 있어요. 저같은 사람들 엄청 많습니다. 너무 어려운 환경에 너무도 전형적인 성공한(듯이 보이는) 삶. 소설같죠? 드라마틱하죠? 그런데 정말 많아요. 제 동기 중에도 몇명이나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유복해보이는데 정말 오직 이 길 뿐이라 공부한 친구들. 너무너무 많고 사회 나와서 보니 여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역에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너무나 가난해서 겨울에 전화 전기 수도 가스 전부 끊기는 집에서 사는 친구도 있었고요. 가정폭력 당한 친구. 성폭력 당한 친구. 너무너무 많습니다. 모난 사람은 모난 사람끼리 금방 알아봐요. 평화로워보이는 이면에 이렇게 추악한 일이 많은 세상이더라구요.
신상 노출될 것도 같아서 추후 피드백은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고. 그냥 세상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다 선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이제 정말 피곤해서요. 이런 정신 소모. 앞으론 안 하고 사는 걸 새 목표로 삼으려고요. 모두 힘든 일 다 지나가실거에요. 제 경험상 늘 그랬어요.
안녕하세요. 결혼한 지 2년된 32살 새댁입니다.
판 보다가 나쁜 딸 되기로 한 글보니..제 가정사가 생각나서요. 눈물이 나네요.
저랑 신랑만 알고 있던 막장 가족사. 여기다가 털어놓습니다.
제 부모라고 부르기도 싫은 부모는 어린 나이에 사고쳐서 절 임신했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부랴부랴 결혼했어요. 배운 것 모은 것도 없고 양가 부모님들 시선이 곱지 않아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동정하고 싶지는 않네요.
제 기억이 시작되는 건 5살 터울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에요. 그때부터 기억나는 모든 추억들이 저에게는 끔찍한 상처일 뿐이네요.
엄마란 사람은 시집의 냉대가 자기 행실 때문이 아니라 딸을 낳은 죄라고 생각했는지, 제 밑으로 생긴 동생들을 오직 딸이라는 이유로 족족 낙태했어요. 남동생과 나이터울이 나는 건 그 때문이고, 저 중학교 때 아무렇지도 않게 저 얘기를 하더라구요. 너도 너 위에 언니라도 있었다면 산 목숨은 아닐거라고. 감사하라고. 그 때부터 꿈 속에 죽은 여동생들이 나와서 날 저주하는 악몽을 하루가 멀다하며 꾸면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아버지라는 작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에요. 작은 사업을 했는데 밤 늦게 술 처먹고 들어와 엄마랑 자는 나에게 폭언을 던지던 것 외에는 별 기억이 없네요. 니들 때문에 내 인생 꼬였다고. 맨정신일 때에는 아예 저를 개무시하구요. 그게 차라리 편했어요. 저도 개무시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아들은 끔찍이 여겼죠. 그런 인간이었어요.
동생이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온갖 사교육을 다 동원하여 동생에게 올인하더라구요. 오냐오냐 자라서 개념도 없는 애한테. 저는 공부욕심이 있어서 학원 다니고 싶다고 중학교 때 조르다가 뺨 맞았습니다. 어디서 부모 지갑을 우습게 아느냐고. 그게 억울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집에서 공부하면 일부러 TV 크게 틀어놓고 다들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절 무시하는 말을 해서 집 밖에 나와 상가에 있는 동네 학원 창고같은, 구석에 안 쓰는 책걸상 보관하는 곳. 그곳에 들어가서 몇시간이고 공부했어요. 어두컴컴한데서. 눈도 다 버리고...안경값 든다고 또 욕 많이 먹었네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전교 일등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만큼은 저도 너무 좋아서, 꼬리표 들고 집에 뛰어왔어요. 예쁨받고 싶어서. 그냥 사랑받고 싶어서. 집에 엄마가 있었는데 말 없이 자랑스럽게 내미니까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뒤돌아 서더라구요. 저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돼서, 왜 그러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를 기다렸어요. 늦어지는게 불안하더니만 역시 술을 먹고 오더라구요. 꼬리표를 내밀었더니 받아들었어요. 그러더니 하는말.
'근데 뭐.'
제가 어안이 벙벙해서 바보같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밀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냐? 꼴통학교에서 잘하니까 좋냐? 니가 독하니까 니 동생이 기를 못펴는거 아냐. 여자가 공부 잘 해봐야 어따써먹냐? 살이나 빼라'라고 소리치더니 제 꼬리표를 손으로 구기고 바닥에 던지고 들어갔어요. 저는 너무 놀라고 충격 받아서 계속 서 있었는데 엄마가 나오더니 짜증을 내면서 동생 자는데 왜 시끄럽게 만드냐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들어가 자라고... 그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다짐했어요. 내가 잘 돼서 복수하기로. 그 때부터 내 가족에 대한 마음은 오직 하나. 증오 뿐이었어요.
고등학교 가서도 그 일념 하나로 정말 독하게 했어요. 고3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 0.1프로 나와서 학교에서 상품으로 도서상품권도 받았는데 가족에겐 말 안 했어요. 부모는 우리 동네가 학군이 구린건 생각 안 하고 만날 꼴통학교 꼴통학교. 아예 말도 안꺼냈어요. 성적에 대해서.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칭찬 한 번 받아본 적 없네요.
수능은 생각보다 안 나와서, S대가 불안하게 되었어요. 사립학비가 어마어마하니 원서 쓰기 전에 부모님께 자존심 숙이고 말씀드렸더니 욕을 욕을 하더군요. 그렇게 혼자 잘난 척 하더니 결국 비싼 데로 가냐고. 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서 지금 중요한 시기인 동생 기를 죽이냐고. 학비 절대 못 대주니까 알아서 하라고 제 눈 앞에서 배치표를 확 찢어버리더군요. 울면서 배치표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담임선생님께 원서대 빌려서 결국 사립학교에 붙었습니다.
대학 다니는 동안은 자취는 꿈도 못 꿔서 하루 4시간씩 통학하면서, 알바 뛰고 장학금 받고 부족한 건 학자금 얹어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복수하려면 이 길밖엔 없다는 생각으로 고시 도전해서 결국 붙었습니다. 고시공부할 때 지원이 없어 고생했던거 다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구질구질하니 생략합니다. 그리고 명예고 권력이고 나발이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바로 일해서 올해 4년차 입니다. 연봉 많이 주고요. 남들 보기에 당당한 여자로 살고 있습니다. 공부하며 만난 남친이랑 2년 전에 결혼했는데, 멀쩡한 부모도 모은 돈도 쥐뿔도 없는 저를 두말 않고 받아주신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평생 갚는 마음으로 살아갈 겁니다.
물론 고시 통과 후 집이랑은 연을 끊었습니다. 결혼도 알리지 않았고 시부모님께도 신랑이 잘 말씀드려 더는 묻지 않으시더라구요. 따로 연락은 안 했지만 그래도 입소문을 통해 알았을텐데, 끝까지 아는 척을 안 하더군요. 저도 독하지만 그 사람들도 독합니다. 손 벌릴까봐 무서웠나봐요. 시댁에서 지원도 받고 조금이나마 융자 얻어서 우리 살림 마련했고 함께 벌기 시작한 뒤로는 돈도 금방금방 잘 모여서 이제는 살만합니다. 옛날 생각하면 꽤나 고급지게 먹고 입고.. 남들이 보면 유복하게 엘리트처럼 큰 줄 압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보이는 이 모난 성격.. 채울 수 없는 결핍의 흔적이겠지요.
그런데 반 년 전에 처음으로 엄마란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번호 저장을 안 해서 안 받았더니 문자로 연락이 왔는데, 아버지 사업이 많이 어려워졌나 보더라구요. 저한테 동생 이번에 대학원 가는 거 학비 좀 보태달라대요. 전공이 특수해서 학비가 비싸데요. 동생이 어느 대학 간지도 몰랐는데 참 그 사교육비 들인거 치고는 미미한 결과더군요. 취직이 안 돼서 나이 먹고 대학원 걸쳐놓나봅니다. 복수심이 생기데요. 일단 오라고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만났는데, 정말 제 인생 할 수 있는 치장이란 치장은 다 하고 갔습니다. 결혼식보다 더 꾸미고 간 것 같아요. 원래 수수하게 하고 다니는 편인데 유일하게 있는 명품백 들고 힐 신고 드라이 하고 나갔습니다. 친정엄마 만나는게 아니라 무슨 전투에 참전하는 것처럼. 건물 로비에 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조금 늦게 나와보니 엄마가 초조한 듯 앉아있더라구요. 많이 초라해졌더군요. 어렵기는 어려운지. 그런데 또 서울와서 기죽기는 싫은지 테이블에 보란 듯이 샤X 팩트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웃겨서 피식 웃으며 들어갔습니다.
보더니 살가운 척을 해요. 저도 클라이언트 대하듯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이것 저것 안부도 묻고 꺄르르. 제 모습 보고는 생각보다 더 잘 사는거 같아 놀랐나봐요. 아빠도 자기 지인들한테 요즘 내 자랑을 하고 다닌답니다. 연락 한 통 안 하면서 무슨.. 내가 잘 된 거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생색은 내고픈가보지. 비굴한 꼴에 실소만 나더라구요.
그러다가 동생 학비 얘길 슬그머니 꺼내더라구요. 저는 전문직끼리 결혼했으니 여유있지 않냐면서. 동기 간에 서로 돕고 하면 좋데요. 저는 도움받은 게 없는데...
제가 활짝 웃으면서 준비해 간 봉투를 꺼냈어요. 엄마는 덥썩 잡고 고맙다고 하며 슬쩍 들여다 보더니만 그대로 얼었네요. 5만원짜리 한 장 넣어드렸습니다. 이게 뭐냐고 하네요. 제가 동생 용돈 좀 챙겨봤다고 그랬습니다. 나 학교다닐 때 한 달에 천 원 씩 용돈 주면서, 토요일에 특별활동하러 공설운동장까지 갈 차비도 없어서 집합 한 시간 전에 걸어서 출발하고, 집에 올 때에는 친구들은 버스 타고 가는데 나는 엄마가 데릴러 온다고 거짓말치고 다시 한 시간 걸려 걸어오면서 울고 했거든요. 내가 그 때 받던 용돈 몇년치를 이렇게 주는데 고맙지 않냐고. 사교육 받은 돈은 다 어디가고 지금 취직도 못 하니 누나된 도리로서 두둑히 넣었다고.
엄마 손이 벌벌 떨리데요. 물잔 머리 위에 부으면 제 제일 좋은 옷 버릴까봐 제가 빼앗아들고 웃으면서 홀짝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일하러 간다고 바쁘다고 일어서면서 지갑에서 5만원 더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커피 값 계산하시고, 옷 좀 사 입으시라고. 이런 데는 그래도 좀 차려입고 와야 안 빠진다고. 그 말 하면서 정말 제가 생각해도 간사한 표정으로 미소지었습니다. 엄마는 얼굴이 그야말로 흙빛이 되고 정말 너무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졌어요. 하지만 불쌍하진 않았어요. 더는 연락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는거 억지로 괜찮은 척 파워워킹했습니다. 뒤에서 썅욕이라도 들릴까봐 두근댔는데 아무 소리 없었어요. 그렇게 뒤도 안 보고 걸어나왔습니다. 어떻게 사무실까지 왔는지 기억도 없어요. 술에 만취한 것처럼 비틀대며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어지러웠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살았구나. 그 생각을 하며 미친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었습니다. 흥분되기도 하도. 통쾌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리고... 허무해졌어요. 너무 허무해서 살기 싫을 만큼. 이제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야근 조퇴하고 남편 불러내서 집에 가서 밤 새도록 껴안고 울었습니다. 며칠 만에 살이 3키로가 넘게 빠질만큼. 솔직히 모든게 너무나 버거웠어요.
그러고 며칠 뒤 밤에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그럴 줄은 알았는데 아빠더라구요. 받으니 역시나 썅욕부터 하십니다. 전화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술냄새. 저는 이제 가슴이 벌렁거리지도 않았고 그냥 담담히 들었어요. 니 년 잘 살줄 아느냐. 부모형제도 못 알아보는 불한당같은 년. 누구 때문에 출세 했는데 은혜도 모르는 년. 그 외에도 무수한 욕욕욕. 그냥 다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저기요 사무장 통해 내용증명 보낼테니 받기 싫으시면 전화 끊으세요. 불한당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바쁜 사람 붙잡고 못 배운티 내면 안 되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더니 공부 안 하셨나봐요. 아, 아드님이 공부 많이 하셨다는데 그 쪽 통해서 연락주시죠.'
하니까 한참 대답이 없더라고요. 그러더니 울부짖는 소리 비슷하게 욕으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솔직히 좀 놀라서 무섭기는 했는데 그냥 술 먹고 주정부리는거 같아서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아내분 편에 돈 보냈으니까 아드님 학비에 보태라고 하고 끊었어요. 다시 울릴 것 같아 폰을 꼭 부여잡고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다시 울리진 않더라고요.
그게 반년 전인데 그 뒤로는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부모님들끼리 알고 지내던 고향 동네 친구한테 얼마 전 연락해서 돌려 물으니까, 사업하던 거 다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갔다는 소문이 있데요. 쪽팔린 건 아는지 사람들한테 제 얘기는 안 했나봐요. 동생은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슬프고 허무하던 마음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습니다. 남편은 빨리 아이도 갖고 싶어하는데 저는 커리어 핑계 대고 미루고 있지만, 사실 제 마음이 아직 이렇게 모난 상태인데 자식한테 저 같은 상처 입히는 부모될거같은 두려움이 커요.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닮는다잖아요. 공부 핑계 일 핑계대고 심리상담 한 번 못 받아봤는데, 이제 아이 계획도 있으니 한 번 받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시간은 둘째치고 일단 용기가 잘 안생기네요. 이젠 없던 일처럼 지울 수 있는 과거가 된 것 같은데, 제가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게 없어지질 않고 더 또렷해질까봐.
이런 마음의 상처는 말하는 것 만으로도 치유가 된다고 해서 여기다가 간략히 털어놔봐요. 저것들은 분기별 대사건 정도로 큼지막한 줄거리들을 엮은 것 뿐이고, 실제로 제 멘탈 조각났던 일들 하나하나 말하자면 정말 끝이 없을 거에요. 그런 일들이 뭐랄까... 제 기억이 라닌 것처럼 느껴져요. 실제로 겪은 게 아니고 어디서 듣고 배워서 습득한 기억들처럼... 과거에 너무 매몰되다보니 어느 순간 오히려 모든 기억이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저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없는 일로 하고 싶은가봐요.
업무 짬짬이 끊어서 쓰느라 대충 쓰긴 했지만.. 속 시원해 진다면 계속 조금씩 풀어서 쓰고 싶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같은 상처 가진 분들, 우리같은 이들은 본인이 독하게 잘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 힘내요. 우리가 서로 응원하고 서로 사랑해줘요.
추가) 막장보다 더 막장같은 내 가족사.. 이제 털어놓습니다.
이제 이 글을 다시 찾을 분은 없겠지만.. 네이트 아이디 찾기로 몇년만에 로그인하여 제가 쓴 이 글이 생각이 나 다시 와봤습니다. 7년만에 읽으니까 아 맞아~ 진짜 내가 이랬었지...싶으면서 감회가 새롭네요.
저는 여전히 여변으로 살고 있습니다. 학부는 비법학 출신이라서 학부 여자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저는 자격증 하나 따놓은 걸로 평생 울궈먹네요~ㅋㅋㅋ 저 글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 가을에 저도 엄마가 되었습니다! 사실 은근히 딸이었으면..하는 생각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역시 인생은 묘하게 흘러가 지금은 미운 7살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지요 ^^ 저 애 절대 못 키울거라고 생각했다는 걸 이 글을 보고야 비로소 떠올립니다. 지금은 그냥 '나는 태어날 때부터 워킹맘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워킹맘 역할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정서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랑 덜닮은 자식, 제 남동생과 닮은 자식인 '아들' 엄마가 되어서 그런 것도 같아요. 제가 딸을 낳았으면 딸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제 상처가 떠올라 영영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싶기도 해요. 일때문인지 남편때문인지 아들때문인지 모르지만 저는 이제 제법 온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괴로웠던 과거는 대과거가 되었고, 그 뒤로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넣었기 때문인거 같아요. 아이 가지면서 기빨려서 공공기관으로 이직했다가 지금은.. 신상 노출 때문에 노코멘트 하겠는데 하여간 워라벨도 나름 괜찮아졌습니다. 자해.. 정도가 약해졌는데 아직 조금 있습니다. 발모벽이나 피부 벗기기?정도로 좀 순화는 되었네요^^ 불안하고 일에 집중할때만 주로 발현하구요, 우울증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 때부터 심리상담도 짧게 몇달씩 2~3번 받았는데 너무 많이 울기만 해서 ㅠㅠㅠ 어릴때 얘기만 나오면 제대로 털어놓기도 전에 완전 수도꼭지 돼서 엉엉 울기만 하다가 기진맥진하고 끝났네요… 에고 상담때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납니다 ㅠㅠ
제 인생이 30 전후로 180도 바뀌었다고 할 만큼 저는 이후에 별다른 일이 없었네요! 통쾌한 복수극을 이어서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그 점은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그일 뒤로 바로 연락처 다 차단해버려서 제 인생에서 완전 없는 사람 됐고, 2017년도인가 2018년도인가 한번 엄마한테 다시 연락이 왔던 적은 있습니다. 의외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안부 인사였고요. 제가 그 무렵 카톡 프사를 아들 사진으로 해놨더니 그거 보고 궁금해하다가 연락했다고 했었습니다. 애기 언제 낳았다고 얘기하고, 잘 큰다고 얘기했고, 엄마는 담에 한번 보여달라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그냥 흐지부지 상황종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최후였네요. 남동생은 꽤 빨리 결혼했다고 하는데 대학원은 어찌된건지… 예나 지금이나 너무 관심이 안가서 이제 길에서 우연히 봐도 진짜 모르고 지나칠 것 같습니다(걔에게 무관심해졌던건 제 방어기제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걜 미워하지 않아요. 걔도 그냥 무식한 가족의 피해자였던 것 같아서 그냥 제 앞가림 하고 제 가족 잘챙기고 살았음 좋겠습니다.
예전 글 보니 남편이랑 시댁을 엄청 찬양찬양 해놨는데... ^^ 제가 아직 출산육아 전이어서 그렇게 썼었나봐요~ ㅋㅋㅋㅋㅋ 지금은 그냥 평범한 웬수덩어리 남편이니 뭐 대단한 복은 아니라고만 쓰겠습니다(그러나 이혼한건 아닙니다).
음.. 제가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그런가, 요즘은 어떻게 더 도우며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자들을 위해서요. 이 일을 하면 할 수록 그 마음이 강해지고 언젠가는 벌만큼 벌면 그렇게 살아야겠다 싶습니다. 과거 저처럼 차별받으면서 '독한년'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여자아이들, 알바와 이성 문제(라고 쓰고 성폭력이라고 읽는다)에 치이면서 비좁은 현실의 틈을 뚫으려 하는 여대생들, 저와 비슷하게 반짝이는 꿈을 품고 명문교에 다녔지만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단녀가 되어버린 친구들, 이름을 잃어버린 여자들을 위해서요. 제가 변호사가 되었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사실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은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나가는 여학생들 보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너무 사랑스럽구요, 뭐라도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고 웃게 하고 싶고 그 애들이 정말 행복하고 당당한 여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원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제가 제 태어나지 못한 여동생들과 느꼈던 자매애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제가 32살때 첫 글을 쓸때만 해도 아직 패기넘치는 초짜 여변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저는 그냥 흔하디 흔한 발에 채이는 '여변1'이 되었고 더이상 커리어에 대단한 열정은 없습니다. 좀 김빠지죠? 혹시나 해서 쓰지만 변호사라고 별거 없고 스스로 ‘나 좀 간지난다’고 느낀지 오래입니다. 남들보다 잘날 것도 없는 그냥 애엄마1 그 자체입니다. 제가 뭐 대단한 성공신화를 이룬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냥 어릴때 학대 당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인으로 컸다는 부분 정도가 고무적이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50까지만 아들 키우면서 딱 벌고, 그 다음에는 강연이든 연구든 봉사든 뭐든 하면서 여학생들을 멘토링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게 현재 저의 막연한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커리어와 육아, 자기관리를 한번에 다 해낸 슈퍼우먼이 되는게 모양새가 나올 것 같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를 악물고 죽자사자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세월이 흘러가는대로 시간에 몸을 맡기며 가능한 선에서 열심히 살고있어요...ㅎㅎ 저 많이 물러졌네요. 제가 예전엔 너무 처절하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지 자의식이 좀 강한 편이었는데, 이제 눈에 안띄고 존재감 없이 사는게 편하고 좋습니다^^
그 뒤로 인생이 너무 순탄해져서 뭘 쓸라해도 딱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어요. 여성들 화이팅이라는 말밖에는요. 우리 서로 도와서 우리의 자매들, 딸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봐요. 그리고 여성이고 남성이고간에 배움이 힘입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자격증 공부하세요. 뭐든 좋습니다. 박사, 노무사, 공인중개사, 요양보호사… ‘사’짜로 끝나기만 하면 됩니다. 진부한 소리지만 여자들에게는 그 ‘사’짜가 너무너무 큰 힘이고 마지막 기댈 곳이라는 것을 강조드리고 싶어요. 제가 살면서 너무너무 뼈져리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나는 공부머리가 없다? 육아때문에 못한다? 힘드신거 이해 합니다. 하지만 날 위한 일이니까 포기하고 타협하면 결국 내 가능성을 내가 닫는 거잖아요. 상황을 타개하고 싶으면 괴로워도 싫어도 어쩔수 없이 독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누군가 2022년에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과거는 다 지나가고 극복할 수 있어요.
추가))ㅡㅡㅡ
퇴근하고 댓글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너무나 칭찬해주셔서 얼떨떨하네요.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욕하실 줄 알았어요..ㅎㅎ
제가 멘탈이 강하다고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사실 멘탈이 강하다기 보다는 지고 못 사는 성격입니다. 어릴 때부터 샘이 많아서 부모님이 더 고깝게 본게 아닐까 생각도 해요. 그런데 저런 취급을 당하다보니 스스로 엄청 화가 나고 억울해서.. 공부는 원래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근데 뭐 엄청 잘한 건 또 아니구요. 학교는 내신 따기가 힘든 학교는 아니었고, 수능도 그냥 그럭 저럭 봤어요. 고시는 엉덩이로 공부하는 거라고, 제가 엉덩이가 무거워서 어떻게 붙었네요. 사실 모든 과정에서 운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건 주변에서도 인정 하는 거구요. 일단 멀쩡한 남편 만나 나름 행복하게 살게 된게 엄청난 행운이죠.
그러면서 많이 무너지기도 했고, 많이 울었어요. 거의 아침마다 눈이 부은 채로 학교에 갔어요. 밤마다 우니까. 습관처럼 자해도 했고요(문제는 아직도 함 흑흑).
마음이 너무 힘들고. 낙이라곤 오직 급식시간뿐... 그맘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에요. 돈 없어서 군것질도 못 하니까. 멘탈 강하다는 칭찬 들을 정도로 잘 버틴 건 아니에요. 결과가 괜찮게 나온 거지 그 과정은..정말 휘청휘청 말이 아니었죠.
저에게 자매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집에서 괴로울 때 늘 그 아이들을 생각했어요. 만약 여동생들이 있다면 훨씬 덜 힘들텐데. 걔들이랑 나랑 닮았을까. 혼자 밥먹을 때도 마치 걔들과 함께 먹는 것처럼, 혼자 티비를 봐도 걔들과 함께 보는 것처럼. 그럼 덜 외롭고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지금도 그 애들을 생각해요. 거의 항상 생각해요. 어떤 시험을 보든 그 애들이 저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간다고 믿었어요. 좀 제정신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제가 사랑한 애들이었어요. 태어나지도 않은 여동생들이.
맞춤법 지적하시는 분들 있는데 제가 봐도 심각하긴 하네요. 주술 호응도 안 맞고. ㅎㅎ 폰으로 쓰다보니 실수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저 원래 맞춤법 잘 못써요 ㅋㅋ 고시에 맞춤법 테스트는 없고요. 영어도 대졸신입사원 평균보다도 못할거에요. 원래 법률문서에 나오는 말은 다 거기서 거기에요. 한자어만 줄줄 나열하는 수준이라 오히려 순 한글인 조사 등의 맞춤법이 헷갈릴 때가 있어요. 신입 때 '~한바'라는 띄어쓰기를 모조리 반대로 해서 엄청 혼난 적도 있고요. 아버지뻘 선배님들 중에서는 어떻게 저런걸 틀리나 싶은걸 틀리는 분들도 계세요 ㅋㅋㅋ근데 제 남편은 저보다 더 틀려요.ㅋㅋㅋㅋㅋㅋㅋ이번에 민법 한글로 개정된다는데 둘이 한글공부 좀 해야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모르시는 사실이 있어요. 저같은 사람들 엄청 많습니다. 너무 어려운 환경에 너무도 전형적인 성공한(듯이 보이는) 삶. 소설같죠? 드라마틱하죠? 그런데 정말 많아요. 제 동기 중에도 몇명이나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유복해보이는데 정말 오직 이 길 뿐이라 공부한 친구들. 너무너무 많고 사회 나와서 보니 여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역에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너무나 가난해서 겨울에 전화 전기 수도 가스 전부 끊기는 집에서 사는 친구도 있었고요. 가정폭력 당한 친구. 성폭력 당한 친구. 너무너무 많습니다. 모난 사람은 모난 사람끼리 금방 알아봐요. 평화로워보이는 이면에 이렇게 추악한 일이 많은 세상이더라구요.
신상 노출될 것도 같아서 추후 피드백은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고. 그냥 세상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다 선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이제 정말 피곤해서요. 이런 정신 소모. 앞으론 안 하고 사는 걸 새 목표로 삼으려고요. 모두 힘든 일 다 지나가실거에요. 제 경험상 늘 그랬어요.
안녕하세요. 결혼한 지 2년된 32살 새댁입니다.
판 보다가 나쁜 딸 되기로 한 글보니..제 가정사가 생각나서요. 눈물이 나네요.
저랑 신랑만 알고 있던 막장 가족사. 여기다가 털어놓습니다.
제 부모라고 부르기도 싫은 부모는 어린 나이에 사고쳐서 절 임신했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부랴부랴 결혼했어요. 배운 것 모은 것도 없고 양가 부모님들 시선이 곱지 않아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동정하고 싶지는 않네요.
제 기억이 시작되는 건 5살 터울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에요. 그때부터 기억나는 모든 추억들이 저에게는 끔찍한 상처일 뿐이네요.
엄마란 사람은 시집의 냉대가 자기 행실 때문이 아니라 딸을 낳은 죄라고 생각했는지, 제 밑으로 생긴 동생들을 오직 딸이라는 이유로 족족 낙태했어요. 남동생과 나이터울이 나는 건 그 때문이고, 저 중학교 때 아무렇지도 않게 저 얘기를 하더라구요. 너도 너 위에 언니라도 있었다면 산 목숨은 아닐거라고. 감사하라고. 그 때부터 꿈 속에 죽은 여동생들이 나와서 날 저주하는 악몽을 하루가 멀다하며 꾸면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아버지라는 작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에요. 작은 사업을 했는데 밤 늦게 술 처먹고 들어와 엄마랑 자는 나에게 폭언을 던지던 것 외에는 별 기억이 없네요. 니들 때문에 내 인생 꼬였다고. 맨정신일 때에는 아예 저를 개무시하구요. 그게 차라리 편했어요. 저도 개무시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아들은 끔찍이 여겼죠. 그런 인간이었어요.
동생이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온갖 사교육을 다 동원하여 동생에게 올인하더라구요. 오냐오냐 자라서 개념도 없는 애한테. 저는 공부욕심이 있어서 학원 다니고 싶다고 중학교 때 조르다가 뺨 맞았습니다. 어디서 부모 지갑을 우습게 아느냐고. 그게 억울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집에서 공부하면 일부러 TV 크게 틀어놓고 다들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절 무시하는 말을 해서 집 밖에 나와 상가에 있는 동네 학원 창고같은, 구석에 안 쓰는 책걸상 보관하는 곳. 그곳에 들어가서 몇시간이고 공부했어요. 어두컴컴한데서. 눈도 다 버리고...안경값 든다고 또 욕 많이 먹었네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전교 일등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만큼은 저도 너무 좋아서, 꼬리표 들고 집에 뛰어왔어요. 예쁨받고 싶어서. 그냥 사랑받고 싶어서. 집에 엄마가 있었는데 말 없이 자랑스럽게 내미니까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뒤돌아 서더라구요. 저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돼서, 왜 그러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를 기다렸어요. 늦어지는게 불안하더니만 역시 술을 먹고 오더라구요. 꼬리표를 내밀었더니 받아들었어요. 그러더니 하는말.
'근데 뭐.'
제가 어안이 벙벙해서 바보같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밀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냐? 꼴통학교에서 잘하니까 좋냐? 니가 독하니까 니 동생이 기를 못펴는거 아냐. 여자가 공부 잘 해봐야 어따써먹냐? 살이나 빼라'라고 소리치더니 제 꼬리표를 손으로 구기고 바닥에 던지고 들어갔어요. 저는 너무 놀라고 충격 받아서 계속 서 있었는데 엄마가 나오더니 짜증을 내면서 동생 자는데 왜 시끄럽게 만드냐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들어가 자라고... 그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다짐했어요. 내가 잘 돼서 복수하기로. 그 때부터 내 가족에 대한 마음은 오직 하나. 증오 뿐이었어요.
고등학교 가서도 그 일념 하나로 정말 독하게 했어요. 고3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 0.1프로 나와서 학교에서 상품으로 도서상품권도 받았는데 가족에겐 말 안 했어요. 부모는 우리 동네가 학군이 구린건 생각 안 하고 만날 꼴통학교 꼴통학교. 아예 말도 안꺼냈어요. 성적에 대해서.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칭찬 한 번 받아본 적 없네요.
수능은 생각보다 안 나와서, S대가 불안하게 되었어요. 사립학비가 어마어마하니 원서 쓰기 전에 부모님께 자존심 숙이고 말씀드렸더니 욕을 욕을 하더군요. 그렇게 혼자 잘난 척 하더니 결국 비싼 데로 가냐고. 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서 지금 중요한 시기인 동생 기를 죽이냐고. 학비 절대 못 대주니까 알아서 하라고 제 눈 앞에서 배치표를 확 찢어버리더군요. 울면서 배치표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담임선생님께 원서대 빌려서 결국 사립학교에 붙었습니다.
대학 다니는 동안은 자취는 꿈도 못 꿔서 하루 4시간씩 통학하면서, 알바 뛰고 장학금 받고 부족한 건 학자금 얹어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복수하려면 이 길밖엔 없다는 생각으로 고시 도전해서 결국 붙었습니다. 고시공부할 때 지원이 없어 고생했던거 다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구질구질하니 생략합니다. 그리고 명예고 권력이고 나발이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바로 일해서 올해 4년차 입니다. 연봉 많이 주고요. 남들 보기에 당당한 여자로 살고 있습니다. 공부하며 만난 남친이랑 2년 전에 결혼했는데, 멀쩡한 부모도 모은 돈도 쥐뿔도 없는 저를 두말 않고 받아주신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평생 갚는 마음으로 살아갈 겁니다.
물론 고시 통과 후 집이랑은 연을 끊었습니다. 결혼도 알리지 않았고 시부모님께도 신랑이 잘 말씀드려 더는 묻지 않으시더라구요. 따로 연락은 안 했지만 그래도 입소문을 통해 알았을텐데, 끝까지 아는 척을 안 하더군요. 저도 독하지만 그 사람들도 독합니다. 손 벌릴까봐 무서웠나봐요. 시댁에서 지원도 받고 조금이나마 융자 얻어서 우리 살림 마련했고 함께 벌기 시작한 뒤로는 돈도 금방금방 잘 모여서 이제는 살만합니다. 옛날 생각하면 꽤나 고급지게 먹고 입고.. 남들이 보면 유복하게 엘리트처럼 큰 줄 압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보이는 이 모난 성격.. 채울 수 없는 결핍의 흔적이겠지요.
그런데 반 년 전에 처음으로 엄마란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번호 저장을 안 해서 안 받았더니 문자로 연락이 왔는데, 아버지 사업이 많이 어려워졌나 보더라구요. 저한테 동생 이번에 대학원 가는 거 학비 좀 보태달라대요. 전공이 특수해서 학비가 비싸데요. 동생이 어느 대학 간지도 몰랐는데 참 그 사교육비 들인거 치고는 미미한 결과더군요. 취직이 안 돼서 나이 먹고 대학원 걸쳐놓나봅니다. 복수심이 생기데요. 일단 오라고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만났는데, 정말 제 인생 할 수 있는 치장이란 치장은 다 하고 갔습니다. 결혼식보다 더 꾸미고 간 것 같아요. 원래 수수하게 하고 다니는 편인데 유일하게 있는 명품백 들고 힐 신고 드라이 하고 나갔습니다. 친정엄마 만나는게 아니라 무슨 전투에 참전하는 것처럼. 건물 로비에 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조금 늦게 나와보니 엄마가 초조한 듯 앉아있더라구요. 많이 초라해졌더군요. 어렵기는 어려운지. 그런데 또 서울와서 기죽기는 싫은지 테이블에 보란 듯이 샤X 팩트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웃겨서 피식 웃으며 들어갔습니다.
보더니 살가운 척을 해요. 저도 클라이언트 대하듯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이것 저것 안부도 묻고 꺄르르. 제 모습 보고는 생각보다 더 잘 사는거 같아 놀랐나봐요. 아빠도 자기 지인들한테 요즘 내 자랑을 하고 다닌답니다. 연락 한 통 안 하면서 무슨.. 내가 잘 된 거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생색은 내고픈가보지. 비굴한 꼴에 실소만 나더라구요.
그러다가 동생 학비 얘길 슬그머니 꺼내더라구요. 저는 전문직끼리 결혼했으니 여유있지 않냐면서. 동기 간에 서로 돕고 하면 좋데요. 저는 도움받은 게 없는데...
제가 활짝 웃으면서 준비해 간 봉투를 꺼냈어요. 엄마는 덥썩 잡고 고맙다고 하며 슬쩍 들여다 보더니만 그대로 얼었네요. 5만원짜리 한 장 넣어드렸습니다. 이게 뭐냐고 하네요. 제가 동생 용돈 좀 챙겨봤다고 그랬습니다. 나 학교다닐 때 한 달에 천 원 씩 용돈 주면서, 토요일에 특별활동하러 공설운동장까지 갈 차비도 없어서 집합 한 시간 전에 걸어서 출발하고, 집에 올 때에는 친구들은 버스 타고 가는데 나는 엄마가 데릴러 온다고 거짓말치고 다시 한 시간 걸려 걸어오면서 울고 했거든요. 내가 그 때 받던 용돈 몇년치를 이렇게 주는데 고맙지 않냐고. 사교육 받은 돈은 다 어디가고 지금 취직도 못 하니 누나된 도리로서 두둑히 넣었다고.
엄마 손이 벌벌 떨리데요. 물잔 머리 위에 부으면 제 제일 좋은 옷 버릴까봐 제가 빼앗아들고 웃으면서 홀짝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일하러 간다고 바쁘다고 일어서면서 지갑에서 5만원 더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커피 값 계산하시고, 옷 좀 사 입으시라고. 이런 데는 그래도 좀 차려입고 와야 안 빠진다고. 그 말 하면서 정말 제가 생각해도 간사한 표정으로 미소지었습니다. 엄마는 얼굴이 그야말로 흙빛이 되고 정말 너무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졌어요. 하지만 불쌍하진 않았어요. 더는 연락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는거 억지로 괜찮은 척 파워워킹했습니다. 뒤에서 썅욕이라도 들릴까봐 두근댔는데 아무 소리 없었어요. 그렇게 뒤도 안 보고 걸어나왔습니다. 어떻게 사무실까지 왔는지 기억도 없어요. 술에 만취한 것처럼 비틀대며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어지러웠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살았구나. 그 생각을 하며 미친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었습니다. 흥분되기도 하도. 통쾌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리고... 허무해졌어요. 너무 허무해서 살기 싫을 만큼. 이제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야근 조퇴하고 남편 불러내서 집에 가서 밤 새도록 껴안고 울었습니다. 며칠 만에 살이 3키로가 넘게 빠질만큼. 솔직히 모든게 너무나 버거웠어요.
그러고 며칠 뒤 밤에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그럴 줄은 알았는데 아빠더라구요. 받으니 역시나 썅욕부터 하십니다. 전화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술냄새. 저는 이제 가슴이 벌렁거리지도 않았고 그냥 담담히 들었어요. 니 년 잘 살줄 아느냐. 부모형제도 못 알아보는 불한당같은 년. 누구 때문에 출세 했는데 은혜도 모르는 년. 그 외에도 무수한 욕욕욕. 그냥 다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저기요 사무장 통해 내용증명 보낼테니 받기 싫으시면 전화 끊으세요. 불한당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바쁜 사람 붙잡고 못 배운티 내면 안 되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더니 공부 안 하셨나봐요. 아, 아드님이 공부 많이 하셨다는데 그 쪽 통해서 연락주시죠.'
하니까 한참 대답이 없더라고요. 그러더니 울부짖는 소리 비슷하게 욕으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솔직히 좀 놀라서 무섭기는 했는데 그냥 술 먹고 주정부리는거 같아서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아내분 편에 돈 보냈으니까 아드님 학비에 보태라고 하고 끊었어요. 다시 울릴 것 같아 폰을 꼭 부여잡고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다시 울리진 않더라고요.
그게 반년 전인데 그 뒤로는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부모님들끼리 알고 지내던 고향 동네 친구한테 얼마 전 연락해서 돌려 물으니까, 사업하던 거 다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갔다는 소문이 있데요. 쪽팔린 건 아는지 사람들한테 제 얘기는 안 했나봐요. 동생은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슬프고 허무하던 마음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습니다. 남편은 빨리 아이도 갖고 싶어하는데 저는 커리어 핑계 대고 미루고 있지만, 사실 제 마음이 아직 이렇게 모난 상태인데 자식한테 저 같은 상처 입히는 부모될거같은 두려움이 커요.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닮는다잖아요. 공부 핑계 일 핑계대고 심리상담 한 번 못 받아봤는데, 이제 아이 계획도 있으니 한 번 받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시간은 둘째치고 일단 용기가 잘 안생기네요. 이젠 없던 일처럼 지울 수 있는 과거가 된 것 같은데, 제가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게 없어지질 않고 더 또렷해질까봐.
이런 마음의 상처는 말하는 것 만으로도 치유가 된다고 해서 여기다가 간략히 털어놔봐요. 저것들은 분기별 대사건 정도로 큼지막한 줄거리들을 엮은 것 뿐이고, 실제로 제 멘탈 조각났던 일들 하나하나 말하자면 정말 끝이 없을 거에요. 그런 일들이 뭐랄까... 제 기억이 라닌 것처럼 느껴져요. 실제로 겪은 게 아니고 어디서 듣고 배워서 습득한 기억들처럼... 과거에 너무 매몰되다보니 어느 순간 오히려 모든 기억이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저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없는 일로 하고 싶은가봐요.
업무 짬짬이 끊어서 쓰느라 대충 쓰긴 했지만.. 속 시원해 진다면 계속 조금씩 풀어서 쓰고 싶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같은 상처 가진 분들, 우리같은 이들은 본인이 독하게 잘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 힘내요. 우리가 서로 응원하고 서로 사랑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