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7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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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많이 오더니. 날이 흐리네요. 주말인데 비가 오니까 더 좋네요. 이런날은 자도 자도 계속 졸려요. 숙취 때문에 나가기 싫어서 좋은건 아니니 오해 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리고 어제..

음주 댓글 죄송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그냥 자면 되는데. 기분 좋을 정도만 마시고 나름 빨리 왔는데. 애인도 자고 그래서 심심했나봐요. 아침에 보니 가관이더군요. 미쳤나봐요.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제발 잊으시오.

술 얘기가 나와서 궁금한건데. 다들 술 잘 드시나요. 저는 잘 못먹는 편입니다. 두병까진 꾸역꾸역 먹는데 보통 한병 조금 넘어가면 기분 좋게 취합니다. 딱히 심한 주사는 없지만 주정을 안하지는 않더라고요.

깐족대기도 하고 말장난도 계속 하고. 뭔가 말꼬리 잡고 혼자 웃고. 그런다네요. 예 미친사람 같죠. ㅋ 애인은 약 복용하는것도 있고 그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해봐야 맥주 몇캔 정도 마시지만. 아마 저보단 주량이 쎌겁니다. 얘네 집 식구들이 다 말술이었거든요.

술에 관련된 재밌던 일을 근데 이건 남들만 재밌고. 저한텐 하나도 안재밌던 얘기입니다.

사귀고 나서 제 첫 생일에 애인이 술을 사줬었거든요. 엄청 비싼데 가서 비싼 고기랑 술이랑. 자기는 못마시면서 저만 계속 먹이면서 대리만족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 돌보느라 고생하는데 오늘은 자기가 책임 질테니까 마음껏 취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반신반의 하면서 주는대로 마시다가 그냥 어느 순간 제가 취한거예요. 애인이 저를 끌고 대리를 부르고 기다리는 중에 건물 입구 옆에 저를 세워놓고 기다리는데 제가 담배를 찾아서 물더래요. 근데 담배 필터를 거꾸로 물고 계속 라이터를 헛손질 해가며 불을 켜길래 답답해서 제대로 담배를 물려주고 자기가 불을 붙여주려고 했대요.

담배를 제대로 문것까진 좋았는데. 아시죠 라이터 화력이 좋은건 엄청 좋다는거. 제가 고개를 좀 숙인 상태였는데 애인이 불을 켜자마자 화르륵.

앞쪽 눈썹이랑 앞머리가 훅 날라가 버렸어요.

저는 너무 놀래고 황당해서 가만히 있고. 애인도 같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빵 터지더니 미친사람처럼 웃더라고요. 건물 유리에 비춰서 보니까 그때 제 머리스타일이 항상 왁스로 올려서 이마를 까고 다녔었는데. 하필 그날은 출근도 안했고 사우나도 다녀온 길이라 그냥 머리가 내려와 있었거든요. 이걸 말로 설명이 어려운데 하여튼 앞쪽 머리가 홀라당 탔어요..

애인은 집에 가는 내내 웃고 가서도 계속 웃고. 저는 황당하고 그러다보니 술도 다 깨고.그 다음날 어쩔수 없이 머리를 다 밀고 짧은 머리로 다녔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그뒤로 지금까지 짧은 머리예요. 근데 한번 탔던 눈썹 앞부분 조금은 회복되는게 느리더라고요..

여튼 그날의 기억때문인지 뭔지. 제가 무의식을 가질 정도로 술에 취하면 애인한테 내 머리 내놔 하면서 귀찮게 군대요. 못믿겠다니까 한번은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주더라고요. 네 저는 원래 태생이 진상이었나봐요. 이틀 연속 진상이네요 전..

술 얘기 나와서 쓰다보니 이상하게 자꾸. 제 구멍같은 모습만 보여드려서. 그렇네요 뭔가.. 아무튼 다음부턴 술마시면 바로 잘게요. 댓글로 진상 안부리고요.ㅋ

이야기를 쓰다보면 꼭 빠지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데. 애인이 아팠던 얘기랑 헤어졌었던 얘기. 두가지가 제일 마음에 걸려요. 쓰는건 상관이 없지만. 애인이 그걸 다시 보고 또 우울해 하거나 그때의 마음을 돌아보고 속상해 할것같아서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쓸지도 모르는데 괜찮냐고 물어봤었거든요.

이미 지나온거고 겪었던 거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그대로 끝나버린 이야기라면 상처가 됐었겠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겪은 일이고 겪어 냈기 때문에 상관 없다고 하는데. 요즘 참 든든해요. 언제 이렇게 씩씩해 졌나 싶고. 이런말 하면 자기가 애냐고 싫어하는데. 제 눈엔 그래요. 아직 물가에 내놓은 소중한 것처럼. 그럴때가 종종 있거든요.

지금 이거 쓰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애인 뒷모습을 보는데 지금 발톱깎는 모습이 괜히 뭉클한건 기분 탓이겠죠. 아님 술이 덜 깼거나..

일주일 정도 꼬박 우리의 연애를.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공개된 곳에 말해 보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격려와 위로를 주셔서. 살아가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고. 또 아직은 살만 한 세상이란걸 느꼈습니다.

같은 성으로 태어나서 둘이 연애를 한다는것 자체에서는 그다지 힘들진 않았어요. 물론 다른 어떤이들은 가족과의 충돌도 있을테고 원치않는 아웃팅에 괴로웠을수도 있었겠지만. 저희는 정말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세상인 이집. 이 곳에서 연애를 했거든요.

외부적인 조건을 다 제외시키고. 함께 있어서 그게 힘들었을때는 없었던 것 같거든요. 단지 과정에 있어서 얘가 많이 앓았었고 같이 극복 해 나가면서 있었던 일들이 힘들었을 뿐이지. 단지 동성애자 동성애 라고 해서 그게 힘들고 어렵고 다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나름대로 행복한 적도 많았고요.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어제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 중에 힘든 길과 쉬운 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어떤 말도 쉽게 못 하겠더라고요. 길을 많고 선택은 다양한데 스스로에게 질문 하게 되면서. 난 어떤 길을 선택 했고 그 길을 걸어 오면서 어땠었는지.

이미 한번의 선택으로 힘든 길을 걸었다고 스스로 생각 했는데. 이 길이 그렇게 힘든 것 만은 아니었다는 걸 어제 느꼈어요. 이게 단순히 연애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모든 선택에 있어서 생각을 해 볼때 그렇더라고요.

힘들다고 해서 그 길을 포기하고 쉬운길로 간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렇게 쉽게 쉽게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고. 힘든 길을선택해서 그길에서 고생한다 하더라도. 그 끝엔 힘든만큼의 댓가가 꼭 주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 제가 이직 문제로 고민이 많을때 항상 애인이 해줬던 말이거든요. 말이 자꾸 엉키는거 같은데 결론은 저는 제 길에 대해서 더 큰 확신이 생긴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격려와 위로 덕분에 더 후회가 없고요.

연애든 취업이든 가정사든 개인적인 고민이든. 무엇때문이든 지금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어느 길을 선택하든 너무 고단해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에 몇자 적어봅니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서 이렇게 끝나는건지 모르겠네요.

아직 술이 덜 깼나봐요.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희는 저녁에 맛있는걸 먹으러 갈 예정인데. 비가 오면 그냥 집에 있을수도 있겠네요. 다들 뭐 하면서 주말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얼 하시더라도 잠시나마 즐겁고 편안하시기를 바랄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