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화다

ㅇㅇ200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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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다양한 변형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의 이야기 역시 그 변형들이 지닌 온갖 특성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의 골자를 추려내면 예수의 전기를 사사건건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AD 첫 몇 세기 동안의 작가들에게 있어 새로운 그리스도교와 고대 미스테리아 신앙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풍자가 켈수스 Celsus(AD 약 170) 같은 이교도는 새롭게 나타난 종교가 자신들의 옛 가르침을 엷게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일찍이 제시된 불합리한 주장 가운데 하나였던 악마의 모방 이론을 채택한 그들은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을 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즉 어수룩한 사람들을 오도할 목적으로, 예수의 진짜 이야기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악마가 미리 예상을 해서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보기에 이 교부들은 그들이 죄를 덮어씌운 악마들 못지않게 사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그리스도교 주석가들은 여러 미스테리아 신화가 예수의 실제 도래에 ‘앞서 울린 메아리’, 즉 예언이나 예견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악마의 모방 이론을 좀 누그러뜨린 것이지만, 여전히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 이야기가 그보다 먼저 있었던 수많은 신화의 역사적 완성 판이라고 보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예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이교도 신화에서 인기 있던 테마가 예수 전기에 접목되었다고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 다수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일찍이 언급한 대로이다. 예컨대 동정녀의 성령 잉태는 후대에 외래신화를 추가한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이해되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테마는 이교 신앙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 같은 차용은 이교도 축제들을 그리스도교 성자들의 날로 삼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축적된 신화의 잔재에 깔려 숨겨진 ‘진짜’ 예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론을 받아들인다.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설명이 부적절한 것 같았다. 우리는 유사성 전체를 포괄적으로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전기 가운데 이교 신앙에 미리 나타나지 않은 테마는 거의 찾아들 수 없었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조차도 독창적인 게 아니라, 이교도 현자들이 이미 앞서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모든 것의 배후 어딘가에 ‘진짜’ 예수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진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후대에 이교도 신화를 덧붙인 기록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어쩐지 터무니없어 보였다.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해 좀더 우아한 해답이 분명 있지 않을까?   - 예수는 신화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