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며 서광이 나타났습니다.이를 보고 모두 서방 극락정토에 나셨을 것이라고 애기 했다고 합니다.
모두들 내면의 불성을 밝혀 성불하십시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_
월하 큰 스님
지난해에 불교계의 여러 큰스님들께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열반에 드셨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시고 영축총림 통도사의 방장을 지내신 월하 종정스님의 법어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월하스님 법어(1)
1.'나'를 극복하자
나를 짓밟는 이는 오직 나일 뿐 타인이 더럽힐 리 만무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가 나를 괴롭히니 공자 옆에는 도척이요, 부처 옆에는 조달이 그 예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 속에 있고 부처가 중생놀음 하는 것도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持戒(지계)는 수행의 기본
수행하는 데는 뭐니해도 부처님의 금과옥조인 戒(계)를 지켜야 합니다. 계율이 중생행동을 끊어주기 때문입니다. 중생행동을 끊지 못하면 三界를 윤회하게 됩니다.
계를 안지키고 공부해 道를 통하면 道人은 될지언정 청정비구라고는 못합니다. 청정비구와 도인은 다릅니다. 청정비구는 부처님의 적자로 부처님의 행동을 답습하는 人天의 福田이고, 도인은 진리를 깨달아 좀 안다고하는 것 뿐입니다.
3. 염불의 공덕
우리가 염불할 때 남 따라 절에 와 부처님을 몇 번 부르다 절 밖을 나서면 잊어 버리고 해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염불이란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꾸만 해야됩니다. 동지 섣달 긴긴 밤에 천 번을 念(염)하고 만 번을 念(염)하고, 하늘이 밝은 지 어두운 지도 모르고 자꾸만 염불해야 합니다. 오로지 한 소리 한 마음으로 참구하면 三昧(삼매)를 얻습니다.
4. 福 짓는 법
불자들이여, 부디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베풀며 살아갑시다. '나'의 이기심을 벗어버리고 남을 살리는 願(원)을 키우며 살아갑시다. 願(원)은 마음가짐입니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꾸준히 나아가면 힘, 곧 원력이 생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쓰면 행복은 스스로 깃들게 됩니다. 지금 사랑 속에 있으면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더욱 키워가고, 행복 속에 있으면 행복을 나누어 주며, 슬픔과 불행 속에 있으면 大悲願(대비원)을 일으켜 살려가도록 합시다.
5. 隨處作主(수처작주); 곳곳에서 주인이 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나쁜 씨를 심으면 불행이 깃들고, 내 마음에 좋은 씨를 심으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6. 보시의 참 뜻
보시는 괴로움과 망상의 근원인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를 통해 버리는 것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버리는 것을 배워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정녕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보시는 단순히 베풀고 기쁨을 느끼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워 행복과 해탈을 이루는 것, 그것이 보시의 참뜻입니다.
월하스님 법어(2)
1. 見性(견성)
견성이란 글자 그대로 성품을 본다는 의미인데 성품을 본다면 自性(자성)이 또하나 있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은 그대 안에 自己佛이 있나니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하였고, 自性이 참으로 광활해 萬性(만성)을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自性은 본래 眞(진)도 아니고 妄(망)도 아닙니다. 自性이 바로 萬性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見性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관념적 견성은 올바른 깨침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자성을 보고 발견한 분입니다. 見性이란 본래 그대로 있을 뿐 누가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2. 자기가 가야 하는 길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나 이도 사실 따져보면 쓸데없는 것이라, 우리 마음자리는 본래 깨달을 것도 더러워질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의 어두운 눈이 '이를 더럽다, 깨끗하다' 할 뿐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근본 면목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습니다.
참된 길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설법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목적지에 가려면, 자기 스스로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앞서간 사람들이 아무리 길의 형편을 잘 알려줘도 본인이 나서지 않고는 그 길의 편함이나 어려움을 모릅니다.
3.본래 面目
망망한 우주의 무수한 사람 가운데 몇사람의 남아가 丈夫(장부)입니까? 스님들 중에서 道通해 부처님과 어깨를 겨룰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가 三界의 무수한 인간 중에 진정한 남아장부가 되려면 本來面目을 찾아야만 합니다.
월하스님 법어(3)
1. 참된 마음이 佛法
불법은 자못 세간 가운데 있는 것. 세간을 여의고 부처님을 찾는 것은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습니다.
참된 마음도 단지 망념 가운데 있는 것. 망념을 여의고 마음을 찾고자 함도 거북이 털을 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마음이란 마음 속에 있는 복잡한 업을 쉰 평상의 진심입니다.
2. 의심에 파묻혀야
공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마음으로 지어 나타나는 환상에 집착하지 말고, 의심에 파묻혀 의심에서 떠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의심에 파묻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옛 스님들은 자기 공부가 순일한 지 알기위해 시장에 가 화두를 들어보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의심이 돈독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으면 공부가 순일하게 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시체가 있는 방에서 화두를 들어 분별이 생기지 않으면 화두를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공부한 바를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3. 본분자리
나에게 갖추어진 본분자리는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자리여서 다함없이 낮과 밤으로 항상 放光(방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분자리는 不增不減(부증불감)의 자리로 형상이 있거나 없는, 加減(가감)의 분별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항상 光明을 놓고 있어 무한한 放光을 하는 자리입니다.
4. 因果
불교의 인과론은 내일을 창조하고 오늘의 과오와 고뇌를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곧 보다 적극적인 삶, 보다 복된 삶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과론의 가르침입니다.
인과론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중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물론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과거의 업을 푸는 동시에 새로운 업의 씨앗을 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월하 큰 스님 법어와 방광
월하스님 49재날 하늘에 방광(放光)하는 귀한 동영상입니다.
동영상:http://tvpot.daum.net/v/aMv5d7DRnLw%24
방광 (放光)
1. 빛을 내쏨. 또는 그 빛.
2. <불교>부처가 광명을 냄.
통도사 조실이셨던 월하 큰 스님께서 열반하신후 '육칠재' 를 지내는데
총무원장 스님께서 조사를 낭독하시던중 서쪽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
리며 서광이 나타났습니다.이를 보고 모두 서방 극락정토에 나셨을 것이라고 애기 했다고 합니다.
모두들 내면의 불성을 밝혀 성불하십시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_
월하 큰 스님
지난해에 불교계의 여러 큰스님들께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열반에 드셨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시고 영축총림 통도사의 방장을 지내신 월하 종정스님의 법어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월하스님 법어(1)
1.'나'를 극복하자
나를 짓밟는 이는 오직 나일 뿐 타인이 더럽힐 리 만무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가 나를 괴롭히니 공자 옆에는 도척이요, 부처 옆에는 조달이 그 예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 속에 있고 부처가 중생놀음 하는 것도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持戒(지계)는 수행의 기본
수행하는 데는 뭐니해도 부처님의 금과옥조인 戒(계)를 지켜야 합니다.
계율이 중생행동을 끊어주기 때문입니다. 중생행동을 끊지 못하면
三界를 윤회하게 됩니다.
계를 안지키고 공부해 道를 통하면 道人은 될지언정
청정비구라고는 못합니다. 청정비구와 도인은 다릅니다.
청정비구는 부처님의 적자로 부처님의 행동을 답습하는 人天의 福田이고,
도인은 진리를 깨달아 좀 안다고하는 것 뿐입니다.
3. 염불의 공덕
우리가 염불할 때 남 따라 절에 와 부처님을 몇 번 부르다
절 밖을 나서면 잊어 버리고 해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염불이란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꾸만 해야됩니다.
동지 섣달 긴긴 밤에 천 번을 念(염)하고 만 번을 念(염)하고,
하늘이 밝은 지 어두운 지도 모르고 자꾸만 염불해야 합니다.
오로지 한 소리 한 마음으로 참구하면 三昧(삼매)를 얻습니다.
4. 福 짓는 법
불자들이여,
부디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베풀며 살아갑시다.
'나'의 이기심을 벗어버리고 남을 살리는 願(원)을 키우며 살아갑시다.
願(원)은 마음가짐입니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꾸준히 나아가면 힘, 곧 원력이 생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쓰면 행복은 스스로 깃들게 됩니다.
지금 사랑 속에 있으면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더욱 키워가고,
행복 속에 있으면 행복을 나누어 주며,
슬픔과 불행 속에 있으면 大悲願(대비원)을 일으켜 살려가도록 합시다.
5. 隨處作主(수처작주); 곳곳에서 주인이 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나쁜 씨를 심으면 불행이 깃들고,
내 마음에 좋은 씨를 심으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6. 보시의 참 뜻
보시는 괴로움과 망상의 근원인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를 통해 버리는 것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버리는 것을 배워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정녕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보시는 단순히 베풀고 기쁨을 느끼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워 행복과 해탈을 이루는 것,
그것이 보시의 참뜻입니다.
월하스님 법어(2) 1. 見性(견성)
견성이란 글자 그대로 성품을 본다는 의미인데
성품을 본다면 自性(자성)이 또하나 있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은 그대 안에 自己佛이 있나니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하였고,
自性이 참으로 광활해 萬性(만성)을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自性은 본래 眞(진)도 아니고 妄(망)도 아닙니다.
自性이 바로 萬性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見性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관념적 견성은 올바른 깨침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자성을 보고 발견한 분입니다.
見性이란 본래 그대로 있을 뿐 누가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2. 자기가 가야 하는 길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나 이도 사실 따져보면 쓸데없는 것이라,
우리 마음자리는 본래 깨달을 것도 더러워질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의 어두운 눈이 '이를 더럽다, 깨끗하다' 할 뿐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근본 면목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습니다.
참된 길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설법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목적지에 가려면,
자기 스스로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앞서간 사람들이 아무리 길의 형편을 잘 알려줘도 본인이 나서지 않고는
그 길의 편함이나 어려움을 모릅니다.
3.본래 面目
망망한 우주의 무수한 사람 가운데 몇사람의 남아가 丈夫(장부)입니까?
스님들 중에서 道通해 부처님과 어깨를 겨룰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가 三界의 무수한 인간 중에 진정한 남아장부가 되려면 本來面目을 찾아야만 합니다.
월하스님 법어(3)
1. 참된 마음이 佛法
불법은 자못 세간 가운데 있는 것.
세간을 여의고 부처님을 찾는 것은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습니다.
참된 마음도 단지 망념 가운데 있는 것.
망념을 여의고 마음을 찾고자 함도 거북이 털을 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마음이란 마음 속에 있는 복잡한 업을 쉰 평상의 진심입니다.
2. 의심에 파묻혀야
공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마음으로 지어 나타나는 환상에 집착하지 말고,
의심에 파묻혀 의심에서 떠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의심에 파묻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옛 스님들은 자기 공부가 순일한 지 알기위해 시장에 가 화두를 들어보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의심이 돈독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으면 공부가 순일하게 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시체가 있는 방에서 화두를 들어
분별이 생기지 않으면 화두를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공부한 바를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3. 본분자리
나에게 갖추어진 본분자리는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자리여서
다함없이 낮과 밤으로 항상 放光(방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분자리는 不增不減(부증불감)의 자리로 형상이 있거나 없는,
加減(가감)의 분별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항상 光明을 놓고 있어 무한한 放光을 하는 자리입니다.
4. 因果
불교의 인과론은 내일을 창조하고 오늘의 과오와 고뇌를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곧 보다 적극적인 삶, 보다 복된 삶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과론의 가르침입니다.
인과론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중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물론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과거의 업을 푸는 동시에 새로운 업의 씨앗을 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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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통도사 정변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월하 큰 스님>
불자들이여...
부디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베풀며 살아가자.
'나'의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살리는 원을 키우며 살아가자.
원은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꾸준히 나가면은 힘.
곧 원력이 생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쓰면 행복은 스스로 깃들게 한다.
지금 사랑이 있으면
서로를 살리는 사랑으로 더욱 키워가고
지금 행복속에 있으면 행복을 나누어 주며
슬픔과 불행속에 있으면
대비원을 일으켜 살려 가도록 하자.
부디 명심하라
'나'의 이기적인 벽을 무너뜨려
가정과 이웃을 살리고
못 생명 있는 이들을 살리는 삶속에서 살때
대우주에 가득차 있는
행복과 해탈의 기운은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을...
- 월하 큰스님 법어중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