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죄송해요)부모를 싫어하는 딸 이야기 꼭좀 들어주세요.

슬픔이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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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긴 글입니다. 시간 낭낭하실 때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평소 판 즐겨보는 21살 여학생이에요.

우선 방탈 정말 정말 죄송해요. 결시친이 아니고서야 관심 받을만한 카테고리가 없어서요.

주변 사람들한테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에요.

마음껏 털어놓아 본적도 없고, 얼굴 아는 사이에게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혼자 답답해하는 걸로 끝낼까,하다가 조언을 좀 들어보고자 합니다.

 

 

 

부모님은 제가 11살 때 합의 이혼하셨어요.

한 분씩 차례로 이야기처럼 설명해볼게요.

 

1. 11까지의 아버지

 

직업은 건설업체에서 일하시는 분이셨어요. 원래 산속에서 기도하는 무당이셨는데 엄마도 무당이라 한집에 더블 신이 있음 안된다고 아빠가 접으셨다네요. 그런 쪽은 관심없어요. 안믿으니까.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제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애연가이고 애주가였어요. 매일 매일 술을 먹었어요. 주사는 없었어요. 취하시면 그낭 주무셨어요. 그러니까 술을 드시고 사고치신 적은 없었어요. 엄마랑 자주 싸웠어요. 그리고 자주 화해했어요. 사이가 좋을 땐 엄청 좋았고, 나쁠 땐 너무 나빠서 제가 울면서 경찰서에 신고했던 적이 많아요. 싸움이 날 땐 아빠는 극단적인 행동을 많이 했어요. 가스를 끊은 적도 있고, 동생이 3살 때 아파트 창문 밖으로 동생의 손가락만 잡고 던질 것처럼 하면서 엄마한테 소리쳤던 걸 본 기억이 있어요. 엄마는 동생과 저를 데리고 엄마 친구집이던 옆집으로 도망갔어요. 아빠는 칼을 들고 쫓아왔어요. 싸움이 나면 그런식이었어요. 저희 자매가 목숨의 위협을 받는. 그건 아빠가 저희를 죽이겠단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시늉을 하면 엄마가 굴복하는 걸 알아서 하는 거에요. 크니까 그 행동들의 의미가 납득이 갔어요. 엄마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하면, 아빠는 위협을 그만뒀어요. 그래서 엄마는 평소에 칼이나 날카로운 도구를 엄마만 아는 장소에 숨겨두고 잤어요.

 

 

싸움의 시작은 엄마의 히스테리로 시작될 때가 많아요. 아빠는 엄마의 히스테리를 매우 싫어했어요. 엄마는 작은 일에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그럴 때마다 집 밖을 나가거나 맞대응했어요. 엄마는 지는 법이 없었고, 아빠는 늘 졌어요. 큰 싸움은 1년에 한 번꼴이었으니까 나머지는 아빠가 졌어요. 그래서 저는 늘 엄마한테 아빠가 불쌍하다고 했고, 엄마는 저에게 화를 냈어요. 아빠한테 아빠 너무 불쌍해, 라고 하면서 엄마한테 맞아 생긴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 아빠는 괜찮다고 하나도 안아프다고 했어요. 저는 그래서 아빠가 무서운 적이 없었어요.

 

 

 

 아빠는 제가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이혼 후에 아빠가 생각난 적이 딱히 없었는데, 엄마한테 혼날 때면, 아빠가 보고싶었어요.

이혼 후에 엄마가 안 사실은, 외할머니가 아빠한테 거액을 빌려준 적이 있었대요. 엄마몰래. 그래서 엄마가 그 돈을 갚았대요. 이건 엄마 이야기에 자세히 쓸게요.

11살때부터 아빠를 보지 못했어요. 아빠는 번호를 바꾸지 않았고, 저도 번호를 바꾼 적이 없었는데 아빠는 어느날 후부터 제 전화, 동생 전화(좀 커서 폰을 만들어줬더니 아빠한테 전화해본 모양인데, 한 번 통화한 이후로 전화가 안된대요.) 다 받질 않아서 연락이 안되었어요.

 

 

2. 21살까지의 어머니

 

 

엄마란 존재가 공백으로 있던 적은 지금이 유일하니까요. 어렸을 때의 큰 기억과 조금 자라고나서의 기억은 또렷하고, 정확하게 남아있어요.

직업은 무당이세요. 돈이 안돼서 아르바이트도 겸하시는 중. 일단 엄마는 저희 자매를 매우 사랑해요. 저는 애를 낳아보지 못해서 엄마가 자식을 키우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몰라요. 그런데 제가 장담하는 건 제가 엄마라면 저를 이렇게 키우지는 않았을 거에요.  제가 하고 싶어하는 건 다 시켜줬고, 제가 하기 싫어하는 것도 일단 시켰어요. 그러니까 저를 어떻게든 많이 배우게 해줬어요. 사실 저는 주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평범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집 사정에 비하면 과분한 거였죠. 과목공부하는 학원은 다닌 적이 없구요.초등학교 때 미술 학원을 좀 오래다녔고, 수영을 배웠고, 영어학원도 좀 오래 다녔어요. 중학교 때 전과목 공부를 시켜주는 학원을 1년 정도 다녔고, 고등학교 땐 혼자 공부하다가 2학년 때부터 체대입시학원을 다녔어요. 그 덕에 원하는 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그래서 집에 학비까지 부담주진 않았어요. 지금 그냥 기억나는 거 일단 다 적느라 횡설수설해요 이해해주세요..

 

 

 

집에 있는 건 살얼음판을 걷는 거랑 똑같았어요. 엄마가 아무리 기분이 좋다가도, 제가 하는 작은 행동에 기분이 나빠지면 바로 몽둥이질이 쏟아졌으니까요. 예를 좀 많이 들어볼게요. 일단 화가나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는 개 가틍 년 시앙년 씨브알년 등등 썅욕을 들었어요. 그리고 몽둥이로 맞으면 아, 이건 바른 훈육방법이구나, 하고 타당하다는 심정으로 맞을만큼 손찌검이 잦았어요. 한번 맞으면 일단 종아리 엉덩이 팔뚝 피멍에, 귀 고막이 찢어지거나 구멍나서 병원에 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의사선생님은 자주 의심했지만 엄마는 워낙 밖에서 인자하고 친절한 여자였으니까 의심이 추궁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어요. 전 적당히 눈치껏 어디가서 박았다, 하고 말했어요. 의사선생님은 단호하게 박아서 고막이 찢어지진 않아, 라고 했지만 엄마의 웃음 한번이면 선생님도 눈치껏 넘어갔어요.

 

 

 제 동생이 유치원을 다닐 때 전 중학생이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걸어서 40분이 넘는 집까지 뛰어가서 동생을 돌봤어요. 유치원차가 오면 애를 데려다가 밥을 해먹이고 집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던가 빨래를 하고 동생 낮잠을 재우고 일이 늦게 끝나는 엄마를 기다려요. 동생 밥을 해줄 땐 매일 계란 후라이를 해줘야 했는데 실수로 노른자가 터지면 동생은 그걸 내다 던지던가 접시를 엎었어요. 저는 씩씩거리면서 다시 해주는데 워낙 손재주가 없다보니 백 번을 해도 반숙 후라이는 어려웠어요. 실수를 반복하면 동생은 그릇을 계속 던지다가 앵-하고 울어요. 저도 화가나니까 달래주질 않아요. 동생이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는 일하다 말고 30분 차를 타고 달려와서 저를 두들겨 패고 다시 일을 하러가요. 그때부터 동생을 혐오했고, 엄마를 티안나게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제 친구가 놀러오면 엄청 잘해줬어요. 너무 잘해줘서 제 친구도 엄마를 좋아하고 잘 따랐어요. 엄마는 제 친구가 집에 올 때마다 자고가라고 자고가라고 살갑게 부추겨요, 그러면 제 친구는 하루씩 이틀씩 우리집에서 자고 갔어요. 그렇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친구와 엄마없고 못된 동생밖에 없는 집에서 함께 있는게 너무 큰 위안이 되고 행복했어요. 엄마는 친구가 보는 앞에서 절 자주 때렸어요. 엄마가 뺨을 때리면 전 거의 날라가다시피 나동그라졌어요. 제 친구는 벌벌 떨면서 저를 부축해요. 엄마는 매질을 멈추지 않아요. 말리는 제 친구도 같이 욕을 먹어요. 간접적으로요. 예를 들면, 니가 저년이랑 놀더니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 저년 우리집에 와놓고 도움된게 뭐가 있냐, 제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울어요. 저랑 말도 안해요. 저는 미안해서 죽고싶어요. 엄마가 더 싫어지고, 쥐구멍으로 숨고싶단 마음마저 안들때쯤 엄마가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같이 차를 타재요. 엄마는 거기서 친구한테 사과해요. 제가 그 애라면 엄마한테 욕했을텐데, 제 친구는 착해서 아무말도 안해요. 괜찮대요. 저는 괜찮지 않았어요. 엄마가 엄청 싫었어요. 그렇게 친구랑은 3년 더 친구하다가 결국 갈라섰네요. 저라도 트라우마가 남아서 제 얼굴만 봐도 소름돋을 거에요. 엄마는 잘해주면 보답을 바라는 사람이에요. 너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배풀줄은 모른다. 이 말을 세상에서 제일 많이 들었어요.

 

 

 엄마는 아직 초등학생이던 저에게 아빠에게 전화를 걸라고 시켰어요. 아빠는 제가 20살이 되기 전까지 한달에 100만원씩 의무적으로 돈을 주었어야 한대요. 저도 서류를 직접 봤기 때문에 그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근데 모으면 총 1억이 되는 그 돈을 아빠는 주지 않았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외할머니한테 큰돈을 빌렸대요. 덤프트럭 운전을 하셨었는데, 덤프트럭 바꾼다면서요. 할머니는 엄마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돈을 빌려줬대요. 그리고 이혼 후에 아빠가 돈을 갚지 않았다고 엄마한테 돈을 갚으라는 식으로 외할머니가 나왔대요. 결론은 엄마가 저 고3때 겨우 돈을 다 갚으셨어요. 한창 돈을 갚아나갈 땐, 매일 엄마가 아빠 욕하는 걸 듣고 맞장구 쳐주는 게 일과였어요. 꽁돈 날라가는 기분이 대충 그만할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힘든 일과는 아니었어요. 엄마는 아빠한테 제가 대신 돈 내놓으라고 말하라고 시켰어요. 근데 전화를 받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차마 돈 얘기가 안나왔어요. 아빠 뭐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식탁 앞에는 무서운 눈의 엄마가 있었어요. 저는 돈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아빠한테 돈을 달라고 소리쳐요. 아빠는 전화를 끊고, 엄마는 씩씩 대면서 거봐 니 애비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야, 라고 해요. 엄마가 동생한테도 시킬까봐 제가 조금 커서는 '엄마 그냥 잊고 살자, 그 돈 받아서 뭐해 더러워~' 하면서 엄마를 설득했어요.엄마는 아빠욕을 했고, 저는 맞다고 나도 가능하다면 내 핏줄속의 아빠 피를 다 빼버리고 싶다고했어요. 엄마는 저에게 잘커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힘이 세지니까 슬슬 엄마의 폭력을 제 힘으로 막게 됐어요. 뭐 마음만 먹으면 다 막고 제가 더 때렸을 수도 있는데, 머릿속에는 내가 맞고 내가 참아야 빨리 이 상황이 진정될거야, 라는게 있어서 늘 그냥 참아왔던 것 같아요. 반항이란걸 모르다가 엄마가 새아빠를 만들면 안되냐고 했을 때 처음 반항했어요. 그냥 싫다고 한게 반항이지만..  엄마는 아저씨를 자주 데려왔고, 저는 그게 싫었는데 아저씨는 용돈을 많이 줬어요. 그래서 재혼은 싫어도 연애는 좋았어요. 완전 뼛속까지 속물이 된거죠. 돈도 만져본 적 없는게. 뭐 여튼, 어느날 엄마한테 설거지를 제시간에 안해놨다는 이유로 죽기직전까지 맞았고, 가출할려고 친구들한테 소식을 알렸어요. 내가 내일부터 학교 안나와도 나 납치당한거 아니니까 걱정말라고. 친구들이 울면서 학교 상담실에 절 밀어넣었어요. 상담쌤이 오 그래 너가 그 가출하고 싶다는 걔니? 하면서 상담스케줄을 잡아줬어요.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전 말할 사람이 생겨서 좋았어요. 매일 상담실을 가면서 시키는대로 집에서 했어요. 망했어요. 쌤은 엄마한테 웃는 얼굴로 친절히 대해보라고 했는데, 엄마는 자길 약올린다며 교복을 다 찢으며 절 학교도 못가게 했으니까요. 울고불면서 내가 우리 잘살려고 상담도 받고다니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그러냐고 소리쳤더니 엄마가 하는 소리가 '부끄러운 거 모르고 나불거려? 어디 상담년이야 이름대 욕욕'. 혹시 선생님한테 해라도 가할까, 손이 발되도록 싹싹 빌면서 기분풀어준다고 난리 법석을 피웠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요. 다음 날 학교에 있던 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상담년어딨냐, 너를 지금 사람들 앞에서 쪽주러 패러가겠다 딱기다려라, 라고 했어요 엄마가. 전 그렇게 도망치듯 갑자기 학교에서 가출을 시도했고, 하루만에 경찰에 잡혔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상담실에서 상담쌤은 말했어요. 너희 어머니 좋은 분이시더라. 울고싶을만큼 억울했지만, 제 입으로 계속 엄마 험담하는 것도 마음이 썩어가던 터라 그냥 그렇다고 했어요. 제가 아직 철이 덜든 딸이라는 결론을 듣고 상담실을 나오는데. 제가 제 얼굴에 커다란 침을 뱉은 기분이었어요. 욕하고 싶다. 근데 여기 욕하면 안돼죠?

 

 

 끝이 없겠네요. 죄송해요. 근데 더 쓸래요. 쓰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후련한 줄 알았으면 매일 일기처럼 쓸 걸 그랬어요.

 

 

 문예창작입시 준비하다가 갑자기 체대로 전향해서 체대 갈 준비를 해서 급히 체대를 갔어요. 힘들지는 않았어요. 운동하는게 정말 너무너무 즐거워서 대학을 갈 준비라기 보다는 취미 생화를 좀 빡세게 하는 느낌이었거든요. 학원이 너무 좋아서 주말 내내 학원에서 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몸이 건강해지니 정신도 건강해지고, 순종적이던 성격이 좀 드세지면서 또박또박 말대꾸도 잘하고 제 얘기 제 생각 서스럼없이 당당하게 얘기했어요. 엄마는 힘으로 안되는 걸 아니까 손찌검은 줄었지만, 차라리 맞는게 더 나을 정도로 아픈 말들을 많이 했어요. 학원 선생이랑 붙어먹어서 그렇다느니, 어떤년 꼬임에 넘어갔길래 갑자기 운동을 하고 지랄이냐느니, 제일 싫었던건 제가 엄마한테 할말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날은 엄마가 다른 무당 스승님(엄마말로는..)을 불러서 뭐 귀신 떼는 거 ㅋㅋ 그런거 이상한거 시키더라구요. 이거 기분 되게 더러워요. 평생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이런거 한번 하고 나서 변화없으면 또 시킬까봐 변화된 척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자애로 변신해요. 그러면 스승님이란 사람하고 통화하면서 집 분위기가 달라졌다느니 확실히 효과가 좋다느니.. 전 문닫고 방에서 코웃음 치죠.

 

 

 대학들어와서 행복했던건 기숙사를 썼을 때. 그 1년은 천국 같으면서도 지옥같았네요.

조건은 하루에 한 번 전화하기 주말은 집에 들어오기. 체대특성상 1학년 나부랭이가 할 게 얼마나 많은지 폰 볼 시간도 별로 없어서 전화가 힘들어요. 그래서 체육관 청소 전에 아침 일찍 전화를 하면 저녁엔 기억이 안나니까 전화를 안한 셈쳐요. 집에 가면 세상에 모든 ㅆ 들어가는 욕은 다들어요. 주말에 집에 가는 것도 선배들 눈치보여 못가니까 몇 주만에 집에 들어가면 정신이 쑥대밭이 되어서 돌아가는 거에요. 기숙사에 있는게 차라리 행복했어요.

 

 

이제 인생 절정이었던 사건을 얘기해 드릴게요.

 

 

겨울방학에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연구 욕심이 많은 심리학 교수님이셔서 다른 지역 학교로 설문지도 돌리러 가야하고 바쁜 일이 많았는데, 교수님이 너무 좋은 분이시고 같이 일하던 언니도 제가 잘따르고 친한 언니여서 재밌게 일 잘했어요. 하루는 교수님이 하신 연구를 발표하는 날이었는데 8시 반 쯤 끝나서 저희끼리 소소하게 뒷풀이를 하기로 했어요. 물론 집에는 미리 말했구요. 겨우겨우 9시쯤 식당에 기억들어가서 술은 커녕 사이다도 안시키고 부랴부랴 입에 음식넣고 씹기 바쁜 ... 오죽 먹기만했으면 9시 40분쯤 식사가 다 끝난 회식 같지 않은 회식을 했어요. 10시가 버스막차였는데 당연히 놓치는 거였고 전철을 타고 갈 생각으로 엄마한테 연락을 했더니 엄마가 저보고 창년이라고 했어요. 10년이래요. 교수랑 붙어먹었대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늦게 밥을 먹었고 지금 나오니까 이렇게 된거다, 라고 저도 울먹이면서 설명했는데 뼈빠지게 일해서 학교보내놨더니 교수랑 붙어먹냐고 교수새끼 이름 대라고 또.. 전화 그냥 끊어버리고 전철에 올라서 추운게 추운지도 모르고 그냥 잉잉 울면서 집을 가는데, 거기서 느꼈죠. 이건 사과를 무조건 받아내야 겠다고.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제가 개강을 하고, 걷는 거 포함 왕복 5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다니는 걸 보고서도 사과는 커녕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방으로 불렀어요.

 

내가 많이 생각을 해봤는데, 너를 도저히 못키울 것 같다.

너도 그나이 먹었으면 다 컸고, 일주일안에 짐 싸서 나가줬으면 좋겠다.

휴학을 하든 나가서 돈을 벌든 이제 니가 알아서 해라. 나는 여기까지 인 것 같다.

너를 더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는다. 몇일 후에 이 마음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너 나한테 돈 맡긴 적 있냐. 알아서 나가라. 그리고 이젠 부모자식간의 연도 끊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주변에 돈 빌려서 원룸 구해서 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삿짐을 옮기는 날 그냥 구경만하더니 저에게 물을 뿌렸구요. 저는 당황했고, 제 손에는 테이프를 자르기 위해 가위가 들려있었습니다. 엄마는 제 뺨을 때리고 이삿짐 상자를 다 찢고 발로 제 목과 귀를 밟으면서 좋게 안나가면 죽여버린다고 했고, 전 다시 볼 사람 아니니 막나갔습니다. 저도 소리지르고 신경쓰지말라고 했죠. 그리고 가위를 빼앗겼고 머리채를 잡혔어요. 질질질 끌려가면서 엄마 손을 잡는 다는게 가위를 잡아서 손을 깊게 베였구요. 기절할 때까지 맞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었어요. 통화기록 제일 위에 있던 친구였죠. 친구한테 정신이 나가서 살려줘,살려줘.(이건 나중에 친구한테 들은 부분)했고, 엄마가 폰을 빼앗어서 친구한테 쌍욕하던 부분부터 기억이 나요. 제가 그래서 친구한테 너 그거 듣고만 있지 말고 신고해! 이랫더니 그러자마자 엄마가 절 사정없이 발로 밟기 시작했고 귀와 머리를 너무 밟혀서 삐- 하면서 골이 울리고 소리가 잘 안들렸습니다. 렌즈를 끼고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눈도 찔려서 렌즈도 찢어져서 눈도 아팠구요. 엄마가 경찰에 신고해서 제 딸이 절 신고하겠다니가 빨리 와주십쇼, 했고 경찰분들이 오셨어요. 엄마는 울기 시작했고 경찰관분들은 엄마말에 더 집중했어요. 저는 엄마를 울린 딸이 되어서 설교 좀 들었죠. 저는 가위를 들고 엄마를 위협한 딸이 되었더라구요. 어짜피 난 떠날 사람이니까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경찰 아저씨들이 돌아가고, 엄마도 나갔고. 그 후 바로 이삿짐을 퀵으로 보내 집을 떠나왔습니다. 학교는 그렇게 휴학했어요. 그건 3월이구요. 지금까지도 가끔씩 저주의 문자 혹은 사과의 문자가 와요. 저는 엄마를 불쌍해하고 조금 사랑하고 많이 싫어하고 있구요.

 

 

3. 21살의 아버지

 

 

아빠 블로그를 찾았어요. 연락이 닿았고 아빠는 흔쾌히 받아줬어요. 한달 전에 아주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고, 아빠는 재혼했고 피 안 섞인 딸도 하나 있었어요. 웃겼어요. 왜 위자료 안줬냐고 뭐라하지 않았어요. 할머니한테 진 빚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아빠는 지금 돈이 많아보였고, 저한테 돈을 많이 주고 있고, 제가 30살 쯤 돈이 모이면 꼭 살고 싶던 아늑한 신축 집으로 이사도 시켜줬고, 생활비도 대준다고 했고, 전 부인이 다 키워놓은, 혹은 혼자 자란 다 큰 맏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곳저곳 자랑하는게 개 싫지만 열심히 좋은 척 따라다니며 인사하고 있어요.

 

 

효심? 그런거 없어요. 그게 무슨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그냥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돈만 대충 뜯어서 잠수타고 싶은 생각 뿐이에요. 연락이 안된 이유를 알았는데 꼴사나워요. 저나 동생이 엄마 몰래 아빠한테 연락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엄마가 아빠한테 엄청난 저주의 문자를 보냈대요. 아빠는 저희를 보고싶어도 엄마를 보기싫은 마음이 더 커서 연락할 수 없었대요. 웃겼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를 보기싫은 마음이 보고싶은 마음보다 클리가 없어요. 그런 사람이 내 아빠라면 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에요.

 

 

 

 근데 엄마한테 있을 땐 하루종일 아빠욕만 듣더니 아빠 손 아래에 있으니 하루종일 엄마욕만 듣네요. 친가 친척들부터 별로 관심도 없는 친할머니도 니가 내 친 손주냐? 하더니 부랴부랴, 너는 역시 너희 고모를 닮아 성격이 좋구나, 니 애미를 하나도 안닮았네, 이러는데 웃겨요 그냥. 왜 내가 내 엄마 욕하는 건 속이 시원한데 남이 욕하니까 입을 꼬매고 싶죠? 10년동안 니네들이 나 관심없을 때 나 뒷바라지 한건 내 엄만데?

근데 이렇게 생각하면 혼자 놀래죠. 내가 엄마한테 덜 맞아서 지금 이런 생각을 속편하게 하고 있는 건가. 그냥 딱 무슨 기분이냐면요. 정신병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에요. 부모를 사랑하는게 고민거리 축에 속하는 거에요? 아니잖아요. 저는 제가 엄마를 사랑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빠를 철저히 이용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서 벗어나 엄마를 감싸는 마음이 들거나 아빠에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하면 속으로 저에게 더 못돼져야 한다고 채찍질을 해요. 제가 써놓고도 정신병자 맞네요.

 

 

고민글이라고 조언부탁한다고 해놓구선 고민이 뭔지 정확히 얘기도 안하고 그냥 정신분열 걸린 애처럼 막 조잘거리기만 했네요. 그래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가 읽어주는 것만해도 같이 있는 기분이 들 것같아요. 아빠가 얻어준 좋은 원룸은 휑하고 춥고 외롭네요.

여기까지 힘들게 같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이 너무 시원해요. 오랫동안 가진 꿈이 있어서 공부중인데 내일 부턴 더 열심히 할거에요.

 

 

 참고로 동생은 대가리가 좀 크더니 저보다 더 머리를 써요. 얘는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많이 알고 많이 이용하고 있어요. 아빠에 대한 기억은 작고, 추억도 작은데 빈자리는 커요. 외로움이 많은 걸 보면 그래요. 유치원 때와는 달리 저를 잘 따르고 저도 동생을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사랑해요. 성공하려는 이유가 동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저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보고싶네요. 길게 부모 얘기 쓰면서도 눈물이 안나는데 달랑 5줄 동생 얘기 좀 썼다고 눈물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