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는 저주의 땅 여리고를 고쳐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어린아이들이 놀려대자 아이들을 저주했고 그로 인해 암곰 두 마리가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암곰이 수풀에서 나와 어린아이들을 찢는 장면은 한 마디로 공포의 아수라장이었을 것입니다. 외모로 놀림을 받았기로서니 그 많은 어린이들이 들짐승의 공격을 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윤리적 기준이 아닌 그 당시의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윗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보면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로 세워진 엘리사가 여리고를 거쳐 다시 벧엘로 올라가면서 일어난 이 사건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23절)
먼저 우리는 벧엘이라는 장소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다가 하룻밤 묵었던 장소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꿈에 하늘로 뻗어있는 사다리를 보고는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집’, 곧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시대에 와서 벧엘은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다스리던 통일 이스라엘 왕국에서 열 지파를 데리고 나와 북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이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지기 위해 금송아지를 숭배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단에 두고 하나는 벧엘에 두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집으로 불렀던 그 벧엘이 이제는 우상숭배로 뿌리 깊은 도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야말로 발에 밟히는 돌멩이보다 못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된 이 도시에서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존중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흔히 어린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그것도 수십 명씩이나 되는 떼거리들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조롱했다고 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수많은 어른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을 멸시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엘리사를 향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렸습니다. 여기서 ‘작은 아이들’을 의미하는 ‘나아르’는 청소년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라 충분히 분별할 줄 아는 연령입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놀렸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3장에 의하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를 밀거나 문둥병에 의해 머리가 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머리를 밀어서는 안 되었습니다(신 14:1). 그렇다면 엘리사는 선천적인 대머리였음에 틀림없었고 이것은 결코 조롱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의 아이들은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렸고 그를 멸시했습니다. ‘올라가라’는 것 또한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의 승천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벧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어둠을 밝혀주었던 엘리야는 물론이거니와 엘리야를 계승한 엘리사까지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벧엘에는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왕하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토록 멸시를 당했다고 하는 것은 벧엘의 영적 타락이 극도에 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벧엘의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놀려댄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조롱과 멸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42명을 찢었더라(24절)
이러한 도시에 암곰 두 마리가 나타나 하나님의 사람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공격한 것은 엘리사의 저주이기 전에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엘리사는 아이들을 향해 저주했을 뿐 자신의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괜찮지만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엘리사는 아이들에게 저주를 쏟아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그 역시 인지상정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거룩한 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또한 분노할 때 분노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엘리사는 분노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엘리사의 개인감정이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 길이 즐겁고 유쾌한 길만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이 길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거짓으로 비방을 하거나 우리를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모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비방이나 모함이나 멸시를 받을 때 억울하고 눈물이 나도록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 여러분,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너무나 억울해서 분통터지고 저주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 대상이 있으신지요? 하나님께 쏟아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RE: 열왕기하 2장 23~24절
엘리사는 저주의 땅 여리고를 고쳐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어린아이들이 놀려대자 아이들을 저주했고 그로 인해 암곰 두 마리가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암곰이 수풀에서 나와 어린아이들을 찢는 장면은 한 마디로 공포의 아수라장이었을 것입니다. 외모로 놀림을 받았기로서니 그 많은 어린이들이 들짐승의 공격을 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윤리적 기준이 아닌 그 당시의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윗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보면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로 세워진 엘리사가 여리고를 거쳐 다시 벧엘로 올라가면서 일어난 이 사건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23절)
먼저 우리는 벧엘이라는 장소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다가 하룻밤 묵었던 장소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꿈에 하늘로 뻗어있는 사다리를 보고는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집’, 곧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시대에 와서 벧엘은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다스리던 통일 이스라엘 왕국에서 열 지파를 데리고 나와 북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이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지기 위해 금송아지를 숭배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단에 두고 하나는 벧엘에 두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집으로 불렀던 그 벧엘이 이제는 우상숭배로 뿌리 깊은 도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야말로 발에 밟히는 돌멩이보다 못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된 이 도시에서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존중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흔히 어린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그것도 수십 명씩이나 되는 떼거리들이 한꺼번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조롱했다고 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수많은 어른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을 멸시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엘리사를 향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렸습니다. 여기서 ‘작은 아이들’을 의미하는 ‘나아르’는 청소년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라 충분히 분별할 줄 아는 연령입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놀렸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3장에 의하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를 밀거나 문둥병에 의해 머리가 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머리를 밀어서는 안 되었습니다(신 14:1). 그렇다면 엘리사는 선천적인 대머리였음에 틀림없었고 이것은 결코 조롱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의 아이들은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렸고 그를 멸시했습니다. ‘올라가라’는 것 또한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의 승천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벧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어둠을 밝혀주었던 엘리야는 물론이거니와 엘리야를 계승한 엘리사까지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벧엘에는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왕하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토록 멸시를 당했다고 하는 것은 벧엘의 영적 타락이 극도에 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벧엘의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놀려댄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조롱과 멸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42명을 찢었더라(24절)
이러한 도시에 암곰 두 마리가 나타나 하나님의 사람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공격한 것은 엘리사의 저주이기 전에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엘리사는 아이들을 향해 저주했을 뿐 자신의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괜찮지만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엘리사는 아이들에게 저주를 쏟아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그 역시 인지상정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거룩한 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또한 분노할 때 분노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엘리사는 분노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엘리사의 개인감정이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 길이 즐겁고 유쾌한 길만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이 길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거짓으로 비방을 하거나 우리를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모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비방이나 모함이나 멸시를 받을 때 억울하고 눈물이 나도록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 여러분,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너무나 억울해서 분통터지고 저주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 대상이 있으신지요? 하나님께 쏟아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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