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산상수훈'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삼계화택 (三界火宅)

자비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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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산상수훈

 

'세상은 온통 불타는 집' 삼계화택 (三界火宅)

'부처님의 산상수훈'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 삼계화택 (三界火宅)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부처님은 우루벨라 지방에 머물면서 불을 섬기던 카사파 삼형제와 추종자 1000명을 교화했다. 어느날 부처님은 이들을 이끌고 가야시사(象頭山)에 올랐다. 마침 해질 무렵이어서 온천지가 저녁노을로 불타는 듯했다. 부처님은 이를 보고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설법했다.


"비구들이여, 사람도 저와 같이 불타고 있다. 사람의 무엇이 불에 타고 있는가. 눈(眼)이 타고 눈의 인식 대상인 물질(色)이 타고 있다. 귀(耳)가 타고 귀의 인식대상인 소리(聲)가 타고 있다. 코(鼻)가 타고 코의 인식대상인 냄새(香)가 타고 있다. 혀(舌)가 타고 혀의 인식대상인 맛(味)이 타고 있다. 몸(身)이 타고 몸의 인식대상인 감촉(觸)이 타고 있다. 의식(意)이 타고 의식의 인식대상인 생각(法)이 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타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貪瞋痴) 때문에 불타는 것이다. 그로인해 태어남과 늙음과 병듬과 죽음(生老病死)이 불타는 것이다. 또한 근심과 슬픔과 번뇌와 괴로움(愁悲惱苦)이 불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 모든 불타는 것과 그 원인에 대해 싫어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일체에 대해 싫어하는 생각을 가질 때 탐진치의 불꽃이 꺼지고 생로병사와 우비고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된다."


잡아함 8권 197권 <시현경(示現經)>


이 경은 예수의 '산상수훈'에 비교되는 부처님의 '산상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으로 유명하다. 내용은 예수의 산상수훈보다 좀 어렵다. 하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면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설법이 조금은 쉽게 이해될지 모르겠다.

이 설법은 우선 시기적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뒤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다. 설법대상은 얼마 전까지 불을 섬기는 사화외도(事火外道)였던 1000명의 제자들이었다. 이들은 카사파 삼형제(10대 제자인 마하카사파가 아니다)에 의해 지도되고 있었는데 부처님에게 교화돼 집단개종을 한 상태였다. 그 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이끄는 수행자 250명도 집단개종을 해옴으로써 불교는 일약 커다란 신흥종교로 부상했다. 이들의 개종소식은 당시 인도사회에 큰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불교의 경전은 대개 '부처님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1250명의 제자와 같이 있었다'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이 무렵 집단개종한 제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어쨌든 부처님은 이날 설법을 듣는 제자들이 불을 섬기던 외도였다는 점을 착안하고 저녁놀이 붉게 물든 황혼을 바라보며 불꽃의 비유로 설법을 했는데 그 내용을 부연해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의식(眼耳鼻舌身意)의 여섯가지 감각기관(六根)이 색깔, 소리, 향기, 맛, 느낌, 생각(色聲香味觸法)의 여섯가지 인식대상(六境)을 만나게 되면 왕성한 탐진치의 불꽃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면 눈으로 아름다운 미인을 보았다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의 불꽃을 일으키고,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의 불꽃이 일어나고, 탐욕과 분노에 의해 어리석은 일도 마다하지않는 어리석음의 불꽃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눈만이 아니라 귀는 소리, 코는 향기에 대해 각각 같은 불꽃을 일으킨다. 부처님은 이를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하고 있다. 이 불꽃이 타오르는 한 인간은 생로병사와 우비고뇌를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치 불이 타는 듯한 인생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불꽃의 비유는 대승불교의 <법화경>같은 경전에서 '세상은 온통 불타는 집(三界火宅)'으로 표현된다. 불꽃은 감각기관이 인식대상을 접촉할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세상 전체가 불꽃에 휩싸여 있다는 비유다.

 

불교는 이 불난 집에서 사는 중생을 건져내기 위한 가르침이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욕망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데.

그대는 암흑에 둘러싸여 있다.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 법구경 -

 

 

삼계화택(三界火宅)


옛날에 어떤 큰 부자가 큰 집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 불이 나서 그 집이 불타게 되었다. 부자는 급히 집을 빠져 나와서 불을 피했지만, 아이들은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부자는 다급한 소리로 아이들을 부르면서 불이 났다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서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그러하자, 그 부자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 소의 수레와 같은 장남감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여기 있으니 나오라고 유혹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신기한 장난감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그 불타는 집에서 나와서 부자가 있는 쪽으로 나와서는 장난감을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러자 부자는 아이들이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금은보화로 장식된 흰 소 수레를 선물하였다.

 

위 이야기는 법화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부자는 부처님을, 아이들은 중생을 그리고 불타는 집은 우리가 있는 삼계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비유한다. 또한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 소의 수레는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3승을 비유하며 금은보화로 장식된 흰 소의 수레는 일승(一乘)인 깨달음 혹은 해탈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타는 집과 같다. 그 불은 바로 탐진치의 불이며 오욕칠정의 불이며 또한 번뇌 망상의 불이다. 모든 중생들은 행복을 구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한다.대부분의 중생들은 끝없이 일어나는 모든 욕망을 다 채우고 끝없이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하면 비로소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지만 이것은 참된 행복에 대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모든 욕망을 다 채우고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한다 하더라도 결코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신의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역사 속의 황제들 그 누구도 진정한 행복에는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 어디에도 참된 행복은 없다. 이 세상의 행복은 단지 신기루일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은 정말로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을 벗어나면 그대가 원하는 영원한 행복이 있다.”

 

삼계는 거대한 불타는 집이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불타는 집에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살이에 빠져있는 철부지 아이들과 같다.

 

불타는 집안에서 아무리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을 찾아도 조만간 불길에 휩쓸리듯이 삼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역시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윤회에 사라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또한 죽어서 영혼이 극락에 간다고 해도 결코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니 결코 생로병사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윤회하는 삼계에서는 결코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부처님은 너무도 명확히 아시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윤회하는 삼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불타는 집에서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

는 큰 부자처럼.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부처님께서는 3승을 설하셨으니 바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다. 성문승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阿羅漢)의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들로 주로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연각승은 인연법을 깨달은 수행자를 말하는 데 스승 없이 스스로 수행한다고 해서 독각승이라고도 한다. 보살승은 자신의 깨달음 보다는 중생제도를 더 중요시 여기는 수행자들로 보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3승은 삼계의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의 방편일 뿐이니 비유하면 사슴, 양, 소가 끄는 수레에 해당된다. 결국 모든 중생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금은보화로 장식된 흰 소가 끄는 수레인 해탈이지만 삼계화택 안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중생들에게 해탈의 길을 설하여 이끌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일단 수행자들의 근기에 따라 3승법을 방편적으로 제시하여 수행의 길로 이끄셨다. 하지만 3승 모두가 결국에는 해탈이라는 일승을 위한 선방편이니 수행자는 3승을 통하여 수행하되 이에 집착하지 않고 결국에는 일승으로 나가야 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부처님이 삼계화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설한 3승은 수행자들을 일승으로

이끌기 위한 수행 방편이지만 일반 중생들이 불법과 인연을 지어서 수행의 길로 들기 위한 방편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수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불법과 인연이 없는 중생들을 수행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께서는 복을 구하는 중생들에게는 복을 주고 병든 중생들은 치료하신다. 부처님이 이러한 가피를 중생들에게 내려주는 이유는 모든 중생들이 불법과 인연을 짓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 삼계화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데 있을 뿐, 결코 그 안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모면하게 하고자 하는데 있지 않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피만을 바라고 스스로 불타는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것이며, 또한 금은보화로 장식된 수레를 버리고초라한 수레를 얻고자 하는 것이니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소견이라고 볼 수 있다.

 

중생구제를 위한 부처님의 방편은 무한하다. 모든 중생들을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수행자에게는 근기에 따라 방편적으로 3승을 설하시고 또한 일반 중생들에게는 기복(祈福)이나 구병(救病)을 베푸신다.

 

하지만 부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부 수행자들은 자신이 행하는 수행 방법만을 고집하고 집착하여 결국 해탈이라는 최종 목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반 중생들은 복을 구하고 병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부처님을 찾을 뿐 부처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모두가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집안에서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있는 철부지 어린이와 같으니 바로 화택중생(火宅衆生)인 것이다. 불타는 집에 있는 사람은 집에서 탈출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뿐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야만 모든 괴로움에 종지부를 찍어서 진정한 행복을 억을 수 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지니고 실천하여 삼계화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무 석가모니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