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무당입니다

엄마행복하자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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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받은지 3개월

하지만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당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무거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엄마를 사랑하는 딸의

그냥 어떤 아줌마의 이야기라 생각하시고

너그럽고 편안하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엄마 어렸을적 꿈에

너무나 화려한 상여를 짊어진 남자가 나타나 상여문을 열고

안에 놓여진 예쁜 꽃신 한짝을 내밀면서 엄마에게 이리 오라고 했을때


불현듯 할머니가 나타나

"얘가 신은건 고무신인데 어디다 꽃신을 들이대느냐! 썩 물러가!!"

 

그러자 상여꾼은 옆옆 부잣집 명자네로...

명자가 죽고 그 이후로 명자는 계속 우리 엄마를 괴롭혔습니다

 

 

 

 

엄마가 어렸을때부터 남달랐다는것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여섯남매가 다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외갓집은 교회를 다녔고 우리집에 절대 무당은 안된다는 외할아버지 때문에

형제들도 동네사람들도 쉬쉬하면서도 궁금한게 생기면 으레 엄마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2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행복을 꿈꿨지만

맏며느리의 도리를 다한다는것이 녹록지 않았고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아빠와의 이유없는 다툼에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싸움의 원인은 늘 명자가 꿈에 나타나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아빠에게 우리 오늘 조심하자고 명자가 꿈에 나왔다고 서로 화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어김없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그 싸움은 점점 커져 온집안의 살림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친가쪽은 천주교였고 어렸을적 동네 사람들은 다같이 성당에 다니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대모님과 대부님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도 친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고 저와 남동생도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녔습니다

 


어릴적 기억에 할머니와 동네분들이

엄마 머리맡에 나뭇가지 같은것을 놓고 기도했던것이 생각납니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엄마가 무병을 앓고 있는것 같아 동네분들과 합심해서 기도했던거라고 합니다

 

 

 


엄마는 많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고 키가 153cm 몸무게가 37kg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가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기억의 엄마는 작은 체구, 흰피부에 입술은 파랬었고

 

아침에 일어나 제가 제일 먼저 했던일은 안방으로 가서 엄마가 숨을 쉬는지 살피는것이었습니다

옆에 아빠도 있었는데 왜 그리 유난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멀다하고  그 무거운 자개장농이 옮겨져있고 침대 위치가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 아 장농이 저기 있다가 요기로 왔네 "

이정도로만  생각했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 엄마 그때 그 무거운 장농 침대 엄마가 혼자 다 옮긴거야? "


 " 그럼~~ 그땐 나도 내 정신이 아니었지 하하하   이야~대단하지 않냐??  " 하고 웃으십니다

 

지금에와서 웃으면서 예전엔 그랬었다고 얘기할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

 

 

그리고 제가 중학교 2학년 한창 사춘기였던 나이에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 혼자서 우리를 키운다는 것이 막막하여

아버지의 다섯남매들에게 도움을 구해봤지만 모두 외면했습니다

 

 

 

저는 그때의 우리를 외면하고 엄마를 멸시했던 삼촌들과 고모들을 기억합니다

 

 

 

엄마가 재가하여 우리둘을 버리고 도망갈지 모르니

 

여유를 부릴 수 없도록 한푼도 줄 수 없다면서

우리집에 있던 물건들을 나누어 갖고

 

아빠의 빚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엄마와 나와 내동생을 피하던 당신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런 당신들을 잊고 서로 모르고 지내며

내가 취업해서 우리 세식구 숨통이 좀 트일 무렵

장자인 내 남동생을 찾기 위해 나를 사망신고 접수했던일도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일년은

중학교 졸업식은 했던가 어떻게 살았던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후 쓰러져가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공동으로 재래식 회장실을 사용했고

그 곳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3이 될 무렵

우리 아파트가 철거명령이 떨어지면서 우리식구는 영구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습니다


이사갈 새 아파트를 보러 가던날 너무 기쁘면서도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엄마랑 가끔 얘기합니다


 " 그래도 우리 서문아파트 살 때 정말 행복하지 않았니?? "

 

 

 

 

 

정말 행복했습니다

 

추운겨울 꽁꽁 얼어붙은 화장실에 더운물 부을 동안 기다리다 우리동생 똥싼얘기ㅋ


반찬이 없어 집앞 시장에서 상추 사다가 고기없이 밥이랑 고추장에 싸먹던 쌈이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엄마는 집에 빚쟁이들이 와서 오히려 엄마에게 힘내라고 위로해주고 돌아서는것을 보면서

누가 찾아오고 어떤일이 생겨도 무서울게 없던 시간들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철거되고 공원이 생긴지 오래지만 가끔 그 앞을 지나갈때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당시에는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대학은 애진작에 포기하고 상고를 들어갔던터라 대학을 못간 아쉬움에 힘든적도 없었던것 같고


그 공중화장실쓰던 집에 친구들 데려와서 가치 라면을 끓여 먹어도 좋았습니다

 

그저 고등학교 졸업 전 좋은 곳으로 조기취업해서 돈을 벌게되어 기뻤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제가 결혼을 하고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우리엄마 나이 고작 서른아홉

 

 

 


나지금 우리 신랑 없이 애들 둘 데리고 살수 있을까?

우리엄마 참 힘들었구나...

그 생각이 드니 눈물이 핑 돕니다

 

 

 


그리고 나도 그 시절을 엄마와 함께 무사히 지내왔구나 생각하니 너무 감사합니다

 

 

 

 


엄마는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고

 

자식들이 아직 어려서 크면서 혹여나 무속인의 자식이라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않을까

무당팔자인걸 알면서도 신도 못받고

 

다른것으로 풀겠다고 소리로 , 국악으로 풀면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어떤분의 말처럼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엄마가

어릴때부터 함께했던 할머니를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큰딸내미 결혼하고 아들내미 서른이 더 지나고 나서야 무당이 되었습니다

 

 

 


제가 행복한건 지금 엄마가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도 아프지 않고 마음도 회복되어 생기가 있고 즐거워합니다

 

 

 

 

 

요즘같은 명절이 되면 굳이 찾아갈 사람 없고 우릴 찾아주는 사람없이


세식구만 똘똘 뭉쳐 살던 우리집을 어찌알고 찾아주는 이들에게


옆에 계신 할머니가 일러주는 말을 전해주는것뿐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신기해하고 신나하는 엄마가 행복해보입니다


이제야 받아들였을뿐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했던 할머니가

고생했던 우리엄마 보살펴 주시는것 같아 힘이납니다

 

 

 

tv등 각종 매체에서나 여러 좋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 저도 보고 들어왔고

세상의 편견이 있다는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배척하고 편견으로 바라보지만은 말아주세요

 

 


간혹 누군가가 너도 그럴 수 있겠다고 합니다

혹여나 만약 제가 엄마가 가는 길을 따라 가게 된다고 해도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괜히 혼자 눈물도 나고

 

뒤죽박죽 두서없는 글이지만

 

 

 


 " 엄마

   우리 남매랑 늘 함께해줘서 고마워

   우루사 두마리는 이제 엄마 어깨에서 그만 사라질께

   혹 살다가 힘든일이 생기더라도 이젠 우리가 버팀목이 되어줄게

   이제는 우리에게 좋은일만 가득할거야  "

 

 

 

 

 

익명으로라도 그냥


그냥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