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궁녀와 낙화암의 푸쉬맨 현생은 남자인 저 제로가 1,300여 년 전엔 백제의 궁녀인 아름다운 여자로 살았던 전생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백제의 의자왕 시대였으며,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의 눈에 들지 못해 은총은 받지 못했지만 궁녀들 사이에서는 궂은 일을 마다않는 힘쎄고, 착하고, 성실한 언니였던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혼의식 정화(해원상생)를 위해 다니던 역사기행 공부 중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3천 궁녀는 일본에 의해 날조된 숫자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백제의 인구가 남녀노소 모두 합하여
5만 정도에 불과한데 3천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계백장군은 4천도 안 되는 군사로 18만이나 되는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황산벌에서 패하고 맙니다. 수륙 양면 작전으로 압박해오는 그들을 백제는 막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좌평/성충, 흥수, 계백의 간언대로
의자왕이 대비를 했어도 이미 그들의 막강한 군대는 계백장군이라 해도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군세를 몰아 사비도성을 들이닥치는데 이들을 피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강물에
스스로 뛰어든 숫자가 1천 명 정도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중엔 궁녀뿐만이 아니라 노예층
일반인들과 귀족 여인들 모두 합하였다는 채널러의 말을 대신합니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적군에게
자신의 몸을 유린당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하여 낙화암에서
뛰어내릴 것을 서로 종용합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시듯 낙화암은 90도의 절벽이 아니고
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내리막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바로 떨어진다면 바위에 부딪힐 것이 자명하며
그 모습을 상상하기엔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떨어지는 이가 있는 반면 무서워서 머뭇거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적들은 코앞까지 닥쳐왔는데 무서움 때문에
앞에서 머뭇거리는 여인들로 뒤에 오는
여인들은 정체됩니다. 이때 제가 당당히 나섭니다. 치마를 뒤집어쓰라고 종용하며
저는 그들을 뒤에서 밀기 시작합니다. 바위에 부딪혀 튕기는 그들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습니다. 눈에선 피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꽉 다문 입술에선 붉은 피가 흐릅니다.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마지막엔 그들의 뒤를 따릅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리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전율이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고통과 아픔의 반복입니다. 수많은 생을 살면서 남자로 여자로 궁녀로 신하로 때로는 임금으로 간신으로 맡은바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며 많은 경험을 득하고 그것을 비료삼아 의식을 살찌웁니다. 3차원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행하여지는
상념체의 정화는 다른 말로 지구의 정화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지구를 걸으며 뿌려놓은
씨앗의 결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에 함께하며 신성한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에 동참한다는 이 벅찬 감동은 하늘에선 아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순종하는 자세로 임할 것을 머리 숙여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사항 ☞ 왜곡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의문이 많지만 근초고왕때는 식민지 인구를 합하면 804만이었다고 하네요. 군대도 120만이었다는데, 삼국통일을 못한 것은 일본열도, 동중국연안, 한반도, 동남아시아에 군대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의자왕때는 고구려보다 약간 많은 420만에 수륙군 38만이라네요. 이때 백제는 신라에게 80여 성을 빼앗은 상태였고 거의 평지라서 영토는 고구려보다 약간 적지만 인구, 군사, 성은 고구려보다 많았던 거라고합니다.
전생이야기 (삼천궁녀와 낙화암의 푸쉬맨)
삼천궁녀와 낙화암의 푸쉬맨
현생은 남자인 저 제로가 1,300여 년 전엔
백제의 궁녀인 아름다운 여자로 살았던
전생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백제의 의자왕 시대였으며,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의 눈에 들지 못해
은총은 받지 못했지만 궁녀들 사이에서는 궂은 일을
마다않는 힘쎄고, 착하고, 성실한 언니였던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혼의식 정화(해원상생)를 위해 다니던
역사기행 공부 중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3천 궁녀는 일본에 의해 날조된
숫자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백제의 인구가 남녀노소 모두 합하여
5만 정도에 불과한데 3천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계백장군은 4천도 안 되는 군사로 18만이나 되는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황산벌에서 패하고 맙니다.
수륙 양면 작전으로 압박해오는 그들을 백제는
막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좌평/성충, 흥수, 계백의 간언대로
의자왕이 대비를 했어도
이미 그들의 막강한 군대는 계백장군이라 해도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군세를 몰아 사비도성을 들이닥치는데
이들을 피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강물에
스스로 뛰어든 숫자가
1천 명 정도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중엔 궁녀뿐만이 아니라 노예층
일반인들과 귀족 여인들
모두 합하였다는 채널러의 말을 대신합니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적군에게
자신의 몸을 유린당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하여 낙화암에서
뛰어내릴 것을 서로 종용합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시듯 낙화암은 90도의 절벽이 아니고
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내리막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바로 떨어진다면 바위에 부딪힐 것이 자명하며
그 모습을 상상하기엔 그리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떨어지는 이가 있는 반면
무서워서 머뭇거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적들은 코앞까지 닥쳐왔는데 무서움 때문에
앞에서 머뭇거리는 여인들로 뒤에 오는
여인들은 정체됩니다.
이때 제가 당당히 나섭니다.
치마를 뒤집어쓰라고 종용하며
저는 그들을 뒤에서 밀기 시작합니다.
바위에 부딪혀 튕기는 그들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습니다.
눈에선 피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꽉 다문 입술에선 붉은 피가 흐릅니다.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마지막엔
그들의 뒤를 따릅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리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전율이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고통과 아픔의 반복입니다.
수많은 생을 살면서 남자로 여자로 궁녀로 신하로
때로는 임금으로 간신으로 맡은바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며
많은 경험을 득하고 그것을 비료삼아 의식을 살찌웁니다.
3차원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행하여지는
상념체의 정화는 다른 말로 지구의 정화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지구를 걸으며 뿌려놓은
씨앗의 결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에 함께하며 신성한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에 동참한다는 이 벅찬 감동은
하늘에선 아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순종하는 자세로 임할 것을
머리 숙여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사항 ☞ 왜곡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의문이 많지만 근초고왕때는 식민지 인구를 합하면 804만이었다고 하네요. 군대도 120만이었다는데, 삼국통일을 못한 것은 일본열도, 동중국연안, 한반도, 동남아시아에 군대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의자왕때는 고구려보다 약간 많은 420만에 수륙군 38만이라네요. 이때 백제는 신라에게 80여 성을 빼앗은 상태였고 거의 평지라서 영토는 고구려보다 약간 적지만 인구, 군사, 성은 고구려보다 많았던 거라고합니다.
-제로-
빛의생명나무 http://udecat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