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학생들에게 괴짜로 불렸다. 강의 중 잡담 소리만 들려도 불호령을 내리고 학점 평가도 엄청나게 깐깐했다.
시험문제 5개 중 2개만 풀어도 A를 받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강의가 까다로웠다.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은 입에서 저절로 힘든 신음을 낼 정도였다.
교수는 또 무척이나 검소했다.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낮에는 '전기요금'을 아낀다며 절대 연구실에 불을 켜지 않았다. 책도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으로 읽는 사람이었다.
학교에 올 때도 항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정도로평소에 근검절약하며 지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감투를 무척이나 경계했다. 찰스 다윈 등 유수 생물학자들이 거쳐 간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력, 초파리 유전학을 제대로 공부한 국내의 1세대 학자임에도단 한 번도 학회장을 역임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연구에 몰두하면서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그는 학생들에게도 오로지 학문적 성과에무서우리만큼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몸에 대장암이 있음을알게 된 것은 2005년경이었다. 그리고 10년간의 긴 투병 끝에 숨이 끊어지기 전,그는 자신이 평생을 알뜰하게 모은 재산 10억을모교인 연세대에 기부했다.
또한 자신의 육신마저 의학연구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모교 의과 대학에 기부했다. 해부학 연구에 써 달라면서.
연세대 최영 교수는 그렇게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연세대 측은 소식지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모교에 잠들다'라는 글을 적어노교수의 죽음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