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아레끼빠에서의 콘서트

박우물OndaCorea201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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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nth Festival3>Peru Arequipa(아레끼빠)에서 둘째날.

2015년 7월


 

@호텔에서 조식 깜짝 음악회

호텔 식당은 자유로운 뷔페식이었다.

그런데 어제만해도 보지 못했던, 아니 안까지 못 둘러봤기에 보지 못하였을 성 싶은 피아노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에 김 피아니스트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을 선사할 수 없느냐 하자 그녀는 바로 피아노 페달을 밟는다.

역시나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건반 소리에 종업원은 물론이고 투숙객-그 중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한 사람이 주인이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까지 내려와 잠시 손을 멈추거나 눈을 지긋이 감고 아침에 어울리는 피아노 소품곡에 귀 기울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도 숙소에 올라가 크로매틱 하모니카와 플륫을 가지고 같이서 <Amazing Grace>와 <아리랑> 연주를 하였다.

 

 

 


 

@KOICA 단원네 집에서 점심

전날 밤에 같이 하였던 한국인 국제봉사자 시니어 단원네 집으로 향하였다.

네비게이션이 아직 그다지 보급되지 않아 안경 낀 후안 교수 차량에 그 장비도 없었다지만 다 와서 집을 찾는 데 적잖은 시간을 근처에서 헤매야 했다.

어제 봤던 젊은 교사 단원과 같이 반겨주는 누님 단원의 한국 음식솜씨에 후안교수는 감사를 연발한다.

아마도 처음 접한 한국음식이었을 것이리라.

세상이 좁다고 벽에 걸린 국제 봉사단 교육 연수원 동기중에 2014년 작년 3월에 여행 안내를 하였던 전직 교장샘 얼굴이 보인다.

지금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코이카 단원으로 봉사하고 있다더니 이 누님과 같은 동기일 줄이야.

 

 

 

@어린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

좀체 이런 전문적인 피아니스트를 접할 기회가 없던 터라 오랜 지우인 Torre Blanca(또레 블랑까) 교수의 여식 Rosalena는 부모 2층집 자신의교습소에 김자혜 피아니스를 초대하였다.

그래서 점심 후 부랴부랴 다시 이동을 하였다.

어린 제자들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만든 것이다.

통역은 아이들 열성 엄마 한 명이 담당하였다.

1시간을 요구 하였지만 가르치는 것에 열심인 김대표는 예정보다 배를 넘은 시간 후에나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International Club의 연주회

5천명 회원을 자랑하는 이 클럽은 오늘 안내를 담당하는 내 또래 후안교수가 회원이라 그 연유로 자리를 대여받았다.

문제는 급작스럽게 공지가 되고 시간대도 앞 행사를 마친 저녁 9시에 하기로 해서 애초 관객동원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회원 외에는 쉽게 아무나 들고 날 수가 없는 난점까지 있었다.

시간대만 보자면 조정이 당연히 가능하였지만 거기 외에는 피아노가 없어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낮에 답사를 돌 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 일하는 이중에 과부였다던가 하는 미화원 어린 아들이 초등학교부터 어머니가 일하는 곳을 드나들다 테니스에 흥미를 보이자 시설 쪽에서 연습을 위한 배려를 해주었더니 발군의 실력으로 그예 국가대표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지금은 미국에서 여유롭게 프로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래서 연습 때 물론이고 그 밤늦은 시간에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추레한 차림의 한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유독 더 시선이 갔었다.

그녀는 처음에 사진 찍는 것을 저어하였지만 나중에는 우리와 같이 포즈를 취했다.

전일 저녁의 클래식 음악회와는 달리 <클래식과 인생의 아이러니>라는 제목으로 김자혜씨는 즉석 영어 통역자를 발굴해 진행해 나간다.

한국과는 반대인 남반구의 겨울 날씨를 우습게 봤다가는 딱 감기 들기 십상이라 주의를 했지만 목에 무리가 오는 듯 하다.

Adriana도 그런 우려 탓인지 쉽게 걸친 숄을 걷어내지 못하고 노래를 이어간다.

피아노가 UNSA 강당 것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웠지만 결정적으로 음이 상당히 낮게 되어있어 임의로 조율가능한 플륫외에는 다른 하모니카는 물론 셋이서 같이 협연마저 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다 헤어져 후안교수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셋이서 24시간 피자집에 들러 늦게  빈 위를 달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