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네 곁으로 돌아갈게

고마워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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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유학 떠나기 딱 세 달 전 한국에서 주말 알바하며 용돈 벌다가
저보다 두살 어린 한 남자애 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 부터 귀엽다 느꼈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애 한테만 빛이 났어요. 
걔가 오는 날이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힘든 알바도 실실 쪼개면서 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끌리는 사람은 처음 이었어요.
통통한 강아지같이 생긴 얼굴에 자세는 바르고 말을 너무 예쁘게 했어요. 
그 애를 쳐다보면 온몸이 꿀로 가득차는 것 같았어요. 

유학가기 직전이었고 비행기도 끊어놨지만.
이 남자애와 어떻게 해서든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 싶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다른 친구들 번호 물어보는 척 하면서 얘 번호도 같이 물어봤어요.
주말마다 알바 끝나고 집에 올 때, 짧게 짧게 대화를 하고 헤어지곤 했어요.

그 5분짜리 대화를 곱씹으며 일주일을 살았던 것 같아요.
어느날 연락하자 큰 마음을 먹고 저녁먹자는 카톡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떨려요. 그날 저녁 바로 만났어요.

기다리고 있는 내 옆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그 애가 아직도 생생해요.
더운 여름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첫눈이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얘기해서 들어보니까
알고보니 여자 손도 안 잡아본 순수소년이었더라고요.
그게 너무 귀엽고 좋았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비가 많이 왔는데 제게 우산 씌워주면서 자기 신발 다 젖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그 이후로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애 꿈이 가수라는 것도 알게되고, 목소리가 너무 좋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그 애의 노래를 듣고 너무 잘해서 충격 받기도 했어요. 노래가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어느날 밥을 먹고 개천을 걷고 물가에 앉아서 서로 얼굴을 바라봤는데
그 때 그 눈맞춤은 죽을 때 까지 못잊을 것 같아요.
그 남자애의 그 강아지 같은 눈은 정말 미친듯이 사랑스러웠어요.
우리 눈이 서로 마주 치는 순간 온 세상이 고요해졌고
바람을 탄 그 애의 기분 좋은 땀 냄새가 솔솔 불었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그 애의 모든 게 사랑스러웠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게 있으면 그 애 일거라고 확신했어요.

그 눈을 보고 제가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그 애가 "나도 누나가 좋아." 라고 했어요.
그 때 기분 째지는 줄 알았어요.
제가 안아달라고 하니까 꽉 안고 "으아!" 하면서 어쩔 줄 모르며 1초만에 손을 풀어버리는게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그 애를 너무너무 사랑했어요.
같이 대화를 해도 너무 잘 맞았어요...... 돈이 없어서 떡볶이에 김밥을 먹고 하루 종일 걸었지만
그냥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어요.
말이 많이 없는 친구였지만 가끔 그 애가 하는 말은 참 신중했고 예쁜 말들이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답답하다고 어떻게 그런 애가 있을 수 있냐고 (말이 너무 없어서)  했지만 저는 상관 없었어요.

하지만 예정된 출국일은 자꾸 다가오고, 내가 드디어 알게된 행복이 깨질까봐 하루하루 불안했습니다. 

ㅜㅜ.
학기 시작되는 8월, 결국에 저는 떠났고 마음에 피눈물 쏟으며 비행기 탔습니다.
외국에서 처음 1년동안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차별에 많이 힘들었고 정말 많이 외로웠고 괴로웠어요.

힘들 때 마다 그 애 한테 연락해서 노래를 불러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애가 부르는 노래를 학교 갈 때, 지하철에서, 자기전에, 아플 때 아무때나 그 애가 생각날 때 들었습니다.
가끔 전화를 하면 그 순간이 한 주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 애를 통해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애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제가 하루하루 견디는 이유였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저는 많이 성장했고,  그 다음 해 여름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그 애는 저와 잠깐 헤어진 동안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헤어지기도 했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밝아졌습니다.
원래 자주 만나지도 못할거면서 연락을 하는게 미안해서 연락 안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시간도 짧은 데,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 애와 다시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전 그대로 그 애 에게 빨려들어갔습니다.
너무 반가웠고, 아직도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서 우리는 꿈 같던 짧은 여름을 보내고 저는 또 남은 유학생활을 마무리 하러 다시 한국을 떠났습니다. 

2년차 유학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요령이 생겨 살 만은 했어요.
졸업준비로 바빴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시 한국 갈 일만 손꼽아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파서 학교에 못가는 날에는 하루 종일 그 애의 노래를 들었고,
너무너무 보고싶어서 미치겠는 때에는 우리가 찍어둔 동영상과 사진을 봤어요.

언제나 어디에서나 저는 그 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 애가 학교다니면서 말이 점점 늘고 밝아지는 걸 들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가끔 보내주는 사진을 보며 그리워서 눈물 펑펑 쏟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졸업하고,
몸은 외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그 애와 같이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 한국에 들어갔을 때 또 그 애를 만났습니다.

강남역 만나서 얼굴 보는 순간 1년 동안 못봤던 그리움이 통째로 녹아버렸습니다.
같이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면서 대화하니까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느꼈습니다.
예전의 수줍은 많던 그 남자애가 지금은 많이 활발해지고, 노래에 대한 열정이 생긴 걸 보면서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느꼈지만
뭔지 모르게 뿌듯했고 대견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 느꼈던 그 아이의 첫 느낌은 Boy 였는데.
제가 없는 동안 더 멋있어지고, 더 성숙해지고, 더 살도 빠지고, 이제는 진짜 Guy, 남자다워졌어요.
둘다 만나서 너무 행복했고 좋았습니다. 오랜 시간 곁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나 변함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제는 저의 이 긴 장거리 연애가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졸업 후 현지 취업을 도와주면서 비자가 연장된것입니다.
현지에서 취업하게 되는 기회가 정말 쉬운 기회가 아니라서
저는 그 아이와 이번 여름도 잠깐 함께 보낸 후 여름 끝나자 마자 이렇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거라서 우선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릅니다. 너무 심난합니다.

여기서 만약에 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현재 제가 지내는 이곳은 정말 좋은 곳 이지만
진짜 사랑하는 그 애와 함께하지 못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것 같지가 않습니다.

반면에, 현지 취업을 포기 하면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까지 굴러온 좋은 기회를 놓치는게 과연 미래를 위해 현명한가. 머리가 복잡하네요.
지금까지 2년간 유학하면서 쌓아온 경력을 두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여기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애에게 혹시 여기로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는데
이 애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애를 정말 사랑하지만, 일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일을 잡으면 사랑을 놓칠 것 같고, 사랑을 하기 위해 한국에 가자니
상식적으로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 좋은 나이에 많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번해에는,
여기에 온 순간부터 예전과는 다르게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래 만나지 못할 거 알았으면 처음부터 놔줬어야 하는 건데... 미안하기도 합니다.

유학 시작 할 때 시작했던 우리 2년의 만남, 여름마다 만들었던 짧았지만 진했던 추억들, 다른 공간 속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보냈던 시간들
모두 고마웠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정말 많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이를 정리해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요즘에는 제가 일부러 연락을 안하니 그 애도 연락이 없네요. 
우리가 만약에 이렇게 그냥 헤어지게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 애는 알까요 제가 얼마나 그 애를 사랑하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애의 목소리와 얼굴을 떠올리고,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항상 그 애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마다 그 애 얼굴과 손, 발, 그 애의 모든 것이 사진 처럼 번뜩번뜩 떠올라서 잠못자고 그리움에 눈물로 이불만 적십니다. 

매일 그 애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머릿속에서 반복재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로 씁니다.

그 애가 불러줬던 에릭 베넷의 노래처럼
어디에 있든 나는 항상 네 곁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언젠가 다시 네 곁으로 돌아갈게, 사랑해.


어디에 말 할 데도 없고,
친구도 없는 외로운 유학생이 타지에서 홀로 혼잣말 하는 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