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고가 난 뒤 100일 흘렀지만 아직도 정부의 제대로 된 답변이 없는 점과 저희가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먼저 저희 아버지는 지방 공무원으로 약 30년간 근무를 하시고 이번에 지방행정연수원으로
연수를 받으로 다니셨습니다. 본인의 꿈이었던 사무관을 달고 행복해 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저희 아버지가 이번 중국 연수를 가시게 된 이유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공무원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갖기 위한 연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놀러를 간거다 라고 하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행정연수원이 그렇게 짜인 일정에 대해서 이분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과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국가가 많이 불안정한 사태이고 대통령님께서도 해외 일정을 취소하셨는데 왜 갔느냐에 대해서는 저희도 궁금한게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발단은 지방행정연수원은 중국의 집안으로 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연수일정은 4박 5일 과정이었고 일정이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어있었는데 하루에도 6~8시간씩을 타고 다니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정은 결국 사고를 일으켰고 다리 난간을 들이 받고 10m 아래로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는 총 6대로 138명이 나누타고 있었는데 그 중 사고가 난 버스는 5호차 였습니다. 그리고 사고는 7월 1일 한국 시간 4시30분쯤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난 고인들은 서울, 강원. 경북. 광주. 제주. 고양. 인천. 부산. 남양주 였습니다.
사고가 나고나서 구조활동이 이뤄지는 데는 50분의 시간이 흘렀고 버스는 강바닥에 처박힌체 방치되었습니다.
부상자 당하신 분들의 말로는 구조가 일찍 되었다면 이중에 사망자는 절반도 안되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차량이 5호차였는데 그 뒤 30분 정도의 격차를 두고 6호차를 탄 연수생들이 발견하고 구조를 벌였으나 이미 사망자는 9명이나 발생하고 난 뒤였습니다.
추후 그 버스에 동승했던 분들의 말로는 버스가 노후화되어 안전벨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고 빗물이 세는 오래된 버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저는 평상시 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가 소식을 접하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희 아버지가 확실하다면 빨리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으나 행정연수원은 알아보겠다고만 한 뒤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하루에 3대밖에 없고 자리도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기다리라고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마냥 기다릴수없어서 먼저 여행사를 알아보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가고 나서 본 뒤에는 하루에 3대밖에 없다는 비행기가 대구에서도 제주에서도 오는 비행기편이 있는게 확인이 되었습니다.
또 한 다른 유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거절당했습니다.
그렇게 중국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사고가 난 지안시까지 6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빙의관(장례식장)이었는데 그곳에 돌아가신 아버지가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아빠가 중국에서 그것도 한국과는 다른 냉동고가 아닌 냉장고에 방치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유가족들도 도착을 하였고 고인의 모습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냉장고가 아닌 냉동고를 요구하였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장례문화가 다른 것은 어쩔수 없다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곳에는 한국을 대표로 하여온 영사관 직원도 있었고 이번 연수를 책임지고 온 지방행정연수원 직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것은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시간이 지남으로서 고인의 몸에 부패가 오기시작하였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냉동고를 요구 하였고 냉동고가 없다기에 아이스크림을 저장하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2일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였습니다. 그로인해 어떠한 고인은 배가 부풀어서 냉동고의 미닫이 문까지 부푼 상태였습니다
정부를 대표로 하여 온 차관님은 고인을 어서빨리 한국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앞으로 어떻게 고인들을 한국으로 모실지에 대해서 유가족과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차관님께서는 이곳이 워낙 오지인데다가 공항도 없어서 그곳보다는 큰 심양으로 고인들을 모시고 간다는 거였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고인들을 그럼 어떻게 모시고 갈건지 물어보니 중국은 냉동차가 없기 때문에 일반 봉고차에 관을 싣고 12시간 정도를 이동한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날씨는 매우 습하고 더워서 그곳까지 이동하는데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었기에 무리가 있다고 하였으나 차관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2시간 정도를 냉동을 하면 이동하는데 해동이 안되니 걱정말라고 하였지만 봉고차의 내부는 이미 부식도 되었고 에어컨도 갖추지 못한 상태의 차였습니다.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올리는 법을 몰라서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갑론을박이 오가던 중 이상태로는 도저히 고인을 옮길 수 없다고 하여 확실한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동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양 공항으로 가는데까지는 고인을 이대로는 옮길 수가 없어서 중국의 팔보산이라는 회사가 와서 고인들의 부패를 막는 약품처리를 하여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동하기에 앞서 차관님께서 약속하신거는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는 거였고 또한 장례절차와 관련하여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정부를 대표로 하여 오신 분이기에 저희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오늘까지 약 100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대화도 오고간게 없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고인이 공무원이기에 조용히 죄인처럼 숨죽여 왔습니다.
국민들의 혈세로 여행이나 다는 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죄를 짓는 기분이였고 세월호를 따라한다고 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숨죽여 있었습니다. 나라가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불안한 상황에서도 꼭 해외연수를 가야했냐는 말에 대해서도 저희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왜 꼭 그때 연수를 가야했는지와
국민들의 혈세가 어떠한 이유로 중국해외연수일정을 잡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또한 저희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막대한 유족보상금을 받았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거기에 대해서는 먼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족보상금은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퇴직수당을 받은것입니다. 그것도 100%를 전부 받는 것이 아니라 70%만 받는 것 입니다.
또한 정부로 부터 보상금 외 9천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 버스회사가 사고를 낸데에 해서는 정부가 먼저 지급을 하고 9천만원을 중국회사로부터 구상권을 갖는 다는 것입니다.
즉 저희는 정부로 부터 받은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관님께서는 장례와 관련하여 모든 절차, 추후 정부입장과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이야기 하시겠다고 하셔놓고 연락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지자체 소관으로 돌려 놓으시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자체는 원래 소속 공무원이었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도 지방정부이다 보니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관계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니 저희 유가족들은 어디에 가서 이야기를 할지 막막합니다.
그렇기에 저희 유가족들이 뛰어서 국회의원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몇몇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여야 대표님은 모두 바쁘신 관계로 답변이 없으셨지만 강창일 의원님과 심상정 의원님등이
국정감사에서 정종섭 장관님을 상대로 이번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시니
유가족과 만나 대화를 하시겠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아무런 답변도 없으시기에 저번주 목요일 8일날 정부청사 앞에서 작은 집회를 하였으나
누구 하나 나와서 이야기 해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무엇을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게 아닙니다.
속시원히 저희가 이해를 할 수 있게 대화를 하자는 겁니다.
사고가 난 버스는 빗물이 세고 할 정도로 노후화가 되고 안전벨트도 갖추지 못한 버스였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나고서는 사전답사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마저도 연수원은 하지를 않았고 국정감사에서는 여행사를 통하여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연수를 주관하는 연수원에서 사전답사를 해야하는데 이걸 왜 여행사를 통해서 해야 하는지도 궁금하고 138명이나 되는 연수에 안전요원 한명도 배치되지 않는다는게 말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중국공무원 버스사고 유가족입니다. 한번만 읽어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7월1일에 일어난 중국 공무원 연수 사고중 돌아가신 고인의 유가족입니다.
내일이면 사랑하는 아버지의 생신인데...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고가 난 뒤 100일 흘렀지만 아직도 정부의 제대로 된 답변이 없는 점과 저희가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먼저 저희 아버지는 지방 공무원으로 약 30년간 근무를 하시고 이번에 지방행정연수원으로
연수를 받으로 다니셨습니다. 본인의 꿈이었던 사무관을 달고 행복해 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저희 아버지가 이번 중국 연수를 가시게 된 이유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공무원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갖기 위한 연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놀러를 간거다 라고 하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행정연수원이 그렇게 짜인 일정에 대해서 이분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과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국가가 많이 불안정한 사태이고 대통령님께서도 해외 일정을 취소하셨는데 왜 갔느냐에 대해서는 저희도 궁금한게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발단은 지방행정연수원은 중국의 집안으로 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연수일정은 4박 5일 과정이었고 일정이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어있었는데 하루에도 6~8시간씩을 타고 다니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정은 결국 사고를 일으켰고 다리 난간을 들이 받고 10m 아래로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버스는 총 6대로 138명이 나누타고 있었는데 그 중 사고가 난 버스는 5호차 였습니다. 그리고 사고는 7월 1일 한국 시간 4시30분쯤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난 고인들은 서울, 강원. 경북. 광주. 제주. 고양. 인천. 부산. 남양주 였습니다.
사고가 나고나서 구조활동이 이뤄지는 데는 50분의 시간이 흘렀고 버스는 강바닥에 처박힌체 방치되었습니다.
부상자 당하신 분들의 말로는 구조가 일찍 되었다면 이중에 사망자는 절반도 안되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차량이 5호차였는데 그 뒤 30분 정도의 격차를 두고 6호차를 탄 연수생들이 발견하고 구조를 벌였으나 이미 사망자는 9명이나 발생하고 난 뒤였습니다.
추후 그 버스에 동승했던 분들의 말로는 버스가 노후화되어 안전벨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고 빗물이 세는 오래된 버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저는 평상시 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가 소식을 접하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희 아버지가 확실하다면 빨리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으나 행정연수원은 알아보겠다고만 한 뒤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하루에 3대밖에 없고 자리도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기다리라고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마냥 기다릴수없어서 먼저 여행사를 알아보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가고 나서 본 뒤에는 하루에 3대밖에 없다는 비행기가 대구에서도 제주에서도 오는 비행기편이 있는게 확인이 되었습니다.
또 한 다른 유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거절당했습니다.
그렇게 중국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사고가 난 지안시까지 6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빙의관(장례식장)이었는데 그곳에 돌아가신 아버지가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아빠가 중국에서 그것도 한국과는 다른 냉동고가 아닌 냉장고에 방치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유가족들도 도착을 하였고 고인의 모습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냉장고가 아닌 냉동고를 요구하였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장례문화가 다른 것은 어쩔수 없다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곳에는 한국을 대표로 하여온 영사관 직원도 있었고 이번 연수를 책임지고 온 지방행정연수원 직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것은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시간이 지남으로서 고인의 몸에 부패가 오기시작하였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냉동고를 요구 하였고 냉동고가 없다기에 아이스크림을 저장하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2일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였습니다. 그로인해 어떠한 고인은 배가 부풀어서 냉동고의 미닫이 문까지 부푼 상태였습니다
정부를 대표로 하여 온 차관님은 고인을 어서빨리 한국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앞으로 어떻게 고인들을 한국으로 모실지에 대해서 유가족과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차관님께서는 이곳이 워낙 오지인데다가 공항도 없어서 그곳보다는 큰 심양으로 고인들을 모시고 간다는 거였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고인들을 그럼 어떻게 모시고 갈건지 물어보니 중국은 냉동차가 없기 때문에 일반 봉고차에 관을 싣고 12시간 정도를 이동한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날씨는 매우 습하고 더워서 그곳까지 이동하는데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었기에 무리가 있다고 하였으나 차관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2시간 정도를 냉동을 하면 이동하는데 해동이 안되니 걱정말라고 하였지만 봉고차의 내부는 이미 부식도 되었고 에어컨도 갖추지 못한 상태의 차였습니다.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올리는 법을 몰라서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갑론을박이 오가던 중 이상태로는 도저히 고인을 옮길 수 없다고 하여 확실한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동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양 공항으로 가는데까지는 고인을 이대로는 옮길 수가 없어서 중국의 팔보산이라는 회사가 와서 고인들의 부패를 막는 약품처리를 하여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동하기에 앞서 차관님께서 약속하신거는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는 거였고 또한 장례절차와 관련하여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정부를 대표로 하여 오신 분이기에 저희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오늘까지 약 100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대화도 오고간게 없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고인이 공무원이기에 조용히 죄인처럼 숨죽여 왔습니다.
국민들의 혈세로 여행이나 다는 다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죄를 짓는 기분이였고 세월호를 따라한다고 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숨죽여 있었습니다. 나라가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불안한 상황에서도 꼭 해외연수를 가야했냐는 말에 대해서도 저희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왜 꼭 그때 연수를 가야했는지와
국민들의 혈세가 어떠한 이유로 중국해외연수일정을 잡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또한 저희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막대한 유족보상금을 받았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거기에 대해서는 먼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족보상금은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퇴직수당을 받은것입니다. 그것도 100%를 전부 받는 것이 아니라 70%만 받는 것 입니다.
또한 정부로 부터 보상금 외 9천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 버스회사가 사고를 낸데에 해서는 정부가 먼저 지급을 하고 9천만원을 중국회사로부터 구상권을 갖는 다는 것입니다.
즉 저희는 정부로 부터 받은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관님께서는 장례와 관련하여 모든 절차, 추후 정부입장과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이야기 하시겠다고 하셔놓고 연락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지자체 소관으로 돌려 놓으시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자체는 원래 소속 공무원이었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도 지방정부이다 보니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관계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니 저희 유가족들은 어디에 가서 이야기를 할지 막막합니다.
그렇기에 저희 유가족들이 뛰어서 국회의원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몇몇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여야 대표님은 모두 바쁘신 관계로 답변이 없으셨지만 강창일 의원님과 심상정 의원님등이
국정감사에서 정종섭 장관님을 상대로 이번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시니
유가족과 만나 대화를 하시겠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아무런 답변도 없으시기에 저번주 목요일 8일날 정부청사 앞에서 작은 집회를 하였으나
누구 하나 나와서 이야기 해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무엇을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게 아닙니다.
속시원히 저희가 이해를 할 수 있게 대화를 하자는 겁니다.
사고가 난 버스는 빗물이 세고 할 정도로 노후화가 되고 안전벨트도 갖추지 못한 버스였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나고서는 사전답사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마저도 연수원은 하지를 않았고 국정감사에서는 여행사를 통하여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연수를 주관하는 연수원에서 사전답사를 해야하는데 이걸 왜 여행사를 통해서 해야 하는지도 궁금하고 138명이나 되는 연수에 안전요원 한명도 배치되지 않는다는게 말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중에는 저희 유가족이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으시지만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빠를 잃은 자녀와 30년간 함께한 미망인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한번만 읽어 주십시고 다른 분들에게도 널리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 알려지고 저희가 생각하는게 잘못되었다면 고칠수 있는 계기가 되고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이러 나지 않도록 예방 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빠...
아빠를 못본지 벌써 100일이 지났네 그 사이 추석도 가고 내일모레면 아빠 생신도 오는데
맨날 말 안듣고 어리광 부려서 미안해...
사랑한다고 말도 못했는데 아빠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께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잘 지킬께
아빠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있어
아빠한테 받은 사랑 절대 잊지 않고 나중에 그 사랑 다시 돌려줄께
아빠 너무 보고싶고 어리광부리고 싶은데 잘참을께
다시 볼때 까지 잘 지내고 있어 담배 적당히 피고 술 조금만 먹고
사랑한다 아빠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