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절대 제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만 저 당시 제가 느꼈던 생각과 감정 그대로를 적었던 것이고, 그 당시엔 제가 W에게 희롱당했다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지금은, W도 저도 같은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시계가 너무 좁았달까요.
제 감정조차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상태라, W 입장에선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땐 너무 어렸고, 그 상황은 제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었죠.
그리고 제 닉네임 때문에 하루키 언급 많이 하시네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기는 했지만, 하루키를 딱히 신간마다 찾아읽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묘사가 많은 글은 좀 지겹더군요.
그리고 제가 쓰는 글이 소설이 아니냐고 하시는 댓글에 대해서는..
음. 무슨 글이든 지어낸 얘기 아니냐는 말은 익명의 특성상 항상 따라붙는 것 같더라고요. 딱히 실례되는 말도 아니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으니 뭐 제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지만.
너무 생생하게 써서 소설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공개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고, 그렇다면 최대한 읽기 편하게 잘 설명해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감은 있고요.
그리고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서 쓴다고 말한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 같은 건 전혀 못 적는 것이고 큼직큼직한 사건이나 감정 같은 것만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로 설명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설로 생각하셔도 상관없는 게,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제 글 자체가 워낙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뿐이니 그저, 결말 욕 나오는 영화나 책 보는 것처럼 가볍게 보시라고 한 적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보셔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읽다가 체한다는 댓글 있던데. 뭐..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니까 가볍게 보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길.
생김새는.. 생김새 얘기까지 자세히 하면 더 소설이라고 할 것 같아서 그냥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제 생김새는 딱 체대생같다.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피부색이나 체격이나 목소리나.
머리가 길든 짧든 대학생 내내 체대생 같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거 외엔 딱히 설명할 것이 없는 것 같고요. 지금은 옷차림도 달라졌고 근육도 옛날보다 빠져서 그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라.
그리고 W는.
선이 굵직굵직한 상남자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리여리한 여성스러운 외모도 전혀 아니고. 키 크고 옷 빨 잘 받는다.. 정도? 좀 인상이 차갑고. 성격이나 말하는 것만 보면 정나미 없이 굴어서 재수없을 타입 같은데 대시를 많이 받는 거 보면 여자들이 그런 싸가지를 좋아하는 건지 외모를 좋아하는 건지. 아무래도 외모 때문일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충분히 설명이 되셨을지 모르겠네요.
***
그렇게 며칠을 전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고,
W는 태연히 원래의 모습 그대로 행동했죠.
저는 W가 저에게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키스에 대해서 언급해주기를 바랐었죠.
아마 W는 제가 평소대로 행동하길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그 날을 이후로 완전히 W와 저의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해야 될까요.
몇날 며칠을 어색하게 행동한 뒤로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제가 원래의 저처럼 행동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같이 다니는 무리였고, 워낙 W랑도 친했던 사이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 번 W에게 말을 걸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꾸하는 W가 있었죠. 그럼 저는 속으로 답답해하고. 왜 나만 이렇게 안달인 걸까, 싶었죠.
약간의 기대 이후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지만 그건 표현할 수 없는, 혼자 삭혀야만 하는 감정이었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답답함이었죠. 아마 터놓고 남자답게, 우리 이야기 좀 해보자, 라고 했으면 깔끔했을텐데 전 용기가 없었죠. 자꾸 W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론은, W는 키스했던 걸 없던 일로 하고 싶은거구나, 였습니다. 그렇다면 을인 제가 맞춰 주는 게 맞는 거였죠.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우정인지 애정인지 모를 그 관계를 이어가길 원했던 건 우리 둘 다 같았겠지만, 이 상황에서 노력해야하는 건 제 몫이라고 느꼈으니까.
저 혼자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 한 구석, 여전히 답답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었지만, 표면상 우리는 원래의 우리로 돌아갔죠.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표면상은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저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예전처럼 치근덕대거나 스킨십을 하는 건 거의 없었죠.
한번은, 제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해서 W의 팔과 허리를 잡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는 저 혼자 놀라서, 아 미안하다, 하고는 금방 손을 떼버렸죠.
그러다가 W랑 둘이 있게 된 적이 있어요.
우리 소원 걸고 내기할래?
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내기? 싫어.
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죠. 그냥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뱉은 말이었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내뱉은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전 W의 시선이 불편해서 눈 둘 곳을 찾지 못했죠.
몇 초간 정적 속에서 절 보다가 한 마디 하더군요.
두려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네. 전 두려웠어요, W가 무슨 말을 할지. 대체 어떤 소원을 말하려고 이러는 건지.
또 다시 내기를 하고나면 우리 관계가 더 발전을 하든 여기서 단절이 되든 달라질 것만 같았죠.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것도 감당을 못 하겠더군요. 그 당시의 전 그랬어요. W와 키스한 이후에 몇날 며칠을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 짓을 또 되풀이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게다가, 그 이후로 제가 W에게 가지는 감정을 의심하게 됐죠. 이게 마냥 우정은 아니라고. 그걸 인지하기 시작하니까, 전 제 감정이 들킬까 봐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이 드러날 만한 순간이 오면 역정을 내다시피 하며 감추려들었죠.
마음 한 편으로는, 무슨 소원을 원하는 건지 당연히 궁금했죠. 혹시나 W도 나와 같은 마음이란 걸 알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궁금증보다 더 컸던 게 두려움이었기에 저는 한 발 내뺐죠.
두렵긴 뭐가, 그냥 하기 싫어.
라고 대답하곤 그 자리를 피했어요.
아무리 두려워도 저는 W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그 때 들었어야만 했죠. 지금 와서 하는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이랑 야자 끝나고 다 같이 하교를 하는데 교문에 여자애 한명이 서 있더라고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는데, W가 여자애 앞에 서더니, 가자, 하면서 손을 잡더라고요.
너무 놀라고 당황했죠. 그 때 제가 느낀 감정은, 마치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애인이 바람 피는 걸 목격한 것과 같은 감정이랄까. 당황을 넘어서서 어이가 없고 화가 났죠. 제 감정과 같지는 않더라도, W도 약간은 저에게 마음이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 혼자만의 기대였을 수도 있지만.
제가 그 자리에서 벙쪄 있는 동안, 여자애의 손을 잡은 채로 우리들에게 소개하더라고요. 자기 여자친구라고. 한 학년 후배라고.
저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다 놀랐죠. W는 고백을 많이 받곤 했는데, 항상 당장은 교제에 관심 없다며 거절해왔었거든요. 그걸 우리가 다 아는데, 갑자기 여자친구라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니, 적어도 나한테는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죠.
친구들이야 뭐, 여자에 관심 없는 척 하더니 그 동안 쇼한거였냐, 하면서 장난쳤지만 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그래서 W 팔을 잡고, 잠시 얘기 좀 하자, 하고 끌고 갔죠. 그 당시는 지금 당장 한 마디라도 안 하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친구들과 그 여자애는 교문에 놔 둔 채로 약간 외진 곳에 갔죠.
그리곤 다짜고짜 화를 냈죠.
너 뭐야.
뭐가.
갑자기 웬 여자친구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어제.
야, 장난쳐?
뭐가.
갑자기 나한테 말도 없이 여자친구를 사귀냐?
그걸 너한테 일일이 말해야 되냐.
W의 태도는 냉담하기 짝이 없었죠. 저는, 나한테 키스해놓고, 라는 말이 입 앞까지 튀어나왔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정작 그 말을 안 하니까 우리 대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소득 없이 겉돌 뿐이었죠.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말하지 않으니까, 제 답답함과 화는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인 거였죠. 화는 나는데, 저 역시도 할 말이 없어 씩씩대고만 있으니까,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하고 가버리더라고요.
진짜 냉정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뻔뻔하다고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몰라요. 집으로 오는 내내 분노가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았죠. 처음에는, 날 가지고 놀았던 거네, 개자식.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나쁜ㅅㄲ, 욕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했죠.
진짜 나한테 마음이 없었던 거네.
순전히 내가 착각했던 거네.
키스 이후에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한 W의 태도로 인해 배신감이나 원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 존재하고 있던 일말의 기대감조차 산산이 부서졌죠. 약간은, 정말 약간은 W도 나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제 오산이었던 거죠.
그렇게 결말이 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허망해지더군요. 첫 여자친구한테 차인 것보다도 더 큰 실연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고백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시작한 것도 없지만, 전 분명히 차인 거였죠. 니가 싫다고 직접 말로 들은 것도 아니지만 말보다도 더 정확하게 저에 대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생각했죠.
물론 저 역시도 제가 W를 이성의 감정으로 좋아한다고 확정지은 것도 아니어서 계속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W도 조금은 하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슬프더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굴었을 때보다 더 처참했죠. 이제는 조금도 특별한 관계도 뭐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조차 쌀쌀맞게 구는 W를 대하니, 원래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됐다고 생각했죠. 괜히 키스했다고 후회도 하고. 키스를 안 했으면, 여전히 W는 나에게는 좀 다르게 구는, 나에게는 좀 더 상냥한, 나만의 W였을 텐데, 싶었죠.
어디서부터 후회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 후회되더라고요.
키스를 하지 말걸, 아니 그러고나서 어색하게 굴지 말걸. W가 내기 하자고 했을 때 내기할걸, 무슨 소원인지 들어나 볼걸..
이미 시각이 많이 늦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적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온통 후회로 가득찬 이야기
***
저는 절대 제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만 저 당시 제가 느꼈던 생각과 감정 그대로를 적었던 것이고, 그 당시엔 제가 W에게 희롱당했다고 생각했던 거죠.
물론 지금은, W도 저도 같은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시계가 너무 좁았달까요.
제 감정조차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상태라, W 입장에선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땐 너무 어렸고, 그 상황은 제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었죠.
그리고 제 닉네임 때문에 하루키 언급 많이 하시네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기는 했지만, 하루키를 딱히 신간마다 찾아읽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묘사가 많은 글은 좀 지겹더군요.
그리고 제가 쓰는 글이 소설이 아니냐고 하시는 댓글에 대해서는..
음. 무슨 글이든 지어낸 얘기 아니냐는 말은 익명의 특성상 항상 따라붙는 것 같더라고요. 딱히 실례되는 말도 아니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으니 뭐 제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지만.
너무 생생하게 써서 소설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공개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고, 그렇다면 최대한 읽기 편하게 잘 설명해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감은 있고요.
그리고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서 쓴다고 말한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 같은 건 전혀 못 적는 것이고 큼직큼직한 사건이나 감정 같은 것만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로 설명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설로 생각하셔도 상관없는 게,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제 글 자체가 워낙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뿐이니 그저, 결말 욕 나오는 영화나 책 보는 것처럼 가볍게 보시라고 한 적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보셔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읽다가 체한다는 댓글 있던데. 뭐..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니까 가볍게 보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길.
생김새는.. 생김새 얘기까지 자세히 하면 더 소설이라고 할 것 같아서 그냥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제 생김새는 딱 체대생같다.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피부색이나 체격이나 목소리나.
머리가 길든 짧든 대학생 내내 체대생 같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거 외엔 딱히 설명할 것이 없는 것 같고요. 지금은 옷차림도 달라졌고 근육도 옛날보다 빠져서 그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라.
그리고 W는.
선이 굵직굵직한 상남자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리여리한 여성스러운 외모도 전혀 아니고. 키 크고 옷 빨 잘 받는다.. 정도? 좀 인상이 차갑고. 성격이나 말하는 것만 보면 정나미 없이 굴어서 재수없을 타입 같은데 대시를 많이 받는 거 보면 여자들이 그런 싸가지를 좋아하는 건지 외모를 좋아하는 건지. 아무래도 외모 때문일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충분히 설명이 되셨을지 모르겠네요.
***
그렇게 며칠을 전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고,
W는 태연히 원래의 모습 그대로 행동했죠.
저는 W가 저에게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키스에 대해서 언급해주기를 바랐었죠.
아마 W는 제가 평소대로 행동하길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그 날을 이후로 완전히 W와 저의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해야 될까요.
몇날 며칠을 어색하게 행동한 뒤로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제가 원래의 저처럼 행동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같이 다니는 무리였고, 워낙 W랑도 친했던 사이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 번 W에게 말을 걸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꾸하는 W가 있었죠. 그럼 저는 속으로 답답해하고. 왜 나만 이렇게 안달인 걸까, 싶었죠.
약간의 기대 이후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지만 그건 표현할 수 없는, 혼자 삭혀야만 하는 감정이었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답답함이었죠. 아마 터놓고 남자답게, 우리 이야기 좀 해보자, 라고 했으면 깔끔했을텐데 전 용기가 없었죠. 자꾸 W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론은, W는 키스했던 걸 없던 일로 하고 싶은거구나, 였습니다. 그렇다면 을인 제가 맞춰 주는 게 맞는 거였죠.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우정인지 애정인지 모를 그 관계를 이어가길 원했던 건 우리 둘 다 같았겠지만, 이 상황에서 노력해야하는 건 제 몫이라고 느꼈으니까.
저 혼자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 한 구석, 여전히 답답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었지만, 표면상 우리는 원래의 우리로 돌아갔죠.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표면상은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저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예전처럼 치근덕대거나 스킨십을 하는 건 거의 없었죠.
한번은, 제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해서 W의 팔과 허리를 잡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는 저 혼자 놀라서, 아 미안하다, 하고는 금방 손을 떼버렸죠.
그러다가 W랑 둘이 있게 된 적이 있어요.
우리 소원 걸고 내기할래?
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내기? 싫어.
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죠. 그냥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뱉은 말이었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내뱉은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전 W의 시선이 불편해서 눈 둘 곳을 찾지 못했죠.
몇 초간 정적 속에서 절 보다가 한 마디 하더군요.
두려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네. 전 두려웠어요, W가 무슨 말을 할지. 대체 어떤 소원을 말하려고 이러는 건지.
또 다시 내기를 하고나면 우리 관계가 더 발전을 하든 여기서 단절이 되든 달라질 것만 같았죠.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것도 감당을 못 하겠더군요. 그 당시의 전 그랬어요. W와 키스한 이후에 몇날 며칠을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 짓을 또 되풀이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게다가, 그 이후로 제가 W에게 가지는 감정을 의심하게 됐죠. 이게 마냥 우정은 아니라고. 그걸 인지하기 시작하니까, 전 제 감정이 들킬까 봐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이 드러날 만한 순간이 오면 역정을 내다시피 하며 감추려들었죠.
마음 한 편으로는, 무슨 소원을 원하는 건지 당연히 궁금했죠. 혹시나 W도 나와 같은 마음이란 걸 알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궁금증보다 더 컸던 게 두려움이었기에 저는 한 발 내뺐죠.
두렵긴 뭐가, 그냥 하기 싫어.
라고 대답하곤 그 자리를 피했어요.
아무리 두려워도 저는 W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그 때 들었어야만 했죠. 지금 와서 하는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이랑 야자 끝나고 다 같이 하교를 하는데 교문에 여자애 한명이 서 있더라고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는데, W가 여자애 앞에 서더니, 가자, 하면서 손을 잡더라고요.
너무 놀라고 당황했죠. 그 때 제가 느낀 감정은, 마치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애인이 바람 피는 걸 목격한 것과 같은 감정이랄까. 당황을 넘어서서 어이가 없고 화가 났죠. 제 감정과 같지는 않더라도, W도 약간은 저에게 마음이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 혼자만의 기대였을 수도 있지만.
제가 그 자리에서 벙쪄 있는 동안, 여자애의 손을 잡은 채로 우리들에게 소개하더라고요. 자기 여자친구라고. 한 학년 후배라고.
저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다 놀랐죠. W는 고백을 많이 받곤 했는데, 항상 당장은 교제에 관심 없다며 거절해왔었거든요. 그걸 우리가 다 아는데, 갑자기 여자친구라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니, 적어도 나한테는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죠.
친구들이야 뭐, 여자에 관심 없는 척 하더니 그 동안 쇼한거였냐, 하면서 장난쳤지만 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그래서 W 팔을 잡고, 잠시 얘기 좀 하자, 하고 끌고 갔죠. 그 당시는 지금 당장 한 마디라도 안 하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친구들과 그 여자애는 교문에 놔 둔 채로 약간 외진 곳에 갔죠.
그리곤 다짜고짜 화를 냈죠.
너 뭐야.
뭐가.
갑자기 웬 여자친구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어제.
야, 장난쳐?
뭐가.
갑자기 나한테 말도 없이 여자친구를 사귀냐?
그걸 너한테 일일이 말해야 되냐.
W의 태도는 냉담하기 짝이 없었죠. 저는, 나한테 키스해놓고, 라는 말이 입 앞까지 튀어나왔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정작 그 말을 안 하니까 우리 대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소득 없이 겉돌 뿐이었죠.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말하지 않으니까, 제 답답함과 화는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인 거였죠. 화는 나는데, 저 역시도 할 말이 없어 씩씩대고만 있으니까,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하고 가버리더라고요.
진짜 냉정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뻔뻔하다고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몰라요. 집으로 오는 내내 분노가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았죠. 처음에는, 날 가지고 놀았던 거네, 개자식.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나쁜ㅅㄲ, 욕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했죠.
진짜 나한테 마음이 없었던 거네.
순전히 내가 착각했던 거네.
키스 이후에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한 W의 태도로 인해 배신감이나 원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 존재하고 있던 일말의 기대감조차 산산이 부서졌죠. 약간은, 정말 약간은 W도 나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제 오산이었던 거죠.
그렇게 결말이 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허망해지더군요. 첫 여자친구한테 차인 것보다도 더 큰 실연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고백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시작한 것도 없지만, 전 분명히 차인 거였죠. 니가 싫다고 직접 말로 들은 것도 아니지만 말보다도 더 정확하게 저에 대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생각했죠.
물론 저 역시도 제가 W를 이성의 감정으로 좋아한다고 확정지은 것도 아니어서 계속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W도 조금은 하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슬프더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굴었을 때보다 더 처참했죠. 이제는 조금도 특별한 관계도 뭐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조차 쌀쌀맞게 구는 W를 대하니, 원래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됐다고 생각했죠. 괜히 키스했다고 후회도 하고. 키스를 안 했으면, 여전히 W는 나에게는 좀 다르게 구는, 나에게는 좀 더 상냥한, 나만의 W였을 텐데, 싶었죠.
어디서부터 후회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 후회되더라고요.
키스를 하지 말걸, 아니 그러고나서 어색하게 굴지 말걸. W가 내기 하자고 했을 때 내기할걸, 무슨 소원인지 들어나 볼걸..
이미 시각이 많이 늦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적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