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7. ‘바람’으로 탄생한 최초의 ‘시민’ 대통령 ⑷
대모달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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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자금 수사 그리고 ‘재신임’을 자처한 대통령
우리 나라의 일천한 헌정사이지만 권력형 비리는 역대 집권자 중에서 한 사람도 비껴가지 않았다. 또 우리 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어느 사회나 권력 주변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고자 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고, 가족이나 측근들 가운데는 햇볕이 비출 때 한몫을 챙기려는 사특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또 나무가 조용하고 싶어도 바람에 흔들리듯이, 주변에서 흔들어대고 유혹하는 경우에 휘말려들기도 한다.
국민들은 군사정권 독재자들의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김영삼·김대중 민선정부에서까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기억하면서, 그리고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를 지켜보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의 깨끗한 이미지와 청렴한 공사생활, 정치계보와 측근세력이 없어서 비리 같은 것은 단절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취임 초부터 측근비리가 터져 나왔다. 정권의 도덕성을 개혁 추진의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노무현은 망연한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참여정부 출범 전에 일어난, 권력형이 아닌 것이었다.
386 핵심 참모인 안희정이 나라종금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얼마 뒤에는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쎈앤문그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충북 청주의 키스나이트클럽에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노무현의 오랜 측근이었던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도술이 대선 직후 SK 측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의 어려웠던 시기 ‘좌희정·우광재’로 불리던 측근과 부산 변호사 시절부터의 측근 최도술이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자 노무현은 참담한 심경을 가누기 어려웠다.
그런데 과거 정권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은 주로 패자 측이나 전임 정권에 사정의 칼을 뽑는데 비해 이번에는 갓 취임한 대통령의 최측근이 줄줄이 구속된 것이다. 노무현은 취임 직후 국정원장, 기무사령관을 불러 대통령 직보를 중지할 것을 지시했다. 검찰총장과 국세청장을 불러서는 대통령 일가를 포함하여 측근 누구를 막론하고 부정 비리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적발하라고 지시했던 터였다.
16대 대선자금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여야간에 공방전이 치열하여 언제 화산이 폭발할 지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 검찰은 먼저 청와대 측근들을 덮쳤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검찰개혁’의 의지가 검찰의 보복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따랐다.
노무현은 7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과 야당 모두 16대 대선자금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자”고 제안했다. 노무현은 대선자금의 공개 범위에 대해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선거자금만이 아니라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서 쓴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야 하며, 지출뿐만 아니라 수익금 내역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검증절차로는 특별검사나 검찰수사 등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할 것도 아울러 제안했다.
노무현은 회견문에서 “역대 어느 선거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자부해 온 지난 대선 과정이 세삼스럽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민주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대선자금에 대해 한마디 실언을 한 것을 빌미로 야당은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이룩한 소중한 성과마저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대선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여야 모두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덧붙여 “정치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정에 정치권의 용기있는 결단과 국민 여러분의 협력이 있기”를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 제안을 민주당이 먼저 수용하여 대선 자금의 전모를 공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하여 여야 동시공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도술 문제가 드러나자 노무현은 10월 10일 청와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최 전 비서관에게 잘못이 있다면 입이 열 개라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불미스런 사건이 생긴 데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깊히 사과한다”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이어서 중대 선언을 발표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는 정가의 폭풍이 되었다. 취임 7개월이 채 안 되는 시점에 나온 초특급 제안이었다. 노무현은 취임 뒤 대북송금 특검, 검사들과의 대화, 이라크 파병 등 난감한 문제, 결단해야 할 현안들이 많았다. ‘재신임’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와대 참모에 따르면 “이 결정을 두고 정략의 산물이니 하며 온갖 말들이 많았지만, 그날 대통령의 결심은 참모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재신임’ 문제는 노무현의 독단적인 결심이었다. 재신임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국정 문제도 있지만, 측근들의 비리문제도 포함되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 전 비서관이 1억 원을 받았든 10억 원을 받았든 액수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참여정부’는 그 어떤 정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제 무슨 낯으로 국민 앞에 나서겠느냐는 심정이었다. 국민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져 버렸다고 여긴 것이다.”
노무현의 ‘재신임’ 문제는 한 발 더 나갔다. 10월 13일 정기국회 국정연설에서 재신임 방법·시기와 관련하여, 12월 15일을 전후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의견을 냄으로써 재신임 문제는 한바탕 정가에 소용돌이를 몰아친 다음 노무현의 구상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입은 상처는 적지 않았다.
노무현은 “당시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다”고 했다. “국민들한테 다시 신임을 묻지 않고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버겁고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하나의 정권에 의해서 역사가 크게 바뀌거나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권이 한 번 서고 한 번 무너지는 이 과정이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나는 이미 그 때는 대통령으로서 거의, 말하자면 힘이 다 빠져버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신임을 던진 것인데, 재신임도 되지 않았다.”
노무현은 11월 2일 지난 대선 당시 여야의 대선과 관련한 정치자금 전모를 밝혀야 한다면서 검찰을 통한 전면적인 대선자금 수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가 진행 중인 SK비자금 수사를 각 정당의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로 확대키로 결정했다. 대검 중수부는 11월 4일 15명의 검사로 불법대선자금 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은 SK·삼성·LG·현대차·롯데 등 5대 기업에 이어 금호·한화·두산·풍산 등의 기업도 수사대상에 올려 불법 대선자금 제공여부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대검 중수부가 여야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 3당은 국회에서 ‘대통령 측근비리의혹 특검법’을 제정하여 정부에 이송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일종의 맞불작전으로 물타기 공세였다. 야당에 의한 대통령에 대한 파상 공세가 시작되었다. 노무현은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돌려 보낸 특검법안을 재의결하여 법률로 확정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어 여야 간에 불법으로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러나 그 액수에는 차이가 많았다. 노무현은 12월 14일 청와대에서 4당 대표와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문제와 관련 16일에는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은퇴를 얘기한 것은 한나라당이 무책임한 의혹 부풀리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강조어법으로 한 것이지만 그 말에 대해 결과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의 일련의 파격적인 제안과 ‘튀는’ 발언은 정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제안이나 발언은 상당 부분이 야당과 족벌신문에 의해 본의가 왜곡되거나 거두절미되어 오해되는 소지가 많았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7. ‘바람’으로 탄생한 최초의 ‘시민’ 대통령 ⑷
● 대선자금 수사 그리고 ‘재신임’을 자처한 대통령
우리 나라의 일천한 헌정사이지만 권력형 비리는 역대 집권자 중에서 한 사람도 비껴가지 않았다. 또 우리 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어느 사회나 권력 주변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고자 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고, 가족이나 측근들 가운데는 햇볕이 비출 때 한몫을 챙기려는 사특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또 나무가 조용하고 싶어도 바람에 흔들리듯이, 주변에서 흔들어대고 유혹하는 경우에 휘말려들기도 한다.
국민들은 군사정권 독재자들의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김영삼·김대중 민선정부에서까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기억하면서, 그리고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를 지켜보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의 깨끗한 이미지와 청렴한 공사생활, 정치계보와 측근세력이 없어서 비리 같은 것은 단절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취임 초부터 측근비리가 터져 나왔다. 정권의 도덕성을 개혁 추진의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노무현은 망연한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참여정부 출범 전에 일어난, 권력형이 아닌 것이었다.
386 핵심 참모인 안희정이 나라종금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얼마 뒤에는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쎈앤문그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충북 청주의 키스나이트클럽에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노무현의 오랜 측근이었던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도술이 대선 직후 SK 측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의 어려웠던 시기 ‘좌희정·우광재’로 불리던 측근과 부산 변호사 시절부터의 측근 최도술이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자 노무현은 참담한 심경을 가누기 어려웠다.
그런데 과거 정권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 국민의 눈길을 끌었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은 주로 패자 측이나 전임 정권에 사정의 칼을 뽑는데 비해 이번에는 갓 취임한 대통령의 최측근이 줄줄이 구속된 것이다. 노무현은 취임 직후 국정원장, 기무사령관을 불러 대통령 직보를 중지할 것을 지시했다. 검찰총장과 국세청장을 불러서는 대통령 일가를 포함하여 측근 누구를 막론하고 부정 비리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적발하라고 지시했던 터였다.
16대 대선자금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여야간에 공방전이 치열하여 언제 화산이 폭발할 지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 검찰은 먼저 청와대 측근들을 덮쳤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검찰개혁’의 의지가 검찰의 보복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따랐다.
노무현은 7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과 야당 모두 16대 대선자금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자”고 제안했다. 노무현은 대선자금의 공개 범위에 대해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선거자금만이 아니라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서 쓴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야 하며, 지출뿐만 아니라 수익금 내역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검증절차로는 특별검사나 검찰수사 등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할 것도 아울러 제안했다.
노무현은 회견문에서 “역대 어느 선거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자부해 온 지난 대선 과정이 세삼스럽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민주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대선자금에 대해 한마디 실언을 한 것을 빌미로 야당은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이룩한 소중한 성과마저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대선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여야 모두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덧붙여 “정치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정에 정치권의 용기있는 결단과 국민 여러분의 협력이 있기”를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 제안을 민주당이 먼저 수용하여 대선 자금의 전모를 공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하여 여야 동시공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도술 문제가 드러나자 노무현은 10월 10일 청와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최 전 비서관에게 잘못이 있다면 입이 열 개라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불미스런 사건이 생긴 데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깊히 사과한다”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이어서 중대 선언을 발표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는 정가의 폭풍이 되었다. 취임 7개월이 채 안 되는 시점에 나온 초특급 제안이었다. 노무현은 취임 뒤 대북송금 특검, 검사들과의 대화, 이라크 파병 등 난감한 문제, 결단해야 할 현안들이 많았다. ‘재신임’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와대 참모에 따르면 “이 결정을 두고 정략의 산물이니 하며 온갖 말들이 많았지만, 그날 대통령의 결심은 참모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재신임’ 문제는 노무현의 독단적인 결심이었다. 재신임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국정 문제도 있지만, 측근들의 비리문제도 포함되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 전 비서관이 1억 원을 받았든 10억 원을 받았든 액수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참여정부’는 그 어떤 정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제 무슨 낯으로 국민 앞에 나서겠느냐는 심정이었다. 국민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져 버렸다고 여긴 것이다.”
노무현의 ‘재신임’ 문제는 한 발 더 나갔다. 10월 13일 정기국회 국정연설에서 재신임 방법·시기와 관련하여, 12월 15일을 전후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의견을 냄으로써 재신임 문제는 한바탕 정가에 소용돌이를 몰아친 다음 노무현의 구상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입은 상처는 적지 않았다.
노무현은 “당시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다”고 했다. “국민들한테 다시 신임을 묻지 않고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버겁고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하나의 정권에 의해서 역사가 크게 바뀌거나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권이 한 번 서고 한 번 무너지는 이 과정이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나는 이미 그 때는 대통령으로서 거의, 말하자면 힘이 다 빠져버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신임을 던진 것인데, 재신임도 되지 않았다.”
노무현은 11월 2일 지난 대선 당시 여야의 대선과 관련한 정치자금 전모를 밝혀야 한다면서 검찰을 통한 전면적인 대선자금 수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가 진행 중인 SK비자금 수사를 각 정당의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로 확대키로 결정했다. 대검 중수부는 11월 4일 15명의 검사로 불법대선자금 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은 SK·삼성·LG·현대차·롯데 등 5대 기업에 이어 금호·한화·두산·풍산 등의 기업도 수사대상에 올려 불법 대선자금 제공여부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대검 중수부가 여야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 3당은 국회에서 ‘대통령 측근비리의혹 특검법’을 제정하여 정부에 이송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일종의 맞불작전으로 물타기 공세였다. 야당에 의한 대통령에 대한 파상 공세가 시작되었다. 노무현은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돌려 보낸 특검법안을 재의결하여 법률로 확정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어 여야 간에 불법으로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러나 그 액수에는 차이가 많았다. 노무현은 12월 14일 청와대에서 4당 대표와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문제와 관련 16일에는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은퇴를 얘기한 것은 한나라당이 무책임한 의혹 부풀리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강조어법으로 한 것이지만 그 말에 대해 결과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의 일련의 파격적인 제안과 ‘튀는’ 발언은 정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제안이나 발언은 상당 부분이 야당과 족벌신문에 의해 본의가 왜곡되거나 거두절미되어 오해되는 소지가 많았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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